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 장원급제 이이-11년 도전 이순신... 두 영웅의 '합격 비법' 작성일 11-12 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리뷰]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2></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xQ2I8x9U0I"> <p contents-hash="ac403aed2c72aac5fe32a271a9e43c867ed7403d73afe43b190d4942498d61a6" dmcf-pid="yTOVlysAUO" dmcf-ptype="general">[이준목 기자]</p>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73e1aec5f2c20343be0d83a148a132bc37fab05ec661def3f30b02c145348af9" dmcf-pid="WyIfSWOcus"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41502441sqiy.jpg" data-org-width="1280" dmcf-mid="PCzDKf710h"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41502441sqi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벌거벗은한국사2</strong> 율곡이이와 충무공이순신</td> </tr> <tr> <td align="left">ⓒ TVNSTORY</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d2a66f15a72741ff050ed725ebd6be2463d500f28f33e6ee87492108f3d9a7a3" dmcf-pid="YWC4vYIk7m" dmcf-ptype="general"> 과거(科擧)는 동아시아에서 인재 등용을 위하여 실시한 국가 시험제도다. 오늘날로 치면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이나 공무원 고시의 원조라고 할수 있다. 현대의 입시 경쟁도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혹독하지만, 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은 재수, 삼수는 물론이고 길면 몇십 년을 매달려야 했을 만큼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div> <p contents-hash="3a4d9249e1827d7a14bdf1034e11a9597d4afcf2299463ac3f7350b6763ede20" dmcf-pid="GR4lQefzzr" dmcf-ptype="general">과거 시험은 역사를 빛낸 수많은 인재들의 등용문이 됐다. 조선 시대의 과거제를 통하여 배출된 대표적인 인재로는, 문과를 대표하는 율곡 이이와 무과를 대표하는 충무공 이순신이 있다. 오늘날 한국사에서 손꼽히는 위인들로 꼽히는 두 사람은 어떻게 조선의 혹독한 입시전쟁을 뜷고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p> <p contents-hash="df96241c253a172855a44a7f813623ee9fc431427d9b190aa997ca4615ca15f6" dmcf-pid="He8Sxd4qFw" dmcf-ptype="general">11월 11일 방송된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2>에서는 '수능특집, 문과 율곡 이이 VS 무과 이순신, 과거시험을 뚫은 위인들의 합격비법' 편을 다뤘다.</p> <p contents-hash="7e60209a6b06a03e6ad43e2f02f7054dfeadb5060f8fc2cb0fe94d2f935eafa4" dmcf-pid="Xd6vMJ8BFD" dmcf-ptype="general"><strong>과거 시험에 매달려야 했던 양반들</strong></p> <p contents-hash="0acdb13afe3dbfc797c0aafeba0f227e86b6f1bd2ada04a7a83072cf61e5740b" dmcf-pid="ZJPTRi6bFE" dmcf-ptype="general">양반(兩班)은 조선시대의 지배계층으로, 유학을 공부하여 문과에 급제한 문반(文班)과, 무술과 병법을 익혀 무과에 급제한 무반(武班)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본래는 '관료'에 가까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신분'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굳어졌다.</p> <p contents-hash="a641ef482beba22db0e25aeba280ea9cf05b1b5aba33b87e291ee53e9e5940ea" dmcf-pid="5iQyenPK0k" dmcf-ptype="general">양반이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를 이어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관직에 나가지 못하면 양반 취급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의 양반들은 목숨을 걸고 관직의 등용문인 과거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과거 시험은 생계를 위한 관직 진출을 넘어서 양반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걸린 필수 관문이었던 것이다.