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위닝 시리즈’가 없다 [경기장의 안과 밖] 작성일 09-07 16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야구의 종주국은 미국이다. 야구 중계에서 간혹 듣는 야구 용어 중에는 정작 미국에선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다. 물론 팬심과 결합해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08/2025/09/07/0000037187_001_20250907084420805.jpg" alt="" /><em class="img_desc">7월18일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안타를 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 ©AFP PHOTO</em></span></div><br><br>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가 올해 가장 빛났던 날은 지난 4월14일(한국 시각 기준)이었다. 뉴욕 원정에서 양키스 왼손투수 카를로스 로돈을 상대로 1경기 2홈런을 때려낸 첫 좌타자가 됐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이 기록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정후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라며 “팀이 위닝시리즈(Winning Series)로 다음 원정지로 이동할 수 있어서 기쁘다”라고 말했다.<br><br>‘위닝시리즈’는 이정후가 한국에서 자주 들어왔던 용어다. KBO리그는 두 팀 간 3연전 시리즈가 기본 포맷이다. 한 팀이 2승 1패나 3전 전승을 거두면 ‘위닝시리즈’라고 한다. 중계방송 아나운서나 해설가들이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br><br>하지만 미국 시청자들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을 것이다. ‘콩글리시’이기 때문이다. ‘위닝시리즈’에서 ‘위닝(winning)’은 현재분사다. 그래서 ‘이기는 시리즈’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시리즈의 승패 결정은 발화 시점에서 이미 과거이므로 문법에 맞지 않는다. 미국 야구에서는 ‘시리즈윈(Series Win)’이라는 명사구로 표현한다.<br><br>현재분사형 어미 ‘ing’를 잘못 붙인 또 다른 용어로는 ‘사이클링히트(Cycling Hits)’가 있다. 타자가 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한 경기에 모두 친 경우를 가리킨다. 안타 종류는 이 네 개가 전부이므로 한 ‘사이클’이라고 표현한다. 완성을 전제하는 용어이므로 현재분사형은 맞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사이클히트(Cycle Hits)’, 일본에서는 ‘사이클 안타’라고 부른다.<br><br>위 두 사례는 ‘콩글리시’ 오류로 분류할 수 있다. 멀쩡한 야구 용어를 정반대 뜻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체크스윙(Check Swing)’이다. 헛스윙인지 아닌지 애매한 경우에 쓰이는 용어다. 야구 규칙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단골로 판정 시빗거리가 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8월19일부터 체크스윙에도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기로 했다.<br><br>2023년 8월2일 수원 SSG-KT전에서 체크스윙 판정 시비가 나왔다.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는 이렇게 서술한다. “김 감독은 (···) 0-1로 뒤진 8회 말 KT 김상수의 체크스윙이 인정되지 않자 격분했다.” 여기에서 ‘김 감독’은 SSG의 김원형 당시 감독이다. 수비 팀 감독이 항의했으니 이 문장에서 ‘체크스윙’은 타자가 스윙을 했다는 뜻이 된다. 실제 이런 뜻으로 알고 있는 야구선수나 지도자가 대다수다. 하지만 이 용어의 원조인 미국에서 ‘체크스윙’은 타자가 배트를 거둬들인 경우를 가리킨다. 미국 야구 전문가인 송재우 MBC 해설위원은 “포커에서 베팅을 하지 않고 턴을 넘길 때 ‘체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br><br>반대로 미국에서 쓰이고 있는데, 미국 바깥에서 ‘틀린 용어’라는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수비 팀이 연결된 플레이로 아웃카운트 두 개를 만들면 병살(더블플레이)이다. 타자 기록 중에는 병살타가 여기에 대응한다. 그런데 병살타는 포스아웃 상황에서 땅볼 타구를 쳤을 때만 주어진다. 원래 영어 용어처럼 ‘땅볼 병살타(Grounded Into Double Play·GIDP)’라고 해야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19세기 일본에서 GIDP를 번역할 때 ‘땅볼’을 빼버렸다.<br><br>그래서인지 국내 방송에서는 ‘더블플레이이지만 병살타가 아닌’ 상황이 나왔을 때 ‘더블아웃’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야구 규칙에 충실하자면 ‘더블플레이’가 맞다. ‘더블아웃’은 ‘더블플레이’와는 달리 야구 규칙에 있는 용어가 아니다. 2020년 일본 후지TV 아나운서가 프로야구 중계 도중 ‘더블플레이’를 ‘더블아웃’이라고 잘못 말해 크게 비난받기도 했다. 