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항하는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노인과 바다' 가 남긴 진짜 메시지 작성일 12-02 6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yiH7zHvmUI"> <p contents-hash="ac403aed2c72aac5fe32a271a9e43c867ed7403d73afe43b190d4942498d61a6" dmcf-pid="WnXzqXTsUO" dmcf-ptype="general">[이준목 기자]</p>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fc16c4185fdf32a14ce41239e6dd25eb5e1bc792030e32ce11aa1911c4beadb" dmcf-pid="YLZqBZyO0s"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2/ohmynews/20251202110302247hxyw.jpg" data-org-width="1280" dmcf-mid="1jomsoe4U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2/ohmynews/20251202110302247hxyw.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벌거벗은세계사</strong> 어니스트헤밍웨이</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cef75478469c596ba611854dc4d6834b42d967f784e76fac79851edc0d0d770b" dmcf-pid="Go5Bb5WIum" dmcf-ptype="general">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숱한 걸작들을 남기며 노벨상까지 수상할만큼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음악, 정치, 문학 등 각 분야의 거장들이 두루 찬미하는 예술가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div> <p contents-hash="01a742652dd1d34284b039c5401891b25122e231de19932885fbd441164d5b6d" dmcf-pid="Hg1bK1YCpr" dmcf-ptype="general">하지만 정작 헤밍웨이 본인의 인생은 수많은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왜 대문호로서 최고의 정점에 오른 순간,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까.</p> <p contents-hash="c4f7f76233ba72a21f50939f529ab4eb5158361d89f5dec84c8a5f3488560095" dmcf-pid="XatK9tGhUw" dmcf-ptype="general">12월 1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헤밍웨이는 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나'편을 조명했다.</p> <p contents-hash="fe0d526c80193d2934d9a24ee970bc35a92e5387b5867d76acb797addad27ee3" dmcf-pid="ZNF92FHl3D" dmcf-ptype="general"><strong>전쟁터에서 얻은 깨달음 작품에 담은 헤밍웨이</strong></p> <p contents-hash="2fc287b3b50ae65d818b1a7f737c3f787d18c00bd116586cc47d66e0e4642fb7" dmcf-pid="5j32V3XSzE" dmcf-ptype="general">1899년 7월 21일, 헤밍웨이는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헤밍웨이의 부모는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린 시절 헤밍웨이는 어머니의 강요로 치마를 입고 여자처럼 커야 했고,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체벌과 폭력에 시달렸다.</p> <p contents-hash="959068ae047d4ce220f9bd88395088c2e48053401d6b9cd676dda879804b00b5" dmcf-pid="1A0Vf0ZvFk" dmcf-ptype="general">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 헤밍웨이는 학교생활을 통하여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낸다. 헤밍웨이는 교내 신문의 기자로 활동했고, 문예지에 단편소설과 시를 발표하며 자신의 쓴 글을 사람들이 읽는데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p> <p contents-hash="cdfd1a51dc814683db3ae0ee94f2eaa8ff0b5e3c82a37325354f52e4deca5f7e" dmcf-pid="tXecke6b3c" dmcf-ptype="general">헤밍웨이는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헤밍웨이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트럼블 화이트를 찾아가 "글을 잘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p> <p contents-hash="fc210c6fb50a98d21ae84fe81a24a3da6c9e23419232c8de694929a1fc6792da" dmcf-pid="FZdkEdPKuA" dmcf-ptype="general">헤밍웨이는 언론사의 수습기자로 취직하며 작가의 길을 준비했다. 기자 시절 배운 '짧은 문장, 간결한 첫 문단, 힘있는 단어, 부정 대신 긍정적인 표현 사용' 등은 헤밍웨이 본인이 "글쓰는 작업을 위한 최고의 규칙이었다"고 회고할만큼 그의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제3자의 시선처럼 '간결하고 덤덤한 묘사'를 사용하여 '독자들이 숨겨진 감정과 의미를 상상하게 하는' 문체도, 바로 이 시절부터 확립된 것이다.</p> <p contents-hash="10fe7ea2f80286e835bc690cbc4860e8090d6a8c8ef0596064296d635f526696" dmcf-pid="35JEDJQ9Uj" dmcf-ptype="general">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어떤 경험이 필요할지 고민하던 헤밍웨이는, 생사와 인간의 본능이 극대화되는 곳은 전쟁터라는 결론을 얻고, 당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선천적인 근시에도 불구하고 무려 11번의 도전 끝에 19세의 나이로 입대에 성공한다.</p> <p contents-hash="4b981b6007a211e28241c50b0d3b14a0a35c212de524ead5f92cd85089961a25" dmcf-pid="01iDwix2pN" dmcf-ptype="general">1918년 7월, 헤밍웨이는 전선에서 전투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로 중상을 입은 동료 병사를 구해내는 공을 세운다. 