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김울프의 'K-지오그래피' 이야기…요트에서 본 남해

작성일 06-22

<div style="margin:10px 0;padding:10px;background:#f7f7f7;font-size:0.9em;">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div>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6/22/AKR20250622024800371_01_i_P4_20250622115717475.jpg" alt="" />남해안컵 국제 요트대회 사진 : 김울프 작가 "수영만 바라보는 배산 기슭에~♪" 이 노래는 내가 나온 초등학교 교가 중 일부다. 나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과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게 바다는 또 다른 나의 상징이다. 이 노래는 내가 자라던 도시의 풍경을 조용히 품고 있었다. 88서울올림픽 요트 종목을 위해 지어진 수영만 요트경기장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동네가 내가 자란 곳이다. 배산의 꼭대기 12층 아파트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찻잔을 엎어놓은 듯한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하루에도 수십 번 색을 바꿨다. 가끔은 너무 반짝여 눈을 찌푸리게 했다. 마치 베란다 창이 아닌, 다른 세상과 연결된 입구 같았다. 그렇게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다. 아버지가 요트를 취미로 삼으신 건 우연이었다. 수영만 근처를 지나던 어느 날, 바람을 머금고 조용히 항해하던 작은 돛단배 하나를 보신 후였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1∼2인승 딩기 요트를 타러 나가셨고, 배 이름은 어머니가 지은 '산들'이었다. 산과 들의 조화일지, 산들바람일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배 타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다. 대신 나와 동생은 매번 함께했다. 동생은 금세 균형을 익혔고, 나는 물보다 풍경에 더 끌렸다.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찍으며, 나는 어느새 바다와 가까워졌다. 바다에서 바라본 부산은 낯설고 신비로웠다. 해운대와 광안리, 익숙한 도시의 이름이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내게 다가왔다. 보는 각도에 따라 육지는 수천 가지 표정을 가졌고,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 기억은 내 안에 깊이 남아 결국 사진이라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6/22/AKR20250622024800371_05_i_P4_20250622115717483.jpg" alt="" />남해안컵 국제 요트대회 사진 : 김울프 작가 풍경을 붙잡고 싶었다. 그때부터 내 시선은 늘 바다를 향했다. 중학교 시절 요트 코치 선생님의 전화 한 통이 나를 다시 요트 경기장으로 부른 후 2006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요트 대회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다녀온 항구의 수는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수많은 사람의 손등과 파도 위의 실루엣을 셔터로 남겼다. 요트란 무엇인가. 배를 타는 운동만이 아니다. 바람을 읽고, 파도를 넘고, 끝없이 변하는 자연의 변수에 맞서 끊임없이 조정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규칙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스포츠라는 말처럼, 바다 위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수많은 변수가 있다. 비가 오고, 파도가 거세고,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어도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바다는 단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그 바다에서 언제나 조심스럽고도 경이로운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다. 요트 경기를 담는다는 건, 어쩌면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흔적을 포착하려는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선보인 사진이 찍힌 곳은 남해안컵 국제 요트대회 현장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이 대회는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열렸다. 부산에서 출발해 통영, 여수를 잇는 국내 몇 안 되는 장거리 대회다. 30∼40피트짜리 요트에 여러 명이 함께 타고 며칠을 항해하는 이 대회에서, 나는 다시 바다와 마주하고 있었다.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6/22/AKR20250622024800371_02_i_P4_20250622115717491.jpg" alt="" />우리나라 섬 자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제공 그래픽 우리나라는 섬이 많은 나라다. 사실상 섬의 나라라고 해도 될 만큼 유인도의 숫자도 많다. 섬의 수가 특히 남해엔 이름 없는 작은 섬이 무수히 많고, 뭍에서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 그사이에 숨겨져 있다. 자동차로는 결코 볼 수 없는, 바람을 타야만 다가갈 수 있는 세계. 나는 그 세계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세계적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에도 우리나라의 섬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여러 차례 실렸다.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6/22/AKR20250622024800371_06_i_P4_20250622115717497.jpg" alt="" />제주도 풍경 사진출처 : '론리플래닛' 홈페이지 캡처 이번 대회는 장마와 거센 비바람 속에서 진행됐다. 맑기만 한 날보다 오히려 이런 날이 사진가에게는 더 귀한 시간이다. 피할 곳이 없는 바다에서 중심을 잡고 셔터를 눌렀다. 두려움을 마주하고도 결국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항해다. 바다 위에서 나는 늘 씩씩하지 못했다. 불안했고,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더 자주 바다를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식이었다. 깊은 수심 아래에 감춰진 혼란과 맞서는 일, 그것이 바로 항해였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날은 없다. 바람이 없어도 안 되고, 파도가 너무 거세도 곤란하다. 해무가 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진은 찍힌다.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6/22/AKR20250622024800371_03_i_P4_20250622115717502.jpg" alt="" />남해안컵 국제 요트대회 사진 : 김울프 작가 바다는 불완전한 세계이기에, 그 속에서 건져낸 한 장의 사진은 온전한 희망의 조각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장비가 고장 나고, 몸이 젖고, 고된 날씨에 지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날일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남는다. 오늘도 나는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서로 다른 삶에서 온 사람들이 요트라는 하나의 배에 올라 바람을 따라가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 항해가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된다. 파도는 아무리 많이 부서져도 다시 조용한 물결이 되고, 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사라질 듯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 나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봤다. 이 항해가 끝난 뒤에도, 나는 또 다른 항해를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바람을 읽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바다가 내게 준 또 하나의 자아일 것이다.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6/22/AKR20250622024800371_04_i_P4_20250622115717514.jpg" alt="" />남해안컵 국제 요트대회 사진 : 김울프 작가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lt;정리 : 이세영 기자&gt;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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