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대신 겪은 위험, 감각이 기억하는 공연 '스타트' 작성일 11-16 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리뷰] <아르코 댄스 UP:RISE> 선정작 박유라의 〈스턴트〉</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YOYoLELxpr"> <p contents-hash="e0ef93468bf39eb1c97b64f3962af418679d3ee6c32eb68da937cfac837747e2" dmcf-pid="GIGgoDoMUw" dmcf-ptype="general">[이규승 기자]</p> <p contents-hash="68aa2015d33568e8354600ccd8a7a38585f3338ba8ca150abbabac62166f59ee" dmcf-pid="HCHagwgRUD" dmcf-ptype="general">극장의 객석은 모두 접혀 한 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관객은 무대를 중심으로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검은 바닥은 수많은 공연의 흔적을 품은 채 미세한 흠집까지 잔물결처럼 번쩍였다. 천장의 트러스 사이로 내려진 가느다란 조명선은 사선으로 공간을 절단했다. 중앙은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다. 아무 장치도, 어떤 예고도 채워지지 않고, 그곳엔 냉기와 사람들의 숨 소리만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벽에 기대고, 누군가는 서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바닥의 질감을 손등으로 쓸어보며 몸의 무게를 낮췄다.</p> <p contents-hash="4af42ed008e24328e2403789f93d761bd81290437e6f6d1a7dde24427b480adb" dmcf-pid="Xq6HG0GhUE" dmcf-ptype="general">무대를 바라보고 정면을 응시하는 일반적 좌석이 사라진 대신, 둘레로 앉은 관객의 시선은 원형처럼 회전했다. 중앙을 응시하는 대신 주변을 스캔하며 온도, 냄새, 소리, 움직일 것 같은 공기의 징후를 먼저 감지하는 배치였다. 박유라 안무가는 공연의 초점을 '어디를 보느냐'로 옮겨놓은 듯 보였다.</p> <p contents-hash="d24236420ecdb67d10734581d90defe90886ae1baffa865f254436e055af5c7c" dmcf-pid="ZBPXHpHl0k" dmcf-ptype="general">"기억하세요. 내가 보는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에요."</p> <p contents-hash="6e1f476199d915b7f69ee66666999b95700d733da2f7e1135baa2baf4f4f8c8b" dmcf-pid="5bQZXUXSUc" dmcf-ptype="general">박유라 안무가는 공연장의 한 켠에서 조용히 등장하며 이렇게 속삭였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공연에서 위험의 축을 먼저 지정하고, 그 축에 관객의 몸도 포함되어 있음을 계속 주지시키려는 의도였나. 덕분에 시작의 표식이 없는데도 집중의 바늘은 서서히 달아 올랐다. 비어 있는 무대가 관객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곳. 박유라 안무가의 무용 신작 〈스턴트〉(11월 9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그 '빈 것'으로부터 출발했다.</p> <p contents-hash="cc9974b292e9821cb720a5d2924f662d92dcd234fcc0934a00efc56e740dac6d" dmcf-pid="1Kx5ZuZvUA" dmcf-ptype="general"><strong>설치가 춤이 되고, 춤이 구조가 된다.</strong></p> <p contents-hash="30f7cdd3503444a49e41b829a87d1e7d99a5c546eadaeda657b716bfe2862759" dmcf-pid="t9M1575TFj" dmcf-ptype="general">초반에는 설치가 아예 없었다. 대신 공사장 파이프를 든 사람의 움직임만 남았다. 발바닥이 무대의 마찰을 점검하는 미세한 선, 손이 공기를 헤집으며 만드는 얕은 소용돌이, 조심스레 공간의 경계를 더듬는 몸의 각도들이 무대를 채웠다. 백스테이지의 준비·점검 같은 동사들이 그대로 전면으로 올라오자 서사의 초점은 얼굴에서 손끝과 발목으로 이동했다. 표정 대신 노동의 압력, 문장 대신 신체의 응답이 먼저 말을 걸었다. '공연은 언제 시작하느냐'라는 질문은 의미를 잃었고, '무엇을 어떻게 감각하느냐'가 관람의 출발점이 되었다.</p> <p contents-hash="fa37236c5b174c0a3065f75a6792b94743b2214dd6e511cc8980babfe46ea3ed" dmcf-pid="F2Rt1z1y0N" dmcf-ptype="general">중반으로 접어들며 은빛의 파이프가 하나둘 늘어났다. 길게 뻗은 선이 바닥을 스치며 살짝 금속 냄새를 남기고, 짧게 잘린 조각들이 점처럼 흩어졌다. 전동드라이버의 저음이 바닥을 타고 번졌고, 금속끼리 마찰하며 내는 고음이 그 위에 얹혔다.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작업의 신호였지만, 그 자체로 리듬이 됐다. 