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바꾼 승리, 살수대첩의 비밀 작성일 12-08 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리뷰] KBS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7jlLGq0HF9"> <p contents-hash="ac403aed2c72aac5fe32a271a9e43c867ed7403d73afe43b190d4942498d61a6" dmcf-pid="zASoHBpX3K" dmcf-ptype="general">[이준목 기자]</p> <p contents-hash="837038e72726c6010b8ad2f9bf90685762c7b437bdc879f9d1c453fab095f41c" dmcf-pid="qcvgXbUZUb" dmcf-ptype="general">KBS를 대표하는 정통 역사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이 돌아왔다. 첫 이야기는 한민족 역사상 외침에 맞서 거둔 최대의 승리로 꼽히는 '살수대첩'이다.</p> <div contents-hash="094e19e0b46f67710f2f5dd9b73f81bb0fb52a52576c00ab73e62e0a7d71e619" dmcf-pid="BirMl3XSUB" dmcf-ptype="general"> 12월 7일 방송된 KBS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첫 회에서는 '세기의 전쟁 3부작' 시리즈의 1부 '천하를 바꾼 승리, 살수대첩' 편이 그려졌다.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에서 고려의 전쟁영웅 '양규' 역할을 맡았던 배우 지승현이 새로운 MC로 낙점됐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29534965ba96e3ef992903c69509e9385b3566655cc3845a1bb1412d64073b81" dmcf-pid="bnmRS0Zv0q"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8/ohmynews/20251208120224249hkql.jpg" data-org-width="1280" dmcf-mid="Untm7xfzp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8/ohmynews/20251208120224249hkql.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역사스페셜</strong> 살수대첩</td> </tr> <tr> <td align="left">ⓒ KBS</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ace0f8c443aa07d5a6027f9aab2ad806a2f5cfb361027e0c67db7e2734c8e2a6" dmcf-pid="KLsevp5TFz" dmcf-ptype="general"> 서기 6세기 중후반, 요서 일대는 농경과 유목세력이 공존하는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지'로 통했고, 고구려와 중국세력, 유목세력이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세력균형을 이루던 지역이었다. 고구려의 서쪽 국경은 요하였지만, 고구려는 요하 서쪽에도 '무려라'와 같은 군사 기지를 두고 해당 지역의 거란, 말갈같은 이민족들을 복속된 상태로 통제하며 국제적인 외교와 통상의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div> <p contents-hash="6ebe076c6a08dd4ff2f54b5db1bc6674caf1bb7e556e18e27ae2ad16c4901dff" dmcf-pid="9oOdTU1y77" dmcf-ptype="general">그런데 581년, 수나라가 위진남북조 시대의 장기 혼란기를 종식하고 중국을 통일한다. 수나라는 건국 이후 583년 요서 한복판에 '영주총관부'를 설치하며 해당 지역의 직접적인 통치 강화에 나선다. 이는 수나라의 북방 지역 통제와 고구려 정벌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강성한 중국 통일제국의 등장으로, 동아시아는 여러 나라들이 세력균형을 이루던 다원적인 국제질서가 흔들리게 된다.</p> <p contents-hash="b18587128bea2a7e8af64bc4e10b7ce6c31cdef2fe6ec96af69397c2023cb2bd" dmcf-pid="2gIJyutWzu" dmcf-ptype="general">또한 초대 문제의 뒤를 이은 수나라 2대 황제 양제는 중국 통일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 주변국들에 대한 정복활동에 나서면서 진정한 '천하의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그리고 양제가 마지막으로 눈독을 들인 곳이 바로 중국의 천하관에 맞서 독자적인 질서를 추구하던 고구려였다.</p> <p contents-hash="f493663df7947e8a26a5770755dfee5ad486b0a0bfb368031f88025f457e8f8a" dmcf-pid="VaCiW7FYFU" dmcf-ptype="general">608년 수 양제는 중국 본토의 여러 강과 호수를 연결하여 강남과 강북을 수로로 잇는 대운하(大运河)를 건설한다. 