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도와 4년 교제하다 발각, 미용실에 갇힌 그녀의 최후 작성일 08-24 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넘버링 무비 491]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빅토리아></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3NQ3Uo2XFf"> <p contents-hash="e8515dd2cefca45f06cb13ffbe13ffcb43c981696a197decba0e62670826100a" dmcf-pid="0jx0ugVZ0V" dmcf-ptype="general">[조영준 기자]</p>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1947b49247fa96425a3508ecdf24b9c65885647f87425036d09230f1bfc8bb8" dmcf-pid="pAMp7af502"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24/ohmynews/20250824144802454qwxu.jpg" data-org-width="1200" dmcf-mid="130b2DMUU6"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4/ohmynews/20250824144802454qwxu.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빅토리아>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서울국제여성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76959bc35ea3863a2f57421ccc7f4f0bf2380df0834ce8208b06fafe67731838" dmcf-pid="UcRUzN4139" dmcf-ptype="general">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iv> <p contents-hash="2be3b40c9228604eebbe626d3c2cc70b433eb89c8aaac0da6195f2f08d9bf965" dmcf-pid="ukeuqj8tUK" dmcf-ptype="general">01.<br>문화는 사회의 제도와 인식을 반영한다고 했다. 영화사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그런 흐름은 인도 영화의 거대한 주류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 사랑의 대상을 차지하는 연인이 언제나 화면의 전경에 놓였다. 목소리와 권력, 규범과 폭력은 거의 언제나 남성의 얼굴과 몸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 여성은 그 곁에서 장식적이거나 보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희생의 주체로 존재했다. 그러나 지난 십여 년, 인도 영화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케랄라 주를 중심으로 제작되는 말리얄람 영화가 그 흐름을 주도했다. 작은 공간과 느린 사건에 집중하는 영화를 중심으로, 여성의 일상과 감정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흐름이다.</p> <p contents-hash="0758f8830eb2d02d19843d929a53abfba90be6de0a79292b46d1c57c7c804386" dmcf-pid="7Ed7BA6Fub" dmcf-ptype="general">시바란지니 J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빅토리아>는 변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이다. 영화는 단순한 사건 하나로 시작된다. 가톨릭 보수 가정에서 자란 빅토리아가 힌두교 남자 친구 프라지시와의 도피를 결심하면서다. 하지만 영화가 붙잡는 것은 사랑의 도피, 그 드라마틱한 여정이 아니다. 카메라는 그가 일하는 작은 미용실 내부, 작고 평범한 공간 하나에 카메라를 고정한다. 남성은 출입할 수 없는 공간으로, 여성들만의 안식처이자 동시에 외부의 규범과 불안이 파고드는 장소다. 이 공간의 균형을 뒤흔드는 것은 우연히 맡겨진 봉헌용 닭 한 마리. 영화는 여성들의 시간과 보이지 않는 남성의 그림자, 닭의 울음소리와 거친 날갯짓을 모두 담아내며 이 세계가 가진 다층적 층위를 드러내고자 한다.</p> <p contents-hash="f5ec9bfdd8104616f79cf1b4ae4a088190a936788a3a38033d059031ca5494bc" dmcf-pid="zDJzbcP37B" dmcf-ptype="general">02.<br>"아빠가 완전 난리 났었어."</p> <p contents-hash="1f363a48bd4287cc55892ef2e41f5a5429324c94a3c5ddca2ee9633bd3bcee40" dmcf-pid="qOg9fre70q" dmcf-ptype="general">영화 <빅토리아>의 중심에는 중심인물인 빅토리아의 서사가 놓여 있다. 그녀는 무려 4년 동안이나 힌두교 남성인 프라지시와 몰래 교제해 왔지만, 결국 가족에게 발각되고 만다. 소식이 집안에 알려지자, 화가 난 아버지로부터 처벌과 제재를 당한다.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적 연애의 문제를 넘어선다. 케랄라라는 지역 사회에서, 가톨릭 여성과 힌두교 남성의 결합은 공동체적 금기를 건드리는 일이며 가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p> <p contents-hash="f3172dd750bc2f11aefcebe83d1d438f14b89fe00d4d371873546b4a16c5042a" dmcf-pid="BIa24mdzzz" dmcf-ptype="general">가정은 종교의 경계선을 철저히 지키는 울타리로 작동한다. 