</p> <p contents-hash="75d333e510cdf075f68b4ea08633fc30576e63e5c11149ede9d6758503a6e6d8" dmcf-pid="1nxWdLQ9zc" dmcf-ptype="general">과거 시험은 문과, 무과, 잡과, 소과 등으로 나뉜다. 진로 선택은 주로 가문이 문반 출신이냐 무반 출신이냐는 집안 환경과 가풍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양반 가문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천자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유학 서적들을 접하며 조기교육을 받아야 했다.</p> <p contents-hash="7c7ca5b11541f6c83a3609829a9678ac1039bf6fb97cc75abd8840521bd130c3" dmcf-pid="tLMYJox2uA" dmcf-ptype="general">율곡 이이는 조선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 번 합격하기도 어렵다는 과거 시험에서 전국 1등에 해당하는 '장원 급제'를 무려 9번이나 차지할 만큼 전설적인 '공부의 신'이었다.</p> <p contents-hash="e9c1c9c71640b493d8a5ad74c453eb66ca7fa8070963896462845a8d54eef968" dmcf-pid="FoRGigMVuj" dmcf-ptype="general">이이는 1536년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서 부친 이원수와 모친인 평산 신씨 신사임당 사이에서 삼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조선 시대 여성임에도 학문과 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춘 인물로 명성이 높았다. 이러한 어머니의 총명함과 교육법을 그대로 물려받은 이이는 불과 6세 때 유교경전을 스스로 통달할 만큼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다고 한다.</p> <p contents-hash="4a18b9fda361f72466ed0a3699b6888d84fc71ad2945a2b08e9452fc32a43c26" dmcf-pid="3lrKISwapN" dmcf-ptype="general">1548년, 이이가 첫 과거 시험에 응시하여 소과에 합격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13세에 불과했다. 현대로 치면 초등학생이 성인들을 제치고 국가시험 1차고시에 합격한 셈이다. 평균적으로 4~5번 도전은 기본이고 보통 30대가 넘어서야 겨우 합격할까 말까라는 과거 시험에서 이이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p> <p contents-hash="87afbde232983b3c73c7f2ef53c3726023e600b1089f3665345fcfeb9cc25f86" dmcf-pid="0Sm9CvrN0a" dmcf-ptype="general">하지만 16세 때인 1551년 어머니 신사임당이 사망하자 이이는 크게 상심했다. 이이는 관행대로 삼년상을 마친 뒤에도 절에 들어가 불경을 탐독하고 수행하며 속세와 한동안 인연을 끊었다.</p> <p contents-hash="bf729c8defe8beb1906cc42d380c66152e6deff70bbf61b6845aea2552e1678b" dmcf-pid="pvs2hTmj3g" dmcf-ptype="general">스무 살이 되어서 하산하고 돌아온 이이는 다시 과거 시험에 도전한다. 조선의 과거제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과는 다시 대과와 소과로 나뉜다. 여기서 대과는 초시-복시-전시로 이어지는 세 관문의 시험지옥을 모두 통과해야 했고, 최종시험인 전시의 합격자는 전국을 통틀어 고작 33명에 불과한다. 양반들은 낙타가 바늘구멍 뜷기보다 어려운 대과를 통과해야만 고위 관직 임용에 유리했다.</p> <p contents-hash="980d58e6f1fd8cb1cf978e38c96095d9234d537ac5663ca30968f05b367bc82d" dmcf-pid="UTOVlysAuo" dmcf-ptype="general"><홍재전서>에 따르면 조선 후기인 1800년 정조 시대에 치러진 과거 시험에는 역대 최다인 11만여명 이상의 응시자들이 모였다는 기록이 있다. 과거 시험장은 따로 지정석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시험문제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답안지를 빨리 제출하기 유리한 명당 자리를 선점하기 위하여 유생들의 눈치 싸움이 무척 치열했다고 한다.</p> <p contents-hash="bcd74e8155ae65cf32be9508e3712b13f63360078c4deb55b444240cba284996" dmcf-pid="uyIfSWOczL" dmcf-ptype="general">과거 시험 주제로는 정치, 외교, 민생 등 주로 당시의 시의성에 맞는 실전형 문제가 출제됐다. 