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이겨낸 中 '게방괘수'…관시 없애고 AI 경쟁 독려 [평화 오디세이-中 AI굴기 현장리포트⑨]

작성일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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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5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관람객들이 인공지능(AI)을 상대로 체스를 두고 있다. 2017년 커제가 알파고에 패한 뒤 중국은 AI 굴기에 나섰다. [EPA=연합뉴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2/joongang/20250812050217632gzxs.jpg" data-org-width="559" dmcf-mid="F7QKzXj4l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2/joongang/20250812050217632gzxs.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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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5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관람객들이 인공지능(AI)을 상대로 체스를 두고 있다. 2017년 커제가 알파고에 패한 뒤 중국은 AI 굴기에 나섰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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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초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의 ‘평화 오디세이 2025’에 참가해 중국 항저우를 찾았을 때 나를 놀라게 한 숫자가 하나 있다. 독보적인 안면 인식 기술을 자랑하는 센스타임 사의 상황판에 뜬 2만3000페타플롭스(초당 부동소수점 연산 횟수, Petaflops)라는 숫자였다. 이 회사가 인근 대도시에서 현재 사용 중인 컴퓨팅 파워를 실시간으로 더한 숫자였다. 매초 당 23 뒤에 0이 18개 붙는 천문학적 부동소수점 연산을 한 개의 회사가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광주 ‘국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연산량이 88.5 페타플롭스라니 비교조차 민망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의 첨단 칩 없이 여러 종류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통합해 이런 컴퓨팅 파워를 구현했다는 회사 측 설명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강제된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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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김용학 연세대 전 총장"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2/joongang/20250812050219078njcn.jpg" data-org-width="205" dmcf-mid="3haRPzCnvD"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2/joongang/20250812050219078njcn.jpg" width="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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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학 연세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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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된 혁신’의 현장이었다. 미국의 제재로 기술 공백이 생기자, 중국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혁신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제재는 ‘보호된 내수 시장’을 만들면서 중국기술의 상품화를 돕고 있었다. 일례로 딥로보틱스라는 회사는 어떤 장애물도 쉽게 넘으며 빠르게 달리는 4족 보행 로봇을 대량 생산해 재난구조, 고압선 유지보수, 터널 공사나 광산 같은 험한 작업 현장에 판매하고 있었다. 꼬리 쪽에도 눈이 달린 이 로봇에 기관총만 얹으면 당장이라도 산악지대 전투병으로 투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숲속을 고속 질주하는 로봇 개 군단은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평화 오디세이 탐방단이 둘러본 중국의 AI 및 로봇 기업들의 성과는 경이로웠다. 앞선 기술력, 거대한 시장과 인재 풀, 기술개발과 상품화에 동원된 막대한 자본력,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그리고 ‘강제된 혁신’까지,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최근 딥시크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문샷AI 사의 키미 K2라는 AI의 등장은 우리가 보고 온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또 최근에는 상하이교통대 연구진이 AI를 만드는 AI를 공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이 터질까? 
 AI 최강국 중국, 비결과 숨겨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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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안면 인식 기술을 보유한 센스타임의 CEO 쉬리가 AI 혁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2/joongang/20250812050220329gfud.jpg" data-org-width="559" dmcf-mid="0PqSINbYhE"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2/joongang/20250812050220329gfud.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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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 인식 기술을 보유한 센스타임의 CEO 쉬리가 AI 혁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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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무엇이 중국을 AI 최강국으로 만들었을까?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차분하게 짚어볼 것이 있다. 중국 AI 성공의 요인이 무엇이며, 이 성공은 지속할 수 있을까? 성공사례만 보고 일반화하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의 위험은 피해야 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정책 실패는 없는지, 실패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지도 살펴야 한다. 우리나라도 100조원을 투자하는 정부 주도형 AI 발전 계획을 추진 중이니, 앞서간 ‘국가 주도형’ 중국 사례에서 배울 점을 검토할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이 독점된 국가는 자유시장과 조화롭게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강한 권력은 사적 이익집단의 포로가 되기 쉽고, 시장을 왜곡하여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과잉 투자와 부패로 부채 위기에 빠져 있는 중국 부동산이다. 부동산이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AI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탐방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중국 부동산 위기는 강한 국가가 시장을 왜곡한 결과이다. 중앙 정부가 세수 대부분을 가져가는 세제 개혁을 단행하자 지방정부의 세수 기반이 약화되었다.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소유 토지의 사용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토지 매각권이라는 권력은 곧 상품화되었다. 지방 관료들은 개인적인 부(富)를 얻거나 국내총생산(GDP)을 부풀리기 위해 용도변경이나 금융지원 등의 특혜를 개발업자에게 얹어줬다. 이 과정에서 ‘주택 부패’(房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부패가 만연했다. 국가가 시장 수요와 무관한 공급과잉을 부추겼고, 결국 부동산 거품은 터지고 말았다. 
