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베트남서 저지른 참극... 민간인학살 피해자의 도전 작성일 06-22 12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씨네만세 1068] 평화로></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3FINBy1mO5"> <p contents-hash="76a73543cf8505c5b322153712d5a0845d355ba4db2d3476c127e64dd5b9cedf" dmcf-pid="03CjbWtswZ" dmcf-ptype="general">[김성호 평론가]</p> <p contents-hash="c36fa1bead70a1f4fe76bdf8b7754c817f66c57eb2b5f9e512eb751b98ca7ca7" dmcf-pid="p0hAKYFOwX" dmcf-ptype="general"><strong>(*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strong></p> <p contents-hash="7cdb9223010fc9caab26c5f24f92862e7404b084981f3370f7230bffcce55d17" dmcf-pid="Uplc9G3IOH" dmcf-ptype="general">일본군 위안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늘 한 목소리다. 일본은 역사를 기억하라, 지난 잘못을 사죄하라, 피해자에 배상하라. 한국은 적어도 이 문제에 한해선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넘어 늘 일치단결된 목소리를 내어왔다.</p> <p contents-hash="d1bb1ab3ce20f6df836e720466eae772aa73938f06e0e969a760e4d623353dc7" dmcf-pid="uUSk2H0CrG" dmcf-ptype="general">그 한 목소리가 얼마나 간편한지, 한 목소리처럼 들리는 파동 아래 얼마만큼 다양한 갈래의 뿌리가 자리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진실로 바라본 적이 없다. 이와 같은 생각에 이른 건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선정작인 영화 한 편 덕분이었다.</p> <p contents-hash="199f8053964f863ce6bfd169d60adaf570f6cab16a2ae2d93498c9ab26f0e1c3" dmcf-pid="7uvEVXphsY" dmcf-ptype="general">다큐멘터리 <숲, 틈>을 감독한 최예린의 이름이 찾아보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날>의 연출자였다.</p> <div contents-hash="9053ae60c5cc2427743f217d8e587810a491ea97acf0d2538215df82b083c2e2" dmcf-pid="z7TDfZUlOW" dmcf-ptype="general"> <strong>그들 안의 우리, 우리 안의 그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21e3d34a6a9b7c6d1d728f2ff80b64f1fa67cf675fd7ef4e6e3a7e882b42164f" dmcf-pid="qzyw45uSEy"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6/22/ohmynews/20250622134803488pzqq.jpg" data-org-width="1280" dmcf-mid="1SUYoKP3s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2/ohmynews/20250622134803488pzqq.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평화로 가는 길</strong> 행사 사진</td> </tr> <tr> <td align="left">ⓒ 한베평화재단</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3daa5de7370e7ef135eeb1966e598c0d7000cb29a050381fa77573c8fe9b8b6c" dmcf-pid="BDMblLkPmT" dmcf-ptype="general"> <숲, 틈>은 올해 초 있었던 한 사건을 중심에 둔다. 군마현에 위치한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그를 뽑아 없애기로 한 현 정부의 결정이다. 비석을 철거하려는 현과 그에 고용된 노무자 및 공무원들, 이를 막아서고 항의집회를 여는 시민들의 모습이 최예린 감독의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철거하는 이들도, 막아서는 시민들도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흔히 한국과 일본의 대립구도로 바라보기 쉬운 일제강점기 사건들과 관련해 이 영화가 남다른 구도를 내보이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div> <p contents-hash="160054d963b55aa9a40daeb95c9372fd206d9a6f798199c8807d205fbe858763" dmcf-pid="bwRKSoEQsv" dmcf-ptype="general">기억하고 추도하며 반성하고 배상하는 이들과 망각하고 모욕하는 이들이 그들 가운데 뒤섞여 있다. 어디 그들만일까.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흔히 베트남전이라 하는 전쟁은 우리 안의 그들, 또 우리 안의 우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명백한 사건이다.</p> <p contents-hash="53cbeddeab22afe51758dbeced95b2c67811065dbc3d78eb114b89fae87a5721" dmcf-pid="Kre9vgDxOS" dmcf-ptype="general">20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꿈이룸소극장에서 인상 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한베평화재단이 주최한 영화 시사회 자리였다. 상영된 영화는 도안홍레가 감독한 1시간 남짓의 다큐 <평화로 가는 길>로,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응우옌티탄 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함께 마련됐다.