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65〉우리별 1호를 만든 사람들 작성일 06-17 8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6Fjq55uSGH">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0465899a1201ef7fe32a48550991d1d6fcf9c261a46cde1097369506a337a500" dmcf-pid="P3AB117vtG"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1992년 초여름 우리별1호 개발팀이 최순달 교수(두 번째 줄 가운데)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KAIST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6/17/etimesi/20250617160130457qwne.jpg" data-org-width="700" dmcf-mid="84HoPPiB1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17/etimesi/20250617160130457qwne.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1992년 초여름 우리별1호 개발팀이 최순달 교수(두 번째 줄 가운데)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KAIST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72430098b64bf19c991e5b42e061d389d54da236b6c807ae3d7a06ca3a12d663" dmcf-pid="Q9CQBB8t5Y" dmcf-ptype="general">“와, 성공이다. 박사님 축하합니다.” 1992년 8월 11일 오전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센터.</p> <p contents-hash="b889697d1a1d8a3692992f8f46d83ef87b22f0a44c4d9647ecc208b8f50920d7" dmcf-pid="x2hxbb6F5W" dmcf-ptype="general">세계 22번째로 과학위성 우리별 1호기 발사에 성공하자 최순달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에게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p> <p contents-hash="4ec1f64e5c13d53a7bdb3b99684febc85381177470acc1aa1e51b7aa98cd51c7" dmcf-pid="yO4yrrSgYy" dmcf-ptype="general">우리별 1호 발사 성공까지 과정은 험난했지만 결과는 위대했다. 우주를 향한 최순달 박사와 젊은 과학자들의 꿈이 우리별 1호 발사 성공이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p> <p contents-hash="c55c0f71d7e955fd8a94a3086fb76c0bfe8f178379e024fb5fde51daf767c3cf" dmcf-pid="WI8Wmmva1T" dmcf-ptype="general">최 박사는 당시 감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p> <p contents-hash="51b57e453c811abe6915859bb41ed0a3ae26f4784580252b5bb7ede93371bfbd" dmcf-pid="YC6YssTN5v" dmcf-ptype="general">“그 순간은 내 삶 전체를 통해 가장 빛나는 기억으로 뇌리에 각인돼 있다. 내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신에게 그때의 일에 감사를 드린다.”(48년 후 이 아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립니다)</p> <p contents-hash="93c149252049c2550ea73e078278dd2659a850135a8b64673c1703e74d42340b" dmcf-pid="GhPGOOyjHS" dmcf-ptype="general">한국 인공위성의 개척자이자 아버지로 불리는 최 박사는 대구공고와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유학길에서 올라 버클리대 학사와 석사,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휴렛팩커드 연구원과 캘리포니아 공대 부설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근무했다. 귀국 후 금성사 초대 중앙연구소장,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 초대 소장을 거쳐 전두환 정부에서 체신부 장관을 지냈다. 이어 한국과학기술대학(KIT, 현 KAIST) 초대 학장, 한국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p> <p contents-hash="5c41388cfbfb68aeac14c808893184ab64d9d810b1455c868676ec48b6d74c95" dmcf-pid="HlQHIIWAHl" dmcf-ptype="general">과학기술계 원로임에도 최 박사는 1989년 봄 KIT 평교수로 돌아왔다. 그는 연구과제로 인공위성을 선택했다.</p> <p contents-hash="e2bc9c0cf76f861074d09709eba06f92a2c332a7e0a6ad91d938f1385a195019" dmcf-pid="XSxXCCYcZh" dmcf-ptype="general">최 박사가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p> <p contents-hash="f5ecf2296228e1cdb8d8183e531754fc454573ebaa2886124306694c7a03349a" dmcf-pid="ZvMZhhGk5C" dmcf-ptype="general">“우주기술은 국가 발전의 필수라고 생각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대학에서 인공위성 연구와 개발을 시작했다. 