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고 죽는 여자들... 한국 사회가 죄스럽다 작성일 10-21 2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씨네만세 1196] 마침 내 극장 - 사양되는 것들을 위하여 <편지></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2pN0GBTsUK"> <p contents-hash="76a73543cf8505c5b322153712d5a0845d355ba4db2d3476c127e64dd5b9cedf" dmcf-pid="VUjpHbyOpb" dmcf-ptype="general">[김성호 평론가]</p> <p contents-hash="2ba7dc2927e4146ab11423e4a3d54b471b377a2c9662aca643eedb5c9cf34e80" dmcf-pid="fuAUXKWI3B" dmcf-ptype="general">인류학자 김현경의 저술 <사람, 장소, 환대>를 읽고 있다. 쉽게 뜨지 않는 시선으로 오래 머물러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문장이 여럿이다. 명저라 불리는 데는 과연 이유가 있구나, 감탄하며 한 장 한 장을 아쉽게 넘긴다. 사람과 장소, 환대를 하나하나 정의하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하기 위하여 환대하고 환대받는 장소가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동시에 환대하지 못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영토가 여전히 내 나라 안에 남아 있음을 깨우친다.</p> <p contents-hash="0d3b4ec6cd96944236803d04924917a04538328bc7133f1f297be4d1977394f3" dmcf-pid="47cuZ9YCFq" dmcf-ptype="general">김현경에 따르면 인간과 사람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지만,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글을 쓰는 나와 읽는 독자 모두가 생물학적 '인간'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인 '사람'으로 존재한다. 중요한 건 인간과 사람의 구분이 아니다.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 타인의 '인정'이다.</p> <p contents-hash="678d235515d9ef63750221d74f866623ba5ad28e999548184f24f51bfab162ba" dmcf-pid="8zk752Ghpz" dmcf-ptype="general">한 사람이 사람일 수 있기 위해선 다른 이의 인정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태아라면 누가 죽여도 상관없는 핏덩이인 나라가 있었다고 전한다. 법과 제도, 또 시민들이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하지 않는 노예며 노비는 물건과 다름없이 여겨진 문화 또한 곳곳에서 발견된다. 때로는 특정한 인종이, 성별이, 또 다른 구분이 사람과 사람 아닌 인간의 구분점이 됐다.</p> <div contents-hash="0b8071a2c3be86e744fbecfe1bdcdcf3ffc3e3fc1cc88a05b466663860806afd" dmcf-pid="6qEz1VHlU7" dmcf-ptype="general"> 오늘날 이와 같은 구분은 적어도 현대국가의 법률로써 존중되지 못한다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이가, 그리하여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이가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지는 않는가. 김현경의 글을 빌려와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a7157dd652930c9bf59870d8a4a3d692d969af62c0e01983b2f77c8b0e208c56" dmcf-pid="PBDqtfXS0u"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2262dnay.jpg" data-org-width="1280" dmcf-mid="BrXJ8N2uF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2262dna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편지</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마침 내 극장</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36086541b71dfe884d122f60ed1e7beaf07d86338b1ce280d9873e2da498edfb" dmcf-pid="QbwBF4ZvuU" dmcf-ptype="general"> <strong>편지를 읽는 두 개의 목소리, 그것이 바꿔내는 것</strong> </div> <p contents-hash="c70cbcea957b45b8a6aec6b1a5ada710bea4c61e9199e34b47a6c8dce47e4909" dmcf-pid="xKrb385Tup" dmcf-ptype="general">이달 영화 기획자 김다영이 기획한 '마침 내 극장'에서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중에 <편지>라는 제목의 단편영화가 눈길을 끌었다. 이현정 감독의 16분짜리 다큐로, 그녀가 직접 조성했다는 암막 커튼 뒤 좁은 공간에서 저를 찾은 관객들과 만났다.