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개그맨이자 '위대한 자유인' 전유성, 하늘무대로 떠나다 작성일 09-26 2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코미디계의 거장 전유성, 76세로 별세... 한국 코미디의 새 지평 연 '설계자'</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fy413QP3Uu"> <p contents-hash="ac403aed2c72aac5fe32a271a9e43c867ed7403d73afe43b190d4942498d61a6" dmcf-pid="4W8t0xQ0uU" dmcf-ptype="general">[이준목 기자]</p>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3cba208ede843d109287ddf9c6452c46d67f6ff4504be2b546a07d87f0be59ee" dmcf-pid="8Y6FpMxp3p"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26/ohmynews/20250926105103168mnqu.jpg" data-org-width="3000" dmcf-mid="VXFOhUph37"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6/ohmynews/20250926105103168mnqu.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개그계 대부' 전유성, 폐기흉 악화로 별세</strong> '개그계 대부'로 불리던 코미디언 전유성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전유성은 폐기흉 증세가 악화하면서 이날 오후 9시 5분께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2019년 3월 '전유성의 쑈쑈쑈'제작발표회에서 발언하는 전유성 모습. </td> </tr> <tr> <td align="left">ⓒ 연합뉴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0a24dd14d9640d552b42a26fbab7ded3a61c61c9e681113fce68998c71b28107" dmcf-pid="6VwMdOsd70" dmcf-ptype="general"> 한국 코미디계의 거장 전유성씨가 하늘무대로 떠났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고인은 9월 25일 오후 9시 5분경 지병으로 인하여 입원 중이던 전북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div> <p contents-hash="d37ffbe61c6d3778bf31e59b6748068903e5ce7555a721a528892195e5bff3fa" dmcf-pid="PfrRJIOJz3" dmcf-ptype="general">코미디계를 비롯한 연예계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하여 고인에 대한 추모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조직위원회(아래 부코페)는 26일 오전 추모성명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개그계의 큰 별, 전유성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라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p> <p contents-hash="1f987ad194d7629912f6bbd998adb03b9f9e85862e105c26635be2a6e8982775" dmcf-pid="Q4meiCIi0F" dmcf-ptype="general">'부코페' 위원회는 "전유성 선생님은 '개그맨'이라는 명칭을 직접 창시하시고, 한국 최초의 공개 코미디 무대와 개그 콘서트 실험 무대를 선보이며 한국 코미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수많은 후배 개그맨들에게는 든든한 스승이자 멘토로서 영감을 주셨다. 아시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코미디 페스티벌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만들어지는 데 주춧돌이 되어주셨고, 한국 코미디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앞장서 전파하셨다"고 전유성의 업적을 기렸다.</p> <p contents-hash="383af9d62ea7a3a4970acdb35a8c67ed89f51191b2a71449fccb2385bb38030f" dmcf-pid="x8sdnhCnUt" dmcf-ptype="general">이어 "선생님은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한국 코미디의 선구자셨다. 웃음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주셨던 선생님의 발자취는 한국 코미디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것"이라 추모했다.