가톨릭 집안은 딸의 선택을 '배교' 혹은 '가문의 수치'로 간주하고, 힌두교 집안 또한 계급적, 의례적 질서를 이유로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도의 혼인 제도에서 종교와 카스트는 오랫동안 혈통을 지키는 장치였고, 사랑은 그 규범을 위협하는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다. 빅토리아가 직면한 연애의 문제가 단순한 사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가하는 규범과 억압의 전면적인 충돌로 이어지는 이유다.</p> <div contents-hash="b14760a28dea69e2ff88ddebd05fd335e6c86072b834078bdd7d7c8617c6b62a" dmcf-pid="bCNV8sJqz7" dmcf-ptype="general"> 이 서사는 곧 영화 전체의 정서를 이끈다. 빅토리아가 미용실 안에서 하루 종일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이미 가정과 공동체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한 몸이어서다. 그녀의 주저와 망설임, 그리고 도피라는 선택은 개인의 연애담이 아니라, 종교와 카스트가 교차해 짜놓은 그물망 속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과도 같다. 〈빅토리아〉는 바로 그 절박한 서사적 상황 위에, 닭의 소란과 여성들의 대화를 차곡차곡 얹어간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ea3efe289af9e22c67db91b80ae52329e3984b714b3671df1585b5363007f7b" dmcf-pid="Khjf6OiB0u"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24/ohmynews/20250824144803755lhyr.jpg" data-org-width="1200" dmcf-mid="t3xLaZrRu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4/ohmynews/20250824144803755lhyr.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빅토리아>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서울국제여성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f13b5c2ed0773358e3e63d64fa56bb66f8f8da440cc73f9af4c8769093c89627" dmcf-pid="9lA4PInb3U" dmcf-ptype="general"> 03. <br>이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인 장치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미용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내부에 고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프닝과 엔딩신을 제외하면, 관객은 한 발짝도 이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 스스로 부여한 제약은 단순히 물리적 제약이나 미학적 실험에 해당하지 않는다. 미용실은 여성이 외부의 시선 없이 자신을 꾸미고,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삶의 단면을 교환하는 장소다. 카메라가 이 공간의 문지방을 넘어 외부로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여성들의 세계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실험한다. 말과 말이 쌓이고, 작은 사건들이 반복되는 동안, 미용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남성 본위 서사로부터의 이탈이다. </div> <p contents-hash="0fa33fdedcab27924cca726692ec762263d75155de19923ec0e6abcb7a2c4ca1" dmcf-pid="2Sc8QCLK3p" dmcf-ptype="general">이 공간에는 다양한 인물이 드나든다. 해외에 사는 자녀의 요구로 치장하러 온 중년 여성, 학교 합창부에 속한 소녀들, 약사라는 직업적 지위를 갖고 비교적 부유한 계급에 속하는 단골, 그리고 임신으로 몸이 무거운 친구까지. 각각 서로 다른 계급과 세대,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동일한 공간에 머물며, 각자의 목소리를 꺼낸다.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대화에 불과하지만, 영화는 그 대화의 리듬을 끊지 않고 따라간다. 그렇게 축적된 말들은 단순한 '수다'가 아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작은 연대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언어적 사건이 된다.</p> <p contents-hash="069bd75840be38ac1610149c5abcc282466f7d84b8c123236047284fcc66291b" dmcf-pid="Vvk6xho9U0" dmcf-ptype="general">미용실이 이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반영된 채로 온전한 안식처는 아니라는 감각을 때마다 끊임없이 불어넣는다. 바깥 세계의 압력이 공간 내부로 흘러드는 방식을 통해서다. 