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수호랑 배지 품고 떠난 최상영 회장을 기리며" 고국을 사랑한 재일 교포 체육인의 마지막 인사 작성일 10-09 41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 부산 전국체전에서 다시 보자는 약속이 영원한 작별<br>- 수영장에서 만난 소년을 '아시아의 물개'로 <br>- 고국을 향한 자부심, 스포츠로 이어진 헌신의 기록<br>- 큰 귀처럼 넓은 품으로 주위를 품었던 따뜻한 성품</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1_20251009191407274.png" alt="" /><em class="img_desc">오랜 세월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교류를 이끈 최상영 영스틸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2년 동안 재일본 대한체육회 회장을 맡아 한국 스포츠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영스틸 제공</em></span></div><br><br>"전국체전 열리는 부산에서 봅시다. 숙소 근처 남포동에서 만나자고."<br><br>  지난주 수도권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필자 일행에게 건넨 이 인사가 그분의 생전 마지막 모습으로 남게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추석 명절의 따뜻한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 일본 도쿄에서 날아든 비보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br><br>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재일본 대한체육회장으로 활약하던 최상영 영스틸 회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7세.<br><br>  고인은 7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분이었습니다. 그날도 도쿄 사무실에서 업무를 챙기고, 수첩에 빼곡히 적힌 10월 부산 전국체전 결단식 일정에 연말 계획까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br><br>  그러나 퇴근 후 자택에서 갑작스레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고국과 체육을 향한 그의 열정은 최후의 순간을 맞았습니다.<br><br>  체육 기자로서 필자는 고인을 통해 모국인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을 위한 재일 교포의 헌신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운동선수 출신 성공한 기업가였던 고인이 있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2_20251009191407371.jpg" alt="" /><em class="img_desc">재일 교포 선수단을 이끌고 전국체전에 참가한 고 최상영 회장. 스포츠동아 캡처</em></span></div><br><br>1948년 일본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 2세인 고인은 수영선수로 이름을 날리며 간사이 액자인 대학에서 전국대회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편입해 졸업했습니다. 철강 상사에서 근무하다 1992년 철강재와 관련 기계설비 무역 회사인 영스틸을 설립했습니다. 영스틸은 지난해 도쿄 본사의 단독 매출만 765억 엔(약 71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고인은 현대자동차 일본 내 대리점을 운영하며 일본 판매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필자에게 "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텃세가 너무 심해 한국 차 판매가 무척 어려웠지만 자존심으로 버텼다. 승용차보다는 그나마 틈새가 보이는 버스에 주력한 적도 있다"라는 얘기를 해준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고국에 대한 애정이 뜨거워 보였습니다. <br><br>   고인은 재일본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12년 동안 일하면서 한일 스포츠 교류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재일본 대한체육회 60년사 출간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인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선배들의 땀과 눈물을 담았다"라고 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3_20251009191407422.png" alt="" /><em class="img_desc">고 최상영 회장과 유승민 IOC 위원 등이 재일본 대한체육회 행사에 참석했다. 대한체육회 홈페이지</em></span></div><br><br>고려대 김동원 총장은 "일본 고려대 교우회와 긴밀히 연락하며 필요한 조치를 다 하고 있다"라며 "고인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시절 최 회장과 만났던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몸은 일본에 계셨어도 늘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을 위한 일념은 고국 땅을 떠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한일 체육 교류에 할 일이 아직 많았는데 너무 안타깝다"라고 애도를 표시했습니다. 유 회장은 또 "일본 사회에서 우리 교포 선수들과 한인 체육을 물심양면 지원하며 재일본 대한민국 체육을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고 최상영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회장님의 헌신은 후세에도 큰 울림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br><br>  한국 스포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재일본 대한체육회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은 광복 직후인 1948년 재일본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재일본조선인체육협회의 지원으로 런던 올림픽에 선수단 60여 명을 파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태극기를 앞세워 출전한 첫 올림픽이었습니다. 고인은 과거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교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유니폼, 스타킹, 태극기 등을 마련해 주고 현지 숙박비, 교통비까지 충당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 도중이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도 재일본조선인체육협회가 경비를 부담하겠다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을 설득해 가까스로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4_20251009191407502.png" alt="" /><em class="img_desc">재일 교포들의 1988 서울올림픽 성금 모금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동아일보 캡처</em></span></div><br><br>1953년 새로 출범한 재일본 대한체육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확정되자 범 교포 차원의 모금 운동을 벌여 100억 엔(당시 약 516억 원)의 성금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72세 노인 교포가 500엔을 낸 예도 있었다'라고 돼 있습니다. 액수의 많고 적고를 떠나 교포 사회에서 뜨거운 동참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 돈으로 서울올림픽공원에 체육회관과 유스호스텔(현재 파크텔) 등을 건축해 올림픽 성공 개최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br><br> 재일 교포 체육인들은 경기력 향상에도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1954년부터 해마다 전국체전에 100명 내외의 선수를 출전시켰습니다. 