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의 채홍사 실체, 박정희 때도 똑같았다 작성일 09-14 28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tvN <폭군의 셰프></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ZkEDrH9H0q"> <p contents-hash="74f94b8cfac7df6a8f32a67cc648807a0b2e37d693ebff73e73d5f11d20d6d2a" dmcf-pid="5EDwmX2X0z" dmcf-ptype="general">[김종성 기자]</p> <p contents-hash="293d611d8ccc891263fabd7585cd75f3b9544567ace41f9d3423e85f3996b498" dmcf-pid="1DwrsZVZF7" dmcf-ptype="general">퓨전사극 <폭군의 셰프>에는 연산군 시대의 채홍사인 임사홍·임숭재 부자를 연상시키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드라마 속의 임서홍(남경읍 분)과 임송재(오의식 분)가 그들이다.</p> <p contents-hash="61d6519d908e9dc7cb8e77ceb9f732a55a693ad2cb3f9718ba4b6546c5227fdc" dmcf-pid="twrmO5f50u" dmcf-ptype="general">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주인공 연지영(임윤아 분)이 연산군(이채민 분)과 가까워진 것은 임금에게 데려갈 여성들을 잡아들이던 채홍사 활동 때문이다. 경기감영 옥사에 끌려간 연지영은 임서홍·임송재를 위해 스테이크 요리를 만들었고,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연희군이 그 맛을 보게 됐다.</p> <div contents-hash="fb67abbed2b4ad84d1e3a6d94ae108bfb851710a695a45f4115862d6de0efadf" dmcf-pid="FrmsI141pU" dmcf-ptype="general"> <strong>이성 상실한 채홍사</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6e38b05928f8507893b0e40aa425a869ce4805a94d751129af020f758873f04a" dmcf-pid="3XZ5tVaVFp"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4/ohmynews/20250914154201308uont.jpg" data-org-width="1200" dmcf-mid="GokEwGKGF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4/ohmynews/20250914154201308uont.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드라마 '폭군의 셰프' 스틸</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dddec1535ec7d283fb295e65b3dbcda885cbbb5b809799d89baf0ae318cc4b41" dmcf-pid="0Z51FfNf00" dmcf-ptype="general"> 드라마 속의 두 채홍사는 이성을 상실했다. 누구든 잡아들여 임금을 기쁘게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 제2회 방영분에서 채홍사가 찾아와 여자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우측 여인들은 단장을 하고 왕의 시중을 들어야 했고, 좌측 여인들은 찬방 일을 돕는 일꾼이 됐다. 그들은 정치적 파장이 클 것을 예상하면서도 경기관찰사의 손녀까지 잡아가려 했다. </div> <p contents-hash="672914841348c2f3566c8af1de0c20776a60efbaca3b179c9820b955e60750b3" dmcf-pid="p51t34j4U3" dmcf-ptype="general">역사 기록이 알려주는 연산군 정권의 실상은 훨씬 심각하다. <폭군의 셰프>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연산군 정권은 기혼 여성들까지 데려갔다. 미혼 여성을 동원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기혼자들을 그렇게 하면 사회적 원성이나 파장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강행했다.</p> <p contents-hash="425c2b73f7e25d6cec511f8294267ae6d688dd2052c10d61c70a5e1912637c35" dmcf-pid="U1tF08A8UF" dmcf-ptype="general">심지어는 채홍사 임숭재의 부인도 연산군에게 불려 갔다. 임숭재의 시집간 동생도 그렇게 됐다. 임숭재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한 '임숭재 졸기'가 그런 사정을 알려준다. 