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마라토너 손기정 이야기 ① 작성일 09-23 51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굴레를 딛고 달린 이름 없는 소년, 세계를 제패하다</strong><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25/2025/09/23/20250923070053052515e8e9410871751248331_20250923070415065.png" alt="" /><em class="img_desc">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손기정</em></span> 1927년,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소년이 운동장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이 열다섯의 손기정이었다. 정규 코스 42.195km를 처음 완주한 한국인 기록이 막 세워진 해였다. 그때의 세계 최고 기록과 국내 기록은 1시간 가까이 차이가 났다. 올림픽은 너무 멀었고, 꿈은 아득했다. 그러나 이 소년은 포기하지 않았다.<br><br> 손기정은 어른들 틈에 섞여 경기마다 뛰었고, 장거리 달리기에는 언제나 끝까지 남았다. 하지만 두 가지 고난이 그 앞을 막았다. 가난,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억압이었다. 운동에 전념하기는 커녕 학업조차 이어가기 어려웠고, 민족의 의지가 꺾이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의욕을 잃지 않는 일 자체가 더 큰 싸움이었다.<br><br> “달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기고 싶었다.”<br><br>손기정의 삶을 관통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의지의 메세지. 그는 달려야만 암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고독한 질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br><br>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0만 관중이 지켜보는 메인 스타디움에 동양인 선두 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승선까지 남은 100미터, 마지막 전력 질주를 통해 2시간 29분 19초 2.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br><br> 환호는 쏟아졌지만, 메달 시상대 위의 현실은 냉혹했다. 영예는 일본 국적 아래 기록되었고, 손기정은 국적 없는 승리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기자들에게 담담하게 남긴 말은 “나는 조선인이다”였다. 이 선언은, 메달보다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한국 마라톤의 뿌리는 바로 이 순간에서 시작되었다. 패배 의식을 넘어 민족의 자존을 지켜낸 발걸음, 그것이 손기정이 남긴 기록의 의미이다.<br><br> 러닝이 새로운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그의 정신을 다시 묻는다. 손기정의 질주는 단순한 경기 기록이 아니라,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억압 속에서도 자존을 지켜낸 상징이었다. 뛸 때마다 이어지는 숨결 속에는 그의 선언이 남아있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달리고 있다.<br><br>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25/2025/09/23/20250923070157002875e8e9410871751248331_20250923070415072.png" alt="" /></span><br><br>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장성중 교사] 관련자료 이전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53] 북한에선 왜 ‘인민체육인’이라 말할까 09-23 다음 이생강 명인, 전승자 주관 기획 공연 ‘죽향‘ 개최 09-23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