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부족한 치명적 약점에도 '자백의 대가'를 끝까지 보게 되는 이유 작성일 12-09 5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당신의 확증편향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자백의 대가’)</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PblVdOEoih">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6ce2e8994231bf7da9ec9b35d80f60eafb8f812d75c9686bbaa641ad874d9226" dmcf-pid="QKSfJIDgMC"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5867airi.jpg" data-org-width="600" dmcf-mid="V6oz6kgRJ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5867airi.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ec0c3af4153cbf0eafe7986fec316692d3599edffa835081c869bc08921e1ed1" dmcf-pid="x9v4iCwaLI" dmcf-ptype="general">[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개연성으로만 보면 약점이 분명 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때로는 개연성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작품이 있다. 다소 과장과 허구와 의도가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끝내 그려내려 한 메시지가 공감가는 지점이 있을 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자백의 대가>는 그런 작품이다. 개연성으로만 보면 허점이 많지만, 그러한 극적 스토리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매력적인 면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믿는 '확증편향'의 시대에는.</p> <p contents-hash="7fa175df5338c9744d95de551ccc69889effa564c11b8dbd5cb3f8e8dd185576" dmcf-pid="ysPhZfB3LO" dmcf-ptype="general">하루아침에 남편이 살해당하고 그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미술교사 안윤수(전도연). 무고함을 호소하지만 정치권의 이슈를 덮기 위해 검찰이 오히려 더 사건을 이슈화하면서 그녀는 남편 죽인 살인마로 지탄받게 된다. 결국 구치소에 수감된 채, 딸마저 시설에 보내지게 되어 절망하게 된 윤수는 독방에 감금되어 옆방에 들어온 모은(김고은)의 은밀한 거래 제안을 받는다. 모은은 자신이 일했던 병원의 의사 부부를 잔인하게 독살하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마녀로 지탄받게 된 살해범이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b16ccc834c8884c9c14054f836fb8786ccafe90b59ba06f3c087b7b7df1d54d7" dmcf-pid="WOQl54b0Ls"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7136sbra.jpg" data-org-width="600" dmcf-mid="fHA6Llmjd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7136sbra.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52203a98bfa71619673bb62859e4c87f43e26664c42ee6273aa4fface92e4e11" dmcf-pid="YIxS18Kpnm" dmcf-ptype="general">모은이 한 제안은 충격적이다. 자신이 안윤수의 남편을 살해했다 자백하겠다는 것. 다만 그 자백의 대가로 모은은 안윤수에게 한 사람을 죽여 달라 요구한다. 모은의 자백과 함께 국선변호사의 도움으로 보석을 받아 나오게 된 안윤수는 모은의 요구대로 살인을 하지 않으면 다시금 끔찍한 남편 살인범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아야 되는 딜레마 상황에 놓이게 된다.</p> <p contents-hash="cdc5cf04702d41c66b1ba16ed493607da56d04756ca76193c9eb96c25c100256" dmcf-pid="GCMvt69ULr" dmcf-ptype="general">앞부분의 이야기 설정만 봐도 <자백의 대가>의 서사는 개연성이 흔들릴 정도로 파격적이다. 일단 구속된 이들이 독방에서 옆방에 나란히 들어갈 가능성이 희박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벽을 사이에 두고 은밀한 거래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보석으로 나온 인물이 거래의 대가로 누군가를 살해하려 한다는 설정도 파격이 아닐 수 없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7e0145aaba1320df4a88094c28c0bf2f8e462980c1bbecfcdc28802eea2425f2" dmcf-pid="HhRTFP2uMw"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8359jalk.jpg" data-org-width="600" dmcf-mid="4llgmtGhn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8359jalk.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6889f4fce2dc0c46193d745cd02b9f350553c3b44fa8e4c8549b76e97c5ea18c" dmcf-pid="Xc9wTq0HnD" dmcf-ptype="general">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허구적 스토리로 받아들이고, 왜 이런 상상의 서사를 썼을까를 생각해보면 <자백의 대가>의 파격들이 지향하는 메시지들을 만날 수 있다. 그건 '확증편향'에 대한 비판이다. 먼저 어째서 안윤수가 남편 살해범으로 지목되어 구속되었는가를 들여다보면 무리하게 사건을 자신이 믿는 대로 밀어붙인 검사 백동훈(박해수)이 보인다. 