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평생 모시고 산 母 돌아가시고 2년만에 비로소 독립”(순풍 선우용여) 작성일 10-30 14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XGDOIDfzWL">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25e6b2525d73d0ad5b6c1584fce29bc5acbb2074e2aa9060244a9371a28488db" dmcf-pid="ZHwICw4qyn"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사진=채널 ‘순풍 선우용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30/newsen/20251030105225308lxvd.jpg" data-org-width="640" dmcf-mid="GpHtFHael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30/newsen/20251030105225308lxvd.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사진=채널 ‘순풍 선우용여’ </figcaption> </figure>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8a57bd3684e75535434ca916a0c2d65699db542c4ac9da7343fe8918f455c099" dmcf-pid="5XrChr8Byi"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사진=채널 ‘순풍 선우용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30/newsen/20251030105225492axnm.jpg" data-org-width="640" dmcf-mid="HVTHXTiPl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30/newsen/20251030105225492axnm.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사진=채널 ‘순풍 선우용여’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2cccf3b458e56ebcbdf6efa6d4017cd6ad525d8b12aae152107e3441f93ced90" dmcf-pid="1Zmhlm6bvJ" dmcf-ptype="general"> [뉴스엔 박아름 기자]</p> <p contents-hash="583b4a4c28b5e3d35f45cc9ae77b9998dbca6c1cd5cf03ea46ae8addfd40121d" dmcf-pid="tFCTyCMVhd" dmcf-ptype="general">양희은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p> <p contents-hash="6ad6de6b83a981eef8d074cad35f0d0483fb4ae2132fce28e88d25b01000031d" dmcf-pid="F3hyWhRfle" dmcf-ptype="general">10월 29일 배우 선우용여 유튜브 채널 ‘순풍 선우용여’에는 ‘공중 화장실에서 씻던 양희은이 국민가수가 된 성공 비결(랜선 집들이, 선우용여 뿌듯)’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p> <p contents-hash="7365765e97d97e188f03641e9af1ca36ad72eba4841b7efa7d980fc3eb474876" dmcf-pid="30lWYle4vR" dmcf-ptype="general">이날 선우용여는 양희은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부여에 오픈한 카페 겸 갤러리를 찾았다.</p> <p contents-hash="a6cbfaf01d9ae4f43c92d0342f20369177c6bb9d0a48ddf1dd63b4c34700f785" dmcf-pid="0pSYGSd8SM" dmcf-ptype="general">양희은은 어머니 물건이 가득한 곳에서 "내가 자식 기르는 것만큼 엄마를 뒷바라지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p> <p contents-hash="653c414667eca26f169930f64422f4f86ebcf84c1031cf8e7237598c0c7ce41f" dmcf-pid="pUvGHvJ6yx" dmcf-ptype="general">양희은은 "아버지랑 팔자는 사나웠지만.. 완전히 그 당시 이혼의 첨단이었다. 1962년에 이혼이란 단어가 대한민국에 없었다"며 "엄마가 화딱지 나고 자존심 상해서 친정에 간다고 나갔는데 그 밤에 아버지가 새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더라. 미쳤다 아버지가. 아주 눈이 훽 돌았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이혼이 돼버렸다. 토지 때문에 인감이 필요하다고 달라고 해서 줬더니 그때는 '쓱싹'이 됐다. 이혼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돼버렸다. 아주 그래서 한이.. 나이 들어선 그러더라. '내가 그때 좀 참을 걸'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잡고 다니는 걸 보면 그렇게 하염없이 보더라"고 회상했다.</p> <p contents-hash="5e7a45032dbf5fb3c5cbf995006e2de3c8175e5ac8a957288788f81c7170c3aa" dmcf-pid="UuTHXTiPSQ" dmcf-ptype="general">양희은은 "난 엄마를 평생을 모시고 살았다. 결혼해서도 뉴욕에서 모시고 살았고 와서도 엄마 방이 항상 있었다. 