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영웅’ 손기정, 1945년까지 마라톤 꿈은 계속됐다... 손기정 선생 활동 고찰 논문발표 작성일 10-02 40 목록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109/2025/10/02/0005404036_001_20251002144818559.jpg" alt="" /></span><br><br>[OSEN=우충원 기자] ‘민족의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이후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의 생애와 활동을 다룬 새로운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br><br>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최근 한국체육사학회지 제30권 제3호에 「미디어로 재구성한 일제 말기 손기정의 생애(1936-1945)」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손기정 선생이 베를린 올림픽 이후 단순히 일본의 압력으로 인해 선수 생명이 멈춘 것으로 알려진 기존 이해를 재검토하고, 당시 미디어 자료를 통해 그의 활동을 다시 조명했다.<br><br>허 교수는 논문에서 “1936년부터 1945년은 손기정이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에 입학하고, 일본의 압력 속에 마라톤을 중단하고 사회인으로 살았다고 쉽게 해석된다. 하지만 미디어 기록을 살펴보면 올림픽 이후에도 결코 육상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br><br>특히 194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한 손기정 선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보도가 발견됐다. 1937년 1월 25일 자 도쿄 아사히신문은 아사히체육상 수상 연설을 전하며, 손기정이 “이 상을 고향으로 가져가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4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도 반드시 활약해 보이겠다”라고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해 10월 14일 조선일보 보도에서도 손기정이 메이지대 진학 후에도 올림픽 2연패를 목표로 체계적인 훈련을 이어갔으며, 1937년 11월 열릴 예정이던 메이지신궁경기대회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나설 계획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br><br>그러나 도쿄 올림픽은 전쟁으로 인해 무산됐다. 허 교수는 “도쿄 올림픽 취소는 손기정에게 선수 은퇴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이미 세계 정상임을 증명한 그에게 국내 대회 출전은 더 이상 의욕이나 가치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br><br>아울러 이번 논문은 베를린 올림픽 이후 손기정을 바라본 일본과 조선의 시각 차이, 그리고 식민지 스포츠 스타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과 압박감도 조명했다.<br><br>허 교수는 “손기정의 삶을 단순히 ‘베를린 우승 이후 은퇴’라는 틀로 보는 것은 협소하다”며 “1936년에서 1945년까지 그의 행보는 당시 미디어 보도를 통해 확인되는 또 다른 차원의 스포츠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 10bird@osen.co.kr<br><br> 관련자료 이전 프랑스 핸드볼 리퀴몰리 스타리그, 파리 생제르맹 4연승 질주 10-02 다음 "업비트 청년 교육 '업클래스' 성료…스포츠 후원으로 ESG 실천하는 두나무" 10-0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