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속 전투 현장, 실제 1등 공신에 '이순신' 있었다 작성일 10-08 22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디즈니플러스 <탁류></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2h6WIx7vFf"> <p contents-hash="74f94b8cfac7df6a8f32a67cc648807a0b2e37d693ebff73e73d5f11d20d6d2a" dmcf-pid="VkqsAKZwpV" dmcf-ptype="general">[김종성 기자]</p> <p contents-hash="c98f18443b65f4b3b25b4c8f5ae33a3b743fccb7e4f81f3c6cd0c6fe232b8aa0" dmcf-pid="fEBOc95r02" dmcf-ptype="general">임진왜란 9년 전에도 큰 전란이 있었다. '니탕개의 난'으로 불리는 이 전란은 디즈니플러스 사극 <탁류> 제3회에서 묘사됐다. 산 중턱의 조선 성벽을 향해 벌떼 같은 여진족 군단이 함성을 내지르며 진격하고, 성곽 위의 조선군은 돌발 상황에 당황해 하며 후퇴하기에 바쁜 장면이다.</p> <p contents-hash="9e8e4e4e4578a1f9a3c352cafdac463079869e017e808b7dbcdd2bed365478e8" dmcf-pid="4DbIk21mU9" dmcf-ptype="general">훗날 포도청 종사관이 되어 마포나루의 폭력배들과 유착하게 될 이돌개(최귀화 분)도 함경도에서 벌어지는 이 전투 현장에 등장한다. 상관이 "두려워 마라", "자기 자리를 지켜라"며 독려하는데도, 이돌개는 호흡이 가빠지며 무기를 내려놓고 허겁지겁 달아난다.</p> <p contents-hash="5c35bbcd617c56656dfc5c196757748b3f8985a47fe91a7a8078c3ad3f575d76" dmcf-pid="8wKCEVts0K" dmcf-ptype="general">성문이 허술하게 뚫리자 읍성 주민들은 간단한 봇짐만 집어든 채 달아난다. 어린 소년인 주인공 시율(로운 분)은 여진족 군인의 칼에 어머니를 잃고 그 자신도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런 그가 9년 뒤 마포나루에 등장해 주먹 세계를 장악하는 스토리가 드라마에서 전개된다.</p> <div contents-hash="7e705da549b3e8cb733f797517e2d771b66a770d54878347116638a08c3318d1" dmcf-pid="6r9hDfFOpb" dmcf-ptype="general"> <strong>임진왜란 버금가는 환란</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c486595efd56de58c996bc5a87d93cc1175cb5661eadac7419685af830b0a16b" dmcf-pid="Pm2lw43IUB"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08/ohmynews/20251008175101068wmxy.jpg" data-org-width="1200" dmcf-mid="KRO2usnbu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8/ohmynews/20251008175101068wmx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드라마 <탁류>의 한 장면.</td> </tr> <tr> <td align="left">ⓒ 디즈니+</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ba967572258c5b32f859a1bf3a628a5975b24f52fe3db1ed950a8f8c003b048f" dmcf-pid="QsVSr80CFq" dmcf-ptype="general"> 니탕개의 난은 임진왜란에 버금가는 환란이다. <전북사학> 2017년 제50호에 실린 민덕기 청주대 교수의 논문 '임진왜란에 활약한 조선 장수들의 성장 기반에 대하여-니탕개의 난과 관련하여'는 두만강 연변의 군사시설 대부분이 공격을 받은 이 난의 그 규모를 이렇게 설명한다. </div>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a20ee81bc9bd421200dfa215936dc9164e4a1dc434990bf0baef97acda2e8321" dmcf-pid="xOfvm6phUz" dmcf-ptype="blockquote2"> "니탕개의 난은 1583년부터 기간도 4년 이상 끌었으며, 그 규모도 적을 때엔 5천 명, 많을 때는 2만~3만 명 규모였다. 그 피해도 6진(鎭)의 진보(鎭堡) 43개 가운데 두만강 연변의 대다수 진보가 모두 그 침략을 받았다." </blockquote> <div contents-hash="81130f1ae4544d89b231ffbcbc14caa10df7c2fc781d98eb02062682772143fd" dmcf-pid="y2CPKSj4F7" dmcf-ptype="general"> <br>이 난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군인이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조선 침략을 주도한 3인 중 하나인 우을기내(于乙其乃)를 사로잡아 목숨을 빼앗았다. 울지내(鬱只乃)로도 불리는 우을기내는 니탕개 및 율보리와 함께 여진족 진영의 3대 주역이다. </div> <p contents-hash="31dafee7237c2e52fa3080c242a10a896ce8daebb3d00e1333bb5291cc2c2236" dmcf-pid="WXn3Gg41zu" dmcf-ptype="general">1545년에 출생하고 1576년에 무과시험을 통과한 이순신은 함경도 최전방에 배치된 1583년에 우을기내를 상대했다. 