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잭, 단순한 폭력 너머의 메시지 작성일 07-04 2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안치용의 영화적 사유] 살인마></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pF36iIJqsA"> <p contents-hash="86001f23de810259cee04e583e1cea36eae5fd79f0b0d2272cdac38b31a989fd" dmcf-pid="U0pQLhnbwj" dmcf-ptype="general">안치용 영화평론가</p> <div class="video_frm" dmcf-pid="upUxolLKrN" dmcf-ptype="embed"> <div class="layer_vod"> <div class="vod_player"> <iframe allowfullscreen class="player_iframe" dmcf-mid="869LEHkPsW" dmcf-mtype="video/youtube" frameborder="0" height="370" id="video@869LEHkPsW" scrolling="no" src="https://www.youtube.com/embed/XYTtXsdbljU?origin=https://v.daum.net&enablejsapi=1&playsinline=1" width="100%"></iframe> </div> </div> </div> <p contents-hash="e56861af260291401ff6b4e796f8713655b1c81e9433e4903df705a4768c0114" dmcf-pid="7UuMgSo9ra" dmcf-ptype="general"><strong>(*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strong></p> <p contents-hash="088dfc973a1ae77b3090454ce2cbcb076ea7b638d951a5623c13193cc6225978" dmcf-pid="zu7Ravg2Ig" dmcf-ptype="general">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2018년작 <살인마 잭의 집(The House That Jack Built)>은 논란의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해 평단뿐 아니라 관객 사이에 호오가 극명하다. 기본적인 반감은 표현방식에 관한 것에서 발견된다.</p> <p contents-hash="7eef8b0d16e5a8427fa86b01f5c17de213503d35c0150667dd6e854ae98b20be" dmcf-pid="q7zeNTaVwo" dmcf-ptype="general">영화의 주인공 잭(맷 딜런)은 연쇄 살인범으로, 잭이 여러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트리에 감독이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아 논쟁이 일었다. 비판자들의 논지대로 폭력성이 꽤 심각한 수준이다. 쟁점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전언과 이 폭력성이 얼마나 관련이 있느냐이다.</p> <p contents-hash="32b11d50e2e75492fa022e454f4c79989688763aa09f48529547e5be431ad9f0" dmcf-pid="BzqdjyNfDL" dmcf-ptype="general"><strong>불쾌한 영화?</strong></p> <p contents-hash="cffdb0999ec523b9e184cffb589c27770323a20d87f84fcfa0ce2505f5bc37f9" dmcf-pid="bqBJAWj4Dn" dmcf-ptype="general">비판적으로 보는 평론가들은 자극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잔인한 장면을 배치했을 뿐이며 영화의 주제와 폭력성 사이에서 관련성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폭력과 고통을 합당한 근거 없이 미화했다는 목소리다.</p> <div contents-hash="9ba3c46926a77585d9ab5665755b96f7c8175d09927a8aafafa2b1787ee83e62" dmcf-pid="KBbicYA8mi" dmcf-ptype="general"> 또한 만일 그러한 불쾌한 설정이 모종의 주제 의식을 대변한다고 쳐도 주인공 잭이 살인을 저지르며 실존과 구원 등 인간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구상이 겉돈다고 비판한다. 관객보다는 감독의 단순한 자아도취에 불과하며 어떠한 도덕적 경종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쏘아붙인다. 특히 금기라고 할 수 있는 아동 살해가 많은 사람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유방 절개 장면 또한 혐오 장면으로 지적된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2d248d787ca1d3293024a583405706cfdee550597ba207d6166150d61fae8799" dmcf-pid="92VgwZDxmJ"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7/04/ohmynews/20250704114205140xzmy.jpg" data-org-width="1280" dmcf-mid="fsK1zd7vs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04/ohmynews/20250704114205140xzm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살인마 