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마후라’ 부른 쟈니브라더스 진성만, 미국에서 별세 작성일 09-15 28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xGjbwlUlG6">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357c1cc712b68953eb6c6a6e4c3bb6888445e299426620e71a6c9bace3b4800f" dmcf-pid="yeprB8A818"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쟈니 브라더스 진성만 [연합,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ned/20250915092452127tsvk.jpg" data-org-width="566" dmcf-mid="Q3DfIWBW1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5/ned/20250915092452127tsvk.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쟈니 브라더스 진성만 [연합,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3c52037523aac79be84839cadae808daed00a91c782a23202a000436759a1833" dmcf-pid="WdUmb6c6Y4" dmcf-ptype="general">[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5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남성사중창단 쟈니브라더스 멤버인 진성만이 별세했다. 향년 85세.</p> <p contents-hash="3870456ce4346708b79fe6b604cc96d2b18b9aea6a646fc75f7dd8a40aa5f15b" dmcf-pid="YJusKPkP5f" dmcf-ptype="general">14일 대중문화계에 따르면 진성만은 전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p> <p contents-hash="7088315cab56a931d1e6f194c01e2f2b7efc45d85132b1ee469628fb0d8d3674" dmcf-pid="Gi7O9QEQ5V" dmcf-ptype="general">1940년 3월 전북 익산에서 3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21세 때인 1961년 ‘예그린악단’(이하 예그린)의 합창단원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예그린 해체 이후인 1963년 그는 동아방송 1기로 성우 활동을 하며 방송계와 인연을 맺었다. 배우 사미자와 김무생 등이 그의 동기다.</p> <p contents-hash="e0af326559b2bb6d78a6d67fe57f9ee683939fd840258e09628c2342778ca46d" dmcf-pid="HnzI2xDxt2" dmcf-ptype="general">같은 해 진성만은 예그린 단원 출신 김준, 양영일, 김현진과 쟈니브라더스를 결성해 그해 동아방송 중창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듬해인 1964년 동명 영화 OST ‘빨간 마후라’가 인기를 얻으며 톱스타로 부상했다. 쟈니브라더스의 대표곡인 ‘빨간 마후라’는 1년 전인 1963년 영화 제작 과정에서 태어난 곡이다.</p> <p contents-hash="414e5bae81c82f5919ed0e030b29a7c31b8e4df260476318db27058a12c63d06" dmcf-pid="XLqCVMwMt9" dmcf-ptype="general">쟈니브라더스는 ‘빨간 마후라’를 시작으로 ‘방앗간 집 둘째 딸’, ‘아나 농부야’, ‘마포 사는 황부자’, ‘수평선’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 인기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p> <p contents-hash="9b276c1f11b8f4ccd2fc544d3670dcf69168c644db8673d6b315886e8584ccb3" dmcf-pid="ZP1cU9o9XK" dmcf-ptype="general">1968년 TBC ‘쇼쇼쇼’를 통해 ‘쟈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가진 뒤, ‘메아리진’을 결성 활동했으나 이 팀 역시 1971년 해산했다. 멤버들은 1973년 1월 TBC ‘쇼쇼쇼’ 400회 특집 방송에서 고별 무대를 가졌다.</p> <p contents-hash="d7e3f0b64a2b9d28cb3058069b39c539ccfc6aef719ebe35a47e76a3ea5790b4" dmcf-pid="5Qtku2g2Gb" dmcf-ptype="general">이후의 삶은 영화제작자였다. 1986년 영화배우 김지미가 설립한 ‘지미필름’ 대표를 맡아 ‘오렌지 나라’, ‘명자 아끼꼬 쏘냐’, ‘물의 나라’, ‘아낌없이 주련다’ 등을 제작했다. 지미필름에선 ‘로보캅’과 ‘마지막 황제’ 등 1980년대 히트작을 수입했다.</p> <p contents-hash="0905cf9282c0460a07eac593b69adf9416a0a4340a10e43f3af093eca05543e8" dmcf-pid="1xFE7VaV1B" dmcf-ptype="general">쟈니브라더스는 1973년 ‘쇼쇼쇼’ 마지막 무대 이후 34년 만인 2007년 3월 KBS ‘가요무대, 돌아온 쟈니브라더스’로 재결합했다. 2016년엔 자신의 이름으로 첫 솔로 앨범을 냈고, ‘진성만 팝 & 재즈 콘서트 공연’도 열었다.</p> <p contents-hash="0c44d0d56222e585b361e7f8792bd9eb4c8c997037f9e006110def8a07066921" dmcf-pid="tM3DzfNftq" dmcf-ptype="general">유족으로는 부인 김씨와 세 딸이 있다. 부인은 배우 김지미의 동생이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오스카 앞두고 낭보…‘어쩔수가없다’ 토론토 국제관객상 수상 09-15 다음 '4인조 재편' 에버글로우, 첫 亞 팬미팅으로 본격 활동 재개 09-1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