답안지는 단순히 자기 생각만 적어내는 게 아니라 경전, 역사서, 시문 등 다양한 유교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설득력있게 구성해야만 했다.</p> <div contents-hash="566dce3a863056c4f0ab9a3ff3e0a17cfe9591ec9ee6ac04ed2b31dc09481935" dmcf-pid="7WC4vYIkUn" dmcf-ptype="general"> <strong>어머니 삼년상 치른 뒤 다시 장원급제한 이이</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6397b5c5ad2d22e440c0abe70790813dc54d33dcd51e0f227e33003b9825803b" dmcf-pid="zYh8TGCE3i"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41503761spgc.jpg" data-org-width="1280" dmcf-mid="Q5FaUqtWF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2/ohmynews/20251112141503761spgc.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벌거벗은한국사2</strong> 조선과거제도</td> </tr> <tr> <td align="left">ⓒ TVNSTORY</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f1cb60fa21f1f3135531d206858b215a4de098b659cc46bdbe099fd04a5c5254" dmcf-pid="qGl6yHhD0J" dmcf-ptype="general"> 21세의 이이는 오랜 공백기를 거쳐 급하게 다시 공부를 시작했음에도 단 1년 만에 대과 초시를 통과한다. 이어 대과 식년시-별시(특별시험), 소과 생원시 초시와 복시, 진사시 초시까지, 8년간 무려 9번의 시험에서 장원에 급제하는 대기록을 수립한다. 이 중 6번의 장원은 1564년 한 해에 모두 달성한 기록이었다. </div> <p contents-hash="4f638267c1e58c764cce84208bb8f7b5d2733ad513b3533a92427d92ecdfad34" dmcf-pid="BHSPWXlwpd" dmcf-ptype="general">이이가 장원을 차지한 과거시험 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것은 23세 때인 1558년 치른 대과 별시였다. 당시 출제 문제는 '해와 달이 함께 나와 일식과 월식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등 주로 천문과 기상 등에 관련된 난해한 질문들이었다. 유생들은 일제히 어리둥절하여 혼란에 빠졌다.</p> <p contents-hash="38c1a02f56c92fd0d121afdd63d69a8b64f958c3ea2fcd94b37af6d7f70f819b" dmcf-pid="bytgpz1yue" dmcf-ptype="general">여기서 이이는 "해는 임금의 상이고 달은 신하의 상이니, 이 둘은 운행 경로와 만나는 주기가 같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이 된다"는 답변을 통해 우주의 자연현상을 왕과 신하의 관계에 비유하는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줬다. 이 답안이 바로 이이의 천도책(天道策)이다.</p> <p contents-hash="0940da3a2910190ef76fdeebbe39a1da335d4f120a997308f7bf3536b25cc95f" dmcf-pid="KWFaUqtW7R" dmcf-ptype="general">물론 이이가 장원을 수상하지 못하거나 아예 낙방한 시험도 있었다. 이이는 이미 합격하여 굳이 안봐도 되는 시험까지 장원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하여 응시하기도 했다.</p> <p contents-hash="820e2987c3abe3500808860c2d5aea58d88f70ce676719c1cc12067dc55e08c4" dmcf-pid="9Y3NuBFYpM" dmcf-ptype="general">29세가 된 이이는 문과 전 시험에 걸쳐 총 9번의 장원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수립하며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수능 만점과 공무원 고시 전체 수석을 동시에 달성한 것과도 같다. 이이는 이후로도 꾸준히 학문에 정진하여 훗날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p> <p contents-hash="8a86de04b9c782f2d12589f14e09969057770c949aabca0eb10f4537d0343e89" dmcf-pid="2G0j7b3Gzx" dmcf-ptype="general"><strong>대기만성의 전형 이순신</strong></p> <p contents-hash="6b1bb96726078edf53982d263db53cc6e8c2b8faafa0eb49b02662dbe03d2c3a" dmcf-pid="VHpAzK0HFQ" dmcf-ptype="general">이이가 천재의 대명사라면, 이순신은 대기만성의 전형이었다. 