대운하의 일부인 영제거(永濟渠)는 고구려 원정을 위한 군사와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낙양에서 탁군(현재의 베이징 일대)을 수로로 연결한 군수교통망이었다. 그만큼 수나라가 오래전부터 고구려를 위협적인 상대로 여기고 얼마나 철저하게 정벌을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p> <p contents-hash="bca276190091dcf90af467d69530bf7db9e909b0e304f4a1320504318fc9e78e" dmcf-pid="fNhnYz3G0p" dmcf-ptype="general">612년 양제가 직접 지휘하는 수나라의 113만 대군은 마침내 고구려를 향하여 출병한다. 실제로 중국의 사서인 <수서> 양제기에 따르면, '모두 113만 3천8백여명이었는데, 200만이라고도 일컬으며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가 되었다' '제1군이 출발하였는데 40여일에야 마쳤고, 깃발이 천리에 뻗쳤다'고 기록할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게 한다.</p> <p contents-hash="e3a2d8d39aa0370426900270552b225a4c1baa7d6a3a8b18102e3334ecc5fe43" dmcf-pid="4jlLGq0H30" dmcf-ptype="general">고대의 전쟁에서 이 정도의 대규모 병력동원이 가능한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기록이 지나치게 과장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하지만 당시는 수나라가 통일제국을 막 이루고나서 철저한 호구와 병력조사, 지방통제가 이뤄졌던 시기였고, 백명 단위까지 구체적인 서술 등을 감안할 때 통계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p> <p contents-hash="a01d20f4088941928b6c9fcdba5e000477e748b320ff6486b294f3658a7d9c57" dmcf-pid="84oKkyCEz3" dmcf-ptype="general">수나라 대군은 출병 두달 만인 612년 4월, 고구려의 1차 방어선인 요하에 도달한다. 여기서 양제는 아직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 조서'를 반포하며 휘하 병사들에게 일정한 포상을 내리고 고구려의 주민도 수나라 주민처럼 대우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만큼 양제는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 <p contents-hash="4dc563a87e07b3e7d9a330a6c42061701563fc27500793639d920a845f67cee7" dmcf-pid="68g9EWhD7F" dmcf-ptype="general">하지만 중국대륙을 통일했던 강성한 수나라 대군은, 개전과 동시에 상상을 뛰어넘는 고구려군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대륙세력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고구려는 험준한 지형을 적극 활용하여 성벽이 단단하고 수비에 최적화된 요새형의 산성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p> <p contents-hash="01fa8ed56f354f6df4bbdf2ccda5f349837bbf36a648dca88e5fd6a589ec0b2a" dmcf-pid="P6a2DYlw7t" dmcf-ptype="general">고구려 성곽의 중요한 방어시설인 '치(雉)'는 성벽을 앞으로 돌출시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수 있게 해주는 고유의 축성기술이었다. 또한 고구려군의 '쇠뇌'는 일반적인 활보다 더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수성전의 핵심무기였다. 쇠뇌는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의 진격을 저지하고 수비 측의 방어력을 극대화시키며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p> <div contents-hash="29b7bc29b9e19bc0b0d4adebf571f1919b9c50e7726b92a8d9c076f8108393cc" dmcf-pid="QPNVwGSr31" dmcf-ptype="general"> 고구려 26대 국왕이었던 영양왕은 이미 오래전부터 수나라의 침공을 예측하며 철저한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고구려는 요하와 요동반도 서쪽해안을 따라 1차 국경방어선을 구축했다. 수도 평양성으로 향한 주요 교통로와 요충지에는 크고 작은 산성과 보루를 촘촘히 연결하여, 성들이 서로 연합하여 방어할수 있는 유기적인 다층 방어체계를 완성해 놓고 있었다. 