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 고정관념… 챔피언 KIA의 이유있는 추락

작성일 09-07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5/09/07/0000052179_001_20250907040010820.gif" alt="" />지난 3월 22일 광주 북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NC 다이노스 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김도영(가운데)이 왼쪽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오고 있다. photo 뉴시스</div> 곧 올라갈 거다. 때가 되면 올라갈 거다. 지난 5월 디펜딩 챔피언 KIA 타이거즈의 예상 밖 초반 부진에 대해 인터뷰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이다.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고들 했다. 당시만 해도 KIA는 당연히 올라갈 팀처럼 보였다. 지난 시즌 압도적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강팀이니까.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2025년 우승 후보로 꼽은 절대 1강 후보가 바로 KIA니까. 겨우내 전력 누수도 크지 않았고, 젊은 선수들도 우승 경험을 통해 한 뼘 성장했다. 주전 선수 한둘이 부상으로 빠져도 능히 메울 수 있는 뎁스도 갖췄다. 개막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한 김도영도 곧 돌아올 예정이었다. 시즌이 거듭되고 경기를 치르다 보면 전력이 성적으로 나타날 거고, 6월쯤 되면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 대부분이 그렇게 믿었다. 잠시 믿음이 현실화될 뻔한 시기가 있었다. 지지부진하던 KIA는 지난 6월 말부터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LG 트윈스 상대로 2연승을 달렸고, 7월 들어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도 위닝시리즈를 달성했다. 7월 5일 기준 45승 3무 36패 승률 0.556으로 당시 단독 선두 한화 이글스에 3경기차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화 3연전을 싹쓸이하면 1위를 턱밑까지 추격할 기회가 있었다. 작년 KIA 같았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잡았을 3연전이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서 KIA는 3연패로 무너졌고, 1위와의 승차는 다시 7경기까지 벌어졌다. 후반기엔 더 심한 추락이 기다렸다. 첫 경기 NC전 승리로 기세를 올리는가 했지만 LG 상대로 충격의 3연패를 당했다. 3연패도 3연패지만 내용이 최악이었다. 첫날은 1 대 4로 끌려가던 경기를 8회말 6득점해 7 대 4로 뒤집어 놓고, 9회초 5실점해 역전패했다. 다음날엔 0대 4로 뒤지던 경기를 7회말 4득점해 동점을 만들어 놓고 연장전 끝에 졌다. 마지막 날엔 7회까지 0대 0접전을 펼치다 8회초 불펜진이 한 이닝에 8실점하며 대패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충격적인 패배인지라 내상이 깊었다. 이후 롯데·두산전에서 계속 지면서 7연패 수렁에 빠졌다. 1위와는 어느새 10.5경기 차. 2년 연속 우승 목표가 완전히 물건너간 장면이었다.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5/09/07/0000052179_002_20250907040010862.gif" alt="" />지난 5월 11일 인천 미추홀구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 3회말 KIA 이범호 감독(오른쪽 셋째)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photo 뉴시스</div> 시즌 내내 도깨비팀 행보 이후의 행보도 도깨비팀 그 자체였다. 3연승-2연패-다시 3연승. 그래놓고 9위 두산에 3연패, 10위 키움에 1승 2패에 그치며 벌어놓은 승수를 다 까먹었다. 6연패 뒤 다시 3연승으로 마지막 반등을 하나 싶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 8월 30일 KT전에서 대체선발 문용익이 선발로 나온 KT에 8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끌려가는 수모 끝에 완패했다. 31일 경기에선 9회말 마무리 정해영이 끝내기 안타를 맞고 역전패했다. 그리고 9월 2일 한화전에선 3 대 21로 올시즌 최다실점 패배를 당했다. 가을야구 진출 확률을 계산하는 사이트 피에스오즈(PSODDS.com)에 따르면 9월 2일 기준 KIA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8.8%까지 폭락했다. 작년 챔피언의 2년 연속 우승 꿈이 소멸되기 직전이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우승후보라고 예상했던, 그리고 시즌 초 하위권일 때도 올라갈 팀이라 확신했던 KIA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장 쉽고 편한 대답은 MVP 김도영과 좌완 불펜 곽도규의 부상 이탈이다. 불펜 마당쇠 장현식이 LG로 이적한 공백을 조상우가 대체하지 못한 걸 이유로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지금의 추락이 설명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해설위원 A는 "KIA 선수 뎁스가 얼마나 좋은가. 야구는 김도영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누가 빠지면 다른 선수가 등장해서 채워줄 정도의 선수 구성은 갖추고 있는 팀이 KIA다. 빠져나간 선수가 있으면 작년보다 성장하는 선수도 있고, 작년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도 나오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역시 익명을 원한 B 해설위원도 "부상 문제라면 이미 지난 시즌에도 KIA는 지겹도록 겪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의 활약과 끈끈한 팀워크로 우승까지 한 팀이 KIA"라며 "김도영 부상은 핑계"라고 했다. 경쟁 구단 관계자는 "작년 KIA는 선수단 전체가 우승을 목표로 하나로 똘똘 뭉친 게 느껴지는 팀이었다. 팀 전체의 기가 정말 셌고, 큰 점수차로 앞서고 있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올해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물론 KIA 구성원들은 생각이 다를지 모르나, 외부에선 KIA 선수단의 목표 의식이 작년보다 약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승 파티 분위기에서 빨리 깨어나서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긴장의 끈이 느슨해졌고, 이런 분위기가 오프시즌과 준비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정규시즌 준비를 그르쳤다는 분석이다. B 해설위원은 "올해 KIA는 전반적인 시즌 준비가 예년보다 늦었다. 주전들의 몸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시범경기 출전도 늦게 이뤄졌다. 