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의 이치? 군주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작성일 12-14 8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xk6denpXFL"> <p contents-hash="74f94b8cfac7df6a8f32a67cc648807a0b2e37d693ebff73e73d5f11d20d6d2a" dmcf-pid="y7SHG5jJzn" dmcf-ptype="general">[김종성 기자]</p> <p contents-hash="29821d47f619f3b355ea18b7852e909dc47186438d42ccb1e98a6ea4f4775b40" dmcf-pid="WzvXH1Ai7i" dmcf-ptype="general">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사자성어는 퓨전사극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의 좌의정 김한철(진구 분)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표현이다. 그는 이 사자성어가 내포하는 권력의 유한성에 도전하는 캐릭터다.</p> <p contents-hash="8829c3962b00705385ca80ae98d6451f96ede69563db56b72f45bc898556a7a3" dmcf-pid="YqTZXtcnzJ" dmcf-ptype="general">그는 선왕을 시해하고 이희(김남희 분)를 용상에 앉힌다. 그런 뒤 자신의 권력을 영구히 이어가기 위해 딸 김우희(홍수주 분)을 세자빈으로 만들고 향후 자신이 임금의 장인이 되는 구상을 추진한다.</p> <div contents-hash="6dcce197b9528c80a144bf18cf2dcc094b4fdfe6a2c7ff8c692206a49a8f8a65" dmcf-pid="GBy5ZFkL7d" dmcf-ptype="general"> 그런데 그의 딸은 아버지를 국구(國舅)로 만들 생각이 없다. 그 딸은 현직 세자 이강(강태오 분)이 아닌 폐세자 이운(이신영 분)을 좋아한다. 심지어 이강 암살까지 시도한다. 이것이 김한철의 무한권력 도전에 지장을 준다. 지난 6일 제10회에서 김우희는 아버지에게 "왜 이리 국구 자리에 목을 매시는 겁니까?"라며 "이미 다 가지셨는데, 왜 그리 국구 자리를 욕심 내시는지 궁금해서요"라고 묻는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f9b9e0c155f21f2c9dc29e9306a9e0ebe577d73c719562ba7b57e00b911394ee" dmcf-pid="HbW153Eo7e"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14/ohmynews/20251214122742684ykum.jpg" data-org-width="1200" dmcf-mid="Q6egojB3u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4/ohmynews/20251214122742684ykum.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의 한 장면.</td> </tr> <tr> <td align="left">ⓒ MBC</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db26320d2f63122134f7efc9144aeaa8c8ffc72bb1a064091b0e70bc9fa8238a" dmcf-pid="XKYt10DgFR" dmcf-ptype="general"> <strong>우리 현대사의 군주들</strong> </div> <p contents-hash="6d7bbd46777711c20015629e892f2f3dc4dd5fc89cfa05fe80d9207d6af05ff4" dmcf-pid="Zc8eRi0H7M" dmcf-ptype="general">권불십년의 10년이 꼭 실제의 10년을 지칭하지는 않지만, 10년 이상을 군림하는 권력자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승만은 12년을 집권했고, 박정희는 그보다 6년 더 집권했다.</p> <p contents-hash="1a41a4ce7f9b015a0d749004e1cfcd5ab7a682eb811877ab3f2dbd2630b5e16b" dmcf-pid="5k6denpXFx" dmcf-ptype="general">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된 것은 13년 전인 2012년 11월 15일이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을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은 3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4년간 '형식적 총리, 실질적 대통령'으로 있다가 2012년부터 대통령직을 이어오고 있다.</p> <p contents-hash="63a542d49c42050d509799c7dfc4117ad9ddb62d6fdfc74e0b643de7e9229fad" dmcf-pid="1EPJdLUZUQ" dmcf-ptype="general">1982년에 취임한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은 지난 10월 12일(현지 시각) 대선에서 92세 나이로 8선에 성공했다. 이런 집권자이 아프리카에는 많다. 83세인 적도기니의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는 1979년부터, 80세인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는 1986년부터, 79세인 에리트레아의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는 1993년부터 재임하고 있다. 81세인 콩고의 드니 사수응게소는 1979년부터 1992년까지 그리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재임하고 있다.