잭의 집' 스틸사진</td> </tr> <tr> <td align="left">ⓒ (주)엣나인필름</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fc447f7c91ba823d63bc4de8e3637900105454dd4e4e88eab056d86051333f4c" dmcf-pid="2Vfar5wMOd" dmcf-ptype="general"> 이 극단적인 폭력성이 호오를 떠나 납득할 만한 것이 되려면 비판의 대상이 된 그 불쾌가 최소한 다른 불쾌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어야 한다. </div> <p contents-hash="7512a2f08201b1f6fbad3d5cb21d5d7b9edb1444840754ae19acc13edcced29b" dmcf-pid="Vf4Nm1rRre" dmcf-ptype="general">트리에 감독에게 나치 옹호자라는 낙인이 따라다닌다. 이래저래 악명으로 치면 당대 정상급 감독이다. 하지만 히틀러를 이해한다고 말한 맥락을 살펴보면 부주의했을 뿐 나치 옹호자라는 낙인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히틀러)가 마지막에 벙커에 앉아있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져요"라고 밝히기에 앞서 히틀러가 분명 잘못한 일들을 행했다는 전제를 달았고, 이어 "히틀러라는 사람이 이해가 된다는 거죠. 그가 우리가 말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에 대해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조금은 측은함이 들어요"라고 말했다.</p> <p contents-hash="06eb53f201f7d5ae09b44039fbd787d3793b299149e4be7f815b83f87efed78b" dmcf-pid="f48jstmerR" dmcf-ptype="general">어떤 중요하고 사악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예술가가 그 평가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행하는 그 인물 개인에 대한 인간적 이해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할 수 있다. 우리 논의를 위해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빌려오면 악이 평범하다기보다 악인이 평범하다는 얘기가 된다. 비범한 악을 저지르는 데에 비범한 인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또 악인이 평범하다고 말한다고 악을 옹호하는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트리에 감독의 인터뷰 중 실언으로 알려진 '히틀러 이해'가 <살인마 잭의 집>에 반영됐다는 생각이다.</p> <p contents-hash="d339d4bdd88e8385c8a97cc98dfca04fb7b7d770ee1ca6afb2e24695335de788" dmcf-pid="486AOFsdDM" dmcf-ptype="general">도도한 여인으로 그려진 우마 서먼의 도발로 잭이 자동차용 도구 잭으로 그녀의 얼굴을 찍어서 살해하며 잭이 연쇄살인범의 길에 접어든다. 이어 살인에 점점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며, 더불어 잡혀도 그만이란 식의 자포자기가 등장한다. 때맞춰 내린 비가 살인 흔적을 지워주면서 일종의 과대망상 같은 것이 싹 튼다. 마지막에 엽기적이고 기념비적인 살인을 준비하다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로 만들어진 집을 통해 지옥으로 떠나는 모습까지, 잭을 히틀러의 삶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지하로 내려가는 모습과 히틀러가 자살하기 위해 벙커로 내려가는 모습이 겹쳐진다.</p> <p contents-hash="76b60cd94f5e05f8b061840377e8b7b0fcef1993d7f517256107cd67b13bfa4b" dmcf-pid="86PcI3OJIx" dmcf-ptype="general">잭이 연쇄살인범이라면 히틀러는 희대의 살인 대마왕이다. 잭이 계속 집을 짓는데, 집과 관련하여 중간에 나치가 만든 부헨발트 수용소가 대표적인 집으로 제시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영화는 독일 인문주의의 상징인 '괴테 오크'가 부헨발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p> <p contents-hash="5004aca9252c7b15a5374fd9bc378b6c646af6890d1f8003d6a678926a14ee94" dmcf-pid="6PQkC0IiOQ" dmcf-ptype="general">부헨발트(Buchenwald) 강제 수용소는 1937년 나치에 의해 독일 바이마르 근교 에터스베르크 숲에 세워졌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이 숲을 산책하며 사색했으며 숲 안에서 한 참나무(오크) 아래에서 괴테가 글을 썼다는 얘기가 전한다. 나치가 수용소를 건설하며 '괴테 오크'를 "괴테가 글을 쓰던 나무"라며 베지 않고 수용소 한가운데 남겨 두었다. 수용소를 지으며 '괴테 오크'를 살린 것이나, 독일의 인문주의 유산인 이 나무 아래에서 공개 처형이 이뤄진 것이나 모두 괴이하다. '괴테 오크'가 독일 교양(Bildung)과 야만을 동시에 상징하는 괴기한 우연을 영화가 포착한 셈이다.