시즌 준비가 정상적인 순서와 과정으로 이뤄졌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 해설위원도 "KIA의 시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본다. 훈련량과 준비 과정의 문제가 시즌 초반 투수들의 구속에서 나타났다"면서 "4월에 불펜이 무너져서 역전당한 경기가 얼마나 많았나. 볼 스피드가 하나같이 140㎞ 초반대에 머물렀다.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맞이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단주의 파격 지원으로 전원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전지훈련했지만, 구단에서 지원하는 만큼의 훈련 능률과 강도가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올시즌 유독 많은 부상자가 쏟아져 나온 것도 이런 '준비 부족'이 원인일지 모른다. A 해설위원은 "우승한 뒤에도 여전히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준비 잘 하는 구단도 많다. 우승했다고 긴장이 풀리고 방심하면 그 팀은 끝나는 거다. KIA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지난해와 같지 않았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지난해 큰 성공을 거뒀던 이범호 감독의 선수 중심 리더십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큰 틀에서 이 감독의 선수단 운영 기조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의 기분과 의사를 존중하고, 특히 고참급 선수들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시즌을 치렀다. 순위싸움이 극에 달한 최근에도 베테랑 선수들에게 주 1일씩 휴식을 챙겨주면서 운영했다. 다만 선수들이 이런 배려에 투철한 프로 의식과 팀 퍼스트 정신으로 보답했는지는 의문이 있다. B 해설위원은 "수평적 리더십도 좋지만 한국야구에선 아직은 어느 정도 수직적인 리더십과 조화를 이뤄야 팀이 유지된다"면서 "적절한 경쟁과 긴장감이 조성돼야 작년 같은 팀 분위기가 유지됐을 텐데 올해 KIA 선수들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주전이고 자리가 보장됐다는 생각에 분위기가 느슨해졌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B 해설위원은 특정 야수 한 명을 지목하면서 "만약 내가 지도자면 그렇게 야구하는 선수는 경기에 안 쓴다"고 일갈했다. A 해설위원은 "KIA가 전반기 막판 치고 올라갈 때, 주전 선수들이 잘해서 올라간 게 아니다. 주전이 다 빠진 가운데 백업 선수들이 활약해서 치고 올라갔다. 어떻게든 자리를 잡으려고 몸부림치는 선수들이 경쟁 분위기와 긴장감을 만들면서 팀이 올라간 거다. 나중에 주전들이 돌아온 뒤에는 오히려 성적이 하락했다. 여기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A 해설위원은 9월 2일 기준 KIA보다 순위표에서 위에 자리 잡은 NC 다이노스와 KIA를 비교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팀 전력만 놓고 보면 NC는 KIA와 비교가 안 되는 팀이다. NC는 올시즌 홈구장 구조물 추락사고로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두 달간 원정구장을 떠도는 악조건 속에서 시즌을 치렀다. 그럼에도 5할 가까운 승률을 꾸준히 유지하며 5강 싸움을 하고 있다. A 위원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NC는 고참들 중심으로 팀이 똘똘 뭉쳐서 좋은 야구를 하고 있다. 전력만 봐선 저 성적이 나올 수가 없는 팀인데 5강 싸움을 한다"며 "작년엔 KIA도 저런 모습이었는데 올해는 그게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B 해설위원은 "42세 노장인 최형우가 팀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라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고집스러운 선수 기용 올시즌 부진한 정해영의 마무리투수 기용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 대상이다. 정해영은 올해 52경기 2승 7패 26세이브 평균자책 4.17에 7블론세이브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A 해설위원은 "정해영 마무리 카드를 왜 못 버리는지 답답하다. 공이 좋은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은 거라면 모르겠는데, 올해 정해영은 공이 안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정해영의 구원 실패로 얼마나 많은 경기를 날렸나. 선수를 믿는 것도 좋지만 감독의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마무리는 정해영'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시즌 전체를 그르쳤다는 지적이다. A 해설위원은 "작년 KIA가 우승까지 한 건 전력이 강한 것도 있지만, 1위 싸움하는 강팀과의 경기, 접전 경기를 전부 승리로 가져간 게 비결이었다. 올해는 그런 경기들을 반대로 죄다 놓치고 있다. 여기서 작년 대비 10승 이상을 까먹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LA 다저스 전설의 감독 토미 라소다는 "감독이란 자리는 비둘기를 손에 쥐는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너무 꽉 잡으면 비둘기를 죽이고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비둘기를 잃어버린다." 선수들을 다루는 데 지나치게 느슨해도 안 되고 너무 강압적이어도 안 된다는 이야기다. 작년 이범호 감독과 KIA는 이 균형을 적절하게 이뤘다. 감독은 선수들을 배려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결단하는 리더십으로 이끌어나갔고 선수들도 프로의식을 갖고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올해 KIA라는 비둘기를 쥔 손은 느슨해졌고 비둘기는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B 해설위원은 구단과 그룹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팀에 사공이 너무 많다. 시즌 중 감독 교체설이 어디서 나온 소리겠나. 구단이나 윗선에서의 과도한 개입이 감독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지난해 우승 시즌에는 보이지 않았던 '나쁜 버릇'이 올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A 해설위원은 "작년 우승 후유증이 아니라 우승한 게 구단 전체에 독이 된 것 같다. 구단부터 코칭스태프, 선수들까지 전부 정신을 차려야 한다. KIA가 이런 식으로 야구하면 안 된다. 정말 각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

먹튀폴리스

자만심, 고정관념… 챔피언 KIA의 이유있는 추락

멤버랭킹

관련자료

멤버랭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