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이 지탄해도 버텼다” 故이상용, 횡령누명도 견뎠는데..'향년81세'로 별세 작성일 05-09 51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xGiv8mXDvK">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a84858d5b4b2a55a68e036ceafe1f7d7c508e43147f39baaa4a0e2dbaddee7ff" dmcf-pid="yeZPlKJqhb"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5/09/poctan/20250509205221734xgkr.png" data-org-width="650" dmcf-mid="QeX6hbdzT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09/poctan/20250509205221734xgkr.pn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80266804327173c4b5ad2ada99b3777bee31fa95c28fc8b280d14396183c11ae" dmcf-pid="Wd5QS9iBCB" dmcf-ptype="general">[OSEN=김수형 기자] 국민 MC, ‘뽀빠이’ 이상용이 세상을 떠났다. 9일 낮 12시 45분,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향년 81세. 그의 별세 소식은 긴 여운과 함께, 그가 겪어야 했던 굴곡진 인생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p> <p contents-hash="c0c8fe0e2a655162d9695a99d29c70cc01c834978c40060c6adecd62c678da84" dmcf-pid="YJ1xv2nbTq" dmcf-ptype="general">고인은 생전 수많은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과 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 공연 등 ‘선행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실제로 그는 600명 가까운 심장병 어린이의 수술을 도우며 생명을 살려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평생을 봉사와 나눔에 바쳤던 그에게도 가혹한 시련이 닥쳤다.</p> <p contents-hash="9aed2c0380f5384abd91d875eef76348e37ba6c1209c5a881600cffee4e33d0a" dmcf-pid="GitMTVLKWz" dmcf-ptype="general">절친 김홍신 작가에 따르면, 이상용은 한때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세간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김 작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사연이었다. 그 전까지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상하게 휘말린 건, 명백한 모함이었다”고 단호히 말했다.</p> <p contents-hash="b3ccd41e9d0609c555f2c32b2d12f34f6f959f2cf8975e23d38d76730bfde4c3" dmcf-pid="HnFRyfo9C7" dmcf-ptype="general">이상용 역시 그 시절을 담담히 회고했다. “평생을 다 바쳐서 600명 수술해줘서 다 잘 살아 있는데, 하나도 수술 안 했다고 하니까... 전 국민이 나쁜 놈이라고 했다. 저는 가만히 있었다. 하늘은 안다고 믿었다"며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기에 버텼다"고 회상했다. </p> <p contents-hash="e93c5cab108cce2042214e83dea19e11dcc1442cd26bde0fb8f5f3c253358014" dmcf-pid="XL3eW4g2Cu" dmcf-ptype="general">그는 억울함을 피해 한동안 미국으로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하며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관광객을 태우고 묵묵히 견뎠다. 결국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 순간마저도 언론은 외면했다. “무죄 판결이 났는데도 신문에는 안 나더라. 그게 더 서글펐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p> <p contents-hash="924068fdec29a21a5fd58d5dbe3d08ea2b0758c2328de1f96131e420d33032d5" dmcf-pid="Zo0dY8aVTU" dmcf-ptype="general">김홍신 작가는 “그 순간을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를 더 좋아하게 됐다”며 “속에 있는 아픔, 개인적인 얘기를 나에게 털어놨던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고 있다. 다 그렇게 지나간 거다”고 회상했다.</p> <p contents-hash="31d32a41d32cea4b0b2d5edef139abde3861d198182d0d03a0a650b70b084922" dmcf-pid="5QYfOzMUCp" dmcf-ptype="general">억울한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묵묵히 제 길을 걸었던 이상용. “힘내라! 할 수 있다!”고 외치던 그의 목소리는, 알고 보면 그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한 영향력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뽀빠이 이상용.그는, 세상이 잠시 몰라줘도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낸 진짜 어른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ssu08185@osen.co.kr </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이연복, 가게 운영은 어쩌고…몬엑 셔누·주헌과 파격 그룹 행보 예고 (편스토랑) 05-09 다음 차은우, 이르면 7월 군입대…"군악대 면접 결과 기다리는 중" 05-09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