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장은 평범함의 증거일 뿐"…AI가 끌어내린 '학위의 권위'

작성일 08-17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EEP INSIGHT 美명문대 중퇴생들은 어떻게 실리콘밸리 주류가 됐나 "대학은 거품" 피터 틸의 실험 똑똑한 인재들 의사·변호사로 몰려 "1970년대 이후 과학 혁신 멈춘 이유" 자퇴 후 창업하면 10만달러 지원 '최연소 억만장자' 오스틴 러셀 등 14년간 286명의 유명 기업가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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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불리는 와이컴비네이터가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 참석한 스타트업 포터의 창업자 저스틴 리는 이런 포스트를 링크트인에 남겼다. “창업자들이 너무 어려서 술을 제공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중퇴자도 몇 명 만났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대학 학위는 더 이상 값진 성공의 증거로 통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 등 글로벌 인재들의 선망 대상인 졸업장조차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선 예전만큼 대우받지 못한다. 자동차 딜러용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복스지니어스 창업자 아브라즈 마흐무드는 “인터넷 시대에 대학에 가야 한다면 아마도 당신이 평범하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오히려 대학 중퇴가 성공한 창업자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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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은 나이트클럽이나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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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미국 테크업계에서 중퇴자 억만장자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그래픽디자인 도구 개발사 피그마가 상장과 함께 400억달러(약 55조7000억원)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또 한 명의 대학 중퇴자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창업자 딜런 필드(33)가 그 주인공이다. 상장 첫날 피그마 주가는 공모가 33달러의 세 배에 달하는 115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 14일 기준 80달러 밑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2012년 미국 명문 브라운대를 중퇴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에번 월리스와 함께 피그마를 창업한 필드는 대학 교육에 대한 통념을 깼다.
 막막한 창업 현장에서 필드가 손을 뻗은 곳은 ‘틸 펠로십’이었다. 페이팔 창업자이자 미국 유명 벤처캐피털(VC) 투자자인 피터 틸이 2011년 창립한 장학재단이다. 틸 펠로십은 대학 중퇴자에게 20만달러(2024년까지는 10만달러)를 지원하며 창업을 후원한다. 매년 22세 이하 창업자 약 20명을 선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86명이 틸 펠로십 혜택을 받았다. 최근 메타에 인수된 데이터 레이블링 기업 스케일AI의 공동 창업자 루시 궈(30), 2020년 나스닥시장에 상장해 25세 나이로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오스틴 러셀 루미나르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30),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31) 등이 틸 펠로십 출신이다. 틸 펠로십 장학생은 이제 실리콘밸리에서 ‘보증 수표’로 통한다.
 틸이 중퇴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다. 틸은 “대학은 거품”이라며 전통 교육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틸은 대학을 뉴욕 최고 인기 나이트클럽인 ‘스튜디오 54’에 빗댔다. 그는 “대학은 밖에 엄청난 대기열을 세워놓고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틸 펠로십 공동창립자인 짐 오닐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과학 혁신이 멈춘 이유를 대학에서 찾았다. 그는 “1950~1960년대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발견의 최전선으로 몰려들었지만 1970년대에는 의사, 1980년대에는 변호사로 몰렸고, 1990년대에는 월가로 진출했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2000년 6월 12일 스탠퍼드대 졸업사에서 자신이 리드칼리지를 중퇴한 경험을 소개하며 “그것은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다”고 말해 많은 화제가 됐다.
 오닐은 대학에서 혁신이 줄어든 원인으로 “족쇄가 된 학자금 대출”을 지목했다. 미국 교육전문지 엘리베이터에 따르면 1950년까지만 해도 미국 상위 6개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총 899달러,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면 8968달러(약 1250만원)에 불과했다. 이 비용은 올해 6만4255달러(약 9000원)로 다섯 배 늘었다. 1980년대 대학 등록금은 미국 평균 연간 가계 소득의 30%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80%대로 상승했다.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부임한 오닐은 “과거 미국인들은 차고에서 뭔가 발명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지만 이제는 빚 때문에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AI에 흔들리는 대학의 존재 이유
 대학 중퇴자들은 창업에 학위가 필요 없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 대표 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가 1500만달러(약 209억원)를 투자한 클루얼리의 로이 리 CEO는 오히려 창업가에게 필요한 덕목이 대학의 지향점과 상충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테크기업의 코딩 면접 때 부정행위를 돕는 앱 ‘인터뷰 코더’를 만들어 아마존 면접을 통과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컬럼비아대는 그에게 정학 조치를 내렸다. 반면 VC들은 이러한 일탈을 반겼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는 대학과 제도적 틀을 깨는 사고를 원하는 스타트업의 다른 지향점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4년이라는 긴 학업 기간도 빠르게 기업을 키워나가야 하는 스타트업엔 장애물이다. 2016년 틸 펠로십 장학금을 받고 물류 배송 스타트업 스토드를 창업한 션 헨리는 “창업은 프로 스포츠와 같다”며 “NBA(미국프로농구리그)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음에도 대학에 진학하고 NBA를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의 잔존 경쟁력은 네트워크다. 최근 캘리포니아 한 주립대에서 만난 교수는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교수와 연구진이 있는 대학만큼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약해지고 있다. 대학 중퇴자들은 되려 대학 밖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필드는 피그마가 기업공개(IPO)에 이르기까지 인턴 등으로 쌓은 인맥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피그마 창업자인 필드는 소프트웨어 기업 플립보드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이곳에 투자한 인덱스벤처스의 대니 라이머 파트너가 그를 눈여겨보고 피그마에 21억달러를 투자했다. 틸 펠로십은 지난 5월 ‘중퇴자 졸업식’을 열어 장학생들에게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부상으로 대학의 존재 가치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 웹상의 대규모 정보를 흡수한 AI가 기존 ‘지식 전수자’들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 VC 코슬라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 창업자는 지난달 SNS를 통해 “학위에 30만달러를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워싱턴DC식 부풀리기(관료주의)”라며 “학위 공장들을 무너지게 내버려두라”고 일갈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AI는 인간의 교육 방식을 완전히 재구성하게 될 것”이라며 “(아이를 갖더라도) 대학에 보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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