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무자비한 냉소의 묵시록 '부고니아' 작성일 11-06 13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영화 '부고니아' 리뷰</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8iFlbfWI5i">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ee5a1c330944a59a958be7afdd47644380b2c1e97696cffb95d7fd511d0cdf8d" dmcf-pid="6n3SK4YC5J"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5947tttz.jpg" data-org-width="720" dmcf-mid="2lqH6RtWX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5947tttz.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391599720f50306a840884aee51f5b98d55eb3a4757ae8d7ad51de7546bf22e3" dmcf-pid="PL0v98Gh5d" dmcf-ptype="general"><br>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억울하겠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영화 '부고니아'(11월5일 공개)는 범작에 가깝다. 2009년 '송곳니'를 시작으로 2023년 '가여운 것들'까지 란티모스 감독은 최근 10여년 간 가장 파괴적이면서 완성도 높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작가이자 연출가. 평범한 감독이 '부고니아' 정도 되는 작품을 내놨다면 아마도 커리어 하이라는 평가를 받을 테지만, 이제 란티모스 감독 영화를 향한 기대는 매번 걸작에 가까운 그 무엇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괴작이라도 되길 원한다. '부고니아'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의 리메이크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란티모스식(式) 연출로 재창조하고 그만의 시각으로 전환한 영화인 건 명백하나 원작의 자장은 20년이 넘어서도 약해질 기미가 없다.</p> <p contents-hash="1376ed51c7be8febf87d39c488226aa46ca50e1ad3e4d9b022e6f4be566ec981" dmcf-pid="QopT26HlGe" dmcf-ptype="general">하층민 노동자가 막대한 권력의 자본가를 지구 존립을 위협하는 외계인으로 여겨 납치·감금·고문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건 같지만, 일단 이야기가 궤도에 오르면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켜라!'와 다른 경로로 달린다. 말하자면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켜라!'의 버전업(version up)이다. 원작이 병구의 시선에서 신자유주의와 자본 권력의 횡포를 결국 폭발하고만 광기로 난도질한다면, 리메이크작은 양극화를 뉴노멀로 설정한 뒤 제3자의 시각에서 혐오·음모·반지성·계급·젠더 등 20여년 전엔 희미했으나 오늘날 시급해진 이슈들을 조소와 냉소를 가득 머금은 채 관찰한다. 장 감독이 병구를 연민하고 만식에 분노했던 것과 달리 변화된 시점과 달라진 시대에 따라 란티모스 감독은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는다.<br>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2fd2ae087d6cb33f0d0ec2db570791da7596a3ab292dba281f5c104a88f3101b" dmcf-pid="xBOoY5AiXR"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6125ipen.jpg" data-org-width="720" dmcf-mid="VBbZQd3GH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6125ipen.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67bb036e18157ab60679ff8820c9118a12c6da8792241c43d31a795928d2a8ce" dmcf-pid="yw2tRnUZXM" dmcf-ptype="general"><br> HBO 시리즈 '석세션'의 작가 윌 트레이시가 각본을 쓴 '부고니아'는 란티모스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직접적인 풍자극이다. 전작에서 신화를 차용하고 고전을 변주하며 우화를 경유하는 등 주로 간접 형식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파고들었던 그는 신작에서 현재 미국 사회, 더 나아가 바로 지금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각종 위기의 행태를 직접 전시한다. 일례로 미셸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가장한 합리주의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테디는 궤변과 음모론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보다 정신적으로 약한 이들을 가스라이팅한다. 그리고 양극단에서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인 이들은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미셸은 탈진실의 화신, 테디는 반지성의 아이콘. 미셸은 생태주의의 적이고, 테디는 극우의 선봉이다.