젊은 두뇌가 사명감을 발휘해서 전력투구할 때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 계획 제안자인 나부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JPL 근무 경력도 오래전 일이고, 그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p> <p contents-hash="9b44a2a70e8cc5eb4d9d7b3bffd2ae239b5c9a31fc99c24640abc30e5b062b2c" dmcf-pid="5nFcddNfYI"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과학기술 잡지를 통해 영국 2개 대학에서 위성설계와 분석 강좌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우샘프턴대에서 위성체 관련 단기강좌를 1989년 7월 16~21일, 서리대가 탑재체 공학과 통신위성에 관한 단기 강좌를 7월 23일부터 1주일 동안 연다는 기사였다.</p> <p contents-hash="a4353ab5f210e950b5821f1232d7472fb650f2688124260afcc720ce9de405bb" dmcf-pid="1L3kJJj4XO" dmcf-ptype="general">최순달 교수는 직접 강좌에 참석기로 했다. 한국과학재단에서 해외연수 경비와 학교에서 여비를 받아 7월 초 영국으로 출발했다. 예상보다 많은 과학자가 참석했다. 서리대 배리 에번스 교수의 강의가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들이 만드는 위성은 50㎏급 초소형이었다.</p> <p contents-hash="7b0b566d2ffdb3fdecd8ea5b239bd56f0e6afeb2502d684d1e54ac312b66224f" dmcf-pid="to0EiiA85s" dmcf-ptype="general">최 교수의 회고.</p> <p contents-hash="3d3c4738c879f2490985752fb203aea4a6d4bbebd1ecda6e4a0f81147d280e17" dmcf-pid="FgpDnnc6Ym" dmcf-ptype="general">“나는 이곳의 소형위성 분야에서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인공위성 중에서도 적은 예산으로 가장 빠른 시일 안에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검토한 결과 영국 서리대에 그와 같은 대학원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학생과 교수가 연구실에서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개발해 가는 일도 가능하지만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서 맞춤형 유학을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p> <p contents-hash="692cd6f0bf683dd9adf9bb2daacbd474bec15cd3585bf7dcf2266f4f73167c80" dmcf-pid="3aUwLLkPHr"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학생 유학을 위해 다시 영국 서리대로 날아갔다. 에번스 교수와 스웨팅 교수를 만났다.</p> <p contents-hash="3bed915b3663804017253d339d8373529bf03d60c3565f32cafd2933a941ec9b" dmcf-pid="0NurooEQ5w" dmcf-ptype="general">“학생 5명을 영국 신학기가 시작하는 1989년 10월 1일 입학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단 등록금은 1990년 3월에 내겠습니다.”</p> <p contents-hash="732f0289c3c50100f82af0e82404133d89a201b489852d0cef70cd9bd65e50a5" dmcf-pid="pj7mggDxXD" dmcf-ptype="general">“학생을 받아들이는 일은 좋지만 외상 교육은 있을 수 없습니다.”</p> <p contents-hash="a11c3ac0a1585526e49859ea1ee4d39f1454a88828bf7c3d4e1518f75c0a44f4" dmcf-pid="UAzsaawM5E" dmcf-ptype="general">당시 영국에는 최 교수와 친분이 있는 이들이 있었다. 영국 최대 전자회사 GEC 마르코니의 기술이사 빌 바도 박사와 친구인 팩 시노트였다.</p> <p contents-hash="f38f5d8e94162ae5a35fb6f0983f51faaef3b5be2fd2e6646a916f191e1cb9ae" dmcf-pid="ucqONNrRYk"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두 사람과 만났다. 인공위성 개발을 위한 학생 파견과 기술훈련 계획, 위성 제작 과정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서리대에 한국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도 박사는 1990년부터는 3년에 걸쳐 25만~30만달러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p> <p contents-hash="9bb266e18cb75526db77ac18ce0b15a862487f03afbb2a372e0540eca7c44ccb" dmcf-pid="7r2SEECntc"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다시 서리대로 가서 한국 학생 5명의 입학 허가를 받았다.</p> <p contents-hash="be71f45cf50b70d2e60e8f47394a56c0a5a587229f61b983c188582ced6c7f6c" dmcf-pid="zmVvDDhL1A" dmcf-ptype="general">그해 7월 29일 최 교수는 에번스 교수실에서 한국과 영국 사이의 위성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관한 '국제 공동연구를 위한 협약서'를 작성했다.