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츠페터, 광주의 증인을 다시 부르다 작성일 11-06 13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제2회 휘슬러 영화제] 다큐 '5·18 힌츠페터 스토리'가 남긴 질문</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zCPyH7OcFL"> <p contents-hash="cec6636798634eca9b5cd17357b4aedfa899527284510cc14b7df64d2b2ef7dd" dmcf-pid="qWJ532Tszn" dmcf-ptype="general">[이향림 기자]</p> <p contents-hash="5fd75787cf5e91c0c2955a9a9d2c9659062a55228258742ba8fbaa7afa1bda7d" dmcf-pid="BYi10VyOFi" dmcf-ptype="general">세상에는 많은 영화가 있다. 보고 나서 잊을 수 있는 영화가 있고, 보고 난 뒤에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이번 다큐가 그런 영화였다.</p> <p contents-hash="d2dd804d0a08cebf2383c47a5989ec78bfd6ffac53302c232550e94f52b9c634" dmcf-pid="bGntpfWIzJ" dmcf-ptype="general">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에 대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였다. 그러나 그때는 주인공 택시 기사에게 더 마음이 갔고, 힌츠페터는 '적당히 고마운' 이름으로만 남아 있었다. 이번 다큐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왜 그가 우리 현대사의 빚으로 남는지를.</p> <p contents-hash="906dcf04f85e2f869e1650c3fde6cb746bff2c796adf0d99faaa5bc362fcb015" dmcf-pid="KHLFU4YC0d" dmcf-ptype="general">힌츠페터는 독일 ARD 도쿄 특파원이었다. 1980년 5월 20~21일 광주에 들어가 첫 촬영을 했다가 일본을 거쳐 독일로 필름을 보냈고, 사흘 뒤인 1980년 5월 23일 곧장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광주를 재차 기록했다. 다큐 속에서 광주 시민군이 무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힌츠페터는 '전혀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카메라를 내려놓고 광주 시민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다'고 회상한다. 죽은 자식이 들어 있는 관을 붙잡고 오열하는 어머니를 다 찍고 나서야, 현장을 벗어난 뒤에야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그는 터져 나오는 슬픔을 유예하고, 진실을 폭로할 수 있는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p> <p contents-hash="ef5be037ee0ae9c4c32ffe6ab8987823ffbb80e32d1829d5469c088140a4d497" dmcf-pid="9Xo3u8Gh7e" dmcf-ptype="general">도시는 봉쇄됐다. 그럼에도 광주 시민은 외신 기자 한 사람이 왔다는 소식에 몰려 나와 환호했다. 과일과 음식을 쥐여 주며 '우리의 지금을 세계에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믿기 어려운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릴 손, 그 손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 시간에 국내 언론의 보도는 데스크에서 막혔고, 어떤 기자는 부끄러움에 펜을 놓았다. 방송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방송사 시설 일부가 불에 훼손되기도 했다. 그을린 건물은 시민들의 울분과 저항의 흔적처럼 남았다.</p> <p contents-hash="6ba188c3653ea35968b299ab35cd860d6650f67efac6c4e88fd6aba7934f85e5" dmcf-pid="2Zg076HlFR" dmcf-ptype="general">광주를 담은 필름은 독일에서 편집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 종교인과 한국인들의 목숨 건 전달로 비디오는 국내 대학가에 숨어들었다. 지식인은 그제야 참상을 직면했고, 민주화의 열기는 더 치열해졌다. 힌츠페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실에 얼마나 더 늦게 닿았을까.</p> <p contents-hash="724cde62af2bfc66738e4a4ac44353b8e12251c41ea22ead12fc13a49fca3247" dmcf-pid="V5apzPXSUM" dmcf-ptype="general">광주의 참상뿐 아니라 1986년 광화문 시위를 취재하기도 했던 힌츠페터는 사복 경찰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목과 척추에 큰 부상을 입었다. 장영주 감독이 KBS 자료실에서 찾아낸 미공개 테이프 속, 그때의 힌츠페터는 담담히 말한다. '나는 평화롭게 촬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 기자들이 '폭행당한 외국인 기자'를 취재해 남긴 기록이지만, 그 영상은 뉴스에 나가지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화면 속 말 한마디, 떨림 한 컷이 뒤늦게 증언이 되어 우리 앞에 도착했다. 그날의 상처는 깊었다. 힌츠페터는 이후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라야 했고,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p> <div contents-hash="9cbbddd09bb184ffd025726ba74890ab9f2e3c830533f02d7f82f816d6071623" dmcf-pid="f1NUqQZvux" dmcf-ptype="general"> 그의 곁을 지킨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는 남편의 밤을 증언한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면 광주의 군인들이 보인다고 자주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힌츠페터에게 광주는 상처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그곳은 민주주의를 위해 용감하게 맞선 시민을 만난 자리였다. 그래서 그는 생전에 '광주의 젊은이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 일부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그의 묘는 독일 북부 라체부르크의 공원묘지 교회당(Friedhofskapelle Seedorfer Straße, Ratzeburg)에 있다. 