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프랑켄슈타인'... 나는 원작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작성일 11-12 8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씨네만세 1213] <프랑켄슈타인></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KdCSxOAiUW"> <p contents-hash="76a73543cf8505c5b322153712d5a0845d355ba4db2d3476c127e64dd5b9cedf" dmcf-pid="9JhvMIcn7y" dmcf-ptype="general">[김성호 평론가]</p> <p contents-hash="73779c8a6f59ccca3666b062df29e633a13fe99edca1e0394614cf9b7fa4bc6e" dmcf-pid="2ilTRCkLuT" dmcf-ptype="general">오랜 기간 기예르모 델 토로는 소위 '쓰리 아미고'의 가장 처지는 일인 정도로 취급받아왔다. 적어도 <셰이프 오브 워터>로 오스카의 주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멕시코 출신 감독 셋을 일컫는 '쓰리 아미고'는 델 토로에 더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알폰소 쿠아론이 구성원이 된다. 이들이 모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는 사실은(그것도 뒤의 둘은 무려 두 차례나!) 수십 년 전 할리우드가 수혈한 멕시코산 피가 얼마나 건강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한다.</p> <p contents-hash="7997c3b096bcefd003cf4dd516e801e131ee10ac55a79ad7033d93508dffa8b5" dmcf-pid="VnSyehEopv" dmcf-ptype="general">셋 모두가 할리우드의 정점에 오른 지금에 이르러서 이들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 하는 질문은 영화 애호가라면 수십 번씩은 받아본 익숙한 주제다. 이들 각자가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부터 지향이 극명히 다르다는 점, 또 완성된 작품에서 각자의 스타일을 선명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러한 질문의 이유가 된다. 델 토로는 셋 중에서도 독특한 색채를 가진 감독이다. 거대 로봇이 컨테이너 박스를 무기처럼 집어 들고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그가 아니고서 다른 누구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겠는가.</p> <div contents-hash="ba4745a7410c38bdebf0bdbe01cd544fc47b6be31393ca554c465b50f6fc387f" dmcf-pid="fLvWdlDg7S" dmcf-ptype="general"> 무튼 기예르모 델 토로도 성공에 이르고 나니 수구초심할 마음이 들었던가 보다. 마치 <반지의 제왕>으로 정점에 오른 피터 잭슨이 어린 시절 최애였다는 <킹콩>을 자기 버전으로 만들었듯, 또 < 공동경비구역 JSA >로 성공한 박찬욱이 무려 '복수'를 주제로 세 편의 기기괴괴한 작품을 연달아 찍었던 것처럼, 그 또한 가장 저다운 이야기를 펼치기로 결심했단 뜻이겠다. <프랑켄슈타인>은 동화적이고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하고 우악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델 토로의 영화가 가장 멋들어지게 뛰어놀 수 있는 장이 되어줄까. 그건 델 토로를 기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몹시 흥미로운 주제였을 테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712c385c906b7c987a80d2b17facd9e739968a99930bbd7ef220684e2a133c0f" dmcf-pid="4PwsfELxzl"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3238rmqk.jpg" data-org-width="1280" dmcf-mid="YE04vK0H7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3238rmqk.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프랑켄슈타인</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넷플릭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29f3e8c4bb3e07544e284d53bb52249e6fca26b300716b69b588349c5314ee88" dmcf-pid="8QrO4DoMUh" dmcf-ptype="general"> <strong>창조자와 창조물, 그들 각자의 이야기</strong> </div> <p contents-hash="586f05aca851051f5f11158b8a4108434e0c1773156cf7372bf2ac5ce8c04109" dmcf-pid="6xmI8wgR0C" dmcf-ptype="general"><프랑켄슈타인>은 여러모로 델 토로스러운 영화다. 북극 탐험대가 극지방에서 조난 당한 사람을 발견해 구조했다가 그를 쫓는 괴물의 공격을 받는다는 외연적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핵심이 되는 줄거리와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차별점을 두었다. 