</p> <p contents-hash="94ab7ec4ddebfa409eb81ad56840592fa6fa90d748a1930284f4d72c7817e1ff" dmcf-pid="9md2TawMDl" dmcf-ptype="general">이 자리엔 두 명의 응우옌티탄, 동명이인인 노년의 여인 두 명이 참석했다. 한 명은 꽝남성 퐁니마을에서, 또 한 명은 꽝남성 하미마을에서 왔다는데, 한국인이라면 응우옌티탄이라는 이름과 퐁니며 하미마을의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p> <p contents-hash="51a2b0cc5127f8bc53aedd8d241edac0ac78cdea35dce3371646fdee17af2834" dmcf-pid="2sJVyNrRIh" dmcf-ptype="general"><strong>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일</strong></p> <p contents-hash="c4356dde9b2f2b55d7962c1934c834790304de63e3d7a991ec3dbcf1b384e146" dmcf-pid="VOifWjmesC" dmcf-ptype="general">이날 <평화로 가는 길> 상영회가 열린 건, 또 이들이 한국 땅을 밟은 건 한국 법정에서 진행 중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배상 소송과 관련이 있다. 지난 2020년 제기된 소송은 위 퐁넛 마을 출신 응우옌티탄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소위 퐁니-퐁넛 학살사건, 1968년 한국 해병대 청룡부대가 베트남 꽝남성의 두 마을에서 70여명의 주민을 살해한 사건의 진상을 따지고 피해보상을 청구한 사건이다.</p> <p contents-hash="d684b6e8149fe5194e5f8a6eb33b3d6cabae56f0fd310a4cdbf309cd8d3edca8" dmcf-pid="fIn4YAsdEI" dmcf-ptype="general">해당 사건은 기밀이 해제된 주베트남미군사령부 조사보고서에 언급된다. 한국군 부대가 마을로 진입하는 것을 확인하고 이후 마을에 들어가 생존자 구호조치 및 사진촬영을 한 미군 장병의 기록이 그대로 들어 있어 한국군의 전쟁범죄가 사실상 확인된 사례로 꼽힌다. 이 밖에도 위 하미마을의 경우처럼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의심사례가 여럿이지만, 생존자 외 공신력 있는 물증을 갖고서 한국 법원에서 소송에 이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p> <p contents-hash="c96adc217e67dd55adb26922f5c758c8769c59865afd96c0118f86c637aa72e7" dmcf-pid="4CL8GcOJmO" dmcf-ptype="general">영화는 퐁니마을 출신 응우옌티탄을 주인공 삼아 그녀가 한국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과정을 다룬다. 베트남에서 역사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은 구수정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파헤쳐 이를 공론화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엔 구수정이 관련 문건을 접하고 문제를 처음 파악한 뒤 < 한겨레21 >에 기고해 문제를 공론화하는 과정, 응우옌티탄과 지켜온 수십 년에 이르는 우정, 응우옌티탄이 한국에 입국해 소를 제기하고 정부와 맞서는 이야기가 담겼다.</p> <p contents-hash="1c7a7a047a8083a170c107619467ae1bed676f1108bf15389fb142b846887e41" dmcf-pid="8ho6HkIiEs" dmcf-ptype="general">학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은 사건 당시 고작 8살로, 복부총상을 입고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가족 5명이 희생됐으며 이전까지 온 세상이었던 마을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이후 그녀가 65세가 될 때까지 한국정부는 사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다. 사실관계를 파헤치던 구수정이 그녀에게 닿기까지 한국인의 접촉 또한 전무했다.</p> <div contents-hash="87cf40b94cd9c432d890c320b686e1a4f5b23f5bbd7bae150f2e9314e0f52a77" dmcf-pid="6lgPXECnIm" dmcf-ptype="general"> <strong>8살 아이가 60대 노인이 되었는데</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e9f7fa9414aeffe2d121d2f4ec7c3595b6bf1c0d7df0fec7ef2855891e73833" dmcf-pid="PUSk2H0Cmr"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6/22/ohmynews/20250622134804828imhy.jpg" data-org-width="400" dmcf-mid="tJZCMpKGr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2/ohmynews/20250622134804828imh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평화로 가는 길</strong> 행사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한베평화재단</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8785611aab2cfdf89bce94e33874a92724f1cba6188c4121465c76852a3fc61f" dmcf-pid="QuvEVXphrw" dmcf-ptype="general"> 다 큰 성인도 전쟁의 한 가운데서 당해낼 수 없는 폭력을 접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는 한다. 