이민웅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의 <이순신 평전>은 이때 이순신이 거둔 전공과 겪은 비애를 함께 설명한다.</p>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3c236d7f359dbd29c14dbe52a9daaacd263855fab44e4288de9252cd04a10ad7" dmcf-pid="YZL0Ha8tzU" dmcf-ptype="blockquote2"> "그는 부임한 뒤 작전을 꾸며 울지내 등을 꾀어내어 사로잡는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속 상관인 북병사(함경북도 병마절도사) 김우서가 이순신이 자신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함부로 작전을 벌였다는 내용으로 장계를 올려 조정의 시상(施賞)을 막았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선조실록>에 우을기내를 잡은 공로로 북병사와 그의 군관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blockquote> <div contents-hash="f9e8dc181678c1e1c9a5d200d5e0407efe573992c7d59ca50d17375ff4aeaebc" dmcf-pid="G5opXN6Fup" dmcf-ptype="general"> <br>김우서에게 전공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이순신이 실제 공로자라는 점은 은폐되지 않았다. 조정에 대한 김우서의 보고에서도 이순신의 역할이 드러난다. </div> <p contents-hash="7dc750c2e2d496c4335af442052662674d168ae584cc11637702b1cc32f20732" dmcf-pid="H1gUZjP300" dmcf-ptype="general"><역사비평> 2005년 8월호에 게재된 소설가 송우혜의 논문 '조선 선조조의 니탕개란 연구'는 "선조시대에 '무장 이순신'의 존재가 처음으로 크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니탕개의 난리를 진압하는 중에 벌어졌던 '우을기내 사건'이었다"고 한 뒤에 이 전공의 의의를 기술한다.</p>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42658ff716c8d0faa0b5d2c88021f9153e9f17087637decd3cf42ce084fbc891" dmcf-pid="Xtau5AQ0p3" dmcf-ptype="blockquote2"> "이 사건은 당시에는 매우 큰 주목을 받았다. 1차와 2차 니탕개란을 모두 통해서 아군이 오랑캐 졸개들은 많이 베었으나, 우두머리를 사로잡거나 목을 친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니탕개란 진압의 최고 수훈자로 꼽혔던 신립의 경우조차 마찬가지였다." </blockquote> <div contents-hash="1051ddfda36ef41ad83b5754aa14e03916732f0990050c984093f7ef99a8310d" dmcf-pid="ZFN71cxp3F" dmcf-ptype="general"> <br>조선시대 역사에서 가장 아슬아슬하고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는 종6품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이 1591년에 정3품 전라좌수사로 전격 발탁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이순신이 해상방위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이듬해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훨씬 더한 시련이 됐을 것이다. </div> <div contents-hash="2ac63ca0bde96cf50597c8d0374554391394865746f229548087b0904dea6f6e" dmcf-pid="53jztkMUUt" dmcf-ptype="general"> <strong>나탕개의 난에 부각된 사람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ed33784939fc33f4afccfbe32dbc08bfa3be3515ce704220429d77f52ae1568" dmcf-pid="10AqFERuU1"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08/ohmynews/20251008175102392lwiy.jpg" data-org-width="700" dmcf-mid="9PAqFERu0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8/ohmynews/20251008175102392lwi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드라마 <탁류>의 한 장면.