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블랙유머에 9분 기립박수 …'어쩔수없는' 수상 기대감

작성일 08-31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 '어쩔수가없다' 공개 '25년 근속' 직장 해고된 남자 자신의 경쟁자 차례대로 살인 주제는 무겁지만 유머 가득 상영시간 내내 폭소 터져나와 수상 결과는 7일 새벽 발표 이병헌 남우주연상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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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에 참석한 '어쩔수가없다'의 멤버들. 왼쪽부터 배우 이성민·염혜란·이병헌·손예진·박희순 그리고 박찬욱 감독. AP연합뉴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31/mk/20250831171802471nkjw.jpg" data-org-width="1000" dmcf-mid="6t6ZIC9Hh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31/mk/20250831171802471nkjw.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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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에 참석한 '어쩔수가없다'의 멤버들. 왼쪽부터 배우 이성민·염혜란·이병헌·손예진·박희순 그리고 박찬욱 감독.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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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보건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오랜 화두는 '폭력의 악순환'이었다.
 피는 피를 부르고, 죽음은 죽음을 부르는 폭력의 굴레. 박찬욱의 주제의식은 과거 '복수 3부작'으로 구체화된 바 있고, 다양한 변주를 거쳤다 해도 폭력의 불가피성은 언제나 그의 영화 안팎을 배회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영화는 대개 '개인'의 피였다. 또 사인(私人) 간의 다툼이나 원한이 저 낭자한 피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런데 박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폭력이 개인화되지 않고, 사회화되는 독특한 차별점을 가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형선고'인 해고와 실직, 제도의 거대한 폭력이 부르는 또 다른 폭력 '연쇄살인'을 다루기 때문이다.
 올해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경쟁 부문)에 오른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현지에서 드디어 공개됐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베네치아영화제 본당인 '팔라초 델 치네마'의 제1극장 '살라 그란데'에서 박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살펴봤다.
 제지업체 '태양'에서 25년 근속한 만수(이병헌)가 해고된다. 만수는 3개월 내 재취업을 다짐하지만 면접장에서 애를 써봐도 탈락이 반복되자 아내 미리(손예진) 역시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집안 물품을 중고 플랫폼 '당근'에 내다팔아야 하는 신세까지 몰리고, 딸아이 첼로 레슨비까지 끊어야 할 판이니 보이지 않는 불화는 깊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고는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인 '사회적 살인'과 같았고, 만수는 실직으로 자기 존재 자체가 휘발되는 삶을 마주한다.
 만수는 결심한다. 본인의 재취업을 막고 있는 동종업계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저 녀석들 때문에 자꾸 면접에서 미끄러지니, 몇 명만 조용히 제거하면 재취업이 무난하리란 믿음이었다. 만수는 '제지 분야 경력직원 채용 공고'를 허위로 낸 뒤 우수한 전문가를 추려 살해할 후보를 압축한다. 이력서에 적힌 그들의 개인정보는 살인을 위한 '지도'가 된다.
 하지만 자꾸만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만수는 재취업의 꿈을 달성할 수 있을까.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범죄소설을 전문적으로 써온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동명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 삼은 작품이다. 소설 '액스'와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서사의 전개 방향이 전혀 다르다. 게다가 한없이 무거운 원작과 달리 '어쩔수가없다'는 유머로 가득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밤 10시께 '어쩔수가없다'의 139분의 상영시간 내내 극장에선 폭소가 끊이지 않았고, 상영 직후 9분간 기립박수가 나왔다.
 상영 이튿날인 30일(현지시간) 베네치아 리도섬 현지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정확히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어쩔수가없다'를 소개했다.
 "소설 '액스'를 너무나도 영화로 만들고 싶어 확인해보니, 이 소설이 2005년 동명의 프랑스 영화로 이미 만들어진 적이 있음을 알고 처음엔 좌절했다. 그런데 영화를 봤더니 내가 가려고 하는 길과는 달라 보였다. 그때부터 '희망'을 갖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2005년 동명의 이 영화를 만든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소설 '액스' 원작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와 절친이어서 판권을 영구히 소유 중이었다. 가브라스 감독의 부인 미셸 레이 역시 영화 제작자여서 그녀를 설득했다. 당초 미국 영화로 계획됐다가 한국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원작 소설 '액스'와 동명의 영화 '액스'를 넘어서서, 인공지능(AI) 시대의 노동자가 처한 현실까지도 감지해낸다. AI 시대엔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고 오직 필요한 인력은 '중간 관리자'뿐이다. 만수가 원하는 바로 그 자리다.
 만수를 비롯해 극중 캐릭터들은 "어쩔 수가 없다"는 푸념을 반복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어쩔 수가 없다'란 말은 일종의 주문(呪文)과 같다. 자신의 불의한 선택을 합리화할 때, 무력한 자신의 선택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자 할 때 내뱉는 말이 바로 '어쩔 수가 없다'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을 했노라 말한다. 그들은 전부 부조리한 세계 속의 약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만수는 결국 후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올해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다른 20편의 영화와 경합 중이다. 1일(현지시간) 현재 경쟁 부문 작품은 8편이 공개됐는데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데일리 칸영화제 그리드 위원으로 참여하는 영국 가디언지의 피터 브래드쇼는 '어쩔수가없다'엔 4점(5점 만점)을 줬고, 이는 베네치아영화제 개막작인 '라 그라치아'와 공동 2위다. 현재 1위는 다큐멘터리 영화인 잔프란코 로시의 '구름 아래에서'다. 일각에선 주연 배우 이병헌의 남우주연상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수상 결과는 6일 저녁(현지시간, 한국시간으론 7일 새벽) 발표된다. 캐스린 비글로, 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수아 오종, 올리비에 아사야스 등 쟁쟁한 감독들의 작품이 경쟁 대상이어서 예단은 아직은 섣부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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