 성공 열쇠는 투명하고 공정한 정책 AI 지원 정책은 실패한 부동산 정책과는 전혀 달랐다. ‘게방괘수’, 즉 “과제를 공개적으로 내걸고(揭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책임을 맡는다(挂帅)”라는 투명하고 공정한 정책을 내걸었다. 이 정책은 자원 배분의 원칙을 ‘누구를 아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전환시키며 시장경쟁을 촉진했다. 
 AI가 필요로 하는 자산의 특수성도 경쟁 시장을 촉진했다. 토지와 같은 유형의 독점자산이 아니라, 인재나 데이터, 알고리즘과 같은 무형자산이 AI의 핵심이다. 이런 자산은 우월성 경쟁을 하기 쉽고, 성과측정도 용이하다. 권력과의 연줄(관시)에 기반한 독점은 훨씬 더 어렵게 된다. AI를 오픈 소스로 공개하는 정책도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강력한 방법이었다. 혁신은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대규모 컴퓨팅이나 양질의 데이터를 구축했다. 해외 인재를 유치하거나 육성하는 등 인프라에 집중했고 성과를 내는 AI 기업들을 선별해 자원을 투입했다. 결과는 성공 스토리로 이어졌다. 
 국가 주도 과잉투자 비판도 하지만 성공 이면에는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다. AI 영역에서도 부동산 위기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패턴이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막대한 자본투자와 시장 수요를 등한시한 지방정부 간의 과열 경쟁은 AI 산업 전반에 걸쳐 자원낭비의 위험을 증폭시키고 지방정부의 부채를 급증시킨다는 지적이다. 외신뿐만 아니라 중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쟁적으로 공급된 데이터 센터에 거품이 있다거나, 비슷한 거대언어모델(LLM)을 수백 개씩 중복 개발하여 막대한 컴퓨팅 자원과 인재를 낭비했다는 것이다. 
 한국 ‘후발 효과’ 극대화해야 AI는 선두 주자의 발전 속도가 후발 주자보다 점점 더 빨라지기 때문에 따라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예측이 우세하다. 게다가 우리가 가진 자원 중 중국보다 나은 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급할수록 늦게 출발한 자가 누리는 효과, 즉 ‘후발 효과’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앞서간 나라들의 성공 사례를 배우고 시행착오를 건너뛰자는 것이다. 
 중국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지원 정책이다. 중국의 실패 위험에서 배울 것도 역시 빠르게 변하는 시장 신호에 맞춰 유연하게 지원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반시장적 규제를 걷어내고, 관 주도형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에게 결정을 위임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뻔한 교과서 원론을 따라야 한다. 폭증하는 전력 공급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대부분 스스로 원자력을 포함한 발전소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자본이 약한 우리 민간 기업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전기가 없다면 AI는 헛된 꿈일 뿐이다. 
 인재 양성·유치가 최우선 과제 인재 양성과 유치도 정부가 최우선으로 할 일이다. 우리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창 배우는 젊은 인재의 능력에 상한선을 두고 있다.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쉬운 수능 문제를 틀리지 않게 반복 연습하는 훈련을 한다. 난이도 높으면 ‘킬러 문항’이라고 비난하는 교육으로는 AI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이민 정책과 맞물린 해외 인재 유치도 시급하다. 실리콘밸리에는 인재를 얻기 위해 회사를 합병하는 ‘구인 합병(acqui-hire)’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얼마 전 메타(Meta)가 한 명의 인재와 그의 기술을 영입하기 위해 스케일 AI(Scale AI)라는 회사를 19조원에 인수한 사건이 그 예다. 거물급 인재 유치 비용이 없다면, 동남아나 동유럽 국가들의 중고등-대학생 수학-과학 천재와 그 가족을 이민 정책과 연계하여 모셔와야 한다. 대학도 이들을 위한 무시험 입학 제도를 마련하고, 기업도 졸업 후 일자리를 약속하는 등, 다양한 유인 패키지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황혼이 깃들 무렵, 화웨이 R&amp;D 단지 연구실에는 52시간 너머로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연구 단지를 가로지르는 롄추후(练秋湖)에 나룻배가 나타났다. 한 사람은 노를 젓고 다른 사람은 삽으로 호수에 무언가 뿌리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온 이 두 명의 노동은 우리가 방금 보고 온 최첨단 기술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AI와 로봇은 머지않아 이들의 노동을 파괴할 텐데, AI의 최일선에 선 중국은 14억 인구의 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더 큰 질문이 꼬리를 잇는다. 
 김용학 연세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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