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인간이 세상을 구하는 까닭 작성일 05-16 60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무대만세 8] 극단 산수유 < 12인의 성난 사람들 ></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UMiuJfrR3T"> <p contents-hash="76a73543cf8505c5b322153712d5a0845d355ba4db2d3476c127e64dd5b9cedf" dmcf-pid="uRn7i4me0v" dmcf-ptype="general">[김성호 평론가]</p>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72494f7ad7f0e45906a3ade99c83fa42d1c3f25dfabea8abef13c90c4cfd53ab" dmcf-pid="7eLzn8sd7S" dmcf-ptype="blockquote2"> 의심을 품는 것은 찬양받을 일이다! <br> 당신들에게 충고하노니 <br> 당신들의 말을 나쁜 동전처럼 깨물어보는 사람을 <br> 즐겁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환영하여라! <br> <br> - 베르톨트 브레히트 '의심을 찬양함' 중에서 </blockquote> <div contents-hash="2bd642965311c11da8affc5052c12aa6d371d23527ab87bb7c8941ee038f4ceb" dmcf-pid="z7KTbtdzzl" dmcf-ptype="general"> <br>제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정에 선 열여섯 소년이 있다. 아버지는 가슴팍에 칼에 꽂힌 채 제 집에서 발견됐다. 소년은 새벽 3시 살해현장으로 돌아왔다가 경찰에 붙들렸다. 검찰은 그를 1급살인, 계획된 존속살인으로 기소해 사형을 구형했다. 사흘 간의 재판이 끝났다. 재판장은 배심원단에게 유무죄를 결정하라 요청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1급살인 법리에 따라 곧장 사형이 언도될 터다. </div> <p contents-hash="03f43ee9db40ea889fcd24cd0e1d238ccee4d10d113e548a6d5024e5ab75dea0" dmcf-pid="qz9yKFJq3h" dmcf-ptype="general">남은 건 배심원단의 최후 결정뿐이다. 만장일치로 유무죄를 따지는 절차다. 가만히 앉았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여름날, 모두 12명의 배심원이 좁은 방에 모여든다.</p> <p contents-hash="3706e2fbb9647d30dcffd3430b49915752e9e0e356f0c2dc9ac41f50b21cf410" dmcf-pid="Bq2W93iB0C" dmcf-ptype="general">유죄냐 무죄냐, 그것이 문제로다.</p> <div contents-hash="6bda7d6f7873f4480e186c2f83bdc4d56e675f096240431a9b15868dc6215460" dmcf-pid="bBVY20nbUI" dmcf-ptype="general"> <strong>걸출한 법정영화, 70년 건너 대학로에</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a88fae9194d8212d712aab950215d45344b5044e0a8eed69f1ad4315baccfc94" dmcf-pid="KbfGVpLK3O"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2658addj.jpg" data-org-width="1076" dmcf-mid="11y7i4me0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2658addj.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12인의 성난 사람들</strong> 공연사진</td> </tr> <tr> <td align="left">ⓒ 극단 산수유</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e9d18f809922d5873e92af0c988f65d108654bbfd506dda3e7f4d2f7ae2c1223" dmcf-pid="9K4HfUo9Us" dmcf-ptype="general">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은 영화 역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페일 세이프>·<오리엔트 특급 살인>·<허공에의 질주> 같은 명작이 숱하게 자리한 시드니 루멧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이다. 최고의 법정영화를 논할 때 결코 빠지는 법이 없는 이 영화는 작게는 형법, 크게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작품 가운데 자연스레 녹여냈다고 평가받는다. </div> <p contents-hash="c14ea9d0012f65c09bcca8498085a19acb47581074cca4b4943d855d7cb2a1ff" dmcf-pid="298X4ug2um" dmcf-ptype="general">1급살인, 배심원제와 같은 설정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인종차별과 세대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던 1950년대, 누가 봐도 불량한 흑인 소년의 존속살인을 두고 유죄임을 확신하는 11명과 그에 맞서는 단 한 사람의 이야기다.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배심원으로 불려온 12명 가운데서 오로지 한 명만이 다른 의견을 낸다. 무죄를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유죄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그가 반대하는 이유다.</p> <p contents-hash="cda7f116e8d0b002594b8f55e06304ec98ece64bf1768224f4744887a0ffb528" dmcf-pid="V26Z87aV3r" dmcf-ptype="general">TV단막극 대본으로 처음 쓰였고, 나중에 영화로 다시 만들어진 작품은 다분히 연극적인 구석이 많다. 