그런데 송재우 위원은 “미국 야구 중계에서는 가끔 ‘더블아웃’이라는 표현을 쓴다. 말 그대로 아웃 두 개를 잡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디어는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하지만, 스포츠에 관한 말과 글을 모두 딱딱한 공식 용어로 채울 필요는 없다.<br><br>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야구 용어 순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방송 해설가로 명성을 날리던 허구연 현 KBO 총재가 주도했다. ‘나이터(야간경기)’ ‘포볼’ ‘데드볼’ ‘클린업트리오’ 등 일본에서 만들어진 ‘재플리시’ 야구 용어가 이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KBO는 2005년 야구용어위원회를 구성해 야구 규칙 용어를 개정했다. 이때부터 ‘도루자’는 ‘도루 실패’, ‘방어율’은 ‘평균자책점’이 됐다.<br><br><h3><strong>야구 종주국의 야구 용어만이 정답? </strong></h3><br><br>1980년대 이후 바뀐 야구 용어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은 ‘볼넷’일 것이다. 직관적이고 순우리말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시도도 여럿이다. 헬멧을 ‘안전모’로 바꾸자는 의견은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다.<br><br>세계 야구에서 오랫동안 한국은 변방이었다. 경제 규모가 작고 국제 교류가 적었던 과거에는 더 그랬다. 그래서인지 야구 용어에서도 ‘종주국’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는 걸 정답으로 여겨왔다. 볼넷은 처음에 미국식 용어인 ‘베이스온볼스’가 대체어로 제안됐다. 하지만 너무 길었다. 위에서 ‘콩글리시’의 예로 든 사이클링히트도 같은 경우다. 미국식 동사구인 ‘힛 포 더 사이클(Hit for the Cycle)’로 대체한 미디어들이 있었다.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국어에 없는 전치사가 포함됐고, 명사구를 동사구로 대체해 활용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역시 너무 길었다. 또한 일본식 용어인 ‘버스터(번트를 대는 척하다가 강공)’를 미국식인 ‘페이크번트 앤드 슬래시(Fake Bunt and Slash)’로 바꾸자는 시도도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국어 화자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너무 길고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정작 미국에선 ‘페이크번트’라고 간단하게 표현한다. 접속사 ‘앤드’를 생략하고 ‘페이크번트 슬래시’나 ‘페이크번트 히트’로 쓰기도 한다.<br><br>미국 야구에서 ‘끝내기’를 ‘워크오프(Walk Off)’라고 부른다. 이 용어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가 1988년에 처음 쓴 표현이다. 이전까지 주로 쓰이던 ‘게임 엔딩’이라는 무미건조한 단어는 급속도로 인기를 잃었다. 일본 야구에서는 ‘슈트(Shoot)’라는 구종이 있다. 우투수가 던질 경우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지는 구종이다. 오늘날 미국 야구에서는 슈트를 일본 야구의 발명품 정도로 여긴다. 1980년대 한국에서도 슈트를 일본식 용어로 간주해 ‘역회전공’으로 순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슈트는 19세기 미국 야구에서 쓰이던 말이었다. 커브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였고, 타자 몸쪽으로 변한다면 ‘인슈트’라고 했다. 커브에 밀려 생명력을 잃었을 뿐이다. 중심부에서 사라지거나 변형된 것들이 변방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건 비단 야구 용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br><br>정확한 야구 용어를 쓰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야구는 대중문화다. 대중과 호흡하면서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야구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팬 참여도가 높아지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첩’ ‘단두대 매치’ ‘FA로이드’ ‘광고 본능’ 등 발랄한 새 용어가 인터넷에서 만들어져 주류 미디어로도 편입돼왔다. 물론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면 곤란하다. 그래서 온라인산(産) 야구 용어 중 올타임 베스트 3 안에 들어가기에 모자람이 없는 신조어 ‘엘꼴라시코’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엘롯라시코’로 개명당해야 했다.<br><br> 관련자료 이전 최하빈, 한국 피겨 사상 첫 4회전 러츠 점프 성공…주니어 그랑프리 銀 09-07 다음 사발렌카, US오픈 여자 단식 2연패…아니시모바 2-0 제압 09-0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