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사극 ‘문무(文武)’, 한중관계에서 시사하는 바는? 작성일 11-14 8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bDHrIi6bX3"> <div contents-hash="d39c0a5aec8948551e2e5a6ffd1b194d873247ffb0034ef952abee72d6f2c8d8" dmcf-pid="KwXmCnPKGF" dmcf-ptype="general">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회원 전용 콘텐츠 ‘HeralDeep’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38년차 베테랑 기자가 들려주는 대중문화 심층 분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e5888e24e899f00f78c25cc0c4fed3a060150c24d8e06f9445c6cc9ed01638b9" dmcf-pid="9rZshLQ9tt"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경주 문무대왕릉 (사적 158호) 항공사진 [경주시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ned/20251114113341685ukxp.jpg" data-org-width="588" dmcf-mid="FnzYZwgRZ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ned/20251114113341685ukxp.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경주 문무대왕릉 (사적 158호) 항공사진 [경주시 제공] </figcaption> </figure>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1c2140b70938f368f1258feea8b8f1c50ae66d5e69e336f9ae4bd5d2303bb9d3" dmcf-pid="2m5Olox2H1"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ned/20251114113341911osao.png" data-org-width="248" dmcf-mid="zDRq9HhD1U"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ned/20251114113341911osao.pn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9615192ddb21c409158e95e1437aa21af01ae8155696e0f3c6d7465e3c96b7a8" dmcf-pid="Vs1ISgMVt5" dmcf-ptype="general">TV 수신료 통합징수를 못해 재정적 타격을 입었던 KBS가 지난 4월 17일 수신료를 다시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하도록 한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재의결 끝에 통과됨으로써 공영방송의 재원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TV 수상기를 보유한 가정 등에는 11월부터 전기요금 고지서에 TV 수신료가 함께 청구된다.</p> <p contents-hash="73621819da3304061f4c1c6725ae7fc76af85225d6568234d35f399a428ec241" dmcf-pid="fOtCvaRfXZ" dmcf-ptype="general">이에 따라 KBS는 ‘제2의 창사’ 수준으로 공영성, 공공성, 공익성 강화 계획을 재정비해 수신료의 가치에 보답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p> <p contents-hash="7113c46a8b3270ad2c105e80781ad2fda9988e2250221e715140235635433153" dmcf-pid="4IFhTNe4GX" dmcf-ptype="general">KBS는 공영방송의 책무를 강화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공공성 강화 사업’을 추진하며, 시청자 중심의 방송 혁신과 공익 콘텐츠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그 첫 번째 작업이 ‘국민 역사 교과서’ 명품 대하드라마를 해마다 제작해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는 것이다. 내년 하반기 방영을 목표로 정통 사극 ‘문무(文武)’ 제작에 착수해, 공영방송의 가치와 경쟁력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한다.</p> <p contents-hash="19fc3ae84876ed7cecc4d210ea91a99f438116177ff6686995624caaed59dc8f" dmcf-pid="8C3lyjd8GH" dmcf-ptype="general">총 28부작으로, 오는 12월 몽골에서 촬영에 돌입하는 KBS 2TV 대하드라마 ‘문무(文武)’의 문무왕 역에는 이현욱, 김춘추는 김강우, 김유신은 박성웅, 연개소문은 장혁이 각각 맡는 등 초호화 캐스팅이다.