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적 회장님’ 대니얼 레비의 빛과 그림자 [경기장의 안과 밖] 작성일 10-02 39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9월4일 토트넘의 대니얼 레비 회장이 사임했다. 2000년 토트넘에 합류한 그에 대한 평가는 반으로 나뉜다. 팬들의 기대를 무시한 독선자 혹은 토트넘을 세계 10대 클럽으로 만든 능력자다.</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08/2025/10/02/0000037289_001_20251002053512362.jpg" alt="" /><em class="img_desc">지난해 10월19일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찾은 대니얼 레비 회장. ©AP Photo</em></span></div><br><br>대니얼 레비는 논쟁적 인물이다. 그는 토트넘 팬을 정확히 반으로 쪼갠다. 팬들의 우승 염원을 철저히 무시하는 독선자, 또는 우승 없는 토트넘을 세계 10대 클럽으로 만든 능력자다. 조망 각도에 따라서 그는 천사가 되기도, 악마가 되기도 한다. 레비 회장님, 25년 동안 토트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가요?<br><br>우선 근황을 알아야 한다. 레비는 이제 ‘전 회장’이다. 9월4일 토트넘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레비가 회장직에서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현지에서 난리가 났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회장이 하루아침에 ‘제거’됐기 때문이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낌새라도 있어야 했다. 당사자의 관련 언질이라든가 클럽 주변의 ‘카더라’ 통신 등의 ‘빌드업’이 전혀 없었다. 골키퍼가 길게 내찬 볼이 그대로 상대 골문에 꽂힌 느낌이다. 사임 발표가 난 지 일주일도 되기 전에 오너가 토트넘을 팔아넘길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 정도로 레비는 토트넘에서 결정적 존재였다.<br><br>레비와 토트넘을 이해하려면 199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클럽 주인은 앨런 슈가였다. 그는 IT 붐을 타고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인기 기업인이었다. 슈가의 눈에 잉글랜드 축구 판은 승리만 추구하고 돈 벌 생각을 하지 못하는 답답한 세상이었다. 슈가는 ‘크게 먹으려고’ 빅클럽들과 방송사를 규합해 아예 새판을 짰다. 그게 바로 프리미어리그다. 그런데 영국 스포츠 시장은 여전히 그의 사업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돈을 벌어봤자 이기려면 계속 돈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남는 게 없었다. 선수들만 돈을 버는 구조를 슈가는 과즙기에 비유했다. 상큼한 주스는 몽땅 선수들에게 돌아가고, 클럽에는 단물 빠진 껍질만 남는다는 이론이었다.<br><br>입이 삐죽 튀어나온 슈가 앞에 어느 날 젊은 사업가가 나타났다. 똘망똘망한 젊은이의 이름은 대니얼 레비, 직함은 ‘ENIC그룹 이사’였다. 슈가는 자신의 지분 일부를 ENIC그룹에 넘기기로 했다. 그게 2000년 12월이었다.<br><br>레비는 오렌지 단물의 방향을 클럽 쪽으로 틀어버리는 기적을 일으켰다. 최초 인수 당시, 토트넘의 연 매출은 4800만 파운드(약 902억원)였다. 레비가 상근 회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 10년 만에 클럽 매출은 1억2540만 파운드(약 2356억원)로 뛰었다. 2024년 토트넘은 연 매출 5억1800만 파운드(약 9736억원)를 찍었다. 전 세계 축구 클럽 중에서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매출 상위 10대 클럽 중에서 21세기 들어 자국 리그 우승 기록이 없는 곳은 토트넘이 유일하다. 승리 없이 돈을 버는 이상향에 레비가 도달한 것이다.<br><br>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레비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된다. 토트넘은 1899년부터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화이트 하트 레인은 영국 축구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1899년에 지은 이 경기장의 동쪽 외벽은 런던시 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영국 축구의 최대 셀링 포인트인 역사를 상징했다. 유럽 최대 상권인 런던에 자리한 만큼 부동산 가치도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낙후된 시설이 경기일 매출 극대화의 발목을 잡았다. ‘비즈니스맨’ 레비는 이런 상황을 개선해야 했다.<br><br>2012년 런던올림픽 주경기장을 웨스트햄에 빼앗긴 뒤, 토트넘은 홈구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 도전을 넘어 도박에 가까운 판단이었다. 클럽의 몸집에 비해 사업 규모가 너무 커 보였기 때문이다. 경기장 신축은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수적이다. ‘영끌’해서 경기장을 개장해봤자 토트넘이 장기간에 걸친 대출 상환 부담을 버틸 수 있을까? 빚 갚느라 선수를 살 돈이 없으면 성적은 하락한다. 그러면 다른 매출도 타격을 받는다. 라이벌 아스널이 좋은 예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쌍벽을 이룬 아스널은 새 경기장을 지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리그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체력이 약한 토트넘이라면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험이 컸다.<br><br>레비에겐 확실한 복안이 있었다. 미국 자본이었다. 