음력으로 연산군 11년 11월 1일 자(양력 1505.11.26.) <연산군일기>에 수록된 이 졸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p> <p contents-hash="bc1039a819043f1e381b642fb5d48808dd74412a709da527886c1a6566ce5021" dmcf-pid="utF3p6c6Ft" dmcf-ptype="general">"누차에 걸쳐 미녀를 바치니, 왕이 이 때문에 매우 총애하고 신임하여 숭재 집의 4면에 있는 인가 40여 채를 철거하고 담을 쌓아 창덕궁과 맞닿게 했다. 매번 행차하여 마시고 노래하며 새벽까지 있었다. 숭재는 누이인 문성정(文城正) 상(湘)의 처를 시침케 했다. 왕은 아울러 옹주와도 통했다."</p> <p contents-hash="c40ef9fe83c22f89e30494786b611762ca56a986e72d19fd9691080b916dcaa9" dmcf-pid="7F30UPkPu1" dmcf-ptype="general">연산군은 임숭재 자택을 둘러싼 민가 40여 채를 헐고 그 집을 확장해 창덕궁과 맞닿게 했다. 그런 뒤 그 집을 일종의 아지트로 삼아 자주 행차했다. 이런 기회에 임숭재는 문성정(정3품 종친) 이상에게 시집간 자기 여동생을 불러 연산군과 함께 있게 만들었다. 그 집에 간 연산군은 임숭재의 부인인 휘숙옹주(혜신옹주)와도 함께했다.</p> <div contents-hash="46d1d473cf63b0cafb51d1c5f2c390f672ed2a99fe38c8b13f2b6a3c860bf190" dmcf-pid="z30puQEQ05" dmcf-ptype="general"> <strong>우리 시대의 채홍사</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3a49bb712cc8f3486930f856e16142c9342a17cae3291c455a51a603952bb489" dmcf-pid="q0pU7xDxpZ"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4/ohmynews/20250914154201612grkb.jpg" data-org-width="1160" dmcf-mid="HgnLgC0CF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4/ohmynews/20250914154201612grkb.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tvN <폭군의 셰프> 관련 이미지.</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d7b1afdfd1f77cf2cf87f69e02a088067fe57e7355fa0b278c5d96ddc62e46eb" dmcf-pid="BChlvpxp7X" dmcf-ptype="general"> 위와 같은 일들이 과거에만 벌어졌던 것은 아니다. 1972년 이후의 박정희 유신체제하에서도 사실상 채홍사 제도가 운영됐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자 김재규 부장의 측근인 박선호(1934~1980)가 박정희를 위한 현대판 채홍사였다. </div> <p contents-hash="87e0a6bb069c022373c366ae8a9bab1c61b88577afd222da6503b6be14783389" dmcf-pid="bhlSTUMU3H" dmcf-ptype="general">10·26 사태 뒤에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법정에 선 박선호는 그 같은 채홍사 임무 때문에도 국민적 주목을 끌었다. 처음에는 채홍사 활동에 대해 함구하던 그는 1심인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부터 태도를 바꾸었다. 2심인 고등군법회의 재판 때부터는 채홍사 활동에 대해 조금씩 입을 열었다.</p> <p contents-hash="fee9a7eef7ea8ce00898fbdfc2b3173c787bc4cd701bca307171aa3a8508cef3" dmcf-pid="KlSvyuRuzG" dmcf-ptype="general">박선호의 법정 진술 등을 토대로 작성된 1993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 '군(軍) 어제와 오늘' 제55회는 박선호를 "채홍사"로 지칭하면서, 박정희가 그를 통해 기혼 연예인까지 불러들인 일을 설명한다. 남편이나 자녀들의 반감과 이로 인해 더욱 심해질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통령이 마음 내켜 하는 대로 정권이 작동됐다.</p> <p contents-hash="0144a3bcd5e5b4cd2773051605ba5de89a0e45adbe0a31a0f4cc327a2b2d9429" dmcf-pid="9SvTW7e7zY" dmcf-ptype="general">이 기사는 '장충동 모 요정의 김 마담'이 연예인들을 알선하는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알려준다. 그런 뒤, 김 마담의 알선을 거치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p> <p contents-hash="f0b11a429fb7ae17bc8e87d2d9fbc1e98df38b7275402e69ee848472ee45af43" dmcf-pid="2vTyYzdz7W" dmcf-ptype="general">"그런가 하면 반강제 차출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국산 영화를 시사하거나 TV 연예 프로들을 보다가 맘에 드는 배우·가수의 이름을 대며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큰 물의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개 불러왔다. 