</p> <p contents-hash="7df57adb3a33a43acbacd249c8bb7f8a0f4dc8b98008c9fd891555e147aef06c" dmcf-pid="yl9H54f5p1" dmcf-ptype="general"><strong>'웃음 만드는 방법' 연구했던 '코미디계의 대부' 전유성</strong></p> <p contents-hash="6ed5772cfdef2e7be8c23c05fa159233f45180269dd4a970bfca4ee96c6c5928" dmcf-pid="WS2X1841p5" dmcf-ptype="general">전유성은 서라벌예술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본래 정극배우를 지망했으나 탤런트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자, 1968년 TBC 예능 <쇼쇼쇼>의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방송가에 처음 입문했다. 이후 재능을 인정받아 코미디언으로 데뷔하게 됐고,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개그콘서트> 등 여러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990년대 대한민국 공개코미디의 상징이 된 <개그콘서트>의 원안을 처음 구상한 것도 바로 전유성이었다. 현역을 떠난 이후에도 계원예술대, 한국예술종합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후배 희극인들을 양성해내기도 했다.</p> <p contents-hash="eabfaed970c61b0abcf808ab25e855a7ca8b2e359b32c4dc3b04d5a07d9ce6eb" dmcf-pid="YvVZt68tpZ" dmcf-ptype="general">많은 이들이 전유성을 추모하지만, 막상 젊은 세대에게는 그의 위대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소하게 느껴질수 있다. 대한민국 코미디계에서 전유성이 남긴 진정한 업적은,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활약상이 아니라, 오히려 무대 뒤에서 웃음이 만들어지는 시스템과 방향성을 혁신한 '설계자'라는 데 있었다.</p> <p contents-hash="6e1361686511adf53f42d4ad4784d353020b5be6d4eba9f802126fe6f127ee34" dmcf-pid="GTf5FP6FpX" dmcf-ptype="general">많은 사람들이 전유성을 하나같이 '코미디계의 대부'라고 칭송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스스로 빛나는 스타이기보다 다른 이를 받쳐주고 빛나게 하는 '킹메이커'였고, 무대 밖에서는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 '웃음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 웃음학자였다.</p> <p contents-hash="f6ceb0a586c29b8b5f652be62c146f5397b8de4f79c8786717b5bae4187cba85" dmcf-pid="HwUlTqzT3H" dmcf-ptype="general">전유성이 대한민국에서 '개그맨(Gagman)'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일상화시킨 인물이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물론 개그맨 자체는 이전부터 있었던 용어였고 영어사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단어지만 한국에서 스스로 자신을 개그맨으로 규정한 인물은 전유성이 최초였다.</p> <p contents-hash="8130329680d6012a1aa326f42001ca19979bfb329f78e02e8732d97c3283487e" dmcf-pid="XruSyBqyuG" dmcf-ptype="general">코미디언과 개그맨은 현재 한국에서는 사실상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영어인 개그(Gag)는 '희극적 행동이나 말로써 청중을 웃게끔 하는 것'을 뜻하며 한국어로는 흔히 '익살'로도 번역된다. 개그맨은 정해진 코너와 대본 안에서 콩트 혹은 재담 연기를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p> <p contents-hash="e87d17e0a0639a807e1d92dbe334ec782fcbcd5d8acbaf9e1d9369c5d595fcca" dmcf-pid="Zm7vWbBWuY" dmcf-ptype="general">전유성이 코미디계에 데뷔하던 1970년대만 해도, 한국 코미디는 악극단 출신의 원로 코미디언 세대가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코미디의 문법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과장된 분장, 우스꽝스러운 몸짓, 그리고 정해진 각본에 따른 '슬랩스틱'이 사실상 코미디 그 자체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p> <p contents-hash="3080a6d68cf230d5c0f49d764fb2c9cbcd407242242f7d0fd9548991c6896461" dmcf-pid="5szTYKbYuW" dmcf-ptype="general">하지만 전유성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코미디의 본질이 슬랩스틱처럼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행위'만 아니라, '허를 찌르는 생각'에 있다고 믿었다. 실제 개그스타일면에서도 전유성은 몸보다는 말, 말보다는 글로 웃음을 유발하던 개그의 선구자적인 인물이었다. 