공주방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직 만 2년이 안됐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독립된 인간이 된 것 같다. 늘 엄마가 뼈에 박혀있다. 뼈하고 모든데 박혀있다"며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p> <p contents-hash="aa9ee1ddff2e0985218775fdcdf0bbade1f8d01905bc474442a948257f081b50" dmcf-pid="u7yXZynQSP" dmcf-ptype="general">양희은은 "엄마의 목소리를 물려받아 어쨌든 원치 않았지만 55년을 지금까지 가수하고 있지 않나. 쌈짓돈을 만들어 엄마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사람들도 나처럼 엄마를 추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대한민국의 힘은 결국엔 여자, 어머니, 할머니의 힘이다. 6.25를 겪은 사람들 얘기가 그렇다. 아무것도 없을 때 할머니가 우리를 먹여 살렸다고. 외할머니, 엄마로 이어나가는 힘이 대한민국의 힘이다"고 힘주어 말했다.</p> <p contents-hash="3654a08d4c7a285702f3962c80090cfb7b187a239fb1aeecba5e0408e0dddf27" dmcf-pid="7zWZ5WLxy6" dmcf-ptype="general">그러면서 양희은은 "우리 엄마는 묵묵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양희은은 "우리 엄마는 양장점을 했고 명동에서 루크라는 데, 또 반도 조선 아케이드에서 샤노아르 그렇게 여러 군데 했다. 그러다가 가게가 완전히 불이 나면서 그때 친구 부채 보증 쓴 게 겹쳤다. 제일 친한 친구가 도망갔다. 우리 집이고 뭐고 다 날아갔다.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래서 내가 기타 들고 명동에 나갔다"고 가세가 기울게 된 계기를 공개했다.</p> <p contents-hash="6429f67c94932d106f4d30ed7cb1efa2e23d796ff1b2850f8df606447d610dc9" dmcf-pid="zqY51YoMy8" dmcf-ptype="general">양희은은 "그날로 송창식 선배가 10분을 내주면서 이종환 선생님 계실 때 노래를 해보라 했다. '형 얘 노래 좀 들어보세요'라고 했는데 그날로 합격됐다. 근데 거기다 대고 가불해주실 수 없냐고 했다. 처음 본 햇병아리, 달걀도 안되는 것이 대놓고 그러니 날 진짜 이상하게 쳐다보더라. 근데 뒤에서 송창식 형이 아마 꾸벅꾸벅한 것 같다. 그 4만원을 받아서 일하는 아주머니 주고 우리 집에서 나가라 했다. 왜냐하면 아주머니 돈까지 우리 엄마가 쓴 거다. 엄마는 나가서 가게에서 돈을 버니까. 그 아주머니가 우리를 다 거둬주고 키워주신 거다. 근데 그날로 돈 4만원에 나가라 그랬다. 진짜 모질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p> <p contents-hash="4c40c6496bf96e1cb6a0f35ded8c3b4e8c02240c2264f64e7211c048b8e485fa" dmcf-pid="qBG1tGgRT4" dmcf-ptype="general">이어 양희은은 "차비가 없어 학교에 못 가, 연탄도 없어, 쌀도 없어 전무했다. 난 31살 때 비로소 내 돈을 주고 옷을 처음 사봤다. 다 얻어입었다. 근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난 큰 딸로 사랑을 너무 받았다. 내가 트랜지스타가 갖고 싶다하면 우리 아버지가 색깔별로 소니를 사줬다. 그리고 그때 미도파에서 미제 같은 걸 팔지 않나. 그러면 첫 젖몽우리 나오는 딸을 위해 예쁜 레이스로 된 브래지어와 팬티까지 사줬다. 그래서 난 그런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은 없다"고 이야기했다.</p> <p contents-hash="e0e2f018d65e6e9f70ee8362904c2b1433be78ad1f6b3c933232946a17992df0" dmcf-pid="BcQdJQZvvf" dmcf-ptype="general">한편 양희은은 "어떻게 가수가 됐냐고 물으면 '돈이 없어서요'라고 했다. 그러면 되게 깜짝 놀란다. 등록금이 없어서, 동생 둘 학자금이 없어서 노래를 한 건데 그럼 그걸 뭐라고 미화시켜서 얘길 해야하나"라며 "난 30살 때 암수술 하고 언제나 떠날 듯이 살아야지, 텅빈 듯이 살아야지. 내가 노년에 무슨 계획을 세우나. 오늘 하루밖에 없다. 그럼 끝이다. 그걸 알기까지는 나이가 필요하다. 나이가 되면 놓고 싶지 않아도 탁 놓아지는 게 있다. 명품이 왜 싫냐 하면 무거워서 싫다고 한다. 뭐든지 가벼운 게 좋다. 가벼운 데다가 명품값을 통장에 넣어다니면 된다. 그리고 앞날에 대한 계획은 모른다. 그냥 가면 끝이다. 그래서 정리를 빨리 하려는 거다. 언제 갈지 모르니까"라고 자신의 인생 계획에 대해 말했다.</p> <p contents-hash="666e4edd45ec52e5698bb29a2b073145a30c734c355822975fc25ede178f61bd" dmcf-pid="bkxJix5TSV" dmcf-ptype="general">뉴스엔 박아름 jamie@</p> <p contents-hash="3c06736d5a2dbca7f97c3410d0966f8821deddabb1302def21ca68dfb86fafff" dmcf-pid="KEMinM1yl2" dmcf-ptype="general">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뉴스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박보검과 근무, 1시간에 100만원"…꿈의 직장에 3일간 '10만 명' 지원 10-30 다음 어도어, 뉴진스와의 전속계약 1심 승소... 法 “신뢰 파탄 단정 어렵다” 10-3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