그는 자신이 보는 대로 믿으려는 성향을 가진 검사로 자신의 신념이 잘못됐다는 의심을 결코 하지 않는 인물이다.</p> <p contents-hash="e064724e48aa914fd8f97fb609829784925400d4ecf123c15db8bd1c312b7d74" dmcf-pid="Zk2ryBpXME" dmcf-ptype="general">물론 이런 잘못된 신념과 편견의 소유자는 백동훈만이 아니다. 처음 안윤수를 수사했던 경찰들도 그녀가 남편이 살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웃고, 야하게 옷을 입고 다니며, 다소 미망인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를 의심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피해자다움'의 편견이다. 피해자는 응당 그래야 할 것 같은 모습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141143cfc4d9f8cc9189e3f42d969aaa24d0aa97e5713e8a1394125ae915301c" dmcf-pid="5EVmWbUZek"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9570dgji.jpg" data-org-width="600" dmcf-mid="86ibxwjJJ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19570dgji.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244cb5440e643291c5f493d04c2e17521b6529128010da8f048297b5fc8f63fb" dmcf-pid="1DfsYKu5Mc" dmcf-ptype="general">그리고 <자백의 대가>는 이러한 '피해자다움'과 '확증편향' 같은 편견에 가득한 시선을 이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끼게 만든다. 앞부분만 보면 안윤수가 과연 진짜 남편 잃은 피해자가 맞는지 의심하게 되고, 그래서 어쩌면 그녀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일 수도 있겠다고 마음대로 상상하게 된다.</p> <p contents-hash="37bc08beeaecfd4b1b6359b6a3b70360ba3fef9da58f8b42c7b3ad39cf135048" dmcf-pid="tw4OG971iA" dmcf-ptype="general">이러한 엇나간 편견은 그녀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 모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잔혹하게 음식물에 독을 타 부부가 죽어가는 걸 바라본 이 인물에 대해 사람들은 희대의 사이코패스이자 마녀라 지탄한다. 그리고 그건 이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도 다르지 않다. 그녀가 하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시청자 역시 그녀가 마녀라는 걸 의심하기가 쉽지 않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75acf210875567f795b874f0256158dfbc3c20fd7c2fdac7db53fb5997d89fe9" dmcf-pid="Fr8IH2ztLj"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20794cumx.jpg" data-org-width="600" dmcf-mid="6i9X7dPKL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entermedia/20251209151120794cumx.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51f954ee0722fd4969238dac91db3fd09ec601504d418bdc91fc96873a17e3f0" dmcf-pid="3m6CXVqFMN" dmcf-ptype="general">하지만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진실 앞에 다시 질문하게 된다. 과연 내가 확실하다고 믿는 신념은 편견이 아닐까.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편견일 수 있다고 느끼면서도 자신이 믿었기 때문에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만들어낸 엄청난 결과들로 인해, 그 편견을 인정하고 되돌리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p> <p contents-hash="319438aa0f26612fa71dbf3fc35ddee1b2f49ea0744e51a3a122c1e7f34abe9e" dmcf-pid="0sPhZfB3Ja" dmcf-ptype="general">그래서 <자백의 대가>는 일종의 스스로 확증편향의 실험에 들어가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내가 믿었던 것들은 과연 진짜가 맞을까. 만일 그게 진짜가 아닌 나의 잘못된 믿음이었다면 그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들은 얼마나 누군가를 파괴시키는 일이 될까.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왜 우리는 쉽게 이를 인정하고 진실을 직면하지 못할까. 이런 질문들이 마지막 회에 이르러 쏟아져 나온다. 다소 파격적인 설정으로 개연성의 허점을 드러내는 작품임에도 끝끝내 이 사고실험을 끝까지 보게 되는 이유다.</p> <p contents-hash="fa948f6c2ed246a70c28bd15eb711cc4d6292d633e2512f254c8e54588ed3ead" dmcf-pid="pOQl54b0Mg" dmcf-ptype="general">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p> <p contents-hash="a894bd151bd26c1ca5ad64f6f75860ab64165f382852c95a13b9e022055d7474" dmcf-pid="UIxS18Kpio" dmcf-ptype="general">[사진=넷플릭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개인정보전문가협회, '첫 공로상' 김완집 서울시 과장 12-09 다음 'PSY의 딸' 베이비돈크라이, 日 시장 도전..."프로모션 차 떠나요" 12-09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