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벌어진 귀신 소동?... 실제 사서 기록은 이랬다 작성일 05-11 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SBS 귀궁></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99yFbLOJFo"> <p contents-hash="74f94b8cfac7df6a8f32a67cc648807a0b2e37d693ebff73e73d5f11d20d6d2a" dmcf-pid="22W3KoIi0L" dmcf-ptype="general">[김종성 기자]</p> <p contents-hash="8db1b2399278f642cf3a374b99d9d966dd1671f50abce73335906d5b4f499b97" dmcf-pid="Vdp2RmXDpn" dmcf-ptype="general">왕조시대 사람들의 기록이나 구비전승에서는 귀신이나 요괴가 많이 등장한다. SBS 사극 <귀궁>의 등장인물들처럼 그 시절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는 그 시절 무당이나 점쟁이들의 영향력이 오늘날보다 막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조국가의 정치이념에도 기인하는 측면이 있었다.</p> <p contents-hash="a55e793f45beb629d1122c7f5bf1b94234255a0b75b3c7c37fc8b19b1b8cf7b9" dmcf-pid="fJUVesZw0i" dmcf-ptype="general">현대의 국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국민 지지에 둔다면, 왕조시대 군주들은 그것을 신의 위임에 뒀다. 군주들은 다수의 귀족과 수많은 민중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신수설을 표방했다. 신으로부터 권위를 수여받았다며 스스로를 하늘의 대리인으로 자리매김했다.</p> <p contents-hash="5daa6f82887d864e53b1ac8020a3f72905022788dd5c0e639d8e0490bfb68e18" dmcf-pid="4iufdO5rzJ" dmcf-ptype="general">이는 군주를 지지하는 쪽과 군주에 저항하는 쪽이 갖가지 신(神)의 관념을 내세우는 배경이 됐다. 군주의 편에 선 사람들은 자연현상과 신비현상 등을 근거로 하늘이 자신들의 군주를 지지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저항하는 쪽은 그런 현상들을 근거로 정반대 주장을 만들어냈다.</p> <div contents-hash="4583554cccad7bfb9326200ddb892c805d0cb6480c2ad8a84bdcea5f2b4ea607" dmcf-pid="8n74JI1mzd" dmcf-ptype="general"> 국민주권국가의 정당들은 자신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런 식으로, 왕조시대 정치세력들은 신이 자신들의 편임을 증명하고자 애썼다. 이러다 보니 왕조시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온갖 신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e8841f62037f3654f7ad627e6f6703044d4b807ecfa19e3aad9f9a740f104d4" dmcf-pid="6Lz8iCts0e"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5/11/ohmynews/20250511142402510mlvh.jpg" data-org-width="640" dmcf-mid="KaS5zJrRp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1/ohmynews/20250511142402510mlvh.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SBS 드라마 <귀궁>의 한 장면.</td> </tr> <tr> <td align="left">ⓒ SBS</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091e038ed2d7f8e1e2982242ca7ca120bde04e70dca9771cbf7bb84812b3fc68" dmcf-pid="Poq6nhFO3R" dmcf-ptype="general"> <strong>귀신 소동에 서로 다른 주장했던 신하들</strong> </div> <p contents-hash="6479661d7321a0c1a5dc2a2b2e0d66ab38d6eab5ffd991887785f60504ed503a" dmcf-pid="QgBPLl3IuM" dmcf-ptype="general"><귀궁>의 어린 원자 이광(박재준 분)은 몹쓸 중병에 걸렸다. 