물리적 폭력까지 저질러가며 거세게 일었던 부모의 반대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고, 매번 우리의 관계를 알리겠다고 말만 하고 회피하는 남자 친구의 태도가 화상 통화의 화면 속에 비친다. 어떤 고객은 배관공에게 겪은 성희롱을 고백하고, 또 다른 고백은 남편의 반대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옷조차 선택할 수 없음을 전달한다. 이 모든 요소는 남성적 권위와 종교적 규범이 직접 내세워지지 않는 상황 안에서도 여성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달의 울음소리와 소동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공동체가 요구하는 희생과 규율을 집약한 상징처럼 자리한다.</p> <p contents-hash="87922e75a833802ffa91118c9b24059d92491599e12df8849e14e82593585d33" dmcf-pid="fTEPMlg2u3" dmcf-ptype="general">04.<br>"왜 이게 나만의 문제야?"</p> <p contents-hash="f0896210f217827b7f6dc153ec5ac7a8a268e2daf1d770c724627c050cf5bcc4" dmcf-pid="4J2H5R7vUF" dmcf-ptype="general">하지만 미용실이라는 공간이 완전히 안전한 안식처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끊임없이 바깥 세계의 압력이 내부로 흘러드는 방식으로 이를 증명하고자 한다. 부모의 반대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고, 남자 친구의 망설임이 빅토리아의 표정 속에서 번져 나오며, 닭의 소란은 공기를 물리적으로 흔든다. 이 모든 요소는 남성적 권위와 종교적 규범이 직접 등장하지 않고도 여성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닭의 울음은 화면 한구석에 그저 놓인 배경처럼도 여겨지지만, 봉헌 의례에 바쳐질 제물이라는 맥락 속에서 결국 공동체가 요구하는 희생과 규율을 집약한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게 된다.</p> <p contents-hash="e22dac34ddf315f545084a4c32a5ef00866427ad9d97a6f59f49aff6f74b1bf2" dmcf-pid="8iVX1ezTFt" dmcf-ptype="general">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가 고의적으로 남성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오직 목소리와 사물의 흔적으로만 호출된다. 심지어 미용실에 배달하러 온 인물조차 현관문 너머에서 그림자로 형태적으로만 비칠 뿐, 직접 내세워지진 않는다. 이렇게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서 관객은 상상을 통해 오히려 더 높은 압력을 느끼게 된다. 이는 감독의 정치적 선택과도 같다. 남성을 부재(不在)한 존재로 처리함으로써,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설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내는 동시에, 부재 또한 권력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더 무겁게 다가오는 구조다.</p> <div contents-hash="e9318ad02374d6b74b44e52843c3adf3eb17085eec2237e363bee44b7dcd0f85" dmcf-pid="6nfZtdqyu1" dmcf-ptype="general"> 결국 미용실은 두 층의 레이어가 겹친 공간으로 표현된다. 여성들의 대화와 웃음, 노동과 돌봄이 겹겹이 쌓이며 수평적 관계망을 이루는 세계가 하나. 종교적 질서와 남성적 권위가 그림자처럼 스며드는 세계가 또 다른 하나다. 영화는 이 두 겹을 병치하면서, 여성의 언어가 어떻게 연대의 힘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연대가 여전히 외부의 압력과 긴장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이 모순적 긴장이야말로 <빅토리아>의 정수다. 미용실이라는 작은 공간은 그렇게 여성의 세계를 축적하는 장소이자, 동시에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가 비집고 들어오는 투쟁의 장으로 기능한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8886b95dfff0032138266195bea22d2b8c1ade15730a4a5e10338eaa07897a4f" dmcf-pid="PL45FJBW05"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24/ohmynews/20250824144805075vqec.jpg" data-org-width="1200" dmcf-mid="FtHkwUSg3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4/ohmynews/20250824144805075vqec.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빅토리아>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서울국제여성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ed803eac555ab2c2723484491832d6581d1cbfe5b278086dd476d38053966e90" dmcf-pid="Qo813ibY7Z" dmcf-ptype="general"> 05. <br>영화 <빅토리아>의 서사 속에서 닭은 은유적 장치다. 