</p> <p contents-hash="f08c2eac68cad1823aa05935071b5c43c83c522f451c04e2e6565404b87c302d" dmcf-pid="qsfTwwlo5j"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귀국하자 마자 영국 유학생 모집 공고를 냈다.</p> <p contents-hash="235fb0194f1a80670b7e4785d343d9a642564a20969ed24ec1e84f3f7cc19b6f" dmcf-pid="BO4yrrSg1N" dmcf-ptype="general">“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개발한 유학생을 모집합니다.”</p> <p contents-hash="23cf944d81ad26bd34554c26fc9cc4193a359a9ee7059886f439c694a4ed7d19" dmcf-pid="bI8WmmvaXa" dmcf-ptype="general">유학 설명회에서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국내 최초로 우주기업을 창업한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은 회고했다.</p> <p contents-hash="e2cb4ea55683f274f585b07919ba6867e885fe03ec987615552650194f178d4b" dmcf-pid="KC6YssTNGg" dmcf-ptype="general">“너희가 공부하는 데 들어간 비용 중 일부는 시장에서 채소와 생선을 파는 할머니 전대에서 나왔음을 명심해라. 받은 혜택의 곱절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져라.”(쎄트렉아이 러시)</p> <p contents-hash="6e2abfcbc26c1fafd1df353bba54ed699dbaeea5ee25bd97d1eb397228243ed3" dmcf-pid="9hPGOOyjYo" dmcf-ptype="general">지원자는 교수 면접을 거쳐 최종 5명을 선발했다. 5명은 김형신, 최경일(이상 전산과), 김성헌, 박성동, 장현석(이상 전자과) 등이었다.</p> <p contents-hash="63278ed8566e848172d5aa26c808c8210eaeeb661b4dbc1d071c26d2068d4c96" dmcf-pid="2lQHIIWAYL"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한국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당부했다.</p> <p contents-hash="1d6c74ddf6f88e90c9dec27e9dccdc3562adb14c8614bd9da35e74779759e726" dmcf-pid="VSxXCCYc5n" dmcf-ptype="general">“대한민국 최초의 위성을 여러분 손으로 만들고 여러분이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개척자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항시 간직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네.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게.”</p> <p contents-hash="a7b0a2c5ad5792a52a14e72c9771ca6735f1a8d089366f1aeba223e81f26cccf" dmcf-pid="fhPGOOyjXi" dmcf-ptype="general">김형신 충남대 컴퓨터융합학부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공부했으니 성공해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도버해협에 빠져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p> <p contents-hash="6b96436167f355752046e17134812d030239c1c42768c4a32bac67e592590ac3" dmcf-pid="4lQHIIWAtJ" dmcf-ptype="general">이들은 햄버거, 중국집 등에서 일하면서 1년 만에 시험과 논문을 통과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p> <p contents-hash="55b057a57d66c60c4368fcf0475928977cd03d336e812c3cf71822b40dbc2792" dmcf-pid="8SxXCCYc1d" dmcf-ptype="general">이 무렵 서리대 측에서 인공위성 개발사업에 필요한 돈으로 230만파운드(약 35억원)를 요구했다.</p> <p contents-hash="678617e69c48d9224997c57936795b8865d0033c3956279c60813b15f8b0335d" dmcf-pid="6vMZhhGkHe"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이우재 체신부 장관을 만나 인공위성 개발 사업을 설명했다. 이 장관은 흔쾌히 “매년 10억 원씩 4년 동안 40억원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p> <p contents-hash="8d76e3034ada6458659cfffb2d8f3426d28c586a799dd8a27c03e7ec11e03447" dmcf-pid="PTR5llHEGR" dmcf-ptype="general">그러나 당장 쓸 돈이 없었다. 최 교수는 기업체 등에 지원을 요청했다. 소득이 없었다.</p> <p contents-hash="894205e59939f4ef9076ec30ae9fb1e7cf3b7c03d0d8ce3d959edb1892e9df6a" dmcf-pid="Qye1SSXDGM" dmcf-ptype="general">그때 양승택 한국통신기술주식회사 사장이 최 교수를 찾아왔다. 최 교수가 ETRI 원장 시절 양 사장은 전전자교환기(TDX) 개발단장이었다.</p> <p contents-hash="47669264e770ac3558fcb6a2cf0a5825f3c9c633231b6da3d9a7335f382c5a06" dmcf-pid="xWdtvvZw5x" dmcf-ptype="general">“정부 지원이나 과학재단 연구비 지급까지는 시일이 걸립니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작아서 많은 도움은 드리지 못하지만 우선 이 돈으로 급한 불부터 끄시죠.”