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신경 안 써… 학교발전기금 내는 분 신발 닦을 자세 돼 있다”[데스크가 만난 사람] 작성일 09-26 36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 데스크가 만난 사람 - 박노준 우석대 총장<br><br>Q. 국내 첫 ‘프로선수 출신 총장’의 지역대학 살리기 전략은?<br><br>야구 선수였지만 특기가 영업<br>우석대 먹여 살리는 게 최우선<br><br>석·박사 취득하며 항상 공부<br>6년간 총장자리 요청만 세 번<br>늘 미래 대비하면 기회는 온다<br><br>69% 취업… 전북서 5년째 1위<br>3년연속 교육국제화역량 인증<br>지역과 손잡고 수소인재 키워<br>대학 엘리트 선수 육성도 힘써</strong><table class="nbd_table"><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1/2025/09/26/0002739375_002_20250926092314546.jpeg" alt="" /></span></td></tr><tr><td>박노준 우석대 총장은 “교육자로서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라는 말을 좋아한다”라고 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이 글귀는 ‘황금 백만 냥이 한 사람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백동현 기자</td></tr></table><br><br>인터뷰 = 장재선 전임기자<br><br>“이건 경영학에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그걸 전제하고 말씀드립니다. ‘체면은 자산의 감소다.’ 체면 차리려다가 처자식 굶어 죽습니다. 저는 특기가 영업입니다. 차를 팔거나 마케팅 관련 일을 맡겨주면 잘해낼 자신이 있습니다.”<br><br>이건 어느 세일즈맨이 한 말이 아니다. 대학 총장이 한 말이다. 박노준(63) 우석대 총장. 전북 전주캠퍼스, 충북 진천캠퍼스를 합쳐서 1만여 명이 재학하는 학교의 수장이다.<br><br>“이 자리에 있는 한 저에겐 우석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게 최우선입니다. 학교에 발전기금을 내는 분이나 교육 당국 관계자들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선 그분들 신발을 닦고 양말을 빨아드릴 자세가 돼 있습니다.”<br><br>전북 완주에 있는 우석대 총장실에서 최근 만났을 때, 그가 하는 말에 자꾸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역 대학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br><br>“학교 행정은 자꾸 허들이 생깁니다. 그걸 넘고 헤쳐나가기 위해 저는 법을 지키는 선에서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하고 경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갖춰 정중하게 요청해서 얻을 것은 얻고….”<br><br>담백하고 정돈된 음성에 묘하게 힘이 실려 있다. 야구 선수 출신답게 당당한 체구여서 틀거지가 있어 보였다. 그는 “폼 재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했지만 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br><br>그는 국내 최초 프로운동선수 출신 대학 총장이다. 6년 동안 2개의 대학법인으로부터 세 번이나 총장 요청을 받은 것도 이례적 기록이다.<br><br><table class="nbd_table"><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1/2025/09/26/0002739375_003_20250926092314598.jpg" alt="" /></span></td></tr><tr><td>박노준 총장의 선린상고 시절.</td></tr></table><br><br>그는 고교 때부터 유명했다. 선린상고 선수였을 때 탁월한 야구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아이돌처럼 팬을 이끌고 다녔다. 1981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홈으로 슬라이딩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을 때, 그가 입원한 병원 앞에 여고생들이 진을 치고 있을 정도였다.<br><br>“인기는 구름 같은 거예요. 잡을 수 없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지요.”<br><br>그는 고교 1학년 때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3학년 때부터 성인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고려대에 진학한 후에도 국가대표로 뽑혀 총 7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렇게 각광을 받으며 프로야구에 진출했으나 팬들의 기대만큼 활약하진 못했다. 잦은 부상이 원인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 야구 평론가들은 “투타를 겸하며 몸을 혹사한 탓”이라고 분석했다.<br><br>“스스로도 그렇게 말합니다. 양다리를 걸치다가 망한 경우라고. 그러니 한 우물만 파라고(웃음).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결국 제가 부족해서였기 때문이라고 반성합니다.”<br><br>그는 스타로서 꽃길만 걷지 않은 것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그늘을 살피는 눈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br><br>“벤치워머, 2군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몰랐을 거예요. 그때의 경험은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학교 경영에도 참고가 됩니다. 여기 오셔서 보셨겠지만, 저희 학교 조경이 전국 대학 중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그 덕분에 축제 때 와본 외부인들이 또 와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걸 만들기 위해 담당 직원분들이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학교 행정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총장은 부총장님과 처장님들을 비롯한 학교 임직원들이 남이 안 보는 곳에서 어떤 고생을 하시는지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br><br><table class="nbd_table"><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1/2025/09/26/0002739375_004_20250926092314682.jpg" alt="" /></span></td></tr><tr><td>김건우(오른쪽) 선수와 함께.