진지한 톤에서 황당한 발언으로 허를 찌르거나, 한 템포 곱씹고 생각해야만 비로소 개그를 이해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이는 즉각적이고 빠른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TV 코미디의 문법과는 그리 맞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전유성이 굳이 '개그맨'으로 자신을 규정한 것은, 본인의 단점인 연기력 대신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희극인'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은 일종의 정체성 선언이었다.</p> <p contents-hash="c33fe92b71b4bbca1dcda47a9ed53c64962b00577217fbc6667b8f06692f8b89" dmcf-pid="1OqyG9KGUy" dmcf-ptype="general">하지만 이후 최양락, 이홍렬, 이경규 등 전유성의 철학을 이어받아 재치와 아이디어로 무장한 후배 스타 희극인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개그맨'은 코미디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쟁쟁한 선후배 개그맨들도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마다 전유성을 찾아와 멘토로 여기고 자문을 구했다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p> <p contents-hash="a814dd1859b04a84815b3923026aa958853f0695c63412a3ef66fe974fb0ef18" dmcf-pid="tIBWH29HuT" dmcf-ptype="general">전유성이 웃음을 추구하는 방식에서 던진 새로운 화두는, 곧 한국 코미디의 주도권이 '몸의 시대'에서 '아이디어의 시대'로 서서히 넘어가는 전환점이 된다. 전유성이 도입한 개그맨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작명을 넘어서, 코미디에 대한 철학적 재정의이자 지적인 혁명이었던 것이다.</p> <p contents-hash="8da7a3058a5092a64a52314d29aabdde5371da61bde6f734f01284ce05b91a70" dmcf-pid="FCbYXV2X3v" dmcf-ptype="general">또한 설계자로서의 전유성의 면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결과물이 <개그콘서트(아래 개콘)>다.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개 코미디 형식이지만, 당시로서는 방송가의 상식을 뒤엎는 파격적인 기획이었다. <개콘> 이전의 코미디는 방송국 스튜디오 안에서 완벽하게 짜인 각본과 편집을 통해 제조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전유성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관객과 직접 호흡하며 아이디어 하나로 생사를 겨루는, 날것 그대로의 코미디를 브라운관으로 옮겨왔다. 이는 방송사에 거대한 코미디 실험실을 세운 것과도 같았다.</p> <p contents-hash="cf1ed1385eb0676d87ddf5e10e01601a00068dba47a90de8eef0a1a4eeae328b" dmcf-pid="3hKGZfVZ7S" dmcf-ptype="general">공개 코미디 시스템 안에서 개그맨들은 더 이상 주어진 연기만 하면 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스스로 아이템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주특기와 포지션을 나누어 조직적인 팀플레이를 펼치는가 하면, 무대 위에서는 관객의 즉각적인 심판을 받아야 하는 '창작자'가 되어야 했다. 여기에 코너가 관객의 외면을 받으면 가차 없이 폐지되는 냉혹한 경쟁 환경은, 역설적으로 한국 코미디의 질적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었다. 전유성이 직접 <개콘> 무대에서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구상한 시스템은 오랫동안 한국 코미디의 주류가 되었고, 수많은 아이디어와 개그맨 스타들을 탄생시키는 산실이 됐다.</p> <p contents-hash="7c264b1f685281ed970ddc6b758c87db1b68ef3f8e6098924fd823b3e6c334db" dmcf-pid="0l9H54f5Fl" dmcf-ptype="general"><strong>이문세, 주병진 알아본 전유성의 '남다른 안목'</strong></p> <p contents-hash="b5528bbbbed4effebc3d58d487cdf5bac3e9e8d6bde1e8e1691743eb656fcf84" dmcf-pid="p1e7BniBzh" dmcf-ptype="general">그리고 이러한 전유성의 다재다능함은 코미디라는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유성은 한국 대중문화를 빛낼 수많은 스타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꿰뚫어보고 연예계로 이끌어줄만큼 남다른 안목을 가진 인물이었다.</p> <p contents-hash="8cfb786815a40c37bd119e79d384c56b3199f207119f42e14b28409566200a0b" dmcf-pid="UtdzbLnbFC" dmcf-ptype="general">가수 이문세의 재치 있는 입담을 발견하고 그를 최고의 라디오 DJ로 이끌었으며, 주병진의 진행능력과 쇼맨십을 알아보고 훗날 한국 최초의 스탠딩 토크쇼 MC로 성장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코미디 시장'이라는 코미디 극단을 운영하며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박휘순, 신봉선, 김민경 등의 후배 개그맨들을 다수 양성하기도 했다. 