고작 8살짜리 어린 아이, 제 세상 전부가 일방적 학살로 파괴되고 저 또한 총상을 입은 이가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일생을 살며 터 잡은 마을조차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녀가 마음을 열어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한국 정부와 맞서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장애물을 수도 없이 부수고 지나야 했을 테다. </div> <p contents-hash="c56a5491f640f9509c6a0a755f0ec27941598a8a3dec0419530b0a0f8a74fbca" dmcf-pid="x7TDfZUlwD" dmcf-ptype="general">이날 응우옌티탄은 영화 속 투쟁을 이어갈 수 있기까지 제게 손을 내밀었던 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응우옌티탄은 "1999년도에 처음으로 날 찾아와준 한국사람이 있었다"며 "구수정 선생님, 그리고 고경태 기자인데, 구 선생님의 인도로 점점 더 많은 한국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고 떠올렸다. 그녀는 이어 "처음엔 한국 남성들은 보기만 해도 거리감이 있었다"면서 "점점 시간이 지나며 한국사람들을 만나니까 정도 들고 남자나 여자 상관없이 서로 친절하게 달갑게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p> <p contents-hash="f67ba6385459e0f2b144ef43f89c778a6ced569346e8e7e8d6361cf7e14e4767" dmcf-pid="ykQqCiA8mE" dmcf-ptype="general">응우옌티탄은 "2015년에 처음 방한하기까지 고향을 벗어난 적 없었다"며 "처음으로 마을을 나와 그것도 해외로 가는 거지만, 진실을 증언하러 가는 거니까 용기를 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진실은 저의 고통이고 아픔이며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라며 "50년도 넘게 되었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게 제 진실이다"라고 전했다. 제게 답지한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에 거듭 감사를 표한 응우옌티탄은 "2015년에 왔을 때 한국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사랑을 안겨주어 고마웠다"면서도 "참전군인들만 저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는데 너무나 아팠다"고 떠올리기도 했다.</p> <p contents-hash="633fde6a31f20931df167489520075e8a271b654845c3b1781463787dff178e9" dmcf-pid="WExBhnc6Ok" dmcf-ptype="general">영화는 응우옌티탄이 지나온 지난 몇 년의 소송과정을 비추며 그 안에 깔린 그녀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약간이나마 짐작도록 한다. 그때그때 휴대폰을 들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촬영분 모음이 얼기설기 엮여 영화적으로 완성도를 논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작품이지만, 그렇다 해도 그 가치를 폄훼할 수 없는 것은 작품 안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나 절실하고 진실해서다. 무엇보다 응우옌티탄이 말하였듯, 그 진실이란 생존한 민간인학살 피해자의 '고통이고 아픔이며 아직<br>사라지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p> <p contents-hash="c972804f174436c2071041ec7a1073fe40ef8ca2cc9a3cbb93444c1a5e3ea8e6" dmcf-pid="YDMblLkPEc" dmcf-ptype="general"><strong>다큐의 본질은 기록, 그에 도전한다</strong></p> <p contents-hash="b3d8ee246f27951b6743b9eeb59c77a492966db72921be3103d6dbb2ce334e18" dmcf-pid="GwRKSoEQIA" dmcf-ptype="general">한편으로 영화는 다큐의 본질을 다시금 되짚게 한다. 다큐의 본령은 사실의 기록, 그 자체에 있지는 아니한가. 언론마저 외면하고 충실히 다루지 않는 문제를 가까이 다가서 기록해 전하는 것, 그것이 투박하고 조악할지라도 그 안에 진실에 다가서는 노력과 수고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다큐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평화로 가는 길>이 꼭 그와 같아서, 영화가 응우옌티탄의 인터뷰며 관련 사건의 충실한 보도만큼 독자적인 장면을 확보하고 있지 못함에도 유효한 작품이다.</p> <p contents-hash="1f2af8397ed2cd5800064330458a8848106b40d3761e61fb31829bf87ae62bb1" dmcf-pid="Hre9vgDxsj" dmcf-ptype="general">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수년간 수차례 베트남에 방문하여 몇몇 민간인 학살지, 또 추모비며 한국군 증오비를 다녀왔다. 그 출발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한 역사적 관심이었으나, 문제를 파고들면 들수록 이를 대하는 한국의 자세가 오만하며 비겁하기까지 하다는 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기사: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군 증오탑 https://omn.kr/20lkn)</p> <p contents-hash="d81a9dff45e1e3ac046e88388282aac4c0da692f3184602fba8d99d145f1d434" dmcf-pid="Xmd2TawMmN" dmcf-ptype="general">이는 한국이 일제의 지난 만행에 대해 그 책무를 일깨우고 반성과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일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가 우리의 피해에 대해서는 일치단결해 상대를 질타하면서도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외면하도록 놓아두면 안 될 일이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사랑하는 일이 군이 저지른 범죄를 국가가 