계속 병석에 누워 있던 그는 입에서 검은 액체도 토해내고 이따금 난동도 일으켰다. 그래서 기물이 파손되고 사람들이 다쳤다.</p> <p contents-hash="55cf319d423ef87e8aed7a9a1aa7bb28a1bc1a7a6bd9bbfafb0a387f0f7a9cea" dmcf-pid="xabQoS0CUx" dmcf-ptype="general">원자의 몸에 빙의돼 이런 상황을 초래한 악귀는, 안경 기술자로 살지만 실은 무녀인 여리(김지연 분)와 인간의 몸을 빌린 이무기인 강철(육성재 분)의 공격을 받았다. 그 뒤에는 원자의 몸을 떠나 임금 이정(김지훈 분)의 몸으로 옮겨 가기도 했다.</p> <p contents-hash="d5b4e2a7fba75c8b3e40183fa4b6ca264161d20ef6b509791233e6b1cefefa54" dmcf-pid="y9yFbLOJ0Q" dmcf-ptype="general">실제로 귀신이 빙의했든 안 했든, 어린 원자가 몹쓸 병에 걸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위와 같은 상황은 왕조시대 정치투쟁의 소재가 되기 쉬웠다. 임금의 정적들은 '하늘이 왕실의 편이 아니며 잡신들이 왕실을 지배한다'는 허위 관념을 퍼트릴 수 있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도 군주와 왕실은 귀신이나 악귀와 연관될 만한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p> <p contents-hash="a0e270846266098e021a8c581526a1cc301557cd90ab1cbbea1b3345c196de50" dmcf-pid="W2W3KoIi0P" dmcf-ptype="general">궁궐 은행나무에 불로 지져진 쥐의 사체가 걸리고(작서의 변) 이것이 세자에 대한 저주 사건으로 해석되고 이 때문에 후궁 박경빈(경빈 박씨)과 그 아들 복성군이 누명을 쓰고 폐위된 1527년이었다. 상반기에 이런 일이 있었던 그해 7월 14일(음력 6.17), 경복궁에서 괴물 소동이 일어났다.</p> <p contents-hash="ac52ee7afca1a83cae8f715b4d98d62dd065a7e85319f0da952864e64e623881" dmcf-pid="YVY09gCnp6" dmcf-ptype="general">음력으로 중종 22년 6월 17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이날 경복궁 숙직실에서 잠을 자던 나팔수 군인이 한밤중에 가위에 눌려 기절했다. 이 소리에 놀란 군인들은 누운 채로 눈을 떴고, 그들의 눈에는 이상한 장면이 포착됐다. 삽살개 같고 망아지만한 물체가 비린내를 풍기며 숙직실을 빠져나가는 장면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괴물은 경복궁 내의 모퉁이에서도 목격됐다.</p> <p contents-hash="e54f76248291429e7a1cb1766e425d15416ece4762b2dbc6ae9696870fe3cdee" dmcf-pid="GfGp2ahLp8" dmcf-ptype="general">요괴의 출현으로 소문나기 쉬운 이 상황은 왕실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중종 임금의 어머니이자 대비인 정현왕후 윤씨는 훗날 인종 임금이 될 세자 이호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경복궁에서 다른 궁궐로 옮겨갈 것을 촉구했다.</p> <p contents-hash="4efcda022ddc66972da3750ea77b1944b343435a5170303c33124b833beedf88" dmcf-pid="H4HUVNloU4" dmcf-ptype="general">같은 달 23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홍문관 전한(典翰, 종3품) 박우 등은 인심을 소란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궁궐 이어를 반대했다. 민심 동향에 영향을 주는 궁궐 이어는 정국 판도에도 파급력을 끼치므로 관료들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p> <p contents-hash="1b8686941d005b7239876ad1fd351e15b27284c0b71dac2039f8e20b0569ffaa" dmcf-pid="X8XufjSg7f" dmcf-ptype="general">그렇지만 이 당시 왕실의 입장은 달랐다. 미확인 물체로 인해 왕족의 신상이 위협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천신이 아닌 일개 요괴가 왕실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묵과할 수 없었다. 결국 중종은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했다가, 상황이 잠잠해진 뒤 경복궁으로 되돌아갔다.