</p> <p contents-hash="43760e1cdd8665cbfa5d3e68a6fc707c4bf4c5a824cfc4ede6a31e62bf9f003b" dmcf-pid="6h0SWAJ6GG" dmcf-ptype="general">‘문무(文武)’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시키는 과정을 통해 중국(당나라)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재성의 시사점을 준다. 그 때의 당나라는 중국이기도 하고, 지금의 ‘미국’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p> <p contents-hash="281648802fd33ab606c0653fdac2d7be906572a58a59190f7227161e38553a6d" dmcf-pid="P36pzTmj5Y" dmcf-ptype="general">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신라 천마총 금관을 본뜬 특별 제작 모형을 선물로 받고 좋아했다고 한다. 장내 아나운서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평화를 가져온 신라의 정신과 함께 한미동맹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이 금관을 선물로 준비했습니다”라고 소개했다.</p> <p contents-hash="569196942279cf69adc69b36a9e012a148e40d1d729ffbd6f78bd29154c274c9" dmcf-pid="Q0PUqysAHW" dmcf-ptype="general">문무왕(김법민)은 신라의 제30대 임금이며 통일신라의 첫번째 군주지만 부친인 김춘추(제29대 태종 무열왕)와 외삼촌인 김유신의 공적에 가려 삼국통일과정과 체제 안정에 기여한 부분이 덜 조명됐다.</p> <p contents-hash="0068575fb47073846021603eafd65a2d710ac4db7892c68284cc7dc389dee7da" dmcf-pid="xpQuBWOcHy" dmcf-ptype="general"><strong>‘작은 나라’ 신라가 ‘큰 나라’ 당을 물리치는 방법</strong></p> <p contents-hash="ef1e94c5d467e6083d43e91fdddf2d7ae03383b56eb1c181a52762435c0134f1" dmcf-pid="yjTcwM2uGT" dmcf-ptype="general">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고 해서 바로 통일과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작은 나라’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서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당나라를 불러들여야 했다. 나당 연합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쳤지만, 당나라는 신라에 배신한다.</p> <p contents-hash="e9b0d31e418cf2ece089b804cb947f1840b4b88c39d5fc5cc5d82686926c081d" dmcf-pid="WAykrRV7Xv" dmcf-ptype="general">‘대동강 이남의 땅은 신라가 소유한다’는 약조하에 나당연합군이 결성됐지만 당은 한반도를 장악하려고 했다. 백제에는 웅진도독부, 신라에는 계림도독부(경주), 고구려에는 안동도호부(평양)를 두고 직할하기 시작했다. 당이 신라를 왜 도와줬는지를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해답은 나온다.</p> <p contents-hash="4ac47603164b71f78c0c8114ef540af818882a33d2f172ced0186c382fae7fa6" dmcf-pid="YcWEmefzXS" dmcf-ptype="general">문무왕은 배신한 당나라를 상대로 무려 7년간 격전을 치러내 당을 축출하고 대동강~원산만 이남 지역을 확보하는 삼국통일을 달성함으로써(676년, 문무왕 16년) 향후 200여년간 이어지는 평화의 기초를 만들었다. 신라의 정신적 지주이자 뛰어난 장수인 김유신은 나당전쟁 도중 사망했다.</p> <p contents-hash="f11fd6e5c52c74330bc38ea8f309f3acaff3d1d98f612f22d46202b5503ead56" dmcf-pid="GkYDsd4qZl" dmcf-ptype="general">‘작은 나라’ 신라가 ‘대국’인 당을 한반도에서 어떻게 몰아낼 수 있었을까?</p> <p contents-hash="8d90e2d86cd73fbdaf18eed72d3670caed82a9fbdd830fe186aa6d970f91d236" dmcf-pid="HEGwOJ8B5h" dmcf-ptype="general">혹자는 문무왕의 삼국통일에 대해 과거 고구려땅을 잃어버렸다며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춘추와 그의 아들 김법민(문무왕)은 정세를 잘 읽고 지혜와 비전을 갖춰 당시 상황으로는 최고의 생존방법을 찾은 인물로 기억되어야 한다.</p> <p contents-hash="56a5e1f4d0e5796c8e07df96c06651f485bbbff548a32d766c9eb1f12b177bcb" dmcf-pid="XDHrIi6bGC" dmcf-ptype="general">문무왕은 당의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백제와 고구려 유민과 부흥군을 대거 규합해 연합했다. 