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세계화 출발은 베트남 파견…군사 외교에 기여" 작성일 05-22 96 목록 <strong style="display:block;overflow:hidden;position:relative;margin:33px 20px 10px 3px;padding-left:11px;font-weight:bold;border-left: 2px solid #141414;">이신재 국방부 부장 학술대회서 "현재도 분쟁지역서 태권도 보급"<br>"태권도를 군대 정규 훈련과목 반영하자" 목소리도</strong><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22/AKR20250522118200055_02_i_P4_20250522155232728.jpg" alt="" /><em class="img_desc"> '태권도 세계화의 역사' 토론회 참가자들 <br> [태권도진흥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em></span><br><br> (무주=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국기(國技)인 태권도가 국군의 월남(현 베트남) 파견을 계기로 세계에 진출하고 특히 태권도교관단의 현지 활동이 우리나라 군사 외교 및 위상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br><br> 이신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조사연구부장은 22일 태권도진흥재단 등이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개최한 '국군의 해외파병과 태권도 세계화의 역사' 학술대회에서 "월남과 인연으로 태권도가 세계로 나가게 됐다"고 밝혔다.<br><br> 이 부장에 따르면 태권도의 해외 진출은 1957년 월남 대통령 방한 때 태권도 시범에 이어 4년 후 국군 태권도 선수단(20명)이 월남에 초청돼 1개월간 시범을 보인 데서 출발했다.<br><br> 이어 한국군 태권도교관 10명이 1962∼1963년 월남군 체육학교에서 태권도 지도 및 교육을 진행했다.<br><br> 이후 태권도교관단의 월남 진출이 활발해져 1966년부터 한국군이 철수하는 1973년까지 연인원 728명(장교 400명·사병 328명)이 현지인 23만여명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br><br> 미국 등 각국 파병 군인에게도 태권도 시범을 펼쳐 태권도의 세계 전파에도 기여했다.<br><br> 이 부장은 "태권도교관단은 당시 한국민 보호 역할은 물론 한국 귀빈 방문 때 경호 임무도 수행했다"며 "그들은 월남 대통령, 주월미군사령관 및 미군 등 다양한 계층에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보급하는 군사 외교를 활발하게 전개해 국가 위상을 한층 높였다"고 평가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22/AKR20250522118200055_01_i_P4_20250522155232736.jpg" alt="" /><em class="img_desc"> 태권도용어·월남의태권도'서적 <br> [태권도진흥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em></span><br><br> 현지 태권도파견단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 태권도 현지인 교육자료 등은 무주 태권도원 국립태권도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br><br> 대표적인 자료는 '주월 한국태권도 교관단 자료집(1969)', '월남 대통령의 태권도 교관 훈장 수여 문서(1973)', '태권도 교관 류시황 도복과 띠' 등이다.<br><br> 국군의 태권도 해외 보급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1993년부터 소말리아, 이라크, 레바논, 남수단 등지에 파견된 부대원들이 현지에서 태권도 지도와 시범을 진행하고 있다.<br><br> 최점현 예비역 중령(9단)은 토론회에서 "군 전력 향상을 위해 태권도를 정규 훈련과목으로 편성하고 태권도 측정 결과를 부대평가에 반영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br><br> kan@yna.co.kr<br><br> 관련자료 이전 “낌새는 이미 있었다, 터질 게 터진 것”…해커 표적된 韓 IT기업 05-22 다음 271억 과징금 면한 카카오모빌리티…"법원 판결 환영" 05-2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