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故 전유성 영결식서 목놓아 오열 "나의 어른…사무치게 그리워" 작성일 09-28 51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지난 26일 세상 떠난 故 전유성 영결식<br>코미디언 후배들, 눈물 속 애도</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Vy9zwgtsnB">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d0cd605195dce8532b969d15aceb08b3c0129e065fd5098183801ed999849f85" dmcf-pid="f7nRHhf5eq"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개그맨 전유성의 빈소가 마련됐다. 뉴스1"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28/hankooki/20250928062714095ttxp.jpg" data-org-width="640" dmcf-mid="9usEBFo9M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8/hankooki/20250928062714095ttxp.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개그맨 전유성의 빈소가 마련됐다. 뉴스1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67956ece8d20568716353aadabf3c0dff7c71c5e97910541d8c754f4106df077" dmcf-pid="4zLeXl41Mz" dmcf-ptype="general">故 전유성 영결식이 치러진 가운데 추도사를 맡은 코미디언 후배 김신영이 끝내 오열했다. 김신영은 고인과 생애 사제 지간으로 인연을 맺었다. </p> <p contents-hash="90928372bfc4de039bfdb85c53352320c196a9a35fdcf3b2dc419536c1ac7970" dmcf-pid="8qodZS8tL7" dmcf-ptype="general">28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는 故 전유성 영결식이 엄수됐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협회가 장례식위원회를 꾸려 희극인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에는 유족들을 비롯해 많은 동료, 후배들이 눈물 속에서 고인을 추모했다. 식 진행은 이수근이 맡았으며 개식, 폐식은 장의위원장 김학래가 주도했다. 이날 김학래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회장을 비롯해 최양락 팽현숙 이경규 이수근 이홍렬 김신영 양배차 이영자 김원효 심진화 부부 김지선 등 후배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영결식에 자리했다. </p> <p contents-hash="196f41f47fb67e3efb7b5f71fe4f2b61452826c961abc6c861658c93e0cca552" dmcf-pid="6BgJ5v6FMu" dmcf-ptype="general">故 전유성은 지난 25일 오후 9시 5분 폐기흉으로 입원 중이던 전북대학교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76세. 서울아산병원에서 빈소가 마련됐으며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 김학래와 유족들이 조문객을 맞았다. 빈소에는 유재석 지석진 강호동 이경실 심형래 이홍렬 임하룡 등 생애 고인과 인연을 나눴던 이들이 찾아 안타까움을 전했다. </p> <p contents-hash="5236d7efdda619d49a62fcaca5464b1710b1ab59fb08ad9dc16603175da2082b" dmcf-pid="Pbai1TP3LU" dmcf-ptype="general">진행을 맡은 이수근은 "이날은 선배님을 보내는 날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고인을 편히 보내달라"라며 먹먹함을 드러냈다. 뒤이어 목사로 활동 중인 표인봉이 예배를 드렸다. 표인봉은 "형님, 잘 가세요. 천국에서 행복하세요. 나중에 저희들과 만나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면서 슬픔을 드러냈다. </p> <p contents-hash="0682c6c667ed884472c28475d2d6a85fa86887c6b2b313c81ff8428555fca6f5" dmcf-pid="QKNntyQ0Mp" dmcf-ptype="general">최양락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며 고인의 이력을 읊었다. 그는 "이 땅에 개그맨이라는 호칭을 처음 만드셨다. 지금도 '개그콘서트'를 만든 장본인이다. 따라할 수 없는 웃음에 대한 애정으로 최초로 코미디학과를 개설했고 코미디소극장 등 후배 양성을 몸소 실천하셨다. 참 인정 많은 어르신이셨다"라면서 생애 업적을 돌아봤다. </p> <p contents-hash="aeb8ac67bcc8a806e3dbdc36b3041023ea50e41df9fb216429274d27ba7ddc4c" dmcf-pid="x9jLFWxpi0" dmcf-ptype="general">조사를 맡은 이홍렬은 "한국 코미디의 큰별, 선배님을 보내드린다.