</p> <p contents-hash="ba416284661275a7228b13695557b634f9d32da83b0bd501a3651bc152ebe3d7" dmcf-pid="ypN0GBTs30" dmcf-ptype="general">영화는 매우 단순한 구성을 가졌다. 어두운 배경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의 얼굴이 화면 좌우에 들었다. 화면을 좌우로 2분할해 두고 각 면에 클로즈업한 여성의 얼굴을 띄워놓았다. 왼편은 베트남 여성이고, 오른편은 한국 여성이다. 왼편 여성이 베트남어로 먼저 편지를 읽는다.</p> <p contents-hash="c21d7ea7e6095353f8a9a361dd662c380506e6915ee737a20f4e3fa3de7f5f3f" dmcf-pid="WUjpHbyOU3" dmcf-ptype="general">잘못된 줄 알았다. 고백하자면 기획자 김다영이 너무 바쁜 나머지, 혹은 허술한 성격 탓으로 자막도 달지 않은 영화를, 것도 무려 베트남어를 무자막본으로 가져다가 틀어놓은 게 아닌지를 의심했다. 이곳을 찾는 이도 따지자면 독립영화, 그중에서도 다큐, 심지어는 단편을, 그것도 이런 독특한 행사까지 찾아와서 보는 이이고 보면 구태여 불만을 털어놓지 않을 만큼 배려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무도 먼저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덕에 나 또한 자막 없는 베트남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p> <div contents-hash="c7f45ee1f4641c2de1e8594fd58592cdddb03dc6a7691ef28a76fc70e1398077" dmcf-pid="YuAUXKWIuF" dmcf-ptype="general"> 전환은 한순간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았던 오른편의 여성이 갑자기 소리 내어 무엇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왼편의 여성이 베트남어로 읽어나간 지 한참 된 때였다. 둘이 겹쳐 읽는 글이 실은 하나란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편지였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남긴.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b20ea5fd7661c15844c814f893fa07b51a404fde322fa93a6c4642cad09b4e58" dmcf-pid="G7cuZ9YCpt"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2462frbe.jpg" data-org-width="1280" dmcf-mid="bAzELId8F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2462frbe.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편지</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마침 내 극장</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64270bffed106bdbf0d56bec19dc40ec0aa2f64b2f10ee24e383742dd9ea36de" dmcf-pid="Hzk752Gh31" dmcf-ptype="general"> <strong>따로, 또 같이 읽도록 한 이유</strong> </div> <p contents-hash="4d2b51a7c16fc519a9f441218c8dccf3b98786b1fb10be61185a6e5437e84c65" dmcf-pid="XqEz1VHlz5" dmcf-ptype="general">편지를 쓴 이는 후안 마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여성이라 했다. 열아홉 나이에 중년의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에 이른 베트남 신부의 이야기는 기실 그리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육성으로, 그러니까 낭독된 편지글을 듣는단 건 새롭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베트남 신부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들어본 적 없었단 사실을 곧바로 알게 되니 말이다.</p> <p contents-hash="8e54453961dd28a3b21387ba6b734b8ed1ee33c15a30f6060b154233aa817ef2" dmcf-pid="ZBDqtfXSFZ" dmcf-ptype="general">편지에 담긴 내용을 어찌 적어야 할까. 나는 차마 그 이야기를 구구절절 옮길 자신이 없다. 편지글에서 후안 마이는 제 심정을 토로한다. 제 남편에게 제가 겪은 어려움을, 고통을, 외로움을, 무관심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지를, 기댈 곳 없는 상황을, 환대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처할 자리 없는 환경을 말한다. 남편과 서로 말이 달라 소통할 수 없고, 한국말을 배우는 것조차 그 반대로 이루지 못한다. 도망친 적 없으면서도 다른 도망친 여인이 있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고, 아아 어디 그뿐일까. 도저히 더는 적어나갈 수가 없는 일이다.</p> <p contents-hash="32f399d8b05c59bc33280b6523e92a6071c227c8a1a3a07f1be734eeec58ad42" dmcf-pid="5bwBF4Zv0X" dmcf-ptype="general">영화 속 시차는 영화적 효과를 발하는 장치로써 기능한다. 