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쓰러진 내게 온 감독의 메시지, '두산' 덕에 산다 작성일 06-27 20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팬심으로 말하는 프로야구] 하위권 추락했어도… 두산은 '나의 동반자'</strong>화수목금토일, 이들의 평일 저녁과 주말엔 늘 야구가 있습니다. 운 좋으면 직관으로, 아니면 중계를 보며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습니다. 1200만 관중을 향해 달려가는 2025 프로야구 돌풍의 중심에는 이들 '찐팬'이 있습니다. 팬심으로 말하는 '내 팀'의 이야기, 야구를 좋아해서 겪어야 했을 희로애락,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말><br><br><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6/27/0002478896_001_20250627115107463.jpg" alt="" /></span></td></tr><tr><td><b>▲ </b> 12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1회초 무사 1, 2루 때 두산 양의지가 1타점 적시타를 쳐내고 있다. 2025.6.12</td></tr><tr><td>ⓒ 연합뉴스</td></tr></tbody></table><br>작년 역대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돌파했던 KBO리그가 올해는 작년을 능가하는 인기로 독보적인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3월22일에 개막한 KBO리그는 17일 350경기 만에 600만 관중을 돌파했는데 이는 작년의 418경기에서 무려 68경기를 단축한 기록이다. 올해는 2년 연속 1000만 관중 돌파는 물론이고 역대 최초로 1100만 관중을 넘어 1200만 관중까지 기대할 수 있는 페이스다.<br><br>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야구의 열기가 뜨거운 올해 유독 우울한 팀이 있다. 바로 LG 트윈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큰 서울의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다. 2023년 정규리그 5위, 작년 정규리그 4위를 기록하며 올해 더 높은 순위를 기대했던 두산은 시즌 초반부터 힘을 받지 못하며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급기야 지난 2일엔 이승엽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br><br>슬프게도 나는 지난 1990년부터 무려 36년 째 두산을 응원하고 있다. 45년을 넘게 산 짧지 않은 인생에서 70% 이상의 시간 동안 두산을 응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엔 두산의 부진한 성적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고 일부 속 깊은 친구들은 내 앞에서 야구 얘기를 꺼내는 것을 애써 자제한다. 하지만 나는 KBO리그에 두산 베어스라는 팀이 존재하는 한, 응원하는 팀을 바꿀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br><br><strong>최악의 시절 보내다 겪은 감격적인 우승</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6/27/0002478896_002_20250627115107531.jpg" alt="" /></span></td></tr><tr><td><b>▲ </b> 올해 초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 물건 절반 이상을 버렸을 때도 직접 받은 '박철순 사인볼'은 버리지 않았다.</td></tr><tr><td>ⓒ 양형석</td></tr></tbody></table><br>1982년 KBO리그가 출범했을 때 나는 미취학 아동이었고 서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중학생이었던 고종사촌 형을 따라 '반강제적으로' MBC 청룡의 팬이 됐다. 물론 MBC 청룡에도 김재박과 이광은 같은 스타 선수들이 있었지만 우승 전력과 거리가 있었던 MBC는 어린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1986년,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쓰는 해태 타이거즈로 응원팀을 바꿨다.<br><br>그리고 단지 마스코트가 강인해 보인다는 이유로 좋아하기 시작한 해태 타이거즈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KBO리그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불펜에 나가서 몸만 풀어도 상대 관중들이 전의를 상실해 경기장을 빠져 나갈 정도로 존재감이 엄청났고 이순철과 김성한, 한대화, 김종모로 이어지는 타선도 빈 틈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br><br>급기야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1989년 조계현과 이강철(kt 위즈 감독)이라는 훗날 레전드가 되는 특급 신인들이 입단하면서 해태는 더욱 난공불락의 막강 전력을 구축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 나이에 최강팀을 좋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당시 중위권을 맴돌던 서울 연고의 OB 베어스를 응원하기로 결심했다. 그 어린 나이에 또 한 번 응원팀을 바꾸는 건방진 선택을 한 것이다.<br><br>하지만 KBO리그 출범 후 8년 동안 2번이나 응원팀을 바꾸는 우를 범한 탓일까. 1990년부터 응원하기 시작한 OB 베어스는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며 KBO리그의 최약체로 전락했다. 응원하는 팀을 바꾸자마자 2년 연속 꼴찌가 되면 야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거나 다시 응원팀을 바꾸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나는 놀랍게도 2년 연속 꼴찌로 추락한 OB 베어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br><br>그렇게 OB의 승리와 패배에 일희일비하는 열성 야구팬이 된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스무 번 넘게 야구장을 찾아 다니던 1995년, 드디어 OB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1994년 '선수단 항명 파동'이라는 큰 악재를 극복하고 만들어낸 우승이라 감동은 더욱 컸다. 고2였던 그 해 학업에 정진했다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당시 내가 했던 선택엔 조금의 후회도 없다.