</p> <p contents-hash="884030f8fb56138273ec79e5b6de8adf58981e99e867f45acc5597d50ef92af5" dmcf-pid="yJ1jRRg2GQ" dmcf-ptype="general">양 사장은 1000만원을 KIT에 입금하고 돌아갔다. 최 교수는 이 돈으로 우주항공제안서 인쇄 등 시급한 사무 처리를 했다.</p> <p contents-hash="28cd9d7b36158797107a570700e0d52f1a053d79bb18195859e1e01cc33fbd9d" dmcf-pid="WitAeeaV5P" dmcf-ptype="general">1990년 6월 과학기술처와 체신부가 공동으로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해 8월쯤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국책과제로 선정했다.</p> <p contents-hash="b90dd3ef0587f96032097fc231b5dc7fce777e77b0e03b3bf16b7732ec400e07" dmcf-pid="YnFcddNfG6" dmcf-ptype="general">그해 8월 31일 대덕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지상국 개국식을 갖고 출범했다.</p> <p contents-hash="d2e95edf1365078937c26d35a3478cfc52cac28533e021b81401a2796eef4a38" dmcf-pid="GL3kJJj4X8" dmcf-ptype="general">최 교수는 우리별 1호 발사에 성공하기 위해 학생 27명을 해외로 유학 보냈다. 26명이 KAIST 졸업생이었다. 유학 간 학교는 영국 서리대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일본 도쿄대, 미국 아이오와대와 컬럼비아대 등 5개 대학이었다.</p> <p contents-hash="26d04d3d40cde364493fcd87b4a56dace8299bf5c0d33dae5750c40cb9c4cae8" dmcf-pid="Ho0EiiA8Z4" dmcf-ptype="general">1990년 10월부터 서리대 위성 제작에 참여한 학생들은 실험실에서 날밤을 새우며 연구하고 일하느라 “일벌레” “공부벌레”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휴지통을 뒤져 가며 기술을 익혔다. 이들은 각자 전공과 특성에 맞는 위성의 각 부문을 나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성했고, 그것을 우리별 1호라는 결정체 안에 결합했다.</p> <p contents-hash="5d44569267b9872f9d28c8286db35df186971558ecba159168e51aec61ce527e" dmcf-pid="XgpDnnc6Yf" dmcf-ptype="general">서리대 에번스 교수는 이들의 노력으로 완성한 우리별 1호를 극찬했다.</p> <p contents-hash="b76c6e036178816b39e58bc80aea57b646bc44bb63782ae947c6f4a9e1dccf34" dmcf-pid="ZaUwLLkPYV" dmcf-ptype="general">“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제작한 소형 위성 가운데 성능이 가장 우수한 위성이라고 생각한다.”</p> <p contents-hash="7cf7eee67a65907885601aa7fcbb95f2bf9024764cfa5ea7a879591404ae6734" dmcf-pid="5NurooEQ52" dmcf-ptype="general">1992년 7월 13일. 발사 28일을 앞두고 최 교수는 다시 서리대를 방문해 연구원들을 만났다.</p> <p contents-hash="2747a54fadad918957ac20188bbaeeda1376973042ec8b154215eb3013be10b9" dmcf-pid="1j7mggDxH9" dmcf-ptype="general">연구원 가운데 일부는 우리별 1호를 따라 쿠루 발사 기지로 갔고 다른 연구원들은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 운영을 위해 귀국했다.</p> <p contents-hash="7d000c14693ee0c82b588ba5b8cd4364e7053f7372f2244f7ed3c71d5662152b" dmcf-pid="tAzsaawM5K" dmcf-ptype="general">최 박사는 우리별 1호 발사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p> <p contents-hash="4beb95ded201ca88d546208136baf84670a91c01b3929e37c87c64ceb77a3105" dmcf-pid="FbO6zzf5tb" dmcf-ptype="general">“우리별 1호는 자신들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참여해 준 동료 교수들과 우리 연구원들이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였다. 사람이 만들어서 우주로 띄운 희망의 별이었다. 그리고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우리 손으로 광대한 우주에 자랑스럽게 내건 '대한민국 문패'였다.”</p> <p contents-hash="1c4e62058614500e66dfb8d5f3b074839589956a5673e23d68c649b7922fc802" dmcf-pid="3KIPqq41YB" dmcf-ptype="general">우리별 1호 발사는 우주를 향한 대한민국의 위대하고 담대한 도전이었다.</p> <p contents-hash="ba2481890d4cfc3a837c130a683e05868f94e29eb2bc84d1ded73f46c8f19945" dmcf-pid="09CQBB8tYq" dmcf-ptype="general">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한국은 '네카오' 플랫폼 보유국..."국운 건 규제 정책 필요" 06-17 다음 9일간의 여정 끝낸 ‘빈딕투스’ "기대감 높이기 충분" 06-1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