</p> <p contents-hash="5e095932f3a98b9e50bc5fe1c3bd47c05a71ed1fb212a0f4ed9107cd21a87dc4" dmcf-pid="WrVFeLu51x" dmcf-ptype="general">다만 란티모스만의 판타지, 란티모스만의 심연을 지지해온 이들에게 대놓고 벌이는 '부고니아'의 너른 풍자는 도무지 탐탁치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이 영화엔 란티모스 감독이 '더 랍스터'(2015)나 '킬링 디어'(2017) 등에서 보여준 묵시록적이고 종말론적 분위기가 그득하고, '지구를 지켜라!'와는 달리 란티모스 영화 특유의 건조하고 차가운 기운이 러닝타임 119분 내내 서려있다. 하지만 스타일을 상호보완하는 이렇다 할 통찰을 내보이지 못한 상태에서 시대의 문제들을 개괄하며 판단을 보류한 채 거리두기 하는 태도는 다소 과장해서 얘기하면 직무유기처럼 보인다. 러닝 타임의 상당 부분이 미셸과 테디의 대화 장면인데다 이들의 대사로 거의 모든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은 우리가 이전에 알던 란티모스 영화로 보이지 않는다.<br>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33df92de98d69131e10ddcf89c95fcb99f6596f8239db69727de8406ffceb74a" dmcf-pid="Ymf3do71GQ"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6285kjnj.jpg" data-org-width="720" dmcf-mid="fpa6mhRfX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6285kjnj.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5de8f70ec184418a3bf06a725733ea1193f7fa272709004e5fc1f87992804d25" dmcf-pid="Gs40JgztYP" dmcf-ptype="general"><br> '부고니아'의 약점을 보완하는 건 엠마 스톤과 제시 플레먼스다. 이제는 란티모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부르는 게 적절할 듯한 스톤은 자신이 왜 마흔 살이 채 되기 전에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품에 안았는지 증명하는 듯한 카리스마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영화와 연기를 위해서라면 머리를 밀고 피를 뒤집어 쓰는 것쯤은 대단치도 않다는 듯한 그는 강만식보다 더 징그럽고 치밀한 미셸로 그때 그 백윤식의 잔상이 남지 않는 폭발력과 냉혹함을 선사한다. 플레먼스는 머지 않아 그가 오스카를 손에 넣게 될 거라고 확신하게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여전히 우리는 20여년 전 신하균이 보여준 미치게 슬픈 눈빛을 사랑하겠지만, 플레먼스가 재해석해 내놓은 광기의 정중동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순 없다.</p> <p contents-hash="b6f3efda5895008d7c26a8b3c45a29f6274c8a9bce2fabda39ce043568a0f8e3" dmcf-pid="HO8piaqFG6" dmcf-ptype="general">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결국 '부고니아'의 마지막 시퀀스에 관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란티모스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의 에필로그를 본 뒤 그것을 갱신하기 위해 리메이크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 지긋지긋한 종 그 자체에 있다는 것. 새로고침 하긴 했으나 리메이크가 원작의 가차 없는 주장과 결론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그것을 계승·변주하려 하고 있다는 점은 '지구를 지켜라!'의 아우라가 22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낡지 않고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할 게다. 그렇다면 '부고니아'의 한국어 제목을 '지구인을 지켜라!'로 다시 붙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br>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de258394660814d1683b18670a7c8f1c55621cb5ef45c2eed7340f2b47374488" dmcf-pid="XI6UnNB3t8"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6436wdtm.jpg" data-org-width="720" dmcf-mid="45TktUmj1n"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6/newsis/20251106060416436wdtm.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d18523e74de0c96b0ba5c4c116367525791816dd7546041a676fe52a2913a2ac" dmcf-pid="ZCPuLjb0t4" dmcf-ptype="general"><span>☞공감언론 뉴시스</span> jb@newsis.com </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생존 신고하러 왔다” 박미선, 유방암 투병 끝에 ‘유퀴즈’로 복귀 11-06 다음 ‘나는 SOLO’ 영수, 정숙vs현숙 저울질 ‘소름’ [TV온에어] 11-0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