그러니까 왼편 여인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편지를 읽어나가는 그 시간은, 이후엔 오른편의 여인이 도입을 읽는 중에 왼편 여인이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우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처음엔 호기심을 자아냈던 것이 나중에는 마침내 닥쳐올 상황을 자각하게 한다. 한 사람이 느낀 감정은 마침내 다음 사람에게 이어진다. 그는 이어 영화 바깥에서 그를 목격하는 관객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차를 둔 감정의 전이가 영화 안팎에서 이뤄진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감정의 전이 또한 체감한다.</p> <div contents-hash="4e228b2149832771d6e5751c0665842af4e9f418e6ce4ad56558bb03172a41bb" dmcf-pid="1Krb385T7H" dmcf-ptype="general"> 우측 여인이 편지글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왼편의 여인은 슬픔에 젖어 말을 잇지 못한다. 어느 순간 관객 또한 알게 된다. 후안 마이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다. 편지를 쓴 다음날 남편에게 맞아죽었기에.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dd43b85b7585b0f480c7284652d8efbd5e4d04ce49e27b838c81b069ecfaaedc" dmcf-pid="t9mK061ypG"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3723tcla.jpg" data-org-width="300" dmcf-mid="Ko6SwHcnp2"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3723tcla.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마침 내 극장</strong> 전시상영회에 참여한 감독들이 서울 세검정 일대 구옥을 직접 꾸며 다큐 상영을 진행했다. 사진은 <뼈와 살을 가진 유령> 상영 공간.</td> </tr> <tr> <td align="left">ⓒ 마침 내 극장</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2c6a8429ed9fc2befcd1e55b53d75a7a5b0eb1156ff3bb37967a7879d847a69f" dmcf-pid="FS8lDGAi3Y" dmcf-ptype="general"> <strong>학대 당한 그들의 이야기</strong> </div> <p contents-hash="39be0d60b3a84f9562a10002ce1778cdb9e1fd2ab8992e032fc76f0935846ba1" dmcf-pid="3v6SwHcn0W" dmcf-ptype="general">오로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제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 달라 청하였던 후안 마이다. 결혼이란 세상 끝에서도 의지할 사람과 만나는 일이라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충실하려 하였던 그녀였다. 마침내 결혼을 이어갈 의지를 놓아버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폭력, 그리고 죽음이었다. 가장 가까운 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편에 의해서였다.</p> <p contents-hash="ff70740adcd8d7239af3e28539291a71763203d0ef416bb2f100be10bfa4a2dc" dmcf-pid="0TPvrXkLzy" dmcf-ptype="general"><편지>는 같은 편지를 다른 사람에 의해 반복해 읽도록 한다. 후안 마이의 목소리가 한 사람의 목소리로,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거듭 반복된다. 그는 이와 같은 사정에 놓인 이가 그저 후안 마이 한 사람 뿐은 아님을 생각하도록 이끈다. 왜 아닐까.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 간 국제결혼은 매년 5000건에 이를 만큼 활성화돼 있다. 한국 남성, 중국 여성과 함께 가장 많은 쌍의 부부가 탄생하는 조합이다. 아예 양국 간 이성을 잇는 중개 사업까지 활발하게 영업한다. 서로의 이해가 맞는 선에서 이로운 일이다.</p> <p contents-hash="fb1c6c428cc0ac83978ebaf8ac496e4bf3b1118d6023c8a6aa67e743d35682fa" dmcf-pid="pyQTmZEo7T" dmcf-ptype="general">그러나 실상은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 여전히 적잖은 수가 매매혼이 아니냐는 혹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내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이 베트남 국적 여성을 맞이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후안 마이와 같은 극단적 사례도 벌써 여럿이 확인됐다.