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도 가기 싫어하는 KBO 올스타전 작성일 07-12 31 목록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5/07/12/0000051092_001_20250712043009149.gif" alt="" /><em class="img_desc">지난해 7월 6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KBO 올스타전 썸머레이스에서 kt 로하스(왼쪽부터), 삼성 이승현, 한화 주현상이 달리고 있다. photo 뉴시스</em></span></div><br><br>같은 '별들의 전쟁'인데 느낌이 전혀 다르다.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전과 한국 KBO리그 올스타전 말이다. 시즌 반환점에 야구계 최고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벌이는 축제라는 점은 같다. 그런데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반대다.<br><br>올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감 속에 치러진다. 역대 최고 타자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뉴욕 양키스 애런 저지와 '베이브 루스의 재림'이라 불리는 LA 다저스의 투타겸업 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해 월드시리즈에 이어 올스타전에서 맞붙는다. 역대 포수 전반기 최다 홈런의 주인공 칼 랄리, 전반기에 벌써 20-20을 달성한 시카고 컵스의 신예 피트 크로암스트롱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대형 스타들의 향연이다.<br><br>그런데 7월 12일 열리는 KBO리그 올스타전을 앞둔 팬들의 기대는 결이 다르다. 물론 최고 투수 코디 폰세와 홈런 1위 르윈 디아즈의 대결, 광속구 마무리 김서현과 역대 홈런 1위 최정의 대결을 기대하는 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올스타전에서 펼쳐질 각종 이벤트와 선수들이 보여줄 퍼포먼스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br><br>지난 몇 년간 올스타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선수들의 경기력보다는 분장과 세리머니가 더 선명하지 않나. 2019년 제이미 로맥의 '로맥아더 장군' 퍼포먼스, '포수는 거지'라고 하소연하던 김태군의 임금님 분장, 구자욱의 여장과 황성빈의 '배달의 마황' 퍼포먼스가 그렇다. 메이저리그로 치면 애런 저지가 판사봉을 들고 나오거나 오타니가 '이도류' 쌍검을 들고 나오는 장면이 펼쳐지는 셈인데 MLB에선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만 KBO리그에선 가능하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진지한 스포츠 다큐라면, 한국 올스타전은 차라리 예능에 가깝다.<br><br><strong>지리적 차이가 올스타 문화에 영향</strong><br><br>미국 올스타전과 한국 올스타전은 왜 장르 자체가 이렇게 다른가. 가장 큰 원인은 리그 구조에 있다. 10개 구단 단일리그인 KBO와 30개 구단이 여러 리그로 쪼개진 메이저리그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MLB에서 보스턴에 사는 팬이 오타니를 직접 보려면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다저스의 보스턴 원정 경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미국 반대편 서부로 날아가야 한다. 콜로라도주 덴버에 사는 야구팬이 애런 저지를 보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올해 양키스와 경기가 없으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기회가 온다. 그조차도 몇 경기 안 되기 때문에 치열한 티켓 경쟁을 벌여야 한다. 양대 리그와 30개 구단 체제에서 오는 희소성이 있다.<br><br>반면 KBO리그는 10개 구단이 최소 16차례씩 맞붙는 단일리그 체제다. 대전 사는 한화팬이 KTX로 이동해 고척, 잠실 경기를 보고 당일 귀가가 가능한 생활권이다. TV로는 연고지 팀 경기만 볼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여기선 전 경기가 TV와 모바일을 통해 매일 생중계된다. 이런 환경에선 아무리 김도영, 류현진급 슈퍼스타라도 '희소성'을 갖기 어렵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데, 일 년에 딱 한 번 열리는 올스타전이 MLB만큼 높은 가치를 갖기 어렵다.<br><br>올스타전이 갖는 위상도 천양지차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올스타 선정은 큰 영광이다. 30개 구단 최고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기 때문에 아무나 갈 수 없는 자리다. 신인급 선수는 올스타에 뽑히면 보너스를 받기도 하고, 연봉 조정에서 유리한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br><br>명예의전당 투표 때도 올스타 선발 횟수가 선수의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진다. 중계방송이나 기사에서도 선수를 소개할 때 '몇 차례 올스타 선정' 같은 수식어가 항상 포함된다. 올스타전에서의 뛰어난 활약이 한 선수의 커리어를 정의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제이콥 디그롬을 언급할 때 2015년 올스타에서 보여준 '무결점 이닝(1이닝 9구 3타자 연속 3구 삼진)'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처럼 말이다.<br><br>그런데 한국야구에서는 올스타전 위상이 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10개 팀 중에서 뽑는 올스타다 보니 30개 팀 체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올스타 선발이 연봉 협상이나 FA 계약 때 특별한 가치를 갖지도 않는다. 선수를 소개할 때 올스타 경력이 거론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어떤 선수가 올스타에 몇 차례 선정됐는지 찾아보려면 KBO 연감을 뒤지거나 신문기사를 검색해서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한다. 그만큼 비중이 떨어진다는 얘기다.<br><br>구단이나 감독, 선수들부터가 올스타전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라고 말하지만, 속내는 후반기 페넌트레이스에만 집중되어 있다. 올스타전에서 너무 최선을 다하고 힘을 빼지 않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모 구단 관계자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구단도 현장도 올스타전에서 힘빼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야구의 본질로 따지면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만, 그러다 부상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요새는 팬들도 너무 최선을 다하면 뭐라고 하는 분위기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5/07/12/0000051092_002_20250712043009186.gif" alt="" /><em class="img_desc">2019년 7월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각 선수들이 이색적인 복장을 입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em></span></div><br><br><strong>하루 더 쉬는 게 나아</strong><br><br>이런 '슬렁슬렁' 올스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2010년 올스타전 류현진·김광현 맞대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리그 최고 좌완 에이스이자 라이벌이지만 정규시즌에서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던 두 선수의 대결은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다. 