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의 절망, 45살의 희망…신의현, 마지막 질주를 준비하다 작성일 08-07 13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챗밀라노] 3번째 패럴림픽 준비 장애인 노르딕스키 신의현</strong><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8/2025/08/07/0002759978_001_20250807090216687.jpg" alt="" /><em class="img_desc">장애인 노르딕스키의 신의현이 지난 6월 말 강원도 대한장애인체육회 평창트레이닝센터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em></span> “죽게 놔두지 왜 나를 살렸어!”<br><br> 그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절망이 입을 먼저 열었다. 실제로 자신을 살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오래 가”기도 했다. 그래도 “자식을 낳고 부모 입장이 되어보니까 그런 마음이 조금씩 풀려갔다.”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에서 그는 금메달로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대못을 조금은 뽑아냈다. 지난달 경기도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신의현은 말했다. “금메달을 따서 그나마 어머니께 효도한 것 같았다.”<br><br> 악몽과도 같던 2005년 2월이었다. 대학 졸업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졸업 뒤 유통회사에 취업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일상적인 하루가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친구들과 졸업 축하 저녁을 먹고 차를 몰고 집으로 오던 중 대형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사고 나흘 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 주던 두 다리가 없었다. 수년간 다리 절단에 동의했던 어머니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토해냈다. 술이 아니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여러 갑의 담배로 하루하루를 태웠다. “꿈도 희망도 없이, 정말 살아갈 이유조차 없던 시기”라고 했다. <br><br> 어머니의 권유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그나마 정신을 붙잡았다. 운동을 좋아했던 터라 2009년부터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이후 장애인 아이스하키, 핸드사이클을 하다가 창성건설 노르딕스키 팀이 창단(2015년)되면서 본격적으로 크로스컨트리에 뛰어들었다. <br><br> 설상 위의 달리기는 녹록지 않았다. 맨 처음 국외 훈련지가 핀란드 노르딕 터널 스키장이었는데, 속도 때문에 코너에 부딪힐까 봐 겁이 났다. 그해 12월 첫 국제 대회에 나가서는 속도 때문에 중심을 못 잡아 한 바퀴를 구르기도 하고, 안경도 날아가고 그랬다. 한 번 하늘로 붕 떠서 땅에 처박히니 내리막이 무서워지기도 했다. 속도가 나지 않으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신의현은 “그때 함께 출전한 한국 선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꼴찌를 했다. 턴도 못 하고 그랬다”고 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했다. 상위권 외국 선수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경기 전후로 그들이 잠깐 한눈판 사이 줄자를 꺼내 썰매 길이를 재고, 휴대폰 카메라로 몰래 장비 사진을 찍었다. <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8/2025/08/07/0002759978_002_20250807090216724.jpg" alt="" /><em class="img_desc">장애인 노르딕스키의 신의현이 지난 6월 말 강원도 대한장애인체육회 평창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em></span> 알음알음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좌식 스키를 맞춤식으로 바꾸고 난 뒤 성적이 나기 시작했다. 어렵게 느껴지던 턴 기술도 몇 개월 훈련하니 습득이 됐다. 이후 순위는 급상승해 크로스컨트리 입문 1년도 안 돼 시상대에 섰다. 3등을 하니까 1등 욕심이 슬슬 났다. 결국 그는 2017 리비프 파라노르딕스키 월드컵 크로스컨트리 5㎞ 남자 좌식 종목과 크로스컨트리 15㎞ 남자 좌식 종목에서 한국 장애인 노르딕스키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실업팀 소속으로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2018년 평창 눈밭에서도 그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크로스컨트리 좌식 7.5㎞ 금메달, 좌식 15㎞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패럴림픽 역사상 첫 금메달이기도 했다. 스스로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지나간 세월에 대한 보상이나 다름없었다.<br><br> 신의현은 평창, 베이징(2022년)에 이어 생애 3번째 겨울패럴림픽 출전을 준비 중이다. 3월까지 시즌을 마치고 지난 5월부터 훈련을 재개해 내년 3월 밀라노코르티나겨울패럴림픽 참가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현재는 뉴질랜드로 건너가 전지훈련(7월28일~8월26일)을 하고 있다. 신의현은 “쉽지 않은 운동이어서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이번에는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자꾸 드는데 그때마다 가족들 생각하고 나름의 목표도 곱씹으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다”면서 “결국 모든 운동의 시작은 멘탈 잡기 같다”고 했다. <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8/2025/08/07/0002759978_003_20250807090216753.jpg" alt="" /><em class="img_desc">장애인 노르딕스키의 신의현이 지난 6월 말 강원도 대한장애인체육회 평창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em></span>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8/2025/08/07/0002759978_004_20250807090216780.jpg" alt="" /><em class="img_desc">장애인 노르딕스키의 신의현이 지난 6월 말 강원도 대한장애인체육회 평창트레이닝센터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em></span> 힘든 운동 특성상 40대 노르딕스키 선수는 거의 없다. 국내는 특히 더 그렇다. 경쟁자가 없어서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신의현은 한국 첫 겨울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자부심을 안고 더 집중한다. 고교 태권도 선수로 뛰고 있는 딸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아직은 무너지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br><br> 신의현에게 노르딕스키는 무엇일까. 그는 “효도의 수단”이자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해준 수단”이라고 했다. 절망의 끝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게 스포츠였고, 그 마지막에 하얀 눈 위의 노르딕스키가 있었다. 신의현은 “절망하고 또 절망해서 바닥 끝까지 가보면 해보고 싶은 게 생긴다. ‘일단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나에게 계기가 된 것은 가족이었다. 아무것이라도 시작하면 된다.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금메달리스트 신의현은 없다”고 했다. 평창 때는 어머니를 위해 메달을 땄다면, 밀라노 때는 아내와 가족을 위해 마지막으로 단 한 개의 메달이라도 따고 싶다는 그였다. 그리고, 절망의 웅덩이에서 허우적대던 25살의 그를 돌아보면서 “나를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든 제발 뭐라도 시작해보라”고 거듭 말하던, 어느덧 45살이 된 신의현이었다. 관련자료 이전 “값비싼 귀금속없이 효율 1.3배↑” 에너지硏, 해수 수전해 고성능 전극 개발 08-07 다음 2025 US오픈 챔피언, 500만달러(69억원) 받는다...상금 39% 증액 08-0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