수나라의 대군은 무수한 고구려의 방어성들에게 막혀 쉽게 진격하지 못 했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e81fe91e334df2e8ebbce75a349f0cf97d176b2aa2e1b07bf1b21c9c521c5e3" dmcf-pid="xQjfrHvm35"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8/ohmynews/20251208120225514pmiq.jpg" data-org-width="1280" dmcf-mid="uUVXxcoMp2"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8/ohmynews/20251208120225514pmiq.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strong> 살수대첩</td> </tr> <tr> <td align="left">ⓒ KBS</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2dac366cbdd42069a7fc89129530c18f654989227813104047299d66b0d14c74" dmcf-pid="yTpCbdPK3Z" dmcf-ptype="general"> 고구려의 핵심방어선인 요동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수 양제는 크게 분노하고 장수들을 질책했다. 양제는 정체된 전황을 뒤집기 위하여, 30만의 별동대와 7만의 수군을 동원하며 고구려의 방어선을 무시하고 곧장 수도인 평양성을 직격하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했다. </div> <p contents-hash="62b155ea3e7a3788b1a62cbbc29a581e1de039de3f05f6633b85c4f7adaa97db" dmcf-pid="WyUhKJQ9pX" dmcf-ptype="general">당시 고구려군의 총사령관은 을지문덕이었다. 현재 을지문덕이라는 인물에 대한 풍부한 사료가 부족한 실정이지만, <삼국사기>에는 '자질이 침착하고 용맹스러우며 지략과 술수가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p> <p contents-hash="7534e3ddc5c2193de8836943f9ebfa3b69a34d79d66b5fe0cc7a3b2e3071eb6c" dmcf-pid="YWul9ix2pH" dmcf-ptype="general">수나라 별동대가 압록강 서편에 진영을 꾸렸다는 소식을 듣자, 을지문적은 본인이 거짓 항복의사를 전한다는 명분으로 직접 수나라 진영으로 찾아오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 을지문덕은 적진을 정탐하며 보급로로 확보하지 못하고 달려온 수나라 군대가 숫자가 많을뿐, 배고픔과 피로에 지쳐 이미 기세가 꺾였다는 사실을 파악해내고 유유히 돌아온다.</p> <p contents-hash="be74c1ea3022ee05ca558e80f2e8691b2b9299eb46222695a323fb7f0d8cc3b1" dmcf-pid="GRk6O5WIuG" dmcf-ptype="general">을지문덕의 기만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고구려군은 수나라군과 대치하며 7차례의 교전을 벌였고 번번이 패배한 척 뒤로 물러나며 적을 압록강에서 평양성 인근까지 고구려 영토 깊숙이 유인했다. 또한 고구려군은 '청야전술'로 적이 사용할수 있는 식량과 식수, 물품 등을 모두 소거해버리면서 물자를 보급받지 못한 수나라군은 점점 지쳐갔다.</p> <p contents-hash="0f1fd4c8297564572269cea63c97608ebfef2193c8c41a2b940f4e1a6dc1338a" dmcf-pid="HeEPI1YCuY" dmcf-ptype="general">한편 별동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온 수나라 수군도 평양성에 근접하고 있었다. 당초 수나라의 전략은 별동대가 수군을 만나 보급을 받고 40만 대군이 수륙병진으로 평양성을 포위한다는 구상이었다.</p> <p contents-hash="fd272226c36063d9a0b37ce6026b6f3cdf73d9d5a5ca2d72b7f9639acf342ab2" dmcf-pid="XdDQCtGhzW" dmcf-ptype="general">고구려군의 대응은 각개격파 전략이었다. 평양성은 평시에는 도성으로, 전시에는 산성으로 방어하는 이중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고구려군은 수나라 수군이 진격해오자, 백성들이 거주하는 외성을 모두 비우고 병사들을 매복시켜 수나라군을 성내로 유인했다.</p> <p contents-hash="1746a9b7e2c4de34df8a97c97fae537da26d5be68fb06c839320688017d4ca38" dmcf-pid="ZJwxhFHl7y" dmcf-ptype="general">방심하여 단독으로 성내로 진격해왔던 수나라 수군은, 고구려군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만다. 그동안 수세로 일관하던 고구려군의 반격이 시작되는 시점이, 바로 이 '평양성 전투'였다. 수군이 패퇴하면서 수륙병진 전략이 무너지고 보급도 받지못하게 된 수나라 별동대는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된다.