문학이 영상물로 새로 창작되는 건 흔한 일이지만, 또 <프랑켄슈타인>도 수차례 그와 같은 변주를 겪었지만, 델 토로의 작업은 향후 이 작품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가 될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p> <p contents-hash="67c2453f369d92f392c198ec6bb9ad0694df38ba431abbf2509b0bf90ab0a93e" dmcf-pid="PMsC6raeuI" dmcf-ptype="general">영화는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다. 전반은 구조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오스카 아이작 분)가 탐험대장에게 들려준 사연이고, 후반은 그를 쫓아온 괴물(제이콥 엘로디 분)이 풀어내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그가 괴물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생겨난 괴물로부터 잃어버린 것을 설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괴물은 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감춰졌던 진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둘은 상보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단순하고 고전적인 작법이지만 여전히 효과적인 방식이다.</p> <p contents-hash="830aed22dc179421fde1115c76b41f124090fe6ebbdcd6b8283221537b72bb1f" dmcf-pid="QROhPmNd7O" dmcf-ptype="general">이야기는 빅터가 어린 시절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사이자 몰락한 귀족이었던 아버지는 재력 있는 어머니를 그저 돈만 보고서 만나 결혼했다. 그들은 행복하지 못했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대체로는 아버지 쪽에서 그러했다. 지적인 아버지에 비하여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으므로.</p> <div contents-hash="1a983fdc57306df2a7013ac78c4c5c66eaa61cfdd967d2aedbf900f02669b81b" dmcf-pid="xeIlQsjJUs" dmcf-ptype="general"> 빅터는 어머니를 일찍 여읜다. 동생을 낳던 중 산모와 아들 중에서 한 명만을 선택해야 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그 결정은 의사인 아버지에 의해 내려졌고, 빅터는 오래도록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와 같은 비극이 그의 이상한 열정이며 집착에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아버지처럼 지리멸렬한 의사로는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 가슴 속에 오랜 기간 들어차 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a784b8c1be70fb413b149827c4598b5b74bc0e5d42fb6ffee6aaa71e2a0a0236" dmcf-pid="yGV8T9pXFm"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4632jzbs.jpg" data-org-width="1000" dmcf-mid="GCcDKjd83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4632jzbs.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프랑켄슈타인</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넷플릭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3d6143cfa6baec3edb885b23185fd343a220a7cdc8340be883b4d5a4a76363cb" dmcf-pid="WHf6y2UZzr" dmcf-ptype="general"> <strong>경계를 넘어서려던 꿈, 괴물을 창조했다</strong> </div> <p contents-hash="8c227a07725eb5855996cb37cfcb56d05e48146ead04fa37af08259a57a49338" dmcf-pid="YX4PWVu5zw" dmcf-ptype="general">빅터는 끝없이 연구하고 도전했다. 당대 의학이 넘어서려 하지 않는 경계에 다가서 그 초월을 도모했다. 이미 확인된 방식으로 사람을 고치는 것이 그에겐 특별히 의미 있지 않았다. 구할 수 없다고, 해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을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미 죽어버린 존재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정말로 그러하다고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 또한 지난 시대에는 불경하고 새된 목소리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빅터는 그렇게 죽은 이를 되살리는 데 천착한다.</p> <p contents-hash="873eefa6ef1eae2339905bbbbb9fef41c0fbee1002d7105011d2c6c505155260" dmcf-pid="GX4PWVu5pD" dmcf-ptype="general">마침 사재를 털어 그를 도우려는 이까지 나타나니 빅터의 연구가 속도를 낸다. 사형수며 전사한 병사의 몸뚱아리까지 얻어 해체한 뒤 재조립하고, 전기적 자극을 주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번개가 칠 때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사체를 자극해 가동시킨다는 그의 계획이 정말 작동하리라고 어느 누가 예상했을까.