스포츠를 활용해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할 줄 아는 미국의 큰손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가 토트넘과 손을 잡았다. 12억 파운드(약 2조2544억원)를 조달하는 데에 성공한 레비는 2019년 기어이 홈경기장 신축 사업을 완수하고야 말았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개장 효과는 확실했다. 경기일 매출이 두 배 이상 뛰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각종 악재가 터지기 전에 완공했다는 행운도 따랐다. 레비는 대출금 상환을 초장기 고정금리 조건으로 돌려 금융 부담을 최소화했다. 토트넘은 이제 세계 최고 경기장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익으로 그 돈을 천천히 갚아가면 된다. 우승 없이도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게 해줄 확실한 자산이 ‘뿅’ 하고 나타난 것이다.<br><br>그런데도 팬심은 레비의 방향성을 거부한다. ‘삐까번쩍한’ 새 경기장 앞에서 레비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들에겐 여전히 우승이 최우선 순위였기 때문이다. 유럽 축구판에서 레비는 우승할 생각이 없는 회장으로 손꼽힌다. 20년 넘게 유지했던 ‘짠물’ 운영 방침이 그 증거다. 레비의 원칙은 ‘가성비’였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발표한 ‘2023-2024시즌 축구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토트넘은 선수단에 총 2억2200만 파운드(약 4133억원)를 썼다. 해당 시즌 리그에서 우승한 맨체스터시티의 절반 수준이다. 런던 라이벌인 첼시와 아스널보다도 1억 파운드(약 1878억원) 이상 적다. 매출 대비 선수단 비용 비중이 43%였는데, 프리미어리그 20개 클럽 중에서 가장 낮았다. 레비는 협상 신공을 발휘해 해리 케인, 손흥민,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 슈퍼스타의 임금인상을 억누르면서 10년 넘게 그들의 공헌을 ‘쥐어짰다’. 달콤한 주스가 모두 클럽 통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단물 빠진 껍질은 팬들의 몫.<br><br><h3><strong>스포츠 팀과 일반 기업의 결정적 차이 </strong></h3><br><br>회장 재임 25년간 레비는 우승이 두 번밖에 없다. 매 시즌 반복되는 비난에도 레비는 끝내 지갑을 열지 않았다. 2018-2019시즌 토트넘은 창단 이래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다. 리버풀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팬들이 유럽 챔피언의 꿈을 품기에 충분한 성과였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2019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레비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선수를 한 명도 사지 않은 것이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단일 이적 시장에서 클럽이 선수를 한 명도 영입하지 않은 사례는 토트넘이 유일무이하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08/2025/10/02/0000037289_002_20251002053512524.jpg" alt="" /><em class="img_desc">레비는 회장 재임 25년간 우승이 두 번밖에 없었다. 2018-2019시즌 토트넘은 창단 이래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다. ©EPA</em></span></div><br><br>팬들은 레비의 판단에 경악했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힘이 빠진 토트넘 선수단은 2019-2020시즌 초반부터 흔들렸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선 지 5개월 만에 경질됐다. 리그 최종 순위에서 6위로 밀려 이듬해 챔피언스리그 참가 수입도 날아갔다. 이후 다섯 시즌에 걸쳐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를 한 번밖에 밟지 못했다. 케인과 손흥민이 차례대로 팀을 떠나며 레비 체제에서 맞이했던 최대 호황기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레비 본인도 물러나야 했다.<br><br>스포츠 팀은 기업이라는 법적 형태로 운영된다. 일반 회사처럼 주주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토트넘의 실제 주주(ENIC)에게 레비는 최고의 경영자였다. 미국 〈포브스〉는 토트넘의 시장가치를 33억 달러(약 4조5721억원)로 평가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2025-2026시즌에는 ‘매출 1조 클럽’ 가입이 확실시된다. 믿고 투자할 만한 우량 기업이다.<br><br>그런데 스포츠 팀은 일반 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주주도 아니면서 회사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심리적 주주(이해관계자·stakeholder)가 많다. 바로 팬들이다. 매 경기 6만2000석을 채우는 소비자, 추종자,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이다. 그들은 재정건전성보다 우승 트로피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레비는 최악의 회장이었다.<br><br>레비가 머물렀던 25년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답을 찾기가 어려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다. 아쉽게도 축구 세상에서는 오이디푸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br><br> 관련자료 이전 삼성 '갤럭시링' 배터리 열기와 함께 팽창…"비행기 탑승도 거부" 10-02 다음 이찬원, 오늘(2일) '2025 남도국제미식산업박람회' 개막식 무대 빛낸다 10-0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