다만, 유부녀로서 본인이 거절하면 강제하지는 않았다."</p> <p contents-hash="d9445f26dd90c6efea86f9ff98a597363df05845ee8aa4508089dcd6b188c13d" dmcf-pid="VTyWGqJq0y" dmcf-ptype="general">미혼 연예인은 반강제적으로 데려가고, 기혼 연예인은 본인의 동의하에 데려갔다는 것이다. "유부녀로서 본인이 거절하면 강제하지는 않았다"라는 말은 채홍사팀이 준수한 일종의 불문율을 알려준다. 기혼 여성을 데려가는 일이 한두 건 밖에 없었다면 이런 불문율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p> <p contents-hash="5379a7d415202fda27a8e7ab065d6fc0cb5ddecb8773a35563d16af4d344b86b" dmcf-pid="fyWYHBiBpT" dmcf-ptype="general">은밀하게 이뤄지던 채홍사 활동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박정희의 탐욕이 방송사나 영화사의 수익에 지장을 줬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난 영화나 드라마의 배우만 데려가는 게 아니라, 촬영 중인 작품의 출연자까지 임의로 데려가는 일이 많았다. 이로 인한 업계의 불만 때문에 채홍사 활동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p> <p contents-hash="1b15c88835caa7726a54a624903909604ce6dbee2de84e6569928cce34b08646" dmcf-pid="4WYGXbnbFv" dmcf-ptype="general">"갑작스러운 궁정동 연회 차출 지시로 영화나 TV 프로 촬영 중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의 힘 있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이래서 한두 차례씩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의 제작진 사이에도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p> <p contents-hash="624de9d6ce75c8ad99e68e3a53a147f5f1fe1e2d19a83a871bfb065d32c1f683" dmcf-pid="82Vf8avapS" dmcf-ptype="general">채홍사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은 중앙정보부 경비로 지급됐다. 위 기사는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술자리 여인들에게 주는 화대는 지금 돈 가치로 쳐서 보통의 경우 30만 원 정도였고, 유명세를 계산해 더 보태는 경우 50만 원이었다"고 말한다. 1993년 가치로 환산해서 보통 30만 원 정도가 지급됐다는 것이다.</p> <p contents-hash="8a6269032a2c69cc135b7f9625d0a3aaa223f660b1d2d343508a7b5ab4e25dd9" dmcf-pid="6Vf46NTN0l" dmcf-ptype="general">이 기사가 발행된 1993년 11월 하순에 서울 지역의 짜장면 평균 가격은 2천 원이 안 됐다. 1993년 1월 28일 자 <경향신문> 20면에 따르면, 1992년 연말과 1993년 연초에 서울 강남구·서초구에서 짜장면 한 그릇은 1600원 정도였다.</p> <p contents-hash="adae3febeddf3c2ce0f7d86f4f3385dfb6f7f437d0191b5f2c2bfb0fecfbbd63" dmcf-pid="Pf48Pjyjzh" dmcf-ptype="general">이 신문의 1994년 1월 4일 자 23면에 따르면, 1993년 연말에 서울 중구 북창동에서 짜장면 한 그릇은 1800원 정도였다. 지금의 짜장면 시세를 감안하면, 위 30만 원에 4 이상을 곱해야 중앙정보부가 지급한 화대가 대략적으로 계산된다.</p> <p contents-hash="786840e9e7c10c7e0026fe7b5c83d127e59629be16b99ed0bd5751b5b98bf539" dmcf-pid="Q486QAWA7C" dmcf-ptype="general">타락한 군주의 대명사로 흔히 연산군이 거론되지만, 박정희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연산군보다 한술 더 떠 정보기관까지 앞세워 여성들을 동원했다. 그런 뒤 국민 혈세를 써가며 비용을 지급했다. 타락의 수준이 연산군 정권보다 못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타락한 군주의 대명사로 연산군만 거론하는 것은 연산군에게는 억울한 일이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역시 히어로‥임영웅, 3분이면 충분했다 ‘음악중심’ 올해 최고 시청률 경신 09-14 다음 '신사장' 한석규-배현성-이레, 바싹한 팀플레이 예고 09-14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