이들이 오합지졸로 싸운 게 아니라 효율적인 ‘원팀’으로 대적한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p> <p contents-hash="8a65c2295a40b653ad32de29cdfd9e0596a7f051c723601f6f2e5cb4b83e5c4e" dmcf-pid="ZwXmCnPKGI" dmcf-ptype="general">화려한 서로마제국이 5세기 후반 망한 것은 군인들이 국방력을 강화할 생각은 안하고 황제가 될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다, 군인 자원이 줄어들면서 이민족인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활용해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아내려 해 질적인 면에서 국방력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활용해 게르만족의 침략을 막을 수가 있을까?</p> <p contents-hash="494e55fa4c98cf2daf2947919af063198b58ba34c148f21410b75ffdc767932c" dmcf-pid="5T7WXDoMYO" dmcf-ptype="general">따라서 문무왕이 자신이 멸망시킨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효과적으로 지휘했다는 사실은 그의 리더십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cd0c3752caa38411e7e96f417573fac60fcc46fd7907dc4ed5df207da467e84d" dmcf-pid="1yzYZwgRGs"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문무왕 표준영정"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ned/20251114113342139cjsl.jpg" data-org-width="290" dmcf-mid="qg6pzTmjY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ned/20251114113342139cjsl.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문무왕 표준영정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826334224d256e6ae61810ab77b7e646e6ee01f0ca55d6f2d3ed04b7ee4c593f" dmcf-pid="tWqG5raeXm" dmcf-ptype="general"><strong>바다와 강의 중요성을 아는 문무왕은 해군참모총장도 겸했다</strong></p> <p contents-hash="bf081afcc5c3c55ea30bbd00cd26b4a5cf6c7384fd10c899523195380a428b42" dmcf-pid="FYBH1mNdZr" dmcf-ptype="general">문과 무 양면에서 뛰어난 문무왕은 670년(신라 문무왕 10년)부터 시작된 나당 전쟁(羅唐戰爭)의 승리를 통한 삼국통일 과정에서 해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만하다. 자신이 해군참모총장도 겸한 셈이다.</p> <p contents-hash="19c78a2324d2152d8396799214a8af68ae1157f32498aac5caa41431f38c1a9f" dmcf-pid="3GbXtsjJGw" dmcf-ptype="general">문무왕은 매소성(買肖城)전투(현재 경기도 연천군)에서 ‘호로하(瓠瀘河, 임진강)의 지형을 잘 활용했다. 당의 유인궤 군대에게 임진강 중류 지점인 칠중성(七重城)을 빼앗기고 말았다. 또한, 당나라 장수 이근행이 이끄는 20만 대군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력만으로 보면 당나라가 휠씬 우위에 있었다.</p> <p contents-hash="a4945d56fccaf51286996bebe01e8a920d58824acf054d34df15bc007e4cdd30" dmcf-pid="0HKZFOAitD" dmcf-ptype="general">하지만 신라는 식량 보급이 여의치 않는 겨울까지 기다리고, 지형까지 이용해 보급선을 안전히 차단시킨 후 공략함으로써 당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물론 당나라가 서쪽 라싸를 수도로 하는 토번이 동진하면서 당의 수도 장안까지 위협받게 된 상황과 집권 후반부터는 건강이 좋지않아 측천무후에게 권력을 준 당 고종이 너무 전쟁을 많이 했던 점은 신라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기는 했다.</p> <p contents-hash="ba01f7a337eefb8a386e92b10cfe4d1cc9a9c84a96a82053b7c9853d72fb7d31" dmcf-pid="pX953IcnZE" dmcf-ptype="general">매소성(買肖城) 전투로 나당 전쟁의 승기를 잡은 신라군은 이후 기벌포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고구려 원정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지속하면서 내부 여론이 악화된 당은 서쪽 토번과의 전선에 집중하기 위해 신라와의 전쟁을 그만두어야 했다.