</td></tr></table><br><br>그는 주로 전주캠퍼스에 머물지만 매주 금요일엔 진천캠퍼스에 다녀온다. 매일 아침 6시 27분에 출근해서 업무보고를 받는다. 안양대 총장 시절부터 6년간 똑같다는 게 박찬범 비서실장의 귀띔이다.<br><br>박 총장은 “그렇게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제가 저를 용납하지 못 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서실 직원은 더 일찍 나와야 하니 얼마나 고생이냐”라고 했다.<br><br>스타 야구 선수였던 그는 어떻게 해서 교육자 길에 들어서게 됐을까. 그는 그 원천으로 아버지의 영어공부를 들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의 부친은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서 영어를 가까이했다. 그 덕분에 그는 영어에 익숙했고, 선수 시절에도 쉬는 시간에 단어를 외우는 습관을 길렀다.<br><br>“고려대에 진학했을 때 여느 선수들처럼 체육교육학과를 택하지 않고, 경영학과를 갔습니다. 나중에 선수 생활을 마쳤을 때 내 사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풍부해지면 야구 쪽에 기부와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지요. 대학 때 은사이신 어윤대, 지청, 신수식 교수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특히 어 교수님께서 ‘다른 학과 학생들도 많이 사귀어라’라고 하셨는데,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지금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자산입니다.”<br><br>그는 프로야구를 은퇴한 직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8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1999년 뉴욕 메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메츠에서는 정식 코치로 채용됐고, 나중에 10년 동안 한국을 왕래하며 인스트럭터 코치를 했다.<br><br>“마이너리그서 메이저리그까지 지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기에 달러로 월급을 받고 지도자 수업을 받은 거지요.”<br><br>미국에 체류할 때 영어 소통에 애를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제 발음을 현지 백인들이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주눅 들지 않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 영어공부 좀 하고 와라’ 그렇게 조크를 하며 웃고 넘어갔지요.”<br><br>귀국 후 프로야구단 우리히어로즈(키움히어로즈 전신) 단장 겸 부사장을 하고, 방송 해설위원을 했다. 그러면서 학업을 이어가 성균관대에서 스포츠산업학 석사, 호서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따고 나니 서창훈 우석학원 이사장님께서 부르셨어요. 대학에서 강의를 해 달라고. 프로야구 선수 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 제가 학위 따는 걸 눈여겨보신 거죠.”<br><br>그는 이 대목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언제나 무장하고 준비하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찬스가 옵니다. 콜을 받아도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br><br><table class="nbd_table"><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1/2025/09/26/0002739375_005_20250926092314714.jpg" alt="" /></span></td></tr><tr><td>1981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홈에 슬라이딩하다가 다치는 장면.</td></tr></table><br><br>그는 우석대 대학원과 레저스포츠학과 교수로 9년을 지냈다.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되돌아봤다.<br><br>“서울에서 완주까지 버스로, 차로 왔다 갔다 하며 사철 바뀌는 풍경을 누렸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젊은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br><br>그러다가 그는 지난 2020년 안양대 총장으로 선임돼 4년을 일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 힘들었지만, 공부를 많이 한 시간이었습니다. 학교 행정 허들을 넘는 방법을 배웠으니까요.”<br><br>그는 지난해 3월부터 우석대 총장을 맡고 있다.<br><br>“이사장님께서 권한을 많이 주신 만큼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지요. 이왕 해야 할 일이면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노력한 사람이 즐겁게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잖아요.”<br><br>우석대는 지난해 취업률 69.9%를 기록했다. 전북 지역 4년제 일반대학 중 5년 연속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br><br>또 정부가 주관하는 ‘교육국제화역량 인증 대학’으로 3년 연속 선정됐다. 박 총장이 취임한 작년에도 유학생 관리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br><br><table class="nbd_table"><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1/2025/09/26/0002739375_006_20250926092314751.jpg" alt="" /></span></td></tr><tr><td>1999년 뉴욕 메츠 시절 박찬호 선수를 만났을 때.</td></tr></table><br><br>“저희 아버지께서 ‘자랑은 팔불출이나 하는 짓’이라고 가르치셨지만, 총장으로서 학교 홍보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웃음). 학령인구가 급감하니 모든 대학이 위기를 느낍니다. 우리 대학은 오히려 기회로 삼아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올해 2학기엔 1000여 명이 늘어 총 2500여 명이 재학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학생이 가장 많고 베트남, 몽골 등 국적이 다양합니다. 이들 학생은 모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며 한국과의 친선에 기여할 것입니다. 