이때의 활약으로 헤밍웨이는 이탈리아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으며 1차대전의 전쟁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p> <p contents-hash="d5b4539ddd0a33e54f1b802f37c7285f32bfb34ad682c2e1dbeb34fac832f682" dmcf-pid="ptnwrnMVUa" dmcf-ptype="general">전역 후 생계를 위하여 기자로 복귀한 헤밍웨이는 신문사의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다. 1920년대 '예술가의 성지'로 꼽히던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 스콧 피츠제럴드 등 수많은 세계적인 예술가·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헤밍웨이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p> <p contents-hash="1be33f48b892fdaa163e4df6ab986faebf335a7ecc8558217eff2ae16c8ef1ed" dmcf-pid="UFLrmLRfFg" dmcf-ptype="general">1926년, 27세의 헤밍웨이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출간하며 오랜 꿈인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데뷔한다. 헤밍웨이는 1차대전 종전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등장인물로 설정했고, 당시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우던 전쟁의 희생양이 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이처럼 헤밍웨이 본인이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전쟁터를 누비면서 깨달은 자전적 경험과 허무주의적인 정서들은 이후의 작품세계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게 된다.</p> <p contents-hash="ee9c1b5b0e584698c794435496cba9464710f5c03b658a220d848fe07519d4a5" dmcf-pid="u3omsoe4zo" dmcf-ptype="general">1929년에는 헤밍웨이를 작가로서 정점에 올려놓은 대표작 <무기여 잘있거라>가 출간된다. 1차대전 중 이탈리아군에 입대한 미국인 청년과 영국인 간호사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와 평단 양쪽에서 모두 극찬을 받았다. 미국 대중들은 전쟁영웅 출신이자 행동하는 작가로서, 헤밍웨이의 강인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 열광하면서 작가를 넘어선 셀러브리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p> <p contents-hash="cbdab85ee96e49ea30bfb482ee5a918f1e95f0069e38d027a40d2d6f74021564" dmcf-pid="70gsOgd8zL" dmcf-ptype="general">1936년, 37세의 헤밍웨이는 당시 전 세계가 주목하던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취재에 나선다. 헤밍웨이는 파시즘의 잔혹한 실상을 고발하며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4년 후에는 또다른 대표작인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발표하게 된다.</p> <p contents-hash="cc308a4565c4c88d5a50ce563e6245dd6fec3291bb57a046856e57ba152c3806" dmcf-pid="zpaOIaJ60n" dmcf-ptype="general">작품 원문의 제목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에 더 정확한 의미에 가깝다. 여기서 헤밍웨이는 내전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 던져진 인간들의 모습을 통하여 '누군가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모두 일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p> <div contents-hash="99522898204250980dca7fc9eff653325e60df30d090044c5e11354226379b87" dmcf-pid="qUNICNiP0i" dmcf-ptype="general"> 1941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중년의 나이에 이번에는 다시 군인으로 자원입대했다. 종전 이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동성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처럼 헤밍웨이는 성공한 작가로서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계속 위험한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이유에 대하여 "내 자신이 쓸모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봉사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이 위험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헤밍웨이의 사명감에 많은 대중들은 더욱 열광했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416e6a6583d38ddbc9da6b9e39a9021a90d4f12c7bdd2159a323b0a985914a9" dmcf-pid="BGMjAM4qzJ"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2/ohmynews/20251202110303517gaxa.jpg" data-org-width="1280" dmcf-mid="xF32V3XSF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2/ohmynews/20251202110303517gaxa.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벌거벗은세계사</strong> 헤밍웨이</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73dd6eda0ff19e4d50de1475b5fd5f4a2929714a96bdd8c6b8d7c633538a8f0e" dmcf-pid="bHRAcR8BFd" dmcf-ptype="general"> 하지만 이처럼 성공과 명성을 모두 거머쥔 듯한 헤밍웨이의 이면은 한편으로 어두운 가족사와 개인적인 비극의 연속이었다. </div> <p contents-hash="10a8df5ac4e6c98bfd442d46a3ca090faa7ad3b66e42e50ec99bf59edafc753c" dmcf-pid="KXecke6bue" dmcf-ptype="general">헤밍웨이의 부친은 우울증과 부채에 시달리다가 자살했고, 그의 두 번째 아내는 하필 헤밍웨이와 부부싸움을 한 날에 지병으로 인한 쇼크사로 사망했다. 