많은 스타들이 수십년이 흘러서도 전유성을 인생의 은인이자 스승으로 존경한다고 밝힌 이유다.</p> <p contents-hash="03f0eb8a3eb9c971d2d0d2a5e69f8d7dab29c3ce4a811be9961cd3a03ba748a6" dmcf-pid="uFJqKoLKuI" dmcf-ptype="general">전유성은 다방면에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선구자적인 혜안이 넘치던 인물이기도 했다. 전유성은 평소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빙고게임처럼 100가지 단어를 쓰게 하고, 그중에서 남들과 똑같은 것을 지운 뒤, 남은 것들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연습을 후배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p> <p contents-hash="9ed83422f0adb4a1773691357c13b858afdf08d705ef15817c7b2a4564f2bd56" dmcf-pid="73iB9go9pO" dmcf-ptype="general">또한 전유성은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처럼 다방면에서 저서들을 남기며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활동했다. 코미디와는 관계없는 주제였지만, '컴퓨터를 모르면 안되는 세상이 온다'거나 '미래에는 맥주 주유소(오늘날의 팝업스토어), 요리 시설을 제공하는 가게(오늘날의 공유주방 플랫폼)가 생긴다' 등, 당시로서는 황당한 상상력에 가깝던 전유성의 주장 중 오늘날 현실이 된 것들이 많다.</p> <p contents-hash="758324d884a0a41fc007a92f3a5d484d1a67c807591d1527b4728a6dd0df4eb4" dmcf-pid="z0nb2ag23s" dmcf-ptype="general">이처럼 전유성이 시대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낡은 규칙이나 질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인드'를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p> <p contents-hash="6973e62601159e83573434ce0bf35c13a18db26e373a2f6ad8e22b858022d9e5" dmcf-pid="qpLKVNaVUm" dmcf-ptype="general">소위 코미디계에 '똥군기'와 권위주의가 만연하던 1970~1980년대에 한창 활동하면서도, 전유성은 후배들에게 집합이나 군기 한번 잡지 않고, 오히려 사비까지 들여 어려운 후배들을 챙긴 일화는 유명하다. 3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들뻘 후배에게도 선배님이나 선생님 대신 형이라고 부르라고 허락하면서 "나이로 친구를 만드는 게 아니고, 이야기만 통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라던 어록은 그의 남다른 인품과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p> <p contents-hash="4c278e94bd3178cad19e909f63c046d64801edaf7137770a943235021d80cd6c" dmcf-pid="BUo9fjNf0r" dmcf-ptype="general">돌아보면 전유성이라는 인물은, 한국에서 스스로 선명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역할 대신, 웃음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평가받는 방식 자체를 혁신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최초의 희극인이었다. 저평가받던 코미디라는 장르가 한국에서도 더 이상 정극이나 음악에 비하여 가볍게 취급되는 B급 장르가 아니라, 치열한 아이디어 경쟁을 통해 탄생하는 '창의적 예술'임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전유성의 역할은 결코 적지 않았다.</p> <p contents-hash="1275c3c5c1fdb3f7352ee75294e5c9de08fa15f92e41c42ea28d6037888d39d2" dmcf-pid="bug24Aj43w" dmcf-ptype="general">전유성이 개척해 놓은 새로운 지형도 위에서 수많은 후배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스타가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유성은 바로 이 지점, 무대 뒤의 탁월한 설계자로서의 면모였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설계한 웃음의 판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전형적이지 않은 전유성의 모습을 보고 '기인', '괴짜'라 부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를 수식하는 가장 올바른 표현은 '위대한 자유인'이었다는 게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단독]'실탄 유출' 화살에 대한체육회, 정면 반박 "경찰청 소관" 09-26 다음 '보이즈2플래닛' 이상원 최종 1위, 알디원의 미래는? 09-2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