업적의 크기에 비하면 묘는 소박하다. 일상과 다르지 않은 풍경 속에, 한 사람의 양심이 조용히 누워 있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76598260551e080b241838b05af25e2eb81ddb04082a3be7b827d7fc1dfdbd5" dmcf-pid="4O8vYUmj7Q"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6/ohmynews/20251106103602658dwnl.jpg" data-org-width="1280" dmcf-mid="7Zi10VyO7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6/ohmynews/20251106103602658dwnl.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질문에 답하고 있는 장영주 감독</strong> 그는 "어디든 틀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언제든 이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성재, 장영주, 김승필</td> </tr> <tr> <td align="left">ⓒ 이향림</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8577a74a609b238e415219442f9068614136a9a5e4a6e82c3d2f7b0f9b2e6696" dmcf-pid="8I6TGusA3P" dmcf-ptype="general"> 휘슬러영화제 김성재 집행위원장은 '국가 폭력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같은 고민을 품은 사람들과 지난해 영화제를 만들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영화제가 열린 장소가 '노무현시민센터'였다는 점도 상징적이었다. </div> <p contents-hash="5fb20fba37fa201f31ebff1b90b53420c3172743fae0a39dd1f65c84f94e50b1" dmcf-pid="6CPyH7Ocp6" dmcf-ptype="general">힌츠페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관객은 촬영기자로서의 이면에 힌츠페터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 궁금해했다. 성탄절이 되면 카드를 보내고 안부 전화도 항상 먼저 건네던 다정한 사람으로 장 감독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힌츠페터를 만난 후 '취재원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신념을 깼다고 했다.</p> <p contents-hash="94d6f6100b6aa1b7eb7e93db1f68b6128eec14ef80da12c0443713bda218edc3" dmcf-pid="PhQWXzIkz8" dmcf-ptype="general">가슴으로 광주의 진실을 담았던 그를 우리는 어떻게 예우하고 있을까? 또 다른 관객은 '망월동 구묘지의 작은 동판 말고는 무엇을 찾아야 하느냐'고 물었고, 장 감독은 국가 차원의 예우가 부족함에 아쉬움을 표했고, 힌츠페터를 민주화 유공자로 예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필씨는 영화 속과 다른 사실도 전했다. 그의 아버지 택시 기사 김사복은 영어에 능했고 민주 인사의 통역을 맡았으며, 힌츠페터와 사전에 알던 사이였다. 두 차례 광주 동행 뒤 그는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다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힌츠페터도 같은 짐을 짊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p> <p contents-hash="e56d955cfb15bacf05d9b2b7adec48a4a0974dc7375cb413ad9b155488325b5a" dmcf-pid="QlxYZqCEz4" dmcf-ptype="general">관객석에는 민병덕 국회의원도 있었다. 그는 1980년대 대학가를 돌던 힌츠페터의 비디오가 군부 독재를 끝내는 데 끼친 영향을 증언한다. '더 많은 새싹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상영의 장을 더 열겠다고 약속했다. 장 감독은 '국회뿐 아니라 소규모 공간이라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 틀겠다'고 화답했다.</p> <p contents-hash="406ceb7a9fe696ea1d78690dfee5e495dba38d37d984155851efe83d0a5c8610" dmcf-pid="xSMG5BhDUf" dmcf-ptype="general">극장을 나서며 질문이 맴돈다. 우리는 어쩌다 은혜를 잊는가. 정권의 논리에 따라 역사 인식이 흔들릴 때, 그 역사를 지탱한 타인의 용기와 희생에 대한 예우도 함께 흔들린다.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록을 현재형으로 불러와야 한다. 그래서 5·18기념재단과 한국영상기자협회는 2021년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제정했다. 마침 어제인 11월 5일 '한밤의 계엄령–2시간 38분의 기록'으로 12·3 불법 비상계엄 당시 국회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국내외 국회 출입 영상기자 48인이 뉴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p> <p contents-hash="950b78fcd1082891ea45ae7eea080f2a0415f2dc7ea6d276ab25009351bf2432" dmcf-pid="y6Wenw4qpV" dmcf-ptype="general">색깔론의 낡은 굴레를 벗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가 과거를 정확히 배우고, 그에 걸맞은 예의를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12·3 같은 비상식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한강이 말했듯, 과거가 현재를 살리게 하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과거를 정확히 규정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시작으로, 이 다큐가 더 많은 관객에게 닿기를 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윤태화, 신곡 '사랑고백' 기습 발매…송광호 작곡·권병호 연주자 참여 11-06 다음 '이혼 후 임신' 이시영, 전 남편 아이 출산…둘째 딸 품에 안았다 [종합] 11-0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