이순신의 가문은 원래 문반 가문이었으나 이순신은 어린 시절부터 군인의 길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가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적성에 맞지 않는 문과 공부를 이어왔던 이순신은, 21세의 늦은 나이에 결국 무과로 전향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이순신 본인은 물론 훗날 조선의 운명까지 바꾸는 신의 한 수가 됐다.</p> <p contents-hash="dd2dd13dd39b4eccb80ca5591c0f0052667c87ecd83756de1cbd927f3f2e0000" dmcf-pid="fXUcq9pXpP" dmcf-ptype="general">무과는 3년마다 정기 시험이 열렸고, 초시와 복시, 전시의 3차 과정으로 나뉘었다. 무과 시험은 활쏘기, 승마술, 창술 등을 겨루며 체력과 다양한 기술을 측정했고, 현대 기준으로 보면 묘기에 가까운 기술도 많았다. 상위 시험으로 올라갈수록 토너먼트 형식으로 경쟁을 반복하여 더 뛰어난 사람을 선별하는 치열한 방식이었다. 또한 무예만 겨루는 것이 아니라 유교 경전 및 병서를 구술하는 시험도 있었다. 무과 시험 역시 최종 합격까지는 평균 10년 가까이 걸릴 만큼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했다.</p> <p contents-hash="e0c570877b64a46069d66e627d4debd2d4307f527b4e6da43216a60cd8b0bebc" dmcf-pid="4ZukB2UZz6" dmcf-ptype="general">1572년 이순신은 첫 무과 별시 응시에 하였으나 마상 무예를 펼치던 도중에 갑자기 말이 넘어져 낙마하며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다친 다리를 동여매고 끝까지 시험을 속개하는 투지를 보였으나 결국 탈락했다고 한다. 큰 부상으로 인하여 바로 다음해 열린 무과 정시에도 응시할 수 없었다.</p> <p contents-hash="e769f4049369210c092f5aa23f5d8770e73bd2f59527fe0eb58c2d9274bf02c9" dmcf-pid="857EbVu5u8" dmcf-ptype="general">하지만 이순신은 좌절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했다. 4년 뒤인 1576년, 이순신은 32세의 나이에 마침내 무과에 급제하는 데 성공한다. 무과의 길에 도전한 지 무려 11년 만이었다.</p> <p contents-hash="dbaffafc8fcb7f14aad3e8401219b60028b8d7ccdd499575d3dc8fb5b13042fb" dmcf-pid="61zDKf71U4" dmcf-ptype="general">이순신의 무과 합격 당시 성적은 전체 합격자 29인 중 12등으로 겉보기에는 이이처럼 월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무과시험 합격자 중 무려 25인이 현역 병사였다고 한다. 이들에 비하여 이순신은 경험치 열세와 낙마사고의 후유증, 적지 않은 나이라는 핸디캡을 모두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꿈을 이뤄낸 것이다.</p> <p contents-hash="698f2b796b3b01143cf8710a7ddd3570f637c30949354f6f59b6be6f467c737b" dmcf-pid="PXUcq9pX3f" dmcf-ptype="general">그리고 16년 뒤, 조선 역사상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은 조선의 바다를 지켜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만일 이순신이 당시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거나 타협하며 무과의 길을 포기했더라면, 훗날 조선과 한반도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p> <p contents-hash="463c682a7e97f9223e5f2af09f9ef21a7f176dc5ee321a6ac22e875e7b298dc2" dmcf-pid="QZukB2UZzV" dmcf-ptype="general">역사에 남은 위인들도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이와 이순신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젊은 날의 그들도 조선의 험난한 입시경쟁을 거치며 자신을 갈고 닦으며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아무리 빛나는 재능도 끊임없는 노력이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값진 성취가 탄생한다. 지금 수능을 기다리며 고단한 입시 전쟁을 버텨내고 있는 수험생 중에서도, 언젠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나갈 제 2의 이이나 이순신이 탄생할 수 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누리호 4차 발사 D-15…첫 새벽 비행 도전 11-12 다음 ‘베일드 뮤지션’ 에일리 “불합격 버튼, 심사위원 중 가장 많이 눌러” 11-1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