시종 좁은 방 안에서 격렬한 대화로 전개된다는 설정부터가 그렇고, 격렬한 감정표현이며 첨예한 대립까지가 극적으로 표출된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법치주의까지의 제 요소를 캐릭터며 대화 가운데 상징적으로 반영한 시도도 역시 연극적이다.</p> <div contents-hash="0ca3c62c50b93c8a4205a08a83fabb8ccad3a306eb1cd0ce962788690c894089" dmcf-pid="fIvnSE0C3w" dmcf-ptype="general"> <strong>16살 소년의 목숨이 이들 손에 달렸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32b16008e775080b618d91444dda870cf6e0038a3e85460ea28e92286ba21238" dmcf-pid="4CTLvDphpD"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4086vanx.jpg" data-org-width="700" dmcf-mid="t3QcXCbY7H"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4086vanx.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12인의 성난 사람들</strong> 공연사진</td> </tr> <tr> <td align="left">ⓒ 극단 산수유</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f066e34775411ad5e5d2e64586889cb28e7fec98c089d7f65784c9e935d646f4" dmcf-pid="8hyoTwUlUE" dmcf-ptype="general"> 연극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 한국 연극 1번지 서울 대학로에서 5월 25일까지 공연된다. 민송아트홀에서 펼쳐지는 이 연극이 벌써 10년째를 맞았단 걸 알만한 이들은 아는 모양이지만, 모르는 이들 또한 적지는 않다. 극단 산수유가 위 원작 번안극을 공연한 지 올해로 10주년인데, 이번 연극이 그 기념 무대라고 전한다. 작품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건 그저 이 연극이 훌륭하기 때문 만이 아니다. 2025년, 오늘의 대한민국에 작품이 여전한 유효함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div> <p contents-hash="ae138e6e0ee6445e70854c81406fc6f6635077bc1c6018da3727661257248ae0" dmcf-pid="6lWgyruSuk" dmcf-ptype="general">처음 12명의 배심원이 좁고 덥고 냄새나는 방 안에 들었을 때, 합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출될 듯 보였다. 사흘 간의 재판은 검사의 독무대였고, 국선변호인은 이렇다 할 의욕조차 없어 보였다 했다. 피의자인 소년은 고작 16살의 나이에 전과가 5개나 됐다. 불량한 동네 양아치가 결국 중범죄자로 자랐다는 흔한 얘기처럼 보였다.</p> <p contents-hash="22e651fc2f0d34eaaf88a34c549f43fad4700584d86aea9f931a8d5374d3df28" dmcf-pid="PSYaWm7v3c" dmcf-ptype="general">소년이 나고 자란 동네는 극빈층이 모여 사는 우범지대다. 수시로 크고 작은 범죄가 일어나고, 때리고 부수고 싸우고 비명 지르는 소리가 숱하게 들려오는 그런 곳이다. 소년의 아버지 또한 전과자였고, 동네엔 그런 이들이 수두룩했다. 소년은 채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제 아버지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았다. 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저를 때리는 아버지까지 감옥에 갔을 땐 어른의 보살핌 없이 홀로 살아남아야 했다. 결손가정, 가난, 가정폭력, 방치 가운데 자라난 소년이 마침내 제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어딘지 그럴듯해 보일 정도다.</p> <p contents-hash="1986531f34b805eb4b91dcf500481f09e9d478fb86467a6c934eba451c6d2656" dmcf-pid="QvGNYszTzA" dmcf-ptype="general">모두 13명의 배우가 110분을 가득 채우는 공연이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판정 뒤편의 작은 공간, 영화에서처럼 막힌 방이라기보단 차라리 돼지우리처럼 보이는 열린 공간으로 연출됐다. 배심원단 요청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는 법정 경위를 제하고, 12명의 배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열띤 토론에 임한다. 정해진 절차 없이 만장일치, 끝장토론의 결과를 내야만 한다는 설정은 다분히 극화된 것이지만, 그래서 더욱 극적 긴장감을 더하는 장치로써 톡톡히 기능한다.</p> <div contents-hash="4588b860cd1c115fd36d0fd1ba5d2e58e55192624ba3844476c648395709630e" dmcf-pid="xTHjGOqy0j" dmcf-ptype="general"> <strong>누가 법을 망치는가</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d662cdd3afb382a9e7da08e6730a8e790a1e82e2c0611f4e187c00a0abd67faf" dmcf-pid="yQdpe2DxuN"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5499qvql.jpg" data-org-width="567" dmcf-mid="FDGNYszTF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5499qvql.