'킬링미소프틀리' 故로버타 플랙, 교사 10년·30대에 빛 본 거장 작성일 02-25 76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더 퍼스트 타임…'·'필 라이크…' 빌보드 핫100 1위 <br>1994년 내한공연한 적도</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b2dM0Mdz0X">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e426a6807e033449919230b3de049b35379a9177f53a2a05616779657c7e3aff" dmcf-pid="KVJRpRJquH"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뉴욕=AP/뉴시스] 로버타 플랙"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324trqb.jpg" data-org-width="720" dmcf-mid="73KqvqKG0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324trqb.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뉴욕=AP/뉴시스] 로버타 플랙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c4a1604c8ffec33a583486d170a7efa86c07ac0dc4c163a9b526bf9c11fe96dc" dmcf-pid="9fieUeiBpG" dmcf-ptype="general">[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88세를 일기로 24일(현지시간) 별세한 미국 거장 R&B 가수 겸 피아니스트 로버타 플랙(로베타 플랙)은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1973)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뮤지션이다. 월드스타로 통하는 재즈 보컬 나윤선이 리메이크했고 콘서트에서도 이 곡을 자주 부른다. </p> <p contents-hash="ad1d8fbd1253ddd38652e7946e0a841cc883ef75ba7ec32a2688bef1eea2601b" dmcf-pid="24ndudnbzY" dmcf-ptype="general">솔, 재즈, 포크를 친밀하게 섞은 음악으로 1970년대를 풍미했다. 워싱턴 D.C.에서 10년 동안 교사로 일하며 도심에서 밤마다 공연을 한 플랙은 197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에 삽입된 '더 퍼스트 타임 에버 아이 소 유어 페이스(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로 스타덤에 올랐다.</p> <p contents-hash="ad26e548c54303b1d31bd80229d3a1562391d30866ac40b9ed6f7afad2521a24" dmcf-pid="V8LJ7JLKuW" dmcf-ptype="general">이 노래는 플랙이 1969년 애틀랜틱 레코즈(Atlantic Records)'를 통해 발매한 데뷔 앨범 '퍼스트 테이크(First Take)에 실렸는데, 영화가 개봉된 후에야 싱글로 발매됐다. 싱글 공개 이후 몇 주 뒤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 '필 라이크 메이킹 러브(Feel Like Makin' Love)'(1974)로도 '핫100' 정상에 올랐다.</p> <p contents-hash="a1abbe7e1371b2d87a8f4b7a464a959e3db998a2eaeb6a8b1f25ba79addf85eb" dmcf-pid="f6oizio90y" dmcf-ptype="general">1973년과 1974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았다. 두 해 모두 그녀의 히트곡을 작곡한 작곡가가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다. 1973년엔 도니 해서웨이와 부른 '웨어 이즈 더 러브(Where Is the Love)'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듀오·그룹 또는 합창단' 부문에서 최우수 팝 보컬 퍼포먼스 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으로는 이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부문을 차지했다. </p> <p contents-hash="7e50f8b6ae3bee83d3de8ae48f08489ca4eca0f4c82a88fd1b79aa8a53c69314" dmcf-pid="46oizio93T" dmcf-ptype="general">플랙은 1937년 2월10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블랙 마운틴에서 다섯 형제 자매 중 두 번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가족은 버지니아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리치먼드, 그다음에는 워싱턴의 분리된 교외 지역인 알링턴에서 거주했다. </p> <p contents-hash="8c68ec6fedd295f9880ae1b05bf6d8604880bc87b6720ee6a8a93a463c5dd350" dmcf-pid="8Pgnqng20v" dmcf-ptype="general">그녀의 아버지인 라론 플랙은 재향군인청에서 제도사(製圖士)로 일했다. 그녀의 어머니인 아이린(카운슬) 플랙은 고등학교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알링턴의 교회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오르간을 연주했다.</p> <p contents-hash="9975d24e637b749f40ae3d642d9dc045882dd9290c0aa833f1615d36ad4b2cf6" dmcf-pid="6QaLBLaVFS" dmcf-ptype="general">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생계를 위해 플랙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팜빌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영어와 음악을 가르쳤다.