인정하고 사죄하며 배상토록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p> <div contents-hash="725b7cb7d8d11a1391455b206e0f5d794fe2ff9fa5b352a4f52897c5dffdf1b4" dmcf-pid="ZsJVyNrRma" dmcf-ptype="general"> 앞서 언급한 또 다른 응우옌티탄, 하미마을에서 온 그녀가 말하기를 "하미 민간인학살 문제를 조사해달라고 한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청원서를 보냈는데 끝까지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소녀 시절 겪은 참극을 노년이 된 지금이라도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우리가 어떻게 짓밟아왔는지를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속죄해야만 한다. 하미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은 새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과 새 행정부를 겨냥해 "한국에서 새 정부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 한국까지 오게 됐다"며 "이제 제게 시간이 많이 있지 않은데, 죽기 전에, 아니면 죽은 후에라도 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63a78e9ef8af9f9e2eb90767bfc51e9d4561f7a61e23503363ee3f99de32ac70" dmcf-pid="5DuGg9Q0Ig"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6/22/ohmynews/20250622134806105crye.jpg" data-org-width="1280" dmcf-mid="FmPzIJj4m1"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2/ohmynews/20250622134806105crye.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평화로 가는 길</strong> 행사장 벽에 붙은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한베평화재단</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9eac5bb3fefe440a0494590f5d55e1434f202efc18e89b12ca79909e5c189a66" dmcf-pid="1w7Ha2xpDo" dmcf-ptype="general"> <strong>나고 자란 나라를 사랑하기 위하여</strong> </div> <p contents-hash="dd57225ae1736291a5214023c717bdf044c3276b2c6b095c2885c690b38c04ab" dmcf-pid="trzXNVMUOL" dmcf-ptype="general">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이 어떠한 요구도 받지 않고 요청하여 참전한 전쟁이란 건 따로 기술해 마땅하다. 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이 오늘날 자작극으로 드러난 '통킹만사건'이었다는 점도 언급해야 한다. 우리는 명분 없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개입했다. 그 대가로 국군 현대화와 경제원조,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로 상징되는 기초 과학기술 지원 등을 얻어냈다. 국가의 동맥이 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도, 그 영향 아래 이뤄진 경기부양에도 베트남의 피가 묻어 있음을 기억해 마땅하다. 하물며 전쟁범죄, 천인공노할 민간인학살이다.</p> <p contents-hash="7d7f7ffefe98ad47ca8ef2f46460353d9bafcb924cee7402d3ee92ef5ebea0af" dmcf-pid="FmqZjfRurn" dmcf-ptype="general">영화의 제목이 '평화로 가는 길'이란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응우옌티탄이 한국에서 벌이는 소송이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갈라 놓는 것이 아니란 걸,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길 염원하는 일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응우옌티탄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한국 정부에 승소했다. 법원으로부터 그녀가 인정받은 손해배상액은 3000만100원이었다.</p> <p contents-hash="b3d1e512810f31fe9b5e0c3ea6048fd5d36307e641fe2fb04df7802155ff4a51" dmcf-pid="3sB5A4e7mi" dmcf-ptype="general">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건 한국의 오늘을 알고 있어서다. 올 2월, 한국 정부는 결과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 국방부는 '학살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진상조사 요청을 묵살했다. 응우옌티탄은 평화로 나아가려 하지만, 학살 이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거듭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것이 내가 나고 자란 이 나라다. 평화로 나아가는 이와 그를 막는 나라, 둘 사이에서 내가 응우옌티탄을 지지하는 건 이 나라 한국을 여전히 사랑해서다.</p> <p contents-hash="39d34a406c7ae67d2ff6c52692f5e2502137f4cbd7c154413cb6caa778358a5b" dmcf-pid="0Ob1c8dzsJ"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대통령도 했던 게임이 질병?…'게임 1번지' 성남에서 부활한 망령 06-22 다음 ‘미지의 서울’ 박보영♥류경수, 서울에서 달콤한 재회 성사 06-2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