</p> <p contents-hash="8d1786a070052bfb960e021b51df3111967288fca8c7029f9a1a1ba4bd32b318" dmcf-pid="Z6Z74Ava7V" dmcf-ptype="general">1527년의 이 사례에서는 신하들이 궁궐 이어에 소극적이었던 데 비해, 장희빈의 시아버지인 현종 임금이 재위할 때인 1666년 사례에서는 신하들이 궁궐 이어에 적극성을 보였다. 이때는 현종의 어머니이자 효종의 아내인 인선왕후 장씨가 귀신 소동의 주인공이었다.</p> <p contents-hash="56b657738fd5174fe01cbe98e78a443701a0bc17179e0a90113d89c3f52e2d4e" dmcf-pid="5P5z8cTNz2" dmcf-ptype="general">효종 임금 때인 1653년 8월 16일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이 조선을 탈출하기 17일 전인 1666년 8월 18일(음력 7.18)이었다. 이날 영의정 정태화와 좌의정 홍명하가 창덕궁 희정당에서 현종을 알현했다.</p> <p contents-hash="6e76ab8fa0c58d556a88b1096592143692a95af087edd4bdb1b43954a58175d8" dmcf-pid="1Q1q6kyju9" dmcf-ptype="general">이 장면을 기록한 음력 7월 18일자 <현종실록>에 따르면, 정태화와 홍명하는 "며칠 전 대궐에서 귀매(鬼魅)가 요사스런 일을 벌였다는데, 믿어야 할지 말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귀신과 도깨비 등을 포괄하는 귀매라는 표현을 사용해가며 그런 것들이 괴이한 일을 벌인 게 맞느냐는 물음에 대해 현종은 "자전께서 계시는 통명전 근처에서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p> <p contents-hash="7e78368091e2ec700222bb2b16b128740fb7eba320ab5a983df463028e2a6b93" dmcf-pid="tZcCH2nbuK" dmcf-ptype="general">현종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컨대 돌덩이가 투척되거나 의복이 불에 타거나 궁인들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등의 일이 자주 있다"고 한 뒤 "궁인들이 거처하는 곳은 훨씬 심하다"고 대답했다.</p> <p contents-hash="36999b39b90d16fdac120b03969ddbff28078d558df16425a7335feed327eb92" dmcf-pid="F5khXVLKzb" dmcf-ptype="general">유교 성리학을 배운 사대부들은 보통 이런 경우에 '그런 허황된 일에 마음이 미혹되면 안 됩니다'라며 학문 수행을 권고하지만, 이때는 상황이 달랐다. 정승들은 뭔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그래서 "자전을 이 궁에서 계속 모시는 것은 불가하니 이어하시는 조치가 있어야겠습니다"라고 건의했다. 현종은 대비의 거처를 광화문 서남쪽인 경희궁으로 옮겼다.</p> <p contents-hash="ba02c452c6ec5798db8d728d242a4beb8c8426a16d3e4ddaac08425902a8b291" dmcf-pid="31ElZfo9UB" dmcf-ptype="general">오늘날에는 귀신이 나왔다는 이유로 대통령실이나 대통령 관저를 옮기거나 혹은 대통령 가족이 몸을 피신하는 것이 시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왕조시대에는 신하들의 반발을 초래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다.</p> <p contents-hash="b5566092ace645aeb4224cf9a08e649b1582f9f240d260ac054d7e37af02915a" dmcf-pid="0tDS54g2zq" dmcf-ptype="general">왕조시대 군주들은 왕권의 정통성을 하늘의 신에 뒀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미지가 잡신이나 요괴와 연결되는 것을 기피했다. 반대세력은 그런 관념을 역이용해 군주를 공격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왕조시대에는 귀신 소동이 잦았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美 국채 투자한 지석진, 녹화 중 투자관리사 전화에 심각 “급한 일” (핑계고) 05-11 다음 케이윌, 김준수와 '허그'로 이어진 인연 공개..."인생은 계획대로 펼쳐지진 않아"(아는 형수) 05-1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