</p> <p contents-hash="a7a660f98b0d9399b03645509c017978312dff8ca0b9b99dfa5f1969debf23d4" dmcf-pid="tDQiJou5pP" dmcf-ptype="general">권불십년은 최고권력자 지위를 정당화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없을 때에 훨씬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 지위를 정당화시키는 법적 권위가 없으면 그것을 단 하루도 지키기 힘들므로 이런 경우에는 권불십년 이치가 거의 들어맞는다.</p> <p contents-hash="9174910cbc6b2cc3966ba69aef606aaf573675823b16750f4b6326af3bce5c5f" dmcf-pid="Fwxnig71U6" dmcf-ptype="general">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던 시절에 자파 국회의원이 적어 재선이 힘들었던 이승만은 1952년에 직선제 개헌을 하고 1954년에 자기에게만 예외적으로 3선을 허용하는 개헌을 함으로써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박정희는 1969년에 3선 개헌을 하고 1972년에 유신개헌을 함으로써 사실상의 종신군주가 됐다.</p> <p contents-hash="0cfaea8f0b704b92a186d9fe7b09b48ca768cc85cc8202bc232f4bfc9ddf5e68" dmcf-pid="3rMLnaztF8" dmcf-ptype="general">1980년 8월 27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 대통령직에 있었던 전두환은 최고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1987년 개헌 때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신설하고 이 기구를 통해 상왕 권력을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져 상왕에 오르지 못하고 설악산 백담사로 오르는 사실상 유배의 길을 가게 됐다.</p> <p contents-hash="e5fb96e705c03f4a871243f4ae4059f0adf961bca38f4ee1d914f1930660bef6" dmcf-pid="0mRoLNqFU4" dmcf-ptype="general">권불십년 여부가 제도적 장치 여하에 달려 있다는 점은 <이강달>의 김한철이 분투하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 군주 27명 중에 10년 이상 재위한 임금은 태종과 세종을 포함해 총 19명이다. 위의 아프리카 대통령들처럼 30년 이상 재위한 군주는 중종·선조·숙종·영조·순조·고종이다.</p> <p contents-hash="36a93319709267d3b0be852556b6861f2de2c04b4207ef5411e003bca6850300" dmcf-pid="psegojB37f" dmcf-ptype="general">순조·헌종·철종은 실권이 없어 세도가문들의 통제를 받았다. 이런 허약한 군주들도 각각 34년·15년·14년간 재위했다. 권불십년은 군주들에게는 대체로 해당되지 않았다.</p> <p contents-hash="ce95460ffe91f0028f6df01b11457af2297c0ce3d8a8203d7665bea9a4a16f35" dmcf-pid="Uk6denpXFV" dmcf-ptype="general">군주들이 장기 집권한 것은 임기 제한이 없어서가 아니다. 건국시조인 태조 이성계가 6년 만에 상왕으로 밀려나고 어린 단종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데서 나타나듯이, 왕조시대 군주들은 임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었다. 그런 시절에 10년은 물론이고 수십 년간 집권하는 군주들이 있었던 것은 군주의 지위를 신성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p> <p contents-hash="cb1effc7a7f751305ced7eaafc54b4941d969f10e265aa7aee84ecd6c3c4f0dd" dmcf-pid="uEPJdLUZU2" dmcf-ptype="general">군주를 국가와 일체화시키고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하는 시스템에서는 군주에게 대항하는 것이 국가는 물론이고 신에게 맞서는 일로 간주됐다. 모든 경우에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스템은 많은 군주들이 권불십년을 피해가는 데 도움이 됐다.</p> <p contents-hash="dc80c7522d36b213e045da80cef42f3c12adc5d90dbfaa23daf4f826d8f8d42f" dmcf-pid="7DQiJou5F9" dmcf-ptype="general"><strong>허약한 왕가도 10년은 넘겼다</strong></p> <p contents-hash="f62713df0c4827237002ab40e1593eec7a490197cb0504b700e2a95136c55140" dmcf-pid="zwxnig710K" dmcf-ptype="general">왕조시대에 권불십년의 제약을 받은 쪽은 주로 비(非)왕족 권력자들이다. 왕족이 아닌 정치인은 아무리 유능하고 실권이 막강해도 10년 이상을 집권하기 힘들었다. 이런 인물들의 최고권력 행사를 정당화하는 법적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불안정한 속에서 최고권력을 지켜야 했다.</p> <p contents-hash="31010eeb2e1c974f7daca9d31d8f2c5502f69bf746035750de92bda02a0979bd" dmcf-pid="qrMLnazt7b" dmcf-ptype="general">태조 이성계 이상의 실권을 행사했던 삼봉 정도전의 권력은 6년을 넘기지 못했다. 