이른바 지한파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들이 한국에 정주하게 되면 지역 제조업에서 부족한 일손을 메꾸거나 행정, 통역, 문화 부분에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br><br>우석대 전주캠퍼스는 전북도가 주관하는 ‘2025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에 선정돼 향후 5년간 500억 원을 확보했다. 대학상생사업에서도 31억 원을 지원받는다. 진천캠퍼스는 충북의 RISE 사업에서 향후 5년간 150억 원의 사업비를 따냈다.<br><br>“이사장님과 법인, 전 구성원이 노력해 얻은 결과여서 자랑스럽습니다. 아시다시피, 세계 각국의 많은 도시들이 대학과 연계해서 세수를 늘리며 먹고사는 길을 모색합니다. 우리 대학이 위치한 완주, 진천군은 저희와 긴밀히 협력하고 기업과 연계해서 ‘지·산·학 상생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br><br>박 총장은 우석대와 완주군이 손을 잡고 추진해 온 ‘지역 정주형 수소인재 양성’ 프로젝트에 대해 힘을 주어 설명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하는 수소에너지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고,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등 지역 기업과 협력해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이다.<br><br>그는 취임 후 대학 운동부 활성화에도 힘썼다. 대부분의 대학이 운동부를 없애는 추세지만, 역발상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늘렸다. 전주와 진천 캠퍼스에 10개 운동부를 신설해 총 20개를 운영한다. 그는 이 역시 법인 도움 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며 감사를 표했다.<br><br>“운동선수들이 고교 3학년 때 진학할 대학이 없으면 다른 도시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걸 막고 지역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는 거지요. 이 선수들이 대회에 나가서 빼어난 성적을 거두면 대학 이미지가 좋아지고 지역 스포츠가 활성화되는 등 여러 가지로 득이 됩니다. 그 덕분에 뛰어난 고3 학생들이 우리 대학으로 많이 몰려들고 있습니다.”<br><br>그는 학생들에게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교양대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에 나가기 전 인성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br><br>“MZ라고 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을 인정합니다. 그렇더라도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는 자세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인품이라야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며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br><br><div style="display:box;border-left:solid 4px rgb(228, 228, 228);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b>“운동 중 ‘희생’ 단어 있는 건 야구 뿐… 나를 넘어 우리 ‘서번트 리더십’ 필요”<br><br>‘지장·덕장’같은 총장 되려 노력<br>90세에도 재능 기부하며 봉사</b></div><br>박노준 우석대 총장은 이달 초 전북 지역을 담당하는 육군 제35보병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특별 강연을 했다. 주제는 ‘야구로 본 리더십’.<br><br>“야구의 기술과 함께 서번트 리더십을 이야기했어요. 공이 휘는 커브는 108개의 실밥을 손으로 어떻게 쥐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공을 수십만 번 던져봐야 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야구에 희생번트, 희생플라이가 있잖아요. 운동 종목 중 희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야구밖에 없어요. 나를 넘어서 우리라는 개념으로 뭉쳐야 하지요.”<br><br>그는 강연 말미에 한국 야구계 명장 감독들의 리더십 사례를 들었다고 했다. 지장(智將) 김성근, 용장(勇將) 김응룡, 덕장(德將) 김인식 등.<br><br>그가 감독이라면 어떤 리더십을 펼칠까. “지장에 가까울 거예요. 철두철미하게 계획해서 용병술을 펼칠 테니까요. 대학 경영은 판단을 한 번 잘못하면 크게 휘청거리거든요. 많은 교직원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서 정으로 보살피고 복지를 신경 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덕장을 겸하겠지요.”<br><br>그는 교육행정에 힘쓰느라 과거 함께 활동했던 야구인들을 거의 잊고 지낸다고 했다. 선린상고 시절의 동료 김건우 선수와도 2년 전쯤 한 번 통화했을 정도다. 그래도 선동열 감독에 대한 기억은 특별했다. “대학 1년 선배로 3년 동안 기숙사 룸메이트였어요. 국가대표도 함께했으니 친할 수밖에 없지요. 야구도 잘했지만, 인품도 좋았어요. 남에게 베푸는 성품이죠. 지도자로도 성공하셨는데, 지금은 쉬고 계시지만 컴백하셨으면 좋겠어요. 김성근 감독님께서 한화이글스를 72세에 맡으시며 프로야구 감독 임기를 연장시키셨으니까요(웃음).”<br><br>그는 교육 행정가 역을 끝낸 후 감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농담으로는 그러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세미프로든, 사회인 야구든 감독을 한 번 하고 리틀야구를 위해 봉사했으면 합니다. 한영관 리틀야구연맹 회장님 권유로 부회장을 맡아서 대외 협력 일을 하며 아이들에게 야구 기술을 전수해 준 적 있거든요. 보람 있었습니다.”<br><br>그는 80, 90세에도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재능 기부하며 봉사할 일이 얼마나 많냐는 것이다. “어떤 분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했잖아요. 얼마나 기가 막힌 멘트입니까.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 60이 되어도 30, 40년 일을 해야 합니다. 일하며 자꾸 몸을 움직여야 정신 건강도 좋아집니다.”<br><br> 관련자료 이전 ‘우주 한달살이’ 생쥐들, 10마리는 죽어서 왔다 09-26 다음 한국 주니어(U-17) 남자 핸드볼, 아시아선수권 결승서 이란에 석패하며 은메달 09-2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