</p> <p contents-hash="25e1ade8369360d9577c26a07e3f34ef5753c539a067ff780dd4bd4cc9dd79bc" dmcf-pid="PQxEhpCnsP" dmcf-ptype="general">수미상관으로 잭을 이끄는 저승사자 격인 버지(브르노 간츠)를 통해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관련한 단테의 <신곡>을 빌린 것 또한 묘한 아이러니를 산출한다. 버지는 베르길리우스를 뜻하며 역사적 베르길리우스가 아니라 단테 <신곡>의 지옥 편을 안내한 문학 속의 베르길리우스를 트리에가 초대했다.</p> <p contents-hash="c690d3fb16d624728eb286e44824119b4713135fec696b4445606e799a6eb21f" dmcf-pid="Qhlp9oKGw6" dmcf-ptype="general">과도한 폭력성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그리되,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은 내면으로 들어가 심리 변화와 몰락을 주관적으로 묘사했다. 마지막에 사탄이 있는 지옥의 심부, 즉 맨 아래인 9원(지하 9층)으로 떨어진 것 또한 <신곡>의 지옥 편을 차용했다. 원래 잭이 있을 곳이 2개 층 위라는 버지의 대사는 이 영화가 단테의 <신곡>을 참고했음을 명시한다. 두 개 층 위인 7원엔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 예컨대 '잭 더 리퍼' 같은 이들이 가는 곳인데, 잭은 7원을 마다하고 사탄이 직접 자리하여 유다 등을 씹어대고 있는 더 아래 9원으로 추락한다. 영화는 대미에 해당하는 이 대목을 지옥 탈출 욕망을 취한 자발적 추락으로 그린다.</p> <p contents-hash="85ce7f706df4a0a31a970946adbdec407cc5eab735efa5cf25d60c928539d80e" dmcf-pid="xlSU2g9HD8" dmcf-ptype="general">정리하면 계획성과 편집증, '살인 미학'의 태도에서 나치의 본성을 연상할 수 있으며 폭력을 예술로 미화하는 태도는 합리성의 이름으로 폭력을 은폐한 파시즘의 광기를 떠올리게 한다. 희생자에 대한 냉담과 공감 결여, 피살자를 수치화하는 방식은 강제 수용소 시스템, 지옥으로 추락은 나치의 2차 세계대전 패망과 역사적 파산으로 연결된다. 잭이 괴테적인 독일 인문주의 질서를 숭상하는 독일 문명의 타락한 후손이라는 해석 또한 가능하다. 그렇다면, 단테의 베르길리우스를 시작과 끝에서 심판관으로 내세운 건 보편적 유럽 인문주의에 의한 타락한 독일 교양의 심판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p> <p contents-hash="c23c2a1dc59a6edb67d873a8524cf06175c4d9ec3d17a0b8140d9b224baba571" dmcf-pid="y86AOFsdm4" dmcf-ptype="general">단테의 신곡을 끌어왔지만, <연옥>과 <천국>은 제외하고 <지옥>만을 가져온 데서 트리에의 비판 정신은 확고하다. 이 영화를 보면 트리에에 붙어있는 나치 옹호라는 낙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단 이 영화만으로 판단하면 그렇단 얘기다.</p> <div contents-hash="8eb91a469e9070b0938ae14b88fd1cefeb1c1cd2a47c40e4c7330ca94a452492" dmcf-pid="W6PcI3OJrf" dmcf-ptype="general"> <strong>반유대주의?</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2872907935fa7a613fc6b40b20d094a58260a02ba57afddc0543297e81e7c4e9" dmcf-pid="YPQkC0IiEV"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7/04/ohmynews/20250704114206483wlkn.jpg" data-org-width="1280" dmcf-mid="4Lc1zd7vs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04/ohmynews/20250704114206483wlkn.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살인마 잭의 집' 스틸사진</td> </tr> <tr> <td align="left">ⓒ (주)엣나인필름</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4f814170fe1debc3a0e5d29263535f5beaf8f59732cb41cc4087fc4dee9e1fc8" dmcf-pid="GQxEhpCnw2" dmcf-ptype="general"> 과거 반유대주의가 유럽에서 보편적이긴 했다. 현대의 반유대주의는 인종주의 개념보다는 문명사적 충돌과 국제정치와 관련돼 주로 이스라엘을 지목한다. 트리에 감독이 '실언'하며 반유대주의 뉘앙스를 풍겼는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이스라엘의 폭력을 비난하는 세계 진보 진영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div> <p contents-hash="27086c14f8755bc1d1dacca1296bf92693329dd11c1b9cff4ceb04934fdc6cae" dmcf-pid="HxMDlUhLE9" dmcf-ptype="general">여기서 트리에 출생의 비밀을 살펴보아야 한다. 트리에 어머니는 덴마크계 비유대인이고 아버지는 유대계였다. 아버지 쪽이 확고한 유대인 집안이어서 트리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대인으로 받아들인다. 