누군가 파이프를 세우면 다른 누군가는 한 박자 늦게 몸을 기울여 균형을 시험했다. 무게중심이 미세하게 밀릴 때마다 발목과 종아리, 골반과 견갑이 차례로 반응했다. 균형이란 정지가 아니라 계속되는 보정과 응답의 다른 이름임을, 그 몸이 정확히 보여주었다.</p> <p contents-hash="ecd29bb4091d6343bc0b9e3200f298edea93286ed918e1ca4a7908544e47a0ab" dmcf-pid="3VeFtqtWFa" dmcf-ptype="general">조명은 사선을 더 깊게 그었다. 빛은 파이프의 곡면을 타고 미끄러지며 하이라이트를 만들었다. 바닥에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또 다른 선을 그렸다. 사람과 사물, 빛과 그림자가 겹치며 즉석에서 도면이 그려졌다.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중심은 달라졌다. 한쪽에서는 구조가 주연이고, 다른 쪽에서는 무용수의 손과 발이 주연이다. 동일한 행위가 관찰자의 자리마다 서로 다른 현상으로 번역되며 장면의 층위가 두터워졌다. 사면에서의 관람이 허락한 미세한 차이는 '진실의 복수형'을 만들어냈다. 관객은 자신이 앉은 자리만큼의 진실을 맡아 기억한다.</p> <p contents-hash="7924460a463e0927b66553c32128a48a35f5859ec4b43ba2db0a172bc3c22438" dmcf-pid="0fd3FBFY0g" dmcf-ptype="general">여기서 제목의 의미가 풍경으로 번역된다. '스턴트'는 단지 위험을 대신 수행하는 기술이 아니라 감각을 대신 겪는 태도로 해석된다. 거대한 물질과 인간의 몸이 대등하게 마주설 때, 관객의 어깨도 덩달아 굳어졌다가 중심이 다시 서면 숨이 함께 풀린다. 설치자와 퍼포머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작업자, 무용수, 조명, 스태프의 호칭은 역할 분장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이다. 도면을 읽는 눈, 재료의 탄성을 감지하는 손, 위험을 미리 예측하는 몸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였다. 이 무대의 '정확함'은 완벽의 강요가 아니라 공조의 방식에서 나왔다. 누군가의 작은 흔들림은 곧 모두의 보정으로 흡수되고, 그 보정 자체가 또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p> <p contents-hash="867f67cd88ec2f39713862917db65f1b241e6b13705e7216cef8b03c04f300c0" dmcf-pid="p4J03b3GFo" dmcf-ptype="general">안무의 배경에는 시각예술과의 오랜 협업이 배경에 깔려 있다. 비닐하우스 구조물에서 따온 미니어처가 발단이 되었고, 실제 하우스 파이프를 다루는 장인의 자문과 긴 연습이 이어졌다. 중요한 건 빠르기가 아니라 '적정 속도'였다. 관객의 안전을 케어하고, 안내와 몰입을 동시에 설계하려면 구조물이 세워지는 속도와 몸의 속도가 맞물려야 한다. 그래서 〈스턴트〉는 서두르지 않는다. 기다림과 조정, 반복과 보정의 시간 자체를 장면으로 삼는다. 이 적정 속도가 불안을 공포로 몰고 가지 않고 감각의 밀도로 응축시키는 힘이 된다.</p> <p contents-hash="3e7b0726e0a8b7194f8d416b80737d31960cc457e93ff3ad5d8ec5e561dfafad" dmcf-pid="U8ip0K0H7L" dmcf-ptype="general">한국무용의 훈련을 베이스로 한 박유라 안무가의 눈은 '보이는 상체'의 미학을 잠시 뒤로 물리고 '안 보이는 발과 손'의 노동을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상체의 제스처로 서사를 밀던 관습이 비켜나자, 발목의 떨림과 손가락의 압력이 이야기의 자리를 차지한다. 관념의 문장은 최소화되고, 대신 신체의 문장들이 극장을 가득 메운다. 중반 정점에서 한 퍼포머가 프레임 위로 몸을 올릴 때, 관객의 호흡은 얇아지고 무대의 시간은 느리게 늘어난다. 발목이 한 번, 골반이 한 번, 날개뼈가 마지막으로 중심을 붙잡는 궤도가 눈앞에서 선명해질 때, 관객의 신경은 최대치로 예민해지고 '대신 느끼는 몸'으로 전환된다.</p> <p contents-hash="017085df9862c0c079e78f6815da664b2e4c90a44516fd06f92e24930c39cbe3" dmcf-pid="uY0wDlDg3n" dmcf-ptype="general">이 과정에서 드문드문 던져지는 짧은 멘트들이 시선을 재배치한다. 등장을 알리며 한순간 모두의 눈을 한 점으로 모으거나, 수행의 정확성을 다짐하는 낮은 목소리가 스치며 균형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정확성은 개인의 완벽이 아니라 '함께 지탱함'이라는 사실—이 공연이 내내 관철하는 윤리다.</p> <p contents-hash="c7e30319b9b96518262c2815ab225cb20706e306ece523d46b90493f8508fdd7" dmcf-pid="7GprwSwa0i" dmcf-ptype="general"><strong>남겨진 구조와 사라지지 않는 떨림</strong></p> <p contents-hash="4d1d2ebdcbaaaea88166ddca324a0d01f44b055741899fde6ac33da73c9f378e" dmcf-pid="zHUmrvrN3J" dmcf-ptype="general">후반으로 갈수록 파이프의 선은 무대 위에서 점차 구조로 변했다. 아치가 생기고, 사선이 겹치고, 바닥의 짧은 조각들이 점선처럼 연결되며 하나의 도면이 눈앞에서 완성됐다. 