</p> <p contents-hash="1c287f4db8318de373a0ff1b6f9e9d94bda8c6e136d6c69a014b0dac4da9df44" dmcf-pid="HZ8QYf71UE" dmcf-ptype="general">영화는 빅터가 창조한 괴물이 그의 기대에 영 미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인상 깊게 내보인다. 괴물이 거듭 "빅터"라는 말만 반복할 뿐, 지적 생명체로의 행동을 하지 못하자 빅터는 자포자기한다. 제가 만든 것이 인간이 아닌 괴물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영화는 이 지점에서 원작과 다른 길을 걷는다. 추한 외모로 세상으로부터 천대받고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창조물이 악마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창조자에게 복수한다는 게 원작의 주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델 토로는 창조자와 창조물의 관계에 보다 집중하여 미성숙한 창조자와 인격이며 자기인식을 가진 창조물이 갖는 충돌을 비추려 든다. 마치 미성숙한 인간이 AI(인공지능)와 같은 존재를 창조했듯이.</p> <div contents-hash="f29e5adcea865959a14937d828be69a546125046cfc9fee32954326db8ec7fae" dmcf-pid="X56xG4ztFk" dmcf-ptype="general"> 다만 아쉬운 점도 적잖다. 영화가 그린 창조자와 괴물의 관계맺음이 실패하는 모습이 다소 급작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시체를 직접 가공하고 꿰매어 스스로 만든 창조물이 제 기대보다 못났다 하여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는 빅터가 그에게 어떤 지적 능력을 기대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과학적 근거도 선례도 없는 창조로부터 그가 기대했던 이상적 수준이 너무 높았다는 것이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ae55c4857ad30ca0c00400b280924edb3f5d0b4109fb5aa2173afada6b550427" dmcf-pid="Z1PMH8qF3c"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6168gxyy.jpg" data-org-width="1000" dmcf-mid="ZIV8T9pX07"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6168gxy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프랑켄슈타인</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넷플릭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5bc0eee27b165fa31ddf1d77dfcdf02e282625b06acb9bc0a72b750bb80f1710" dmcf-pid="5tQRX6B3pA" dmcf-ptype="general"> <strong>원작과 달라진 드라마, 성패는?</strong> </div> <p contents-hash="69650e2f6ec862940c441f80f55b549132c9db40f3971ca47cf1209716771775" dmcf-pid="1FxeZPb0Fj" dmcf-ptype="general">창조물의 도주와 흑화란 원작의 선택은 다분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델 토로의 개작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오늘의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응하도록 억지로 고친 흔적이 역력하다. 분노와 공포,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괴물을 추적해 복수한다는 원초적 이야기가 <프랑켄슈타인>이 수세기를 이어온 특장점이었다. 그러나 델 토로는 그를 그대로 따르는 대신, 중추가 되는 드라마를 새로 쓰고자 했다. 나는 그것이 원작의 매력에 영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p> <p contents-hash="1e436feeb15b4ce229a08d96eefabb312c33c31bdf321777967a1cf316d79ea2" dmcf-pid="t3Md5QKpFN" dmcf-ptype="general">기실 프랑켄슈타인, 이 영화가 다시 나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고딕적 양식의 연출을 절묘하게 해내곤 하던 솜씨 좋은 연출가, 케네스 브래너의 역작이 1995년 먼저 있었던 때문이다. 케네스 브래너가 누구인가. 영국 왕립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영문학에도 조예 깊었던 그다.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공연하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 매료된 그는 급기야 직접 주연한 작품 <헨리 5세>를 연출하며 감독으로서의 자질 또한 만개시킨다. 그로부터 40여 년을 이어온 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서사가 시작되는데, 그 중심엔 언제나 문학에 대한 열망과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p> <div contents-hash="5a84846db27abf3bef264d66cbbfef9c78b7e5d60979036fb49bd28884536a56" dmcf-pid="F0RJ1x9Upa" dmcf-ptype="general">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가미된 메리 셸리의 소설은 오늘날에 이르러 SF문학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고까지 불린다. 