본래 유대인 결정은 모계를 따르지만,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규정 또한 중요하기에 트리에가 자신을 유대인으로 믿은 게 이상하지는 않다. 트리에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 충격적 고백을 임종하는 어머니한테서 듣는다. 33세까지 유대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독일계가 돼 버린 어이없는 상황이 어떤 식으로든 그의 정체성 형성과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그것도 스웨덴인에서 노르웨이인이 된 게 아니라, 유대인에서 독일인이 됐으니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다.</p> <p contents-hash="0a5844397bdd0c986ea4798c770658115d3678158b4ffd84abaaf8b256ff606a" dmcf-pid="XMRwSuloDK" dmcf-ptype="general">잭이 나치나 히틀러를 상징했다고 보면 비교적 작품을 이해하기 쉽지만, 만일 잭의 정체성에 트리에 감독을 투사해 유사 나치와 거짓 유대인 사이의 분열을 투입하면 간명한 그림은 아니다. 인생 마지막에 벙커로 내려간 히틀러와 달리 그림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p> <p contents-hash="df7d999bf84e69aa14bb81ee41602db87564b12f8670b1b58a0e3113f8f48ffa" dmcf-pid="ZdJsyqTNmb" dmcf-ptype="general">피해자 진영에 속했다가 가해자의 일원이 된 상황은 양쪽으로부터 배제됨을 뜻한다. 그가 끊임없이 짓는 집이 종국에 피살자로 쌓아 올린 괴물의 집이 된 결말은 정체성의 파괴와 실존의 붕괴를 뜻한다. 나치의 악을 내면화한 존재이며, 동시에 그것을 응시하며 파멸하는, 분열된 자아로 형상화한다.</p> <p contents-hash="f4f07018830068a56ac6b7c55f65bb49f49e370c5b02780997c201a8803c755d" dmcf-pid="5JiOWByjmB" dmcf-ptype="general">'잭이 지은 집(The House That Jack Built)'은 영국의 전래 동요로 맥아, 쥐, 고양이, 개, 소, 처녀, 누더기 입은 사내, 삭발한 신부, 수탉, 농부 등이 차례로 등장하여 각 요소가 이전 것과 연결되는 구조를 취한다. 변용이 이루어지기도 해 맥아 대신 치즈를 넣고 치즈를 쥐가 먹고 고양이가 쥐를 먹고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생각하면 영국 전래 동요지만 우리도 아는 내용이다.</p> <p contents-hash="d2573c87e0c6872ab6f6cba5fec273a2f4b4aa30f1ed88023f100d7a71e1c0e1" dmcf-pid="1inIYbWAsq" dmcf-ptype="general">'카드 가드야(Chad Gadya, 히브리어로 "한 마리의 새끼 염소")'는 유대교 동요로, 유월절 예전(禮典)에 포함된 노래다. '카드 가드야' 또한 염소를 시작으로 고양이, 개, 막대기, 불, 물, 소, 도살자, 죽음의 천사, 그리고 신까지 등장하여 각 요소가 이전 것을 극복하는 구조를 취하는 누적형 노래여서, 두 노래 사이에 연관을 지적하기도 한다. 트리에가 어릴 때 유대교 문화에서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그가 이 연관을 알았을 확률이 높다.</p> <p contents-hash="5eb2a1c9a1614b583bc3837d376779c2b291b030390e8039e2a3e7794c13e0a1" dmcf-pid="tnLCGKYcEz" dmcf-ptype="general"><살인마 잭의 집>이란 한국 영화 제목의 원제는 '잭이 지은 집'이다. 한국어 어순이 어려워 표시나지 않지만 '집'이 더 강조된다. 연쇄와 누적의 구조를 통해, 영국 전래 동요를 거쳐 유대교 유월절과 연관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유월절의 핵심은 출애굽, 즉 해방이다. 영화는 반대로 누적적 구조로 추락을 도출한다.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마지막에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말하는 천국 '엘리시온'을 바라보며 잭이 눈물을 떨구고, 그 엘리시온이 어릴 적 본 풀 베는 들판이었다는 처리는, 죽음의 맥락에서 파악한 흥미로운 존재의 배제와 텍스트 간의 감각적인 연관을 보여준다.</p> <p contents-hash="d4515c75c6e413fa5c1a89e8ea9d537e035984f87c1b6a95194d9d22ecbc710a" dmcf-pid="FLohH9GkE7" dmcf-ptype="general">누적형 구조의 영국 전래 동요가 영화 제목으로 사용되었고, 그 전래 동요는 유대인의 해방과 관련한 유대 동요와 연결된다. 아주 독특한 의미로 트리에가 유대인에서 해방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업의 사슬을 탈출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잭의 집'이 허구였고, 잭은 자신의 집을 짓지만 '잭이 지은 집'은 잭 자신의 떠남을 의도한 집이었다는 함의를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p> <p contents-hash="e1d7a11ce6a3569cac6bce2647d5f1d35d3c56aabbe63c23c0f343d9ec741cf6" dmcf-pid="3oglX2HEOu" dmcf-ptype="general">33살이라는 상징적인 나이에 유대인에서 독일인으로 '강등'된 트리에에게 반유대주의가 있었을까. 