<br>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85fe9fb5d0e241c0cc6c2abfa39e6551ca0cf5cae18348782f5c9c9a554d5764" dmcf-pid="PxNoboNf7l"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로버타 플랙"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466ahzs.jpg" data-org-width="720" dmcf-mid="z4P4Z4P3U1"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466ahzs.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로버타 플랙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89f7121d4f826598c3d1c1d1316ff3e076ff1194d3e6bc79db2fa28d2d58e7af" dmcf-pid="QMjgKgj4Uh" dmcf-ptype="general">이 경험은 오래도록 플랙의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미국 최초의 흑인 중산층 여성 월간지 '에보니(Ebony)'와 인터뷰에서 "제 교실엔 피아노가 없었지만, 피치 파이프와 오토하프를 들고 방방곡곡을 돌며 음악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p> <p contents-hash="67cdcea1a98e019887c77467eb7eeb7e68a94b51a29eed120ccb9453c9583c49" dmcf-pid="xRAa9aA80C" dmcf-ptype="general">독서광이었던 플랙은 열다섯 살에 대학에 입학해 10대 때 졸업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 경력은 천천히 꽃을 피웠다. 그녀가 주목을 받았을 때 그녀는 30대가 훨씬 넘었고 중학교 교사 일을 그만둔 직후였다.</p> <p contents-hash="e9a94f8df19e25ef8b2d7c7c14d16285b2a807d7530c10b04e9729b6c701e83f" dmcf-pid="yYU3s3UlzI" dmcf-ptype="general">주목 받기 이전 고인은 작은 클럽에서 수년간 약 600곡의 레퍼토리와 무대 매너를 개발했다. 이름을 얻고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을 때도 진지한 교사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지지 않았다. </p> <p contents-hash="5a9a36f910d3b447d9f1ca6bd2b125c65baa399078ea83d4907a4a4bd73d150e" dmcf-pid="WGu0O0uSuO" dmcf-ptype="general">플랙이 워싱턴 D.C.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520 클럽(Club)과 미스터 헨리스(Mr. Henry's) 공연이었다. 인종적으로 다양한 고객을 유치하고 공개적으로 게이와 레즈비언 고객을 환영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레스토랑은 플랙을 위해 무대와 줄지어 있는 좌석 스타일의 2층을 특별히 꾸몄다. </p> <p contents-hash="5d6b6004694145c508569a8e91a069c15844969ae227415b997203f777cd81a1" dmcf-pid="YH7pIp7v0s" dmcf-ptype="general">플랙은 BBC 다큐멘터리 "킬링 미 소프틀리: 더 로버타 플랙 스토리(Killing Me Softly: The Roberta Flack Story)'에서 클럽 공연 당시를 떠올리며 "저는 제 기술을 개발하고, 악보를 읽고, 해석하고, 재편곡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느꼈고, 기회가 된다면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편안했다."</p> <p contents-hash="a016a46709181cb8c78dd568fd701bb71fe6acaae862476aa18444a9434fa7f6" dmcf-pid="Gl1XkX1mum" dmcf-ptype="general">뉴욕타임스는 플랙의 보컬에 대해 강력한 목소리는 부드러움, 자부심, 확신 또는 갈망을 전달할 수 있었지만 절망은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플랙의 가장 잘 알려진 앨범 대부분엔 몇 개의 펑크와 솔 트랙이 포함됐다. 백비트(두 번째와 네 번째 박자를 강조하는 리듬 사운드)가 중심이고, 사회적 메시지도 풍부했다. <br>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065bc0fe2e201b069618b687dd2b6d8d4c164bcd0a546f4de4dc68020e247b7b" dmcf-pid="HStZEZts0r"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뉴어크=AP/뉴시스] 로버타 플랙"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686gawv.jpg" data-org-width="720" dmcf-mid="qcLJ7JLK75"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686gawv.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뉴어크=AP/뉴시스] 로버타 플랙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613631b1af1c97dd3b39998a5928c73d5c6e3bd324a966075e453990dd400b85" dmcf-pid="XvF5D5FO7w" dmcf-ptype="general">하지만 플랙의 큰 히트곡들은 항상 다른 분위기였다. 느린 포크 발라드('더 퍼스트 타임'), 달콤한 노래('킬링 미 소프틀리'), 호화로운 러브송('필 라이크 메이킹 러브') 등이 그 예다. </p> <p contents-hash="d3f22d07eba534bae22ca672ee0ae47908f94a1d835a0609b5576ba035803f8a" dmcf-pid="ZT31w13IzD" dmcf-ptype="general">작가 겸 민속학자인 줄리어스 레스터는 플랙 관련 롤링스톤 리뷰에서 "모든 것을 조용하고 온화하게 표현한다"고 들었다. "제가 아는 어떤 가수보다도 그녀는 조용하고 느린 노래(대부분이 그렇다)를 때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한 강렬함으로 채울 수 있다"고 평했다.