</p> <p contents-hash="f7394384c4436ac0dcb72f1d6eb3ab8f73f9dee346c84dbbeeb2517fc1439ac7" dmcf-pid="UZ210CkLGk" dmcf-ptype="general">나당 전쟁(羅唐戰爭)에서 자신감을 얻은 문무왕은 이어 설인귀가 이끄는 당의 해군을 기벌포에서 섬멸시켰다. 금강 하구인 기벌포(伎伐浦, 현재 충남 서천군 장항 일대)는 백제의 사비성을 지키는 관문이었으며, 서해 제해권과 직결된 군사 요충지였다.</p> <p contents-hash="f1855de0f2d542b625455202cfcf24a5f479f5c835de14ec5456496a58146d37" dmcf-pid="u5VtphEoGc" dmcf-ptype="general">문무왕이 당나라에 이기는 방법은 설총관(설인귀)과 당 고종에게 무릎을 꿇는 사죄의 서신을 보내기도 하고, 선제공격으로 실리를 챙기기도 하는 양면작전을 효율적으로 구사하는 것이었다. 또 전쟁에 승리하고 당을 축출한 후에는 다시 동맹을 맺기도 했다. 이는 지혜와 결기와 전략, 생존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외교술의 승리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현대적으로 보면 동북아 외교전략에도 시사점을 준다.</p> <p contents-hash="9cc8bb1c0c5f718fee489aa525c732763a988e52569fe9bc77c3c723806ec12c" dmcf-pid="71fFUlDg5A" dmcf-ptype="general">외교의 역사를 보면 배신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관점이 어디냐는 점도 중요하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점에서 보면 배신도 조금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문무대왕이 당나라에 무릎을 꿇었다가 공격하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신라의 배신이자 모순일 수도 있다.</p> <p contents-hash="e41191f30b9349df5630c9492818b5570ba19846c1370454544a72b64df0ef4a" dmcf-pid="zEGwOJ8BZj" dmcf-ptype="general">조선과 미국은 1882년 인천에서 신헌과 슈펠트가 맺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 “조선이 제3국으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조약국인 미국은 즉각 이에 개입, 거중조정을 행사함으로써 조선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1905년 이와는 상충되고 모순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의 필리핀 점유와 일본의 한국 점유를 상호 양해하는 약속을 해버리는 논쟁적 외교술을 펼친다.</p> <p contents-hash="dc46df50d47725b047d184e4773807061a21f73650e74923f60587eeb0bfeea8" dmcf-pid="qDHrIi6bXN" dmcf-ptype="general">우리로서는 미국이 대한제국을 일본이 지배하도록 일본을 도와준다는 카스라 태프트 밀약이 괘씸하지만, 외교란 이런 것이다. 미국은 두 조약중 어떤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서만 움직였다.</p> <p contents-hash="fc2718da44ada622916113a1a729819855d87cc3e58b799a31daa126927ceaa4" dmcf-pid="BwXmCnPKGa" dmcf-ptype="general">전쟁은 미리 막는 게 좋고 전쟁중이라면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나라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유럽은 외교의 중요성이 더욱더 크다. 독일의 마지막 군주인 ‘팽창주의자’ 빌헬름 2세가 자신보다 45살이나 많은 노련한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 수상을 해임시키는가 하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주변국 대다수를 적으로 돌려 전쟁 가능성을 높였다. 러시아는 자국산 곡물에 대한 독일의 관세부과가 독일과의 갈등의 시작이었다.</p> <p contents-hash="f01ca0c2ce007426ce4d33ccc8a627ef05698e544d70d0239e778b665e877087" dmcf-pid="brZshLQ91g" dmcf-ptype="general">해군력을 증강하며 영국과 긴장 관계에 놓인 빌헬름 2세가 1차 세계대전에서 서부, 동부 양쪽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특히 서부전선의 참호전에서는 수많은 독일 젊은이들의 생명을 잃기도 했다.