반이스라엘주의 정도가 아니었을까. 유대인이었던 자신에 대한 혐오나 반감과 같은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반유대주의가 있었을 개연성은 있다. 반감과 혐오는 출생과 관련되고 모성과 성장기의 부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p> <p contents-hash="22b70f4e6321ac3364c8d1d0c857f320ca86e1706057400cefdee1ca11b53c91" dmcf-pid="0gaSZVXDmU" dmcf-ptype="general">그렇다면 유방이 포유류에게 대표적인 모성 기관인 만큼 유방 절개와 유아를 포함한 모자 살해는 일반적 의미가 아닌 트리에만의 독특한 관점의 '반유대주의'에서 설득력 있는 영화적 전개가 된다. 일반 관객에게도 설득력이 있을까? 관객 나름일 테니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p> <p contents-hash="e04ee800c5ad94902cb73e1ef713ecaa403d1fe00c43ab28f12d6627934f44e0" dmcf-pid="paNv5fZwrp" dmcf-ptype="general"><strong>잭 대 잭</strong></p> <p contents-hash="e3df6ff2dfa7f0946fbdb4fcbaa7f48336f430f685000e5ed7b7163ea424fb3e" dmcf-pid="UlSU2g9Hw0" dmcf-ptype="general">도입부에 이어진 영화 시작은 잭이 연쇄살인범으로 입문하는 모습을 다룬 '사건 1'이다. 거만하고 예의 없는 우마 서먼이라는 여자가 등장해 잭의 본능을 끄집어낸다. 중의적 대사가 향후 전개를 거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잭이 고장난 차 앞의 우마 서먼에게 묻는다.</p>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d86efa68e1e83c729ad2a99feb5525d5ba433219f0a9a6c792e88a771246cc6e" dmcf-pid="uSvuVa2Xs3" dmcf-ptype="blockquote2"> "왜 잭을 들고 여기 서 있어요?" </blockquote> <div contents-hash="820a920a5410571f4205be1e8f4a9fbd7e7e4d53392f7e01d38321992a1c2335" dmcf-pid="7vT7fNVZEF" dmcf-ptype="general"> <br>철수란 사람이 있어서 "왜 철수를 들고 서 있어요?"하고 묻는 모습을 떠올리니 좀 우습다. 잭이 고장 났기에, 잭에게 잭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잭은 잭이 없어서 잭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누구나 잭이 있지 않냐고 묻자 "나는 없다(I don't.)"라고 대답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잭이 잭에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잭을 고치러 철공소에 간다. 부서진 잭을 고쳐서 자동차를 들어 올리던 중에 잭이 다시 부서진다. </div> <p contents-hash="7bd38d0c9f49906d8338f133c982b2e0d70be2e8034e432c5c3810018db8c0cc" dmcf-pid="zTyz4jf5Dt" dmcf-ptype="general">결국 차 안에서 잭이 잭을 들어 옆의 여자 면상을 후려치는 것으로 첫 사건이 완성된다. 나를 '나'이게끔 하는 게 잭에겐 연쇄살인이었다는 셈인데, 현실이 아닌 예술 창작의 범주에서는 허용되는 상상일까. '잭 대 잭'의 구도는 감독 개인의 배경과 무관하게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이야기이나, 너무 과격해서 여기서 실존적 메시지를 끌어내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p> <p contents-hash="dbe34a04656451971477aef57c5488c2387f2e79d8b85b702efdfca55ca73ae2" dmcf-pid="qyWq8A41D1" dmcf-ptype="general">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전언이나 영화적 형식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관객 개인마다 다를 텐데, 아무런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잔혹한 폭력을 사용했다는 혐의는 이 영화에서 거두어도 좋겠다.</p> <p contents-hash="0183daa2625bae374ad76c489bfaacb572497604d7b5722186fd0a44a49321e4" dmcf-pid="BWYB6c8tD5" dmcf-ptype="general">안치용 영화평론가</p> <p contents-hash="e7af3ebb21fd667a62cebea3d1d88878bb5c50be9d02e2ed510a20a0ceb58121" dmcf-pid="bYGbPk6FsZ"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이 기사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18세 소녀 안드레예바, 윔블던 32강 진출 07-04 다음 '온주완과 11월 결혼' 민아 "든든한 응원 주는 분 생겨"…자필 소감 07-04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