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여왕' 김지미 미국서 별세… '네번 결혼' 파란만장 스타의 인생 작성일 12-10 9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tGy55fB3D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9c8f4df5666e470fbb1e19555725e4acd98fb3b7efaca4d28b610f8faf1a547a" dmcf-pid="FHW114b0I2"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김지미 / 마이데일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10/mydaily/20251210113624453zefa.png" data-org-width="619" dmcf-mid="ZjsaavOcE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0/mydaily/20251210113624453zefa.pn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김지미 / 마이데일리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55edaeae06298ae690ddbd5c3571ba3e6d1e5bed2c2103473cf98e3e5baf5964" dmcf-pid="3XYtt8KpE9" dmcf-ptype="general">[마이데일리 = 서기찬 기자] 한국 영화계를 풍미했던 원로 배우 김지미가 향년 85세로 세상과 이별했다. 고인은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며, 파란만장했던 개인사와 거침없는 행보로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렸다.</p> <p contents-hash="03175e084b071691ee261afc1c51c1a7004479e48dc9f82c67ff3444ee6ce62f" dmcf-pid="0ZGFF69UrK" dmcf-ptype="general">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별세했다. 한국영화인협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하고 있다.</p> <p contents-hash="1b708addcaaaaffdcb0233a6f996906c7c9452d07b036509dc141d7875d6c5bf" dmcf-pid="p5H33P2uDb" dmcf-ptype="general">1940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김지미(본명 김명자)는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57년 김명민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를 통해 혜성처럼 스크린에 데뷔했다. 데뷔작에서부터 성숙하고 도발적인 매력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영화계는 '지미'라는 예명을 가진 배우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정도로 그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p> <p contents-hash="dfb594a4d02fb02729ae875c1e62fa1888d6b197a4ca694cfa9c70f0516fdb37" dmcf-pid="UrEII3XSIB" dmcf-ptype="general">이후, 김지미는 연이은 흥행작과 명작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뛰어난 미모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김지미는 35년 간 180 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p> <p contents-hash="2bc5321fdabf8b7d72efafd6c45218bac73bda4cf05ca79440ee52067e097ccc" dmcf-pid="umDCC0Zvrq" dmcf-ptype="general">김지미의 주요 작품을 살펴보면 '비 오는 날 오후 3시' (1959), '육체의 문' (1965), '치마바람' (1967), '춘희'(1967), '직녀의 성'(1968) 등이 있다. 특히 신상옥 감독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대원군' (1968)에서 김지미는 안정적이고 힘 있는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2cc92b162274eb9606e20653e2d3789fe5eacf2fbd7962f8c0f05e4c25749950" dmcf-pid="7swhhp5TIz"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영화 '직녀의 성'(1968)에서 신성일과 열연 중인 김지미./'직녀의 성' 캡처"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10/mydaily/20251210113625824wcov.png" data-org-width="640" dmcf-mid="5Vy55fB3E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0/mydaily/20251210113625824wcov.pn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영화 '직녀의 성'(1968)에서 신성일과 열연 중인 김지미./'직녀의 성' 캡처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b739f4d5565a50adcee841a665d3f874e7290421f803bfe4fc494a73f0790697" dmcf-pid="zOrllU1yE7" dmcf-ptype="general">한국 영화계 거장인 김기영, 정진우, 유현목 세 감독이 함께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여' (1968)에서는 폭넓은 연기 소화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p> <p contents-hash="b7b5097f10d11b68f5254001366084b07f0b53749da80fe14677edcf42c90d54" dmcf-pid="qImSSutWru" dmcf-ptype="general">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몽녀' (1968)에서도 김지미는 복잡다단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배우로서의 역량을 뽐냈다.</p> <p contents-hash="42fad0f6df3bc2ab81ec64cbdb9ad4570ea7c54bc427f8bd02652b26863c80cf" dmcf-pid="BCsvv7FYrU" dmcf-ptype="general">김지미는 1990년대까지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으며, 1992년 김지미필름에서 직접 기획하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를 통해 대중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 영화는 그녀의 영화 인생에 방점을 찍는 작품으로, 배우뿐만아니라 제작자로서의 역량까지 보여주며 한국 영화사에 또 다른 의미를 더했다.</p> <p contents-hash="f4608e2afbbf72a7037c53c7175e025bda95df5d4312b3ebe50ceb738beddba5" dmcf-pid="bhOTTz3Gwp" dmcf-ptype="general">김지미의 삶은 스크린 밖에서도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특히 그의 네 차례에 걸친 결혼과 이혼은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p> <p contents-hash="c672b9c7b81ea05455188247c506f621db56172ffbe2bb8bf4db0a9f7504cd24" dmcf-pid="KzUKKLRfm0" dmcf-ptype="general">데뷔 1년 만인 1958년, 18세의 나이로 12세 연상의 영화감독 홍성기와 첫 결혼을 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으나 7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최민수의 아버지 배우 최무룡과의 두 번째 결혼으로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무룡의 전처와의 소송 문제 등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그의 두 번째 결혼 역시 6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a2b3569957e14cbcb53ed3b015ffb2d0a5f495b12213a0871857211b0118c2f9" dmcf-pid="9qu99oe4I3"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영화 '춘희(1967)'에서 김지미./'춘희' 스틸컷"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10/mydaily/20251210113627146lyie.png" data-org-width="640" dmcf-mid="19RoolmjE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0/mydaily/20251210113627146lyie.pn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영화 '춘희(1967)'에서 김지미./'춘희' 스틸컷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49560d21da3b5750bab37971741c22b1118b289f724393ce822e9cca9f4d346d" dmcf-pid="2B722gd8rF" dmcf-ptype="general">세 번째는 1970년대 국민적인 사랑을 받던 가수 나훈아와의 결혼(사실혼)으로, 당시 연예계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심장병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의 결혼이었다.</p> <p contents-hash="34fa30f925a000ca0ff9875153e145788f445385da326227f5eebb5caa1b15ee" dmcf-pid="VbzVVaJ6Et" dmcf-ptype="general">그는 여성 배우로서 쉽게 드러내기 어려웠던 결혼과 이혼 등의 개인사를 솔직하게 공개하며 시대를 앞서나간 당당한 여성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네 번의 결혼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의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p> <p contents-hash="544fd391ddeb646b1460f405d2c1b24991479faf01f585c59a5c984a356a1f0e" dmcf-pid="fKqffNiPI1" dmcf-ptype="general">1980년대 후반에는 배우 활동 외에도 영화 제작자로 변신하여 영화사 '지미필름'을 설립했다. 그는 제작자로서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영향력을 확장하며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했다. 1990년대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영화인들의 권익 향상에도 힘썼다.</p> <p contents-hash="0ab79c762e4ca6e505624a7e6d84729f9d8062f2b32a402c522f16cb2cd550fd" dmcf-pid="49B44jnQw5" dmcf-ptype="general">고인은 뛰어난 연기력과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대종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주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다수 수상하며 그 연기력을 인정받았다.</p> <p contents-hash="d520e8c9c3331096e8b583c4af7a60ca0b91e0e97718bffd9d3b0180a01e4c1e" dmcf-pid="82b88ALxsZ" dmcf-ptype="general">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었던 김지미의 별세 소식에 영화계는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그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한국 영화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황보라, ♥김영훈 내조 중 ADHD 증상 토로.."머리 좋아야 해" [보라이어티] 12-10 다음 영화계 거목, 4번의 이혼...故김지미, 화려한 삶 뒤로하고 떠났다 12-1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