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12인의 성난 사람들</strong> 공연사진</td> </tr> <tr> <td align="left">ⓒ 극단 산수유</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ec5c6b93350058b082c2b89dc06aac79c36099a16afa5759d732a80c24d1b4bc" dmcf-pid="WEsxmgXD0a" dmcf-ptype="general"> 법학을 공부한 이라면 누구나 윌리엄 블랙스톤의 저 유명한 법언쯤은 외고 있을 테다. '범인 열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사람 하나가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하여 현대 법치국가는, 설령 법 위에 독재정권이 군림하는 허울 뿐인 법치국가라 할지라도 무죄추정의 원칙 정도는 보장한다. </div> <p contents-hash="a2be08a4e24d6a8bb972067aebc307588ac34b16c0da3c340707ce616ac80ac3" dmcf-pid="YDOMsaZwUg" dmcf-ptype="general">▲경찰이 유죄의견으로 송치하고 검찰이 기소하여 법정에 세운 피의자라 할지라도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본다는 것 ▲아무리 유죄가 의심되는 이라 할지라도 변호인 선임을 비롯해 법적 방어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하는 것 ▲피의자가 제 결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기소한 검찰에게 죄를 입증할 책임을 두는 것 ▲혹여나 있을 수 있는 법체계의 실패에 대비하여 항고와 재항고, 재정신청, 나아가 3심제까지를 예비하는 것</p> <p contents-hash="3c99289ff79cb99b3c5a8f56ae2cc9f3868e51d3057992bf371ce45cec99aa40" dmcf-pid="GwIRON5rzo" dmcf-ptype="general">이 모든 장치를 통하여 무고한 이가 억울하게 짓밟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연방대법원이 50개 주 법원으로 하여금 배심원단 유죄평결을 만장일치로 하도록 강제한 것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p> <p contents-hash="b1b0eab6e6c8292a435f14c5baa01c6801e50f8cf6e98dae2a154ac0237a9a16" dmcf-pid="HrCeIj1mFL" dmcf-ptype="general">단 한 명의 반대라도 유죄를 깰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죄를 묻는단 건 그토록 엄정하고 엄격하게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저들의 법정신이란 이야기겠다.</p> <p contents-hash="15dd1a3a58b477b1320f48d418d6f7fc362237db025c1ece1e674ad20cf28454" dmcf-pid="XmhdCAtszn" dmcf-ptype="general">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가장 약한 고리는 인간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스스로가 예비한 장치를 너무나도 쉽게 망가뜨린다. 연극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 내보이는 것도 꼭 그러해서, 무작위로 불려온 12명의 배심원 대다수는 저희들이 이 방 안에서 하는 결정이 어떤 가치와 희생 위에 선 것인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에 도통 관심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지식조차 없다. 일면식도 없는 누구의 목숨을 좌우할 절체절명의 순간 앞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객석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도 두통이 몰려들 만큼 한심하다. 마치, 오늘의 세상이 실제로 그러하듯이.</p> <p contents-hash="799ddb43104e4f2b9ad70246b483d8638e27bbc1d702d00e1e361c12b50ce0b7" dmcf-pid="ZslJhcFO7i" dmcf-ptype="general"><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 법정드라마를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건 그래서 차라리 자연스럽다. 민주주의를 가리켜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의 체제라고 하는 건, 투표권을 가진 모두가 다른 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히 현명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다원주의와 법치주의가 보좌하도록 하는 한편, 교육을 통하여 역량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p> <div contents-hash="3f706fbf19dab3742f09d064e27a27d6010d398b506a0835ca0a32956f18909b" dmcf-pid="5OSilk3IpJ" dmcf-ptype="general"> <strong>인간은 의심하는 만큼 정의롭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96a6be66b3a43a093ab73c39a8a408fcf6b9368129269496541e681db5a62987" dmcf-pid="1IvnSE0Cpd"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7247thfr.jpg" data-org-width="400" dmcf-mid="peNKaxhL7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6/ohmynews/20250516143607247thfr.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12인의 성난 사람들</strong>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극단 산수유</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6ac4f0c20061785bf594987c02128364456c551a255aada2d71a336ac2435a54" dmcf-pid="tCTLvDph7e" dmcf-ptype="general"> 그러나 어디 현실이 그러한가. 