교회의 봉헌 의례에 바쳐질 제물로, 종교 공동체가 유지해 온 희생과 순종의 질서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대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영화 속 닭은 제물로서 얌전히 남아 있지 않는다. 울음소리와 날갯짓으로 미용실 내부를 끊임없이 어지럽히며, 여성들의 대화와 일상의 리듬을 교란한다. 닭은 이로써 한편으로는 공동체가 요구하는 규율을 가시화하고, 동시에 그 규율이 결코 완전하지 않음을 폭로하는 균열의 소리가 된다. 즉, 닭은 규율을 집약하면서도 이를 스스로 깨뜨리는 이중적 은유로 작동한다. </div> <p contents-hash="dffc3e362bc4d9b3ad09a8f93fb4d0115775001794011454ed39a5d7dd59d27e" dmcf-pid="xg6t0nKGuX" dmcf-ptype="general">여기에서의 이중성은 영화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숲속 장면에서 극 중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성인에게 바치기로 했던 수탉을 바치지 않으면, 성인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지역의 종교적 신앙을 반영하기도 한다. 여기서 뱀은 제물을 받지 못한 성인의 분노, 곧 규율 위반에 대한 징벌을 구체화한 존재다. 닭이 제물로서 규율을 집약하고 이를 깨뜨리는 욕구를 반영한다면, 뱀은 그 규율이 어겨졌을 때 되살아나는 공포와 처벌의 형상이다. 희생을 요구하는 규율, 규율 위반 시의 징벌,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성인의 권위가 삼각 구조를 이루는 셈이다. 이 연쇄 속에서 빅토리아는 단순히 가족의 반대에 처한 개인이 아니라, 종교와 공동체가 촘촘히 짜놓은 두려움의 구조에 갇힌 여성으로 드러난다.</p> <p contents-hash="8d3b33c0e8af385579f398e6be1e9e1a13e109f77a09b727abe9b737919d8a47" dmcf-pid="yFSoN5meUH" dmcf-ptype="general">그러나 이 상징은 억압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닭이 울음으로 미용실의 리듬을 깨뜨리듯, 뱀 역시 환상 속에서 억압과 공포를 드러내는 동시에 규율의 균열과 불완전성을 증명한다. 영화는 닭과 뱀을 통해, 여성의 삶을 옭아매는 종교와 공동체적 권위가 결코 완벽하게 유지될 수 없음을 드러내고, 그 균열 속에서 새로운 감각과 해방의 가능성이 태어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제시한다.</p> <p contents-hash="4d0890860210c1ee7a67ea12e8a244e43b7eed41ba5fca123612d010675c5f78" dmcf-pid="W3vgj1sdFG" dmcf-ptype="general">06.<br>"난 너희 가족에게 안 맞는 거 같아. 우리 그만하자."</p> <p contents-hash="fc7de51b02df01b05f19d0da39a3637659ab0279cb2dfcb437e6a5638349b86b" dmcf-pid="YmLb2DMUuY" dmcf-ptype="general">영화 <빅토리아>는 단순히 남성을 지우기 위한 목적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남성을 화면에서 비워내는 전략을 통해, 그 자리에 여성들의 언어와 서사가 자연스럽게 전면에 드러나도록 한다. 남성의 얼굴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의 대화와 몸짓은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 여성의 일상 또한 충분히 하나의 사건이자 서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선언은 거창한 목소리가 아니라, 여성들이 나누는 사소한 말과 몸짓의 축적을 통해 조용히 완성된다. 이때 관객은 미용실이라는 작은 공간이 거대한 사회의 축소판처럼 기능하며, 여성의 언어가 새로운 역사의 기록이 될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p> <p contents-hash="ce7d9b4b83c2fd00452bbfe621119be675dabb5be0704b833e00e21dbfb22cee" dmcf-pid="GsoKVwRuUW" dmcf-ptype="general">정치적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영화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대신 카메라가 어디에 머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으며, 어떤 목소리만을 기록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치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문지방을 넘지 않고 내부에 머무르며, 남성의 부재와 여성의 언어를 병치하는 그 태도 자체가 곧 정치적 발화다. <빅토리아>는 카메라의 응시가 어떻게 세계를 구성하는지를 가장 투명하게 드러낸다. 이로써 시바란지니 J 감독은 작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하루가 곧 거대한 권력 질서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영화의 정치란 거대한 구호나 선언이 아니라, 카메라가 선택하는 자리와 응시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독주 체제 완성' 하나카드, PBA 팀리그 2R 1위… 4연승으로 2라운드 연속 우승 코앞 08-24 다음 갓세븐 유겸, 차은우와 군 생활 함께 하나…"군악대 입대" [공식] (전문) 08-24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