<br><br><strong>야구장에 갈 수 없게 된 날 위로해준 두산</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6/27/0002478896_003_20250627115107565.jpg" alt="" /></span></td></tr><tr><td><b>▲ </b> 2009년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친한 동생이 받아준 김경문 감독의 사인과 메시지는 큰 위로가 됐다.</td></tr><tr><td>ⓒ 양형석</td></tr></tbody></table><br>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이후 나는 베어스에 더욱 깊이 빠져 들었다. 1997년4월29일 박철순 선수의 은퇴식 날에는 야구장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고 야구장에 함께 갈 친구가 없으면 혼자 야구장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군 입대 후에도 휴가를 나오면 야구장을 찾았고 내무반의 실세가 됐던 2001년 10월, 두산이 3번째 우승을 차지한 날엔 기쁨에 취해 전우들에게 PX 회식을 시켜주기도 했다.<br><br>그렇게 내 인생에서 야구와 두산 베어스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2001년 이후 두산은 10년 넘게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어쩌면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기억날 것 같은 2009년 4월 10일, 그 날이 찾아왔다. '잠실 라이벌' LG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고 두산이 허무하게 패했던 날, 평소 감기약 한 번 먹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던 나는 뇌출혈로 쓰러졌다.<br><br>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구급차에 실려간 나는 한 번의 뇌수술과 열흘의 중환자실 입원을 포함해 6개월 동안 3군데의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긴 입원 생활을 이어갔다. 그 때도 지루했던 병원 생활을 견디게 해준 것은 야구, 그리고 두산 베어스였다. 병실의 불이 꺼진 밤에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휴대폰으로 조용히 야구 하이라이트를 시청했던 것은 긴 입원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확행'이었다.<br><br>하지만 6개월의 긴 입원과 그보다 더 길었던 재활에도 나는 끝내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많은 계단이나 경사진 곳을 다니기가 힘들어진 나는 아프기 전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야구장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나의 불편해진 거동과 별개로 두산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두산은 김태형 감독(롯데 자이언츠)이 부임한 2015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br><br>두산은 2015년 우승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포함해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물론 지난 3년 동안에는 한국시리즈는커녕 준플레이오프 무대조차 밟지 못했지만 두산은 통산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내가 응원을 시작한 후에도 5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KBO리그 역사에서 두산보다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은 KIA(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뿐이다.<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6/27/0002478896_004_20250627115107589.jpg" alt="" /></span></td></tr><tr><td><b>▲ 2019 한국시리즈 우승은 두산</b>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td></tr><tr><td>ⓒ 연합뉴스</td></tr></tbody></table><br><strong>인생의 70% 이상을 함께 한 최고의 친구</strong><br><br>두산은 내가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크기와 상관없이 매년 가을이 되면 야속하게도 어김없이 내 곁을 떠난다. 성적에 따라 그 시기가 조금 달라지기도 하지만 나는 매년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두산 베어스가 없는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두산은 매년 봄이 되면 내 곁으로 돌아와 나에게 설레는 시간들을 선물한다. 이는 내가 두산을 좋아했던 36년 동안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 사실이다.<br><br>물론 두산이라는 팀에 실망했던 적도 없지 않았다. 올해처럼 감독이 중도 사퇴할 정도로 성적이 좋지 못한 시즌엔 스포츠 뉴스나 기사를 애써 보지 않았고 가끔 두산에서 활약했던 선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마치 우리 집안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응원하는 야구팀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6/27/0002478896_005_20250627115107664.jpg" alt="" /></span></td></tr><tr><td><b>▲ </b> 앞으로 두산 베어스가 내 인생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응원하는 야구팀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td></tr><tr><td>ⓒ 두산 베어스</td></tr></tbody></table><br>강산이 3번 이상 바뀌는 긴 시간 동안 같은 팀을 응원하다 보니 한 해 성적에 따라 삶에 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절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두산의 경기 결과에 따라 다음날 기분이 달라지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 두산의 성적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두산 베어스는 단순히 '응원하는 야구팀'이 아니라 내 인생의 70% 이상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이자 최고의 친구이기 때문이다.<br> 관련자료 이전 [유미's 픽] 삼성·SKT도 등판?…李 정부 '국가대표 AI' 선발전, 판 커질까 06-27 다음 원윤종, IOC 선수위원 최종 후보 11명에 포함 06-2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