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스포츠 레전드 이상효 길영아 성화 불 밝혔다 작성일 10-17 53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17일 전국체전 개회식 점화자로 나서<br>이상효, 국내 핸드볼 전성기 주역 활동<br>길영아, 배드민턴 올림픽 금, 은 활약<br>"고향을 대표해 기쁘고 영광이다"</strong>‘전설의 540도 발차기’. 유튜브에서 인기가 높은 동영상이다. 조회수가 무려 339만 회에 달한다. 영상 속 주인공은 1999년 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 페더급 결승에서 540도 발차기를 성공시킨 우리나라 태권도 국가대표 노현구다. 당연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br><br>그로부터 26년이 지났다. 노현구의 540도 발차기는 언젠가부터 전설로 묻혔다가 유튜브를 통해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동영상을 통해 540도 발차기를 직접 목격할 수 있으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화려한 발차기로 유명했던 노현구는 이제 동래구청 태권도 감독이다.<br><br>노 감독은 지난 14일부터 강서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106회 전국체전에 선수들을 이끌고 참가하고 있다. 그는 이번 전국체전에서 그토록 원했던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15일 제자인 김민서가 여자 일반부 -49㎏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br><br>2016년 영국대표팀 코치로 일하다 동래구청 사령탑을 맡은 지 9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동래구청 여자 태권도팀도 전국체전에서 10년 넘게 ‘노골드’에 시달리다 금빛 전통을 다시 이었다. 그래서 노 감독과 금메달을 딴 김민서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br><br>감독으로 일한 지 9년 만에 전국체전 첫 금메달이라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하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노 감독과 부산 태권도계의 반응은 다르다. 힘들고 열악한 여건에서 어렵게 따낸 금메달이기 때문이다.<br><br>누구보다 노 감독의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는 “전국체전이 다가오면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심했다”며 “선수들 대진표를 보고 걱정한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힘겨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워낙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탓에 태권도계의 기대치는 높았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지도자의 능력만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했다.<br><br>그렇다면 이번 전국체전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비결이 있을까. 나름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우승을 차지한 김민서는 원래 -53㎏급 선수였다. 이번 전국체전에선 체급을 -49㎏으로 내려 도전했다. 전략은 성공했고,김민서는 보란 듯이 금메달을 따냈다.<br><br>여기에도 뒷이야기가 있다. 김민서의 키가 무려 174㎝다. -53㎏급에서도 큰 편이었는데 체급을 내린 탓에 -49㎏급에서는 키로 대적할 선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다른 팀 감독과 선수들은 키가 큰 선수가 체급까지 내리면 힘을 제대로 쓰겠냐며 고개를 꺄웃했다. 김민서는 가뿐하게 극복했다. 원래 살이 안 찌는 체질인 데다 대회를 앞두고 일주일 동안 무척 아팠던 영향으로 살이 저절로 빠져 감량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했다.<br><br>노 감독은 화려한 발차기로 유명했지만 제자들에겐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지 않는다. 동래구청이 여자팀이어서 여자 선수들에겐 무리한 기술일 수 있기 때문이다.<br><br>대신 노 감독은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한다. 단점을 지적하며 몰아세우기보다 자신감을 가지도록 칭찬 일색으로 제자들을 대한다. 김민서도 “감독님은 한 번도 선수들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그래서 선수들이 감독님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br><br>동래구청의 팀 분위기가 알려지면서 다른 팀 선수들이 부러워하고 있다. 급기야 내년에는 2명이 동래구청에 새롭게 합류한다. 그렇게 되면 동래구청 전력은 올해보다 좋아지고, 내년 전국체전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다.<br><br>자, 여기서 노 감독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 노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화려한 발차기를 좋아했다. 스스로 연습도 엄청나게 했다. 당연히 지도자와 부딪혔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방식을 밀고 나갔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자 지도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인정했다.<br><br>1999년 세계선수권 금메달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좌절됐다. 그때 노 감독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슬럼프에 빠졌다. 운동선수에겐 최고의 전성기에 오르면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노 감독은 끝내 전성기 시절의 폼을 회복하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만약 노 감독이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했다면 우리나라 태권도 역사는 변했을지 모른다. 물론 가정이다.<br><br>전자호구가 도입되면서 태권도가 ‘발 펜싱’이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노 감독의 마음은 안타깝다. 유럽이나 중동 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한국 태권도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노 감독 자신과 같은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가 나타나기를 꿈꾸기도 한다.<br><br>노 감독은 “현장에서 좋은 선수를 길러내는 것이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658/2025/10/17/0000123077_001_20251017211419697.jpg" alt="" /><em class="img_desc">전설의 ‘540도 발차기’ 주인공인 노현구(왼쪽) 동래구청 태권도 감독과 이번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제자 김민서.</em></span> 관련자료 이전 부산 스포츠 레전드 이상효 길영아 성화 불 밝혔다 10-17 다음 부산 스포츠 레전드 이상효 길영아 성화 불 밝혔다 10-1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