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남 대한장애인양궁협회 전문체육위원 “여주 양궁, 다시 전성기로 거듭날 것” 작성일 05-21 88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여주 양궁, 다시 전성기를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strong><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666/2025/05/21/0000073236_001_20250521134012032.jpg" alt="" /><em class="img_desc">현성남 대한장애인양궁협회 전문체육위원</em></span> <br> “여주 양궁의 태동과 부흥, 다시 전성기로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br> <br> 1979년 여주농업고등학교에 양궁부가 창설되던 해 한 소년이 조용히 활을 쥐었다. 그 소년은 바로 현성남 대한장애인양궁협회 전문체육위원. 그는 여주 양궁의 1세대로 여주가 ‘양궁의 메카’로 불릴 수 있었던 출발점에 서 있던 인물이다. <br> <br> “중학교 때부터 활을 만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여주농고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게 됐죠.” <br> <br> 당시 박경식 교장의 주도로 양궁부가 창설됐고 4명의 작은 팀이 처음으로 활 시위를 당겼다. 그 출발은 미약했지만 여주양궁은 이후 놀라운 도약을 이루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br> <br> 특히 여주 출신 김경욱 선수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여주는 단숨에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김 선수는 여주 양궁의 상징이자 수많은 후배 선수들의 롤모델이 됐다. 그 뒤를 이어 이상숙 현 여주시의원 등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되며 여주 양궁의 명맥을 이어 갔다. <br> <br> “그때는 학교, 지자체, 지역사회가 하나 돼 양궁을 키웠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군청까지, 선수 육성 체계가 있었어요.” <br> <br> 여흥초, 여강초, 여주중, 여주여중, 여주여고(현 세종고), 여주군청까지 이어지는 양궁 인프라는 선수층을 두텁게 했고 지역 스포츠에 대한 공동체적 관심이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여주농고 양궁부는 해체됐고 지역 양궁은 한동안 위기를 맞기도 했다. <br> <br>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666/2025/05/21/0000073236_002_20250521134012076.jpg" alt="" /><em class="img_desc">현성남 대한장애인양궁협회 전문체육위원</em></span> <br> 하지만 최근 여주 양궁은 다시금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지역사회단체장들과 체육인을 중심으로 최근 여주시양궁발전위원회가 탄생했고 여주 출신 고광만 대한장애인양궁협회장이 취임하면서 전문체육위원회가 발족됐으며 지역 양궁 부활의 움직임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br> <br> 현 위원은 “양궁장은 물론이고 선수 육성 시스템만 체계적으로 갖춰진다면 여주는 다시 양궁 강호로 거듭날 수 있다. 김경욱 선수를 배출했던 그 시절처럼 여주 양궁은 다시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br> <br> 여주 양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누구보다 잘 아는 현성남 위원. 그의 확신 속에는 여주가 간직해온 양궁의 열정과 연대,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묻어나 있다. <br> <br> “양궁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집중력, 인내심, 그리고 함께하는 힘을 길러 줍니다. 여주 양궁이 다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저도 끝까지 힘을 보태겠습니다.” <br> <br> 작은 시작이 큰 전설을 만들었던 1979년. 그 첫 활 시위의 기억을 간직한 현 위원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여주 양궁의 전성기는 다시 온다”고 힘줘 강조했다. 관련자료 이전 “최고는 아니었지만 오래 치겠다는 꿈 이뤄 행복”…‘수비 달인’서효원, 30년 탁구인생 마무리 05-21 다음 맨시티 떠나는 더브라이너의 뜨거운 작별 인사 05-2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