</p> <p contents-hash="8954f4fe0b967a572bb36c33c13533ff313dbe99d33837ef7c6c99274e56102c" dmcf-pid="Km5Olox2Zo" dmcf-ptype="general"><strong>문과 무를 겸비한 문무왕의 통합리더십</strong></p> <p contents-hash="a5eb4d8c5022208bd3cb7a4c03e13b12d4e85fb00e71ef5e56b7fb6fc2624358" dmcf-pid="9s1ISgMVGL" dmcf-ptype="general">하지만 문무왕은 그런 부류와는 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죽어서는 이례적으로 시신을 화장을 해 경주 앞바다 암초(대왕암, 문무대왕릉)에 뿌려달라고 했다. “나는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법(佛法)을 숭봉(崇奉)해서 나라를 수호하려 하오” 동해의 용이 되어 수시로 출몰하는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는 의지다. 경주시는 양북면인 이 일대를 2021년 문무대왕면으로 개칭했다.</p> <p contents-hash="bd8d78f5fff1a09610443fb86c2d8633e62a7aee39f6ab29971915cb9faa5a30" dmcf-pid="2OtCvaRf1n" dmcf-ptype="general">문무대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의 호국 열정과 은혜에 감동한 나머지, 대왕암에서 가까운 해안에 감은사를 완공시켰다. 또 문무대왕릉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위에 이견대(利見臺)라는 정자를 지었다.</p> <p contents-hash="45123a724e60ffded7b39a4be8be23709bb7ef7f95afbbed27ab235199473bc9" dmcf-pid="VIFhTNe41i" dmcf-ptype="general">감은사지에는 동서 2기의 삼층석탑이 멋있게 서있다. 석탑을 그냥 보지만 말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정신과 대왕님의 열정이 탑 속에 깃들어 있음을 느껴보면 후손으로서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문무대왕의 영혼을 모시기 위한 사찰인 감은사지에는 현재 절은 없지만, 주춧돌만 봐도 물길로 연결돼 동해에 계시는 대왕님의 영혼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p> <p contents-hash="5a4604ada1b03c0657bc885631e9c8912183a085b1d6c1665ee5b6da6b1a69b2" dmcf-pid="fC3lyjd8HJ" dmcf-ptype="general">대하사극 ‘문무(文武)’는 문무대왕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만 통일한 게 아니라, 그 후 신라를 넘보는 당나라와 무려 7년간 전쟁을 통해 당을 몰아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비교적 덜 알려진 당과의 전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후에야 민족문화의 기반 확립과 민족의 자주성을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무대왕을 통해 통합의 리더십과 외교의 중요성도 알려줄 수 있다. 공영방송 KBS가 반드시 해야 될 일이다.</p> <p contents-hash="0f619b6b79fdd90fbf1bb4b62f17afb283f0b4f6779781e2758a74c137e29804" dmcf-pid="4h0SWAJ6Gd" dmcf-ptype="general">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있는 국립외교원 입구에는 고려 제6대 성종 때의 관료이자 외교관인 서희 동상(흉상)이 있다. 피 한번 흘리지 않고 말 한마디로 강동 6주를 얻어낸 게 최고의 외교다. 서희는 외교관의 롤모델이다.</p> <p contents-hash="b56aba73d284bb04ffd64d8a1a5f6016c9ec034f2473d2f29bb1852db3f7dbf6" dmcf-pid="8yzYZwgR1e" dmcf-ptype="general">문무왕이 악조건들을 딛고 외교와 작전, 전략, 지혜, 인내로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며 평화의 기반을 구축한 리더십도 KBS에서 방송되고 나면 크게 조명될 것 같다. 아무도 통일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작은 나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까지 몰아낸 것은 당시 국제정세에 깨어있는 상태,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외교술과 국방력, 소통의 지혜 때문이어서 요즘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실화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위키드: 포 굿',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2곡 담아 11-14 다음 서강준, 성동구 트리마제 58억원 매도… 5년만 시세 차익 24억원 11-14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