두 선수 모두 1회부터 대량실점했다. 김광현은 0.1이닝 6실점, 류현진도 3실점. 정규시즌을 대비한 태업성 피칭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올스타전을 언론과 팬들이 나름 진지하게 여기던 시대였다.<br><br>몇 해 전 올스타에 처음 선발된 선수에게 축하 인사를 했더니 '솔직히 가기 싫다'는 대답이 돌아와 놀란 적도 있다. '집에서 가족들과 쉬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이 선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올스타전 나가서 뭐 얻는 것도 없지 않나, 하루라도 더 쉬는 게 낫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았다. 올스타전 선발을 빛나는 영광으로 생각하는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당연히 올스타전에서 전력을 다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최고 대 최고의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류현진, 김광현만 탓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었고 구단과 현장도 그러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올스타전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가 뚜렷했다.<br><br>KBO는 이런 '노잼 올스타전' 문제를 개선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했다. 미국처럼 승리팀에 홈 어드밴티지를 줘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고민 끝에 KBO가 정한 방향이 바로 '예능화'였다. 야구의 본질적인 경기력보다는 선수들의 재미있는 분장과 퍼포먼스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br><br>KBO 마케팅 파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야구적 접근보다는 선수들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게 바로 베스트 퍼포먼스상 신설이었다. 이전까진 권장만 하고 구단에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정도였는데, 상을 만든 뒤부터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br><br>베스트 퍼포먼스상이 처음 도입된 2019 올스타전에서 SK 와이번스(현 SSG) 선수단의 화려한 분장은 큰 화제를 모았다. 로맥의 맥아더 분장, 최정의 홈런공장장 분장, 한유섬으로 개명하기 전 한동민의 '동미니칸' 분장 등이 화제가 됐다. 류선규 전 SSG 단장은 "그해 SK 선수들이 구단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준비한 퍼포먼스가 대박을 쳤다. 미디어도 호의적이었고 팬들도 굉장히 재미있어했다. 그 이후로 모든 구단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br><br>물론 초기 반발도 있었다. 일부 야구인과 오래된 야구팬들은 '양준혁 자선야구대회 같다'거나 '너무 퍼포먼스에만 치중한다'며 비판했다. 한 야구인은 "당시 SK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솔직히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 '저게 뭐 하는 건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하는 반응도 있었다"면서 "그런데 팬들과 미디어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너무 좋아하고 호의적인 반응이 많아서 내가 시대에 뒤떨어졌구나 싶었다"고 털어놨다.<br><br>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야구팬 구성의 변화가 있다. 한 구단 관계자의 분석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새로 야구팬이 된 분들은 기존 40대 이상 남성 위주 팬들과는 야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작년 1000만 관중 구성을 보면 20·30대 젊은 야구팬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분들에게는 야구 경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색다른 모습, 퍼포먼스가 즐거움과 재미로 작용한다." KBO 관계자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야구를 야구로만 대하는 기존 팬분들에게는 이런 퍼포먼스가 비야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야구 팬들은 야구 외에도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고 즐거워한다. 팬들의 새로운 니즈에 맞춰 선수들이 호응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br><br><strong>작년부터 흥행에 청신호</strong><br><br>결과는 성공적이다. 예능화 이후 올스타전은 '노잼'에서 벗어나 흥행에도 성공했다. KBO 관계자는 "올스타전 흥행 성적이 전보다 굉장히 좋아졌다. 스폰서도 과거 5~6개에서 지금은 17곳으로 늘었다. 예전엔 올스타전이 적자였는데 지금은 흑자로 전환됐다. 올해 판매하는 굿즈도 완판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KBO는 개최지인 대전의 '빵' 도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워터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올스타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선수들의 자세도 달라졌다. 올스타전에 시큰둥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팬들 요구에 부응해 퍼포먼스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고참급 선수들이 아내·자녀와 함께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기 좋다. 올스타전을 기피했던 과거와는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다.<br><br>어차피 올스타전 본게임이 MLB 같은 위상을 갖기 힘든 환경이라면 아예 한국식으로 나가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사실 최고 스타들이 경쟁하는 미국 MLB나 NBA도 늘상 올스타전 '노잼' 논란이 따라다니지 않나. 어찌 보면 KBO리그는 다른 방향에서 돌파구를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br><br>다만 오랜 야구팬 입장에선 여전히 최고의 투수와 최고의 타자들이 자존심을 걸고 온 힘을 다해 벌이는 대결을 보고 싶은 바람은 있다. 예능도 좋지만 디그롬의 무결점 이닝이나 1999년 페드로의 압도적 투구처럼, 야구 자체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도 보고 싶은 마음이다. 한 야구인은 "분장은 분장대로 하고, 타석에 들어가면 다른 스위치를 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주문했다. 올스타전을 향한 관심도와 주목도가 높아진 만큼, 머지않은 때에 예능 요소와 경기력이 조화를 이룬 '완벽한' 올스타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br><br> 관련자료 이전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483] 왜 태클이라 말할까 07-12 다음 춘천 세계장애인태권도 오픈챌린지 개막… 감동과 도전의 무대 열려 07-1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