헤밍웨이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조울증을 앓았으며, 이로 인하여 기쁨과 슬픔을 넘나드는 감정기복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헤밍웨이의 자녀들 역시 조현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가족이 3대에 걸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또한 헤밍웨이는 참전 시절에 겪은 '전쟁 후유증'으로 신체적 장애와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고통받았다.</p> <p contents-hash="92fdebb72fbd8ce895db3e2ff345f66352ba5f2935e228145f93d6df6cf9309a" dmcf-pid="9ZdkEdPKzR" dmcf-ptype="general">후속작에 대한 부담으로 슬럼프에 빠진 헤밍웨이는, 1950년에 10년 만에 신작 <강 건너 숲속으로>를 발간했으나, 전작들과 달리 어마어마한 혹평만 들어야 했다. 좌절해있던 헤밍웨이는 1930년대 쿠바에 거주하던 시절, 인근 바다에서 만났던 늙은 어부의 이야기를 우연히 20년 만에 다시 떠올리게 된다.</p> <p contents-hash="4a86feb032cba5696700dc9e2915d8a122fc6c6968153ca8cc42acb7a3423cdf" dmcf-pid="25JEDJQ9UM" dmcf-ptype="general">당시 어부는 헤밍웨이에게 청새치와의 사투 이야기를 들려줬고, 세월이 흘러 헤밍웨이는 노인의 사투가 마치 자신의 삶과 겹쳐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감을 얻은 헤밍웨이는 약 2만 6000단어 분량의 초고를 단 6주 만에 완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바로 헤밍웨이가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고 자부한 <노인과 바다>였다.</p> <p contents-hash="1df7d602705cff133d18c6775529c2372e10228e48348ffd8556f2e5aab82a9b" dmcf-pid="V1iDwix2zx" dmcf-ptype="general">주인공 산티아고의 명대사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인간은 파괴 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아'라는 구절을 통하여, 헤밍웨이는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끝까지 저항하는 이상, 인간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자신의 인생관을 전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p> <p contents-hash="3183060a21769d46de03e3c50351160e9da69329551b631e061a767163810a7c" dmcf-pid="ftnwrnMV3Q" dmcf-ptype="general">하지만 헤밍웨이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1954년 두 건의 비행기 사고를 연달아 겪게 되고 큰 부상을 당하면서 건강이 더욱 악화된다.</p> <p contents-hash="6f6808ed909261fdd13bb642afa1f5bd136912f83b240fd7b002f73ae9886a89" dmcf-pid="4FLrmLRfpP" dmcf-ptype="general">말년의 해밍웨이는 사고 이후 "자신이 FBI(미국 연방수사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건강 악화로 피해망상 증세로 여겼지만, 헤밍웨이 사후 20년이 흘러서 실제로 FBI가 헤밍웨이를 사찰했던 것이 기밀문서를 통하여 사실로 드러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헤밍웨이가 감시만 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 역시 FBI 스파이 활동에 참여했었던 사실까지 드러난 것이다.</p> <p contents-hash="6e45f48fc679b65e3a95c58d7e6f13361d7c9cbd11accb10d8dacda83abc47c8" dmcf-pid="83omsoe4p6" dmcf-ptype="general">결국 헤밍웨이는 가족들의 결정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전기 치료를 받게 된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치료 이후 오히려 기억력과 사고력 감퇴로 인하여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퇴원 이후 헤밍웨이는 일주일 동안 글쓰기에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하루에 서너 개의 문장밖에 쓰지 못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p> <p contents-hash="5f8f53c9dbbfc0f3a96b14a65dd96abc07353d2df2b3c1af446a101760d2b5f2" dmcf-pid="60gsOgd8U8" dmcf-ptype="general">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 자신의 상태를 비관하던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2일 새벽, 자신이 매일 글을 쓰던 시간, 엽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당시 그의 나이 61세였다.</p> <p contents-hash="9eae8212ceb4eeb5d8c6322f325994ae7a22bc8a79d831723358b4d0a43d1817" dmcf-pid="PpaOIaJ6z4" dmcf-ptype="general">헤밍웨이는 비록 기구한 인생을 살아야 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이 전한 메시지, 헤밍웨이의 삶의 방식과 태도 등은 모두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1953년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육성으로 남긴 수상소감에서, 작가로서의 고독함과 도전정신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p> <p contents-hash="afef6e89e69c778efeae228a5ec0032f0975c2d127846cb93654aa9b9e955dc2" dmcf-pid="QfOHXOEopf" dmcf-ptype="general">"글쓰는 일이란 가장 잘될 때도 외로운 일이다. 작가는 외로움을 벗어던질수록 대중적 명성을 얻지만, 그의 작품은 종종 퇴보하게 된다. 훌륭한 작가라면 날마다 궁극적인 주제 혹은 그 부재의 현실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작가는 자신이 쓴 책들을 언제나 새로운 출발로 삼고, 시도하지 않았거나 다른 이들이 도전했다 실패했던 일들을 항상 추구해야 한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AI 확산 위해 온디바이스·음성 AI 개발에 투자 필요 12-02 다음 임창정, 아내 서하얀 앞 눈물…"왜 우는 거야?" 12-0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