</p> <p contents-hash="8c70e0f11047d33d51fb5c8182bae7f0beeea46bced9dd9120cdcfa5ce3f93ca" dmcf-pid="5irMl3XSUT" dmcf-ptype="general">승세를 잡은 을지문덕은 수나라 지휘관들에게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라는 서신을 전했다. 그 내용은 '신기한 책략은 천문을 헤아리고, 다 꿰뚫었고, 기묘한 계산은 지리를 꿰뚫는구나. 싸워 이긴 공이 이미 높았으니, 족한 줄 알아서 그치기를 원하노라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戰勝功旣高,知足願云止)라는 내용이다. 점잖게 퇴각의 명분을 제안하는 척 하면서, '너희는 이미 승산이 없으니 여기서 그만 돌아가라' 우회적인 조롱을 담은 시였다.</p> <p contents-hash="7c0c48064cd9e40a2bd2a99d1878e7ae4399b4f6fb4fd33261d3d7747a730bb1" dmcf-pid="1nmRS0Zv3v" dmcf-ptype="general">612년 7월, 패색이 짙어진 수나라 별동대는 결국 퇴각을 시작한다. 하지만 살수 (지금의 청천강) 인근에서 매복하고 있던 고구려군의 대대적인 반격을 당한다. 중국 사서인 <자치통감>에 따르면, 수나라 별동대는 이 전투에서 30만 대군이 거의 궤멸하고 살아돌아간 병력은 약 2700여명에 불과할만큼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 전투가 한국사 역대 최대의 승리로 꼽히는 '살수대첩'이다.</p> <p contents-hash="f237dbd5d4aa38e514fbc84e478c25e09ee314f38fa50d3704affca94c011caf" dmcf-pid="tLsevp5TuS" dmcf-ptype="general">이 전투를 끝으로 요하에서 살수에 이르기까지 6개월에 걸쳐 진행된 '1차 고구려-수나라 전쟁'은 고구려의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린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할만한 중국 통일왕조가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일으킨 전면전을, 유일하게 고구려가 당당히 격퇴함으로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뒤흔든 대이변이었다.</p> <p contents-hash="f252b3ea466a1d5a0a37b863148300d7235e1520f843da6395e5b7b3390948d0" dmcf-pid="FoOdTU1ypl" dmcf-ptype="general">양제는 이 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아무 것도 얻지못한 채 철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정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양제는 이후로도 거듭 침공을 시도했으나, 잦은 전쟁과 막대한 인명 및 물자 손실으로 민심은 크게 악화되었고 수나라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양제는 신하들의 반란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수나라의 멸망은 그 뒤를 이은 당나라가 등장하는 계기로 이어진다.</p> <p contents-hash="fe0493abb8f317dfdc749a14275b3b5423bcf84650bbc3292c32f55b10304f50" dmcf-pid="3gIJyutWuh" dmcf-ptype="general">새롭게 돌아온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는 생생한 중국 현지 취재와 고대 무기 복원 실험, 전문가 인터뷰 등 다방면에 걸친 심층 취재 등을 통하여 살수대첩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눈길을 끌었다.</p> <p contents-hash="facd6fcb91915d754590555415edccb309780e64add0cde3dda636f9168453d0" dmcf-pid="0S3OqR8BpC" dmcf-ptype="general">MC 지승현은 이야기의 내레이터 역할은 물론이고, 배우로서의 장점을 살려서 직접 갑옷을 입고 전투 장면까지 소화하는 열연을 펼치면서 스토리에 더욱 생생한 사실감을 불어넣었다. 또한 시대 발전에 맞춰 압도적인 수나라 대군의 스케일과, 이에 맞선 고구려의 전략적 대응을 인공지능(AI)과 확장 현실(XR)을 통해 생생히 재현해낸 세련된 영상미는 다큐멘터리를 넘어 한편의 대하전쟁사극을 보는 듯한 볼거리를 제공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공대생→미코→배우…서민주 “‘정보원’ 첫 주연 감격, 계속 도전” 12-08 다음 태양활동 극대기 위성이 위험하다…8일부터 고에너지 양성자 경보서비스 제공 12-08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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