</td> </tr> <tr> <td align="left">ⓒ 월트 디즈니 코리아 컴퍼니</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4218cf3405798411d725e9e16f71f49bf9100b0a6002cd5450a6059342b8b61b" dmcf-pid="tpcB3De705" dmcf-ptype="general"> 그 같은 파격적 기용은 서애 유성룡의 천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순신이 우을기내를 처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우혜 논문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발발 전해에 전라좌수사로 승진하게 된 단초는 니탕개란의 진압 과정에서 그가 세운 전공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div> <p contents-hash="815ec2378f75b4d9a984c4826990cbc2e15c5140f4faaf59e9253e13ad48a1c8" dmcf-pid="FTMXSdbYuZ" dmcf-ptype="general">드라마 <탁류>는 주인공 시율이 마포나루에 출현한 배경을 설명하고자 니탕개의 난을 거론했지만, 이 사건이 갖는 실제의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이는 이순신이 전라도 해안에 출현한 배경을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이다.</p> <p contents-hash="2246a1bc507441762522ca3106e97d8592fe4495bd3dae842dd9a1fb612fb8b4" dmcf-pid="3yRZvJKGpX" dmcf-ptype="general">니탕개의 난이 이순신만 배출한 것은 아니다. 훗날 임진왜란을 이끌 주역들이 이 전란을 통해 부각됐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제18권은 이때 공로를 세운 정언신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설명했다.</p>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717391e210157d263dbe518bbb91b4d84c3f462b925b22e04a090d8f767795e7" dmcf-pid="0We5Ti9HFH" dmcf-ptype="blockquote2"> "계미년 니탕개의 난 때 함경도순찰사로 발탁되고, 주상께서 운검을 하사하셨다. 공(公)은 사람을 알아보는 일을 잘하여, 막하의 관료들이 이순신·신립·김시민·이억기처럼 모두 명장이었다." </blockquote> <div contents-hash="3378d58db0ecab54bb3095abda86824d025c042cc0ac32d4d78ce389ecebdd18" dmcf-pid="pYd1yn2X0G" dmcf-ptype="general"> <br>신립은 임란의 패장이지만, 이순신과 더불어 김시민·이억기는 임란의 명장들이다. 종전 6년 뒤인 1604년에 선정된 선무공신 18명 중에서 이순신은 권율·원균과 함께 1등공신, 김시민·이억기는 2등공신이 됐다. 원균도 니탕개의 난 때 전공을 세웠다. 1등공신 셋 중 둘이 니탕개의 난 출신이었던 셈이다. </div> <p contents-hash="c89b63b1cc400dbd10ef2e8a44eb841b88e091248413f354239e39a6368ca098" dmcf-pid="UGJtWLVZuY" dmcf-ptype="general">임진왜란 3대 대첩인 한산도대첩(이순신)·행주대첩(권율)·진주대첩(김시민)의 두 주역도 니탕개의 난 출신이다. 니탕개의 난 때 김시민은 29세의 6년차 무관이었다. 이는 김시민에게도 소중한 전투 경험이었다.</p> <p contents-hash="c1420734880beb6abfa3ef71704681403fe1932c0423245488fb1d00c6773a12" dmcf-pid="uHiFYof57W" dmcf-ptype="general">임진왜란 선무공신 18명 중에 무과 출신은 11명이다. 11명 가운데 6명이 니탕개의 난 출신이다. 위의 민덕기 논문은 "선무공신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장수로 김준민·선거이·원호·이경록·최호·황진 등 11명의 전력을 검토하였더니 그들 또한 니탕개의 난 또는 1580년대 6진 지역에서 활약한 장수였음이 명확해졌다"고 알려준다.</p> <p contents-hash="3b7dcbee3d5379b95d57d32cb651dc1f334b456197b0d8858cb3d30abfb09a14" dmcf-pid="7Xn3Gg41Uy" dmcf-ptype="general">이순신의 참모들 중에서 나대용·송희립·변존서·배응록은 니탕개의 난을 진압할 목적으로 실시된 특별 무과시험인 별시(別試)의 급제자들이다. 이 정도면 니탕개의 난 출신들이 임진왜란을 상당부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 <p contents-hash="240167e6b8cc95686e6f1c71d3d4b862e09a03dbc631cbfa3dab202c69006551" dmcf-pid="zZL0Ha8tzT" dmcf-ptype="general">위 논문에 따르면,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1583년과 1584년에 실시한 무과시험의 급제자는 무려 803명이다. 첫해 601명, 이듬해 202명이다. 종전의 최고 기록인 1519년의 46명과 확연히 대조된다.</p> <p contents-hash="bad67c7a4895506f6de1dfb9ace97db6b372cd104edd9f21a93dfa435f62a0ab" dmcf-pid="q5opXN6F0v" dmcf-ptype="general">임진왜란 1년차인 1592년은 위 급제자들의 기량이 한창 왕성할 때다. 니탕개의 난이 한민족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가 이런 데서도 드러난다. 임진왜란에 가려진 이 사건에 대한 적극적 조명이 필요하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지드래곤, 손흥민에 '형' 소리 들었다.."축구보다 주장 좋아해"[핫피플] 10-08 다음 '김창옥쇼4', 日 관객 마음까지 사로잡았다…국경 뛰어넘는 사연에 눈물바다 10-08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