한국사회는 다원주의의 가치체계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음을 매순간 목도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구호 또한 그저 구호로만 남았음을 알고 있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고 일확천금이 장래희망인 세상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을 모른 척 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div> <p contents-hash="b3b903c938d25ced4447e3064426f53a1c14df3dc9db259be0964ddc072c49ed" dmcf-pid="FmYaWm7v7R" dmcf-ptype="general">연극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은 저기 원작에서 헨리 폰다가 연기한 8번 배심원의 역전극을 그대로 재현한다. 다른 이들의 거센 비난 앞에 끝끝내 원칙을 지켜내는 이의 승리를 거의 숭고하게까지 그려낸다. 다른 11명의 배심원, 각자의 편견과 고정관념, 아집과 확증편향, 개별적 경험에서 비롯된 못난 생각들이 하나하나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모습임을 과장 없이 일깨운다. 그 모든 과정 끝에 마침내 평결을 내는 이 드라마의 결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는 이를 일러 희망이며 변화의 가능성이라고,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공감하고 다가서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증거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를 일이다.</p> <p contents-hash="ac686aeac8e1ba43bcf75a788ab22544c0cf04fb23debfd600a61849bfdd64e1" dmcf-pid="3sGNYszTUM" dmcf-ptype="general">그러나 한 편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의 설정, 누군가의 죽음이란 극단적 결과와 만장일치 이전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폐쇄적 환경이 오늘의 세상엔 없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죽음보다 훨씬 더 중한 결정을 우리는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내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 시대 수많은 불의한 결정들이 고도로 분업화 돼 그 책임을 어느 누구에게 겨냥해 물을 수 없도록 하고 있고, 또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와 끝까지 마주 앉아 진득하게 설득하고 설득 당하지는 않는 것이다.</p> <p contents-hash="544a0bca14181fbd851623a4ebcdfe4122c417b8bcb7076760a7816b1da99b19" dmcf-pid="0OHjGOqyux" dmcf-ptype="general">전쟁과 기후위기, 독재며 차별 같은 문제들이 연극 속 몇몇 못난이들 탓으로 일어나지 않는단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바다.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 오늘의 세상에 희망이 아니라 절망처럼 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 나아가 인류에겐 희망이 있을까? 절망의 언덕에서 희망을 구할 단서가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기는 한 걸까?</p> <p contents-hash="93de9cae7fcf3f99009c66a201561e90101d1444ac11682ecdd52e491fdaf99e" dmcf-pid="pIXAHIBW3Q" dmcf-ptype="general">현대철학은 인류에게 모든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열쇠를 찾아주는 데 완벽히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인류가 철학의 무력함만을 확인한 건 물론 아니다. 철학은 인간에게 정의로움이 무엇인지 알려주진 못하였지만, 정의로움을 고민하는 만큼 정의로움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 만큼은 알려주었다. 옳음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은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를 끝끝내 알 수 없겠으나, 적어도 의심하는 만큼은 그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저 브레히트가 의심을 찬양한 것도,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 오로지 절망적이기만 한 이야기는 아닌 것도, 모두가 이 때문이다.</p> <p contents-hash="611e53e187b09aefd1333eeda4f30fa5dfd775b1ae9f37155ed0493f1e9e7a36" dmcf-pid="UCZcXCbYuP" dmcf-ptype="general">25. 5. 14. 19:30 / 서울 대학로 민송아트홀 / 극단 산수유 / 12인의 성난 사람들<br>김애진, 박시유, 남동진, 신용진, 김도완, 황비홍, 강진휘, 한상훈, 이종윤, 홍성춘, 현은영, 반인환, 오륜</p> <p contents-hash="6c13b7938d31013f4d8b7574334c17134af8a9e1fac2f360a845a7421bea91b2" dmcf-pid="uh5kZhKGu6"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무대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공식] 임영웅 사칭해 '노쇼 사기' 발생…물고기뮤직 "각별한 주의 당부" (전문) 05-16 다음 '건강 주사'에 전신 피멍 아옳이, '13억 손해배상 소송' 병원에 승소 05-1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