남편 퍼시 비시 셸리, 그 친구인 조지 고든 바이런 등 당대의 재사들과 어릴 적부터 가까이 교유하던 메리 셸리가 그 자양분을 흡수해 독자적 걸작을 써내기에 이른 것이다. 퍼시 비시 셸리의 시가 더는 낭만적으로 읽히지 않는 시대에도, 바이런의 문장이 더는 재기 있게 보이지 않는 오늘에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매체를 달리하며 오늘의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9a15d3f9298f1b44777754651e127a676a0ee0359779a2fe5d11a11ae998417a" dmcf-pid="3Hf6y2UZFg"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7433haqw.jpg" data-org-width="400" dmcf-mid="11CSxOAiuU"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00907433haqw.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프랑켄슈타인</strong>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넷플릭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5cd9c418bce9557201a6f06de1f33721a256563681dbeb3837f7bbcf96ea0048" dmcf-pid="0X4PWVu57o" dmcf-ptype="general"> <strong>케네스 브래너의 작품이 훌륭했던 이유</strong> </div> <p contents-hash="113a43129b055d503cbe892e1b1e12896c5cf5f6b6a857522fab49454e3722cd" dmcf-pid="pZ8QYf717L" dmcf-ptype="general">그럼에도 <프랑켄슈타인>을 말할 땐 언제나 케네스 브래너의 작품이 먼저 떠오른다.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이 가진 명성이야 비할 데가 없을 정도지만, 적어도 내게는 케네스 브래너 특유의 해석과 연출이 가미된 영화가 보다 인상 깊었던 때문이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탓으로, <프랑켄슈타인>은 끊임없이 영화화 되어 왔다. 무성영화 초창기부터 이를 다룬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1930년대엔 미국 유니버설 픽쳐스에서 유성영화로 제작해 기록할 만한 흥행을 거두었다. 흥행에 힘입어 시리즈물이 수년간 지속됐던 것도 의미 있는 지점이다.</p> <p contents-hash="a07663cfa5052bf0e81898a6e066765fbfd54bfc85d1864c12b10f4a3d121fd9" dmcf-pid="U56xG4ztzn" dmcf-ptype="general">이후에도 <프랑켄슈타인>은 꾸준히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으나 그를 단박에 정리한 게 케네스 브래너의 작품이었다. 제목 앞에 '메리 셸리의(Mary Shelley's)'란 설명을 빼어 달았을 만큼 원작에 충실하단 점도 이색적이었다. 앞서 나온 작품들이 시리즈 제작을 위해 프랑켄슈타인의 주변 인물에 초점을 두고 개작한 것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시리즈의 온전한 리부트라 해도 좋았다.</p> <p contents-hash="aecb1e484a76f89e38ea56e0bc9d52352626192e794ec99fbb56776c1b4aa24a" dmcf-pid="u1PMH8qF3i" dmcf-ptype="general">작품은 더없이 훌륭했다. 괴물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의 출중한 연기는 당대 최고라는 평이 나오던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게 했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오가며 열연한 헬레나 본햄 카터 또한 대단했다. 최선을 다했으나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었던 과학자, 괴물보다 더 추악했던 세상까지가 하나하나 원작을 충실하게 뒤따랐다.</p> <p contents-hash="205eb2f9c07e4d86846636c10e368c931c03bee86eb4f791ef468945c96f64d3" dmcf-pid="7tQRX6B3zJ" dmcf-ptype="general">델 토로는 과학자가 제 창조물에 실망한 이유부터 창조물과 빅터가 서로에게 복수를 하려 드는 이야기까지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작품 속에선 과학자인 인간과 그보다도 더 인간적인 괴물의 이야기 대신에 그저 괴물과 그를 만든 괴짜 과학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이 성공적 작품이 되지 못하였다고 본다.</p> <p contents-hash="6bcf3b5191860f1da1a29d2545d59cdd88f3417075f7468bcfa785d1e41a8d0c" dmcf-pid="zFxeZPb0Fd"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아이키, 훅과 함께 국군 장병 위한 나눔 실천…"감사하다" 소감 11-12 다음 김대호, 옥자연 어쩌고 이상형 하지원과 핑크빛 재회 “너무 행복해” (흙심인대호) 11-1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