정조의 즉위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한때 임금 이상의 권세를 행사했던 홍국영은 정조 즉위 4년 만에 숙청을 당했다. 1864년부터 아들 고종을 대신해 최고권력을 행사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1873년에 실각했다.</p> <p contents-hash="0bb2ef3dfa4c4189230c0e75de1ccf0436bf1acfc040200cc96874291cb6fe8d" dmcf-pid="BmRoLNqFFB" dmcf-ptype="general">그런데 임금이 아닌데도 권불십년을 피해간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를 들 수 있다. 그는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무력화시킨 1453년 계유정난 때부터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다. 그랬다가 세조(수양대군)가 청년 장군인 남이 등을 신임한 1467년에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났다. 그 상태에서 1468년에 세조가 죽자 남이를 역모죄로 몰아 처형하고 권세를 회복했다. 관직에서 물러나는 1474년까지 그는 권력 핵심부에 있었다.</p> <p contents-hash="7a0782fc8e64e3f78bc7b9e8a6945a45929e3a55d92fa9fbadad3f4ae14c8f45" dmcf-pid="bsegojB33q" dmcf-ptype="general">한명회는 1460년에 세자 이황(훗날의 예종)의 장인이 되고, 1467년에 자을산군(훗날의 성종)의 장인이 됐다. 공신 지위에 더해 외척 지위까지 확보했던 것이다.</p> <p contents-hash="9bff7e01b0873b351de2985c6f4b14aec609ce92a009881dea20cbc613523523" dmcf-pid="KOdagAb07z" dmcf-ptype="general">왕후는 신의 대리인의 배우자로 인식됐다. 군주의 유고 시에는 전현직 중전이 비상대권을 행사하고 차기 군주를 선정했다. 군주가 어리면 이런 여성들이 국정 운영을 맡았다. 이런 여성을 배출한 곳이 외척 가문이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이들이 최고권력에 접근할 수도 있었다. "왜 이리 국구 자리에 목을 매시는 겁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다.</p> <p contents-hash="cae3a27699826706b78ddf265238b799e9a1e96a4cf77649a710e5de04d47c43" dmcf-pid="9IJNacKp77" dmcf-ptype="general">왕실은 한미한 가문을 외척으로 선호했다. 힘센 가문은 외척 지위를 이용해 왕실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한명회 같은 야심찬 실력자를 외척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권불십년을 피해가는 비왕족 실력자가 출현하기 쉬웠다. <이강달>의 김우희는 '이미 다 가지신 아버지가 대체 왜 이러느냐?'고 물었지만, 김한철 입장에서는 외척 지위까지 확보해야만 다 가지는 것이었다.</p> <p contents-hash="8cc73fa2747fa03ee35c340edf5d7a4e69642840c805c745d0672afc9059bad3" dmcf-pid="2hnAjE2u3u" dmcf-ptype="general">가문 단위로 권불십년을 넘어선 사례도 있다. 세도가문으로 명성을 날린 안동 김씨다. 이 가문은 순조·헌종·철종 시대인 1803~1827년, 1830~1841년, 1849~1864년에 왕실 이상의 권력을 보유했다. 이 가문 역시 외척 지위를 발판으로 19세기 전반의 조선을 지배했다.</p> <p contents-hash="2104be03fd78a2bdef5907b318bcd123da1379423eb27cdc3f962263c35ef80a" dmcf-pid="VlLcADV73U" dmcf-ptype="general">어린 왕의 출현을 이용해 권세가들이 안동 김씨처럼 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 수렴청정과 섭정제도다. 그런데 48세 된 정조가 열 살짜리 아들 순조를 놔두고 갑자기 사망한 1800년에는 이 시스템에 고장이 발생했다.</p> <p contents-hash="2e2b4e198178ac10cd27e36fd84505bee0e24c5505b88a4f5e13a7b81f2535c2" dmcf-pid="fSokcwfzzp" dmcf-ptype="general">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맡은 정순왕후(정조의 새할머니)는 정적인 정조의 개혁을 파괴하는 한편, 왕실의 권력을 지키기보다는 친정집인 경주 김씨의 세도정치를 돕는 쪽에 섰다. 이로 인해 왕실이 약해지고 세도가문이 강해졌다. 이렇게 조성된 풍토 속에서 안동 김씨라는 역대 최강의 외척이 등장했다. 외척 지위를 기반으로 왕실 권력을 흡수한 이 가문은 권불십년에서 자유롭게 됐다.</p> <p contents-hash="3a6dac0efa9e932b5b17f2fdc220679db34a10dcbaa88e735a6819fd90e305ab" dmcf-pid="4vgEkr4qU0" dmcf-ptype="general">최고지도자나 외척 같은 지위가 있어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잃을 수 있는 것이 최고권력이다. 그런 지위 없이 최고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히 훨씬 더 불안정하다. 권불십년은 이런 경우에 잘 들어맞는 표현이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인디애나대 쿼터백 페르난도 멘도사, 하인즈맨 트로피 수상 12-14 다음 ‘주토피아2’, 개봉 19일 만에 500만 관객 넘었다 12-14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