</p> <p contents-hash="f2746e33e1ba26435ddcf66208c9d46d19758294706bf07212dd906a0d40bb2d" dmcf-pid="5y0trt0CuE" dmcf-ptype="general">레스터는 그러면서 "인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노래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당신이 결코 알지 못했던 내면의 장소에서 반응을 이끌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p> <p contents-hash="de4118da51bfe356f91b5bf2053a5531879dd5744e6d5700b2587179537c56d0" dmcf-pid="1WpFmFphFk" dmcf-ptype="general">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비평가들은 종종 플랙의 목소리의 절제된 힘과 그녀의 스타일 범위의 폭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의 노래는 균형, 내면성과 확신, 감상주의와 과장 등 팝 스타에 대한 모든 측면에서 표준적인 기대치를 재설정했다는 것이다. </p> <p contents-hash="5cc66210f79da57af056f0c1a59c796a84b0dbbee2a1e61be8e52180291a51c4" dmcf-pid="tYU3s3Ulzc" dmcf-ptype="general">플랙은 1970년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내 목소리가) 니나 시몬, 낸시 윌슨, 오데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디온 워릭, 심지어 마할리아 잭슨처럼 들린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모두 내가 한 사람처럼 들린다고 하면 걱정할 거다. 하지만 그들 모두와 비슷하다고 말할 때, 난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걸 한다"고 말했다. </p> <p contents-hash="76d6ca58f5d9951379b1bb1f00acd182a752e8a03936b9969dc1a7de42edb8a0" dmcf-pid="FGu0O0uSzA" dmcf-ptype="general">플랙은 니나 시몬, 아레사 프랭클린, 앨리샤 키스와 같은 가수 겸 피아니스트 계보에 속해 있었는데, 이들의 음악은 블루스, 흑인 교회, 서양 클래식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업적 장르가 갖고 있는 한계에 꾸준히 도전해 왔다.<br>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5be4663e1db023878c932935ffc17e620063851635784a7b482f88c5181ee770" dmcf-pid="3bMPtPMU0j"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로버타 플랙"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826jcea.jpg" data-org-width="720" dmcf-mid="BMieUeiBF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wsis/20250225100650826jcea.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로버타 플랙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0a8a38f5d608994cc781df11378340abcb83e7ed0346cd66b89d4e99519977f3" dmcf-pid="0KRQFQRu3N" dmcf-ptype="general">플랙은 영성과 오컬트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이는 치유사였던 할머니의 영향 덕분이라고 했다.</p> <p contents-hash="fc19c38125baf9b54a0716e27060d06d530b5c8248be7553fe203f4e86fd4f30" dmcf-pid="p9ex3xe7Ua" dmcf-ptype="general">플랙은 2018년 미국 재즈 재단에서 평생 공로상을, 2020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국내와 큰 인연은 없었으나, 1994년 내한공연했다.</p> <p contents-hash="cd532d4340fc63f140a56a61a5ed506021430d5ceefa23dd901f1f4eeaf00b46" dmcf-pid="U2dM0Mdzpg" dmcf-ptype="general">플랙은 세상을 떠나기 전 최근 몇 년 동안 워싱턴에서 학교 교사로 일하던 시절과 클럽에서 보낸 밤의 추억을 만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여전히 라이브 음악을 선보이는 헨리스에 다시 가보겠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최근에 갔었다. 크랩 케이크가 너무 좋았다"고 답했다.</p> <p contents-hash="342984f7d4eebb4cee8b6866774ba025fcd16c72f2a3195c022820303486ccf9" dmcf-pid="uVJRpRJq7o" dmcf-ptype="general">고인의 매니저이자 친구인 수잔 코가에 따르면, 플랙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다. 2022년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공연을 할 수 없게 됐었다.</p> <p contents-hash="0ac69f1bad8ffacfd23f2c306ebc06407466fe6ba6cc5c183980604219a559ed" dmcf-pid="7fieUeiBpL" dmcf-ptype="general"><span>☞공감언론 뉴시스</span> realpaper7@newsis.com </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바니와 오빠들' 노정의·이채민, 설렘 가득 캠퍼스 라이프 02-25 다음 루시 최상엽, ‘그놈은 흑염룡’ OST ‘Shine A Light’ 발매 02-2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