특히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귀화하지 않은 재일 교포 선수들이 한국 대표로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안창림, 허미미-미오 자매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고인의 주 종목인 수영에서는 재일 교포들이 박태환 같은 유망주를 발굴해 가르친 적도 있습니다. 고인은 수영과 함께 일본의 강세 종목인 유도, 럭비 등에서 한일 교류를 주선해 한국의 경기력 향상을 이끌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5_20251009191407584.png" alt="" /><em class="img_desc">고 최상영 회장과 재일교포 유도 한국 국가대표 안창림. 재일본 대한체육회</em></span></div><br><br>고인이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2009년 별세)을 가르친 일화는 유명합니다. 고려대에 편입한 고인이 당시 서울운동장 수영장에 놀러 온 네 살 아래의 조 씨를 우연히 만나 재능을 발견하고 수영을 가르친 겁니다. 조오련은 해남고 1학년 때인 1968년 말 자퇴서를 내고 수영으로 이름을 떨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구두닦이, 간판 집 점원 일 등을 하며 수영선수의 길을 찾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경력도 없고 억센 전라도 사투리의 시골 소년은 서울 선수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오산고에 특기자로 진학하려다 퇴짜를 맞기도 했답니다. 그러다 고인을 만난 겁니다.<br><br>  고인과 가깝게 지낸 지인들에 따르면 최상영 회장이 당시 국가대표 수영선수 훈련 장소인 서울운동장 옥외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던 어느 날 수영선수 연습을 지켜보던 한 더벅머리 소년이 회장님께 다가와 어떻게 하면 수영선수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 회장이 수영 잘하느냐고 묻자, 그 소년은 고향 해남에서 아주 잘했다고 해서 그러면 한번 해보라고 한 뒤 대성할 잠재력을 발견해 개인지도까지 해줬다는 겁니다. 이런 인연으로 최 회장은 소년이 제대로 수영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수영연맹 집행부에 추천까지 했습니다. 그 후 그 소년은 양정고 수영선수로 입학한 뒤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최 회장의 직속 후배까지 됐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조오련이었다는 겁니다. 고인의 지인들은 "고인이 어린 학생 시절부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따뜻한 성품이 엿보이는 일화"라며 "그래서 더 고인이 그립고 그 빈자리가 커 보인다"라고 입을 모읍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6_20251009191407663.png" alt="" /><em class="img_desc">아시아 물개로 이름을 날린 조오련. 채널에이 자료</em></span></div><br><br>조오련은 양정고 2학년 때인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내며 '아시아의 물개'란 애칭을 얻었습니다. 당시 귀국 때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까지 했습니다.<br><br>  동아일보 기자 시절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논픽션을 연재한 한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은 "고인은 전 일본체전 수영 중등부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조오련에게 접영과 배영을 지도했다고 들었다. 유소년 시절에는 규슈의 산속 수영장에 갇혀있다시피 하며 한 달 동안 외부 접촉 없이 눈물 흘리며 훈련에만 매달린 적도 있었다"라며 "돌아가셨다고 하니 꿈만 같고 정말 그립다"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br><br> 고인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이 열리면 현지를 찾아 재일 교포 한국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인은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재일 교포 3, 4세의 자부심도 커지고 있다. 미래 세대들이 일본에서 인정받으며 공생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br><br>  고인의 주도로 재일본 대한체육회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함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성금 2억 엔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br><br>  고인은 2004년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공직선거법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할 때 참여해 2009년부터 재외국민 선거 제도가 도입되는데 일조했습니다. 2004년 상공의 날에 대통령 표창, 2018년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받았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7_20251009191407717.png" alt="" /><em class="img_desc">고 최상영 회장이 지난해 고려대에 발전 기금 10억 8000만 원을 전달하고 있다. 고려대 홈페이지</em></span></div><br><br>고인은 지난해 개교 120주년을 앞둔 고려대 발전을 위해 10억 8000만 원을 쾌척했습니다. 고려대에 따르면 누적 기부액은 33억 원에 이릅니다. 고인은 고려대와 와세다대 간의 협력 관계 구축에 힘썼으며, 2003년부터는 고려대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기부했습니다. 고려대 럭비부의 훈련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늘 감사한 마음을 새기며 나눔과 기부, 봉사를 실천하겠다는 다짐으로 살아왔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부를 실천하며 사회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br><br>  일본에서 장례 의식은 11일과 12일 거행됩니다. 서울에서는 22일 오전 11시부터 23일 오전 1시까지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국내 고별식을 열기로 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5/10/09/0000011738_008_20251009191407793.png" alt="" /><em class="img_desc">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에 나선 고 최상영 회장. 재일본 대한체육회 제공</em></span></div><br><br>고인을 떠올리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백호 '수호랑' 배지를 한동안 늘 가슴에 달고 다니던 모습이 선명합니다. 백호는 용맹과 보호의 대명사입니다. 그 배지는 고국에서 열린 세계 축제에 대한 자부심이자, 그의 모교 고려대를 상징이기도 합니다.<br><br>  내년 9월 일본 아이치·나고야에서 열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고인은 필자에게 "종목마다 한국과 일본이 자주 맞붙을 거야. 현장에서 다 같이 보면 좋겠네"라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말처럼 스포츠는 국경을 넘어 마음을 잇는 다리였습니다. 더군다나 스포츠는 역사적인 굴곡을 겪은 일본에서 재일 교포로 겪어야 할 온갖 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희망이었을지 모릅니다. <br><br>  부처님을 닮았다는 큰 귀만큼이나 넓은 품으로 주위를 품었던 고인의 빈자리는 오래도록 크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헌신과 온기는 후세에도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겁니다. <br><br>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br><br>[기사제보 tennis@tennis.co.kr]<br><br> 관련자료 이전 영화 ‘보스’, 개봉 7일 만에 170만 관객 돌파! 손익분기점 ‘초고속 달성’ 10-09 다음 허안나, 코 성형수술 대만족 “이혼해? 바람피우고파” (나래식) 10-09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