</p> <div contents-hash="1a98606f1154c6277b7ea28524f7eb2d15b2ddef56f33273a6dfb2a8fa9a45ef" dmcf-pid="UWxys5Dguv" dmcf-ptype="general"> 일생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한길을 걷겠다 서약하는 것이 결혼이다. 국제결혼은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자연히 그 마음가짐부터 중해야 할 것임에도 마치 물건 사듯 아내를 데려오는 사례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 결과가 역대 최고수준에 이른 한국과 베트남 간 국제결혼 이혼 증가율이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5678159771161a431dadc07545f6df7ac280ebeecca60ce56820fc10d2277ff6" dmcf-pid="uYMWO1wa0S"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4952dyxe.jpg" data-org-width="400" dmcf-mid="9WBwghiPU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1/ohmynews/20251021114614952dyxe.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마침 내 극장</strong>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마침 내 극장</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c7229b543545a24fdb21e6049b818bbf34eaf92ec0b623fd37c2de991288ecf5" dmcf-pid="7GRYItrN7l" dmcf-ptype="general"> <strong>환대하지 못하는 죄스런 사회의 초상</strong> </div> <p contents-hash="ddac36695900e7d5bbcd25c0c3c70bd22f8bcf8350d7560beab453d910de8b34" dmcf-pid="zHeGCFmj7h" dmcf-ptype="general">지난 한 해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이혼은 1215건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를 다룬 보도는 '국적 따면 무쓸모? 한국男-베트남女 이혼 건수 크게 증가' 따위의 제목을 달아, 저열한 편견이며 고정관념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한두 건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언론의 수준이며, 한국의 수준이다.</p> <p contents-hash="c56e870947fbb0176ff7370cebeb8cd561cbb954242f7227627bfc7e32a091da" dmcf-pid="qXdHh3sAuC" dmcf-ptype="general">후안 마이의 편지글에서 드러나듯, 국제결혼이란 한 사람만 바라 보고 제가 살던 문화와 관계를 모두 등진 채 건너오는 용감한 결정이다. 맞이하는 이는 건너오는 이를 부부로, 사람으로 맞이할 책임을 가진다. 그것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인정이고, 사회가 가져야 할 환대에의 의무가 된다. 후안 마이의 남편은 그녀에게 사람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아내의 자리도 물론 주지 않았다. 그 결과로써 후안 마이는 아내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살아낼 수 없었다. 마침내 한국이란 사회를 등지고자 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이루지 못하였다.</p> <p contents-hash="f173b413cb9e95f108ebf01edcd53f7352cf568e3f231872bdbf770c6b4b0752" dmcf-pid="BZJXl0Oc0I" dmcf-ptype="general">글 서두에 언급한 책에서 김현경은 환대를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라 정의한다. 환대를 통하여 타자는 비로소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는다. 인간이란 날 때부터 사람이 아니다. 사회적 환대에 의하여 사람으로 거듭난다. 내가 환대를 통해 사람일 수 있기에, 나 또한 다른 이를 환대해야 할 의무를 갖는 것이다.</p> <p contents-hash="1585382abd4e38c9759339dd53a643ce847d562ea29d20d763a3dae4998850ac" dmcf-pid="bj0NewQ93O" dmcf-ptype="general"><편지>는 확인케 한다. 한국이 제게 건너온 이에게 환대에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한국의 시민들이 제 나라를 찾은 이가 사회에서, 일터에서, 공론장에서, 심지어는 가족 안에서까지 사람의 자리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외면해왔음을. 나는 이를 죄라고 여긴다.</p> <p contents-hash="824f25e8d357a0bdafaa7caf979e1970d9ccfcef9fa70b7f3e6b998894f35173" dmcf-pid="KApjdrx2Fs"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이주희 의원 “위협정보 567% 급증했는데…KISA 정보공유 대상 5000곳 불과” 10-21 다음 조동혁, 8년 만의 무대 복귀…연극 ‘선율’ 출연 10-2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