빛과 철의 선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긴장을 유지했고, 장치는 저항하고 몸은 대응하며 관객의 시선은 그 사이를 횡단했다.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지만, 바로 그 어긋남이 가장 정확한 리듬이 됐다. 공연은 결말로 급전개하지 않았다. 대신 막이 아니라 잔향을 남겼다.</p> <p contents-hash="49853c5583827283c9f5177198dbe38ea8bb52a5198db5245c33df9c752e5bda" dmcf-pid="qXusmTmjzd" dmcf-ptype="general">조명이 천천히 내려앉자, 시작할 때 텅 비어 있던 무대에는 이제 사선의 프레임과 둥근 아치, 점선처럼 흩어진 조각들이 또렷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 구조물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40여 분의 시간 동안 움직임이 낳고, 보정이 키우고, 협업의 정확성이 지탱해 온 결과였다. 커튼콜에서 무용수와 설치자는 같은 속도로 나와 같은 속도로 고개를 숙였다. 누구를 먼저 불러 세울 필요가 없었다. 오늘의 정확성은 공조에서 나왔고, 그 공조의 방식이 예의와 박수의 리듬까지 통일했다. 박수는 감탄이라기보다 승인처럼 번졌다. 함께 지탱한 시간에 대한 동의의 박수.</p> <p contents-hash="0fc072da7a0fe79eb0b8a610812a2034102aebd2bcc2782d25aa95aac02abec1" dmcf-pid="BZ7OsysAUe" dmcf-ptype="general">박유라 안무가의 <스턴트> 공연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관객이 둘레에서 조심스레 일어서는 동안, 파이프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세트라기보다 증거에 가까운 존재—위험을 대신 겪은 몸, 감각을 대신 느낀 장면, 균형을 대신 버텨낸 시간의 증거였다. 극장을 나와 계단을 내려올 때 발끝에 남아 있는 금속성 잔진동을 문득 자각했다. 오늘의 공연은 말보다 촉각으로 기억된다. 얼굴의 표정 대신 손과 발의 노동으로 관계의 리듬을 세운 무대, 빠른 장면 전환 없이도 관객의 신경을 끝까지 깨우는 방식.</p> <p contents-hash="c8ddcbbf3d9feed6103f84eb82b7aaee1b8d4d468981ae67de058422de678f88" dmcf-pid="b5zIOWOczR" dmcf-ptype="general">〈스턴트〉는 질문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체험으로 묻고, 몸의 잔향으로 답한다. 빈 무대에서 구조로, 준비의 동사에서 장면의 명사로, 개인의 완벽에서 '함께 지탱하는 정확함'으로 이동한 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고, 끝에 가서야 사진처럼 구조가 남았다. 그 변환의 궤적이 한동안 몸 안에서 계속 공연된다.</p> <p contents-hash="6905df0dbe4ff60fe89db828b356be18a85e4a213c32362499b970fbb01a7a98" dmcf-pid="K1qCIYIkpM" dmcf-ptype="general">다음 번 빌드업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유라 안무가가 바라는 대로 점과 선의 관계 위에 '면'의 사유가 더해진다면, 이 무대는 아마 또 다른 감각의 축을 세울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비어 있던 공간이 사람과 사물, 빛과 숨으로 천천히 채워지고, 다시 잔재로 남아 관객의 발끝까지 떨림을 전해 준 시간. 그 진동이 가라앉기 전까지, 〈스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p> <p contents-hash="2b61ba66db5fa025199de8d39cad2527a71d27e8e2847d5f89abf5f426e95891" dmcf-pid="9tBhCGCEux"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아르코 댄스 UP:RISE>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무용 창작자들의 예술적 성장과 터닝포인트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2024년 <아르코 댄스&커넥션>에서 출발해, 올해 그 취지를 더욱 분명히 하고자 <아르코 댄스 UP:RIS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아르코 댄스 UP:RISE>는 창작 초연 작업을 지원하는 ‘스테이지1’과 그 초연작을 1시간 분량의 완성작으로 발전시키는 ‘스테이지2’로 나뉜다. 일시적인 제작 지원을 넘어, 지속적인 예술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기 위한 구성이다. 올해 ‘스테이지1’에는 5월 공개 모집을 통해 최종적으로 김영찬, 정찬일, 박유라, 민희정 네 명의 안무가가 선정됐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왓IS] 김호중, 복역 중 “3000만원 내놔” 협박당했나… “해프닝으로 끝난 일” 11-16 다음 '62세' 황신혜, 나이 안 믿기는 스타일에 감탄만…'나이는 저희가 먹나요' 11-1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