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471] 왜 ‘럭비’라고 말할까 작성일 06-29 20 목록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25/2025/06/29/20250629140942020025e8e9410871751248331_20250629141109511.png" alt="" /><em class="img_desc"> 럭비 경기 모습 [대한럭비협회 제공]</em></span> 지명이나 저택 이름이 스포츠 종목 이름으로 된 사례로는 마라톤, 배드민턴, 럭비 등을 꼽을 수 있다. 마라톤은 고대 그리스 전쟁터인 ‘마라톤(Marathon)’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됐으며, 배드민턴은 영국 귀족 저택인 ‘배드민턴 하우스(Badminton House)’에서 종목 이름이 시작됐다. (본 코너 663회 ‘왜 마라톤이라고 말할까’, 1051회 ‘왜 배드민턴이라 말할까’ 참조)<br><br>럭비는 영국 ‘럭비 스쿨(Rugby School)’에서 비롯됐다. 럭비 스쿨은 1567년 영국 워릭셔 럭비마을에서 설립됐다. 이 학교는 전통적인 영국식 명문 기술학교로 상류층 자제들의 교육기관이다. 이튼 스쿨과 함께 최고의 사립학교로 평판이 높다. 성공회 계열의 퍼블릭 스쿨로 출발한 럭비 스쿨에서 럭비가 탄생했다. 1823년 윌리엄 웹 엘리스라는 학생이 축구 경기 중 ‘공을 손으로 들고 달렸다’는 것이 럭비의 기원이다. 이 일화를 계기로 럭비는 축구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종목으로 ‘럭비 풋볼’로 발전했다. 럭비는 1863년 축구와 분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br><br>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럭비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8년 11월17일자 ‘청춘(靑春)의환희(歡喜) 운동(運動)과영화(映画)【오(五)】’ 기사는 ‘『럭비』축구(蹴球)!이것의 쾌미(快味)는『뽈』과『프레이어』가한가지로진격(進擊)되는데잇다 이『럭비』독특(獨特)의『스피트』와역량(力量)—『럭비』의소유(所有)한장쾌(壯快)한『싼』을그대로영화화(映畵化)하게된다『럭비』의『드라이』의순간(瞬間)은 기장『스피트』와 역량(力量)이부대(富大)하다 더욱영화적(映畵的)인 장면(場面)을보이고잇는것이다 거일월칠일일본신궁경기장(去一月七日日本神宮竸技場)에서행(行)한 경대대조대(京大對早大)의『럭비』전(戰)에잇서 후반(後半)끄테이르러 십일대구(十一對九)의『스코어』로조대군(早大軍)이 경대군(京大軍)을압도(壓倒)하야 전승(全勝)의기세(氣勢)로일홈놉픈경대(京大)도패퇴(敗退)되는것이다할 그대에다 경대(京大)의명장(名將)『드리구-오-타』우야선수(宇野選手)는 최후(最後)의용기(勇氣)로써 한 대진(旱大陳)을 파격(破擊)하야껍껍히싸힌적진(敵陣)을돌파(突破)하며『다클』도 전부(全部)를뭇지런 나머지 칠십마(七十碼)나되는거리(距離)를질주(疾走)하야『꼴포스더』직하(直下)에『드라이』하이퇴세(頹勢)를만회(挽回)하야수(遂)히 조대(早大)를파퇴(破退)케하얏다 그극적순간(劇的瞬間)을목 별(目瞥)한나는곳생각되는것은『로이드』의『인기자(人氣者)』의최후(最後)의『크라이맑스』이엇다<br> 『럭비』을취급(取扱)한영화(映畵)에는명작품(名作品)이다수(多數)한바『로이드』의『인기자(人氣者)』와『리짜드·떽-스』의『구오타-빽』등(等)은우수(優秀)한것이다 이상영화중(以上映畵中)에는『럭비』의상쾌(狀快)한장면(場面)『스크람』또는『티클』의 맹렬(猛烈)한긴장미(緊張味)가잇서 종말(終末)까가지 대강(大强)하게 전권(全卷)을통(通)하야표현(表現)되야잇섯다『구오타-빽』은『럭비』영화(映畵)일뿐아니라『스폿스』영화전부(映畵全部)를통관(通觀)하야서의 걸작(傑作)이엇섯다기외(其外)에도『대학(大學)의(뿌라운)』과또는『아메리카』의『럭비』계(界)의제일인자(第一人者)로영접(迎接)되는『릿드·크런지』자신(自身)이 주연(主演)한『명예(名譽)의-축(蹴)』등(等)이엇섯다’고 전했다. 럭비 경기 교토대와 게이어대 경기의 극적인 경기 내용과 럭비 소재 영화를 소개했던 것이다. <br><br>한국에서 럭비는 <span style="letter-spacing: 0pt;">1920</span>년대 초 일본인학교 중심으로 교류전이 오가며 처음 알려졌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1923</span>년 조선체육회 주최 축구대회에서 최초의 시범경기가 열렸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1927</span>년 일본 럭비계 선수출신인 마츠오카<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모토야마를 중심으로 경성 럭비 구락부를 조직했으며<span style="letter-spacing: 0pt;">, 1928</span>년 일본 유학파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 최초 한국인들만의 럭비구락부 조직을 위한 모임이 결성했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br><br><span style="letter-spacing: 0pt;">1929</span>년 조선럭비축구협회가 발족되고<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제 <span style="letter-spacing: 0pt;">1</span>회 춘계리그전이 개최되었으며<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한국 최초 학원팀인 보성 전문교 럭비팀 <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현 고려대 럭비부<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가 창설 됐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br><br>럭비는 공의 쟁탈<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공격<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플레이의 계속<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공의 재획득으로 구성된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공의 쟁탈은 접촉플레이나 스크럼<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라인아웃<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킥 등으로 이루어진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공격에서는 그라운드의 가로세로의 스페이스를 활용해서<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러크나 몰 등의 격렬한 밀집플레이를 한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br> 수비에서는 태클로 상대의 공격을 막고 공을 빼앗는 것을 목표로 한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span>시합 중에는 여러가지 상황이 있고, 여러가지 선택을 통해 플레이를 할 수 있고, 다양한 능력과 신체적 특성을 가진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다. ‘One for all, All for one’의 정신처럼 자기희생과 동료를 신뢰해서 플레이 할 수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시합이 끝난 뒤에는 노사이드정신으로 우리팀, 상대팀 구분없이 상대에 경의를 표한다. 럭비헌장에서는 품위, 정열, 결속, 규율, 존중인 다섯 항목이 기재되어있고, 럭비가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근거이다. 관련자료 이전 임종훈-신유빈, WTT 자그레브 혼합복식 우승… 2주 연속 정상 06-29 다음 한국 탁구, 아시아 유스 챔피언십서 여자 U-15 단체전 우승 06-29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