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60년대 말 방송작가로 들어와 경계를 허물며 한국 코미디의 지형을 만들었다. 개그맨이라는 말을 처음 쓰며 공개 코미디 바람을 불게 했다. 늘 새로운 형식과 웃음의 실험실이었다. 선배님은 무대 위의 혁신가이자 무대 뒤의 스승님이었다. 후배들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믿고 밀어주셨다. 공연이 끝난 후 지역과 세계를 잇는 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용감한 실험부터 따뜻한 말씀까지 선배님의 발자취가 이어질 것"이라며 먹먹함을 내비쳤다.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6a624df420fc578e33b3b224b07a13ad3ecd7d031380c41e905234bec9c019a9" dmcf-pid="ysp1gMyjn3"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코미디언 김신영이 세상을 떠난 고 전유성을 떠올리며 오열했다. 김신영 SNS"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28/hankooki/20250928062715362fgwn.jpg" data-org-width="640" dmcf-mid="2nAo3YMUn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8/hankooki/20250928062715362fgwn.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코미디언 김신영이 세상을 떠난 고 전유성을 떠올리며 오열했다. 김신영 SNS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5c6d84dc52b5e5b76a163799d9af19bda5ab7b0d5df14b81ccfb5472792fe9df" dmcf-pid="WOUtaRWAJF" dmcf-ptype="general">추도사는 김신영이 맡았다. 김신영은 "나의 어른, 전유성 선생님께"라면서 첫 마디를 떼다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교수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됐다. 병원에서 교수님은 제게 '나이 차이 나는 친구, 즐거웠다'라고 하셨는데 제 마음을 울렸다. 제자를 넘어 친구라고 불러주셨고 그 따뜻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겠다. 교수님은 제가 가장 힘들 때 '두고 봐라'라고 하셨던 믿음이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다. 제 코미디를 가장 먼저 인정해주신 분, 모든 이들이 허무맹랑하다고 했던 개그를 밤새 즐거워해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분이 교수님이다. 마지막 수요일에도 간호사에게 '팁을 주라'라고 하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배려하던 교수님의 모습 절대 잊지 않겠다. 교수님, 저에게는 병원에서의 4일이 40년 중에 가장 진실되고 진심이었다"라면서 통곡했다. </p> <p contents-hash="9287e4350f310d48c171a71a8d5b6fb9c90944018dd80c5bf204b6a9ecd14bfb" dmcf-pid="YIuFNeYcnt" dmcf-ptype="general">이어 "편히 코도 골면서 주무시고 게임도 실컷 하셔라. 그리운 이와 회포 푸시다가 훗낱 저희 마중 나와달라. 저는 마지막 건네주신 주유비 10만 원, 끝까지 제 평생 보물로 간직하겠다. 사랑하는 교수님, 선생님, 나의 어른, 너무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싶다. 후배들을 사랑하는 모습, 코미디를 닦아주신 모습 기억하겠다. 다음생에도 제 교수님으로 나타나달라. 사랑한다. 정말 보고 싶다. 천국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하시라"라고 전했다. </p> <p contents-hash="4747191bdae2e4ff5466ac7edd9b0e9b97b1a8412bd5cbccbb903dd02e95f1e1" dmcf-pid="GjHTM2sde1" dmcf-ptype="general">故 전유성은 1969년 TBC '쑈쑈쑈' 방송 작가로 데뷔했으며 코미디언으로 전향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개그콘서트' 뿐만 아니라 '유머 1번지' '개그콘서트' '좋은 친구들' 등에 출연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활동, 후배들을 발굴했다.</p> <p contents-hash="187a42c333a52312414d5df85145d5b8d612fb938372c191c2c1ccaa0bea4fd0" dmcf-pid="HAXyRVOJL5" dmcf-ptype="general">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적극 등판' 민희진, 추석 연휴 이후 첫 재판도 직접 나설까[스타이슈] 09-28 다음 美 절반 불과한 韓 기업 보안투자…처벌 강화, 능사일까 09-28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