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다고? 경마 기술은 내가 거인" 작성일 01-05 21 목록 <span style="border-left:4px solid #959595; padding-left: 20px; display: inline-block"><strong>'경마대통령' 박태종 인터뷰<br>최근 38년 기수 인생 마쳐<br>지난달 말 60세 넘겨 은퇴<br>통산 1만6016회 출전, 2249승<br>최다 경주·다승 기록제조기<br>새벽 4시반 기상·9시 취침<br>기수 생활 내내 철저히 지켜<br>부상에도 오뚝이처럼 재기<br>"경마 관련 일 무엇이든 도전"</strong></span><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9/2026/01/05/0005616713_001_20260105174710114.jpg" alt="" /><em class="img_desc">한국 경마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최근 은퇴한 박태종 기수가 승용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색 바탕에 노란색·붉은색 줄무늬가 들어간 상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김재훈 기자</em></span><br><br>말 위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수도승처럼 삶을 살아온 사나이가 있다. 22세에 처음 말을 탔던 청년은 강산이 세 번 바뀌고 네 번째 바뀔 무렵, 만 60세를 갓 넘은 중년이 될 때까지 달리도 또 달리며 땀을 흘렸다. 1만6014번째 경주에서도 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던 베테랑 기수는 만 37년8개월 만에 말 위에서 완전히 내려온 뒤에야 비로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br><br>'한국 경마의 전설' 박태종(60)을 지난 2일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만났다. 지난달 21일 현역으로서 마지막 경주를 펼쳤던 그는 일주일 뒤 공식 은퇴식을 치르고 정들었던 경주로를 떠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경주로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만 60세 정년을 채워 은퇴한 그는 "아직도 은퇴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년까지 무사하게 잘 끝내는 게 목표였는데 그걸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마주, 조교사, 기수 동료 등 모든 관계자에게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2023년 은퇴한 김귀배 기수에 이어 국내 역대 두 번째 '정년 은퇴' 기수가 됐다.<br><br>박태종은 국내 경마계에서 각종 기록을 보유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38년여 동안 통산 1만6016차례 경주에 출전해 2249승을 기록한 그는 통산 출전 횟수, 최다승 부문 1위다. 최다승 2위(2054승)에 오른 문세영(45)과는 아직 195승 차이가 난다. 박태종은 2006년 한 시즌 최다승(120승), 2009년 한 해 최다 경주(654회)뿐 아니라 2004년 1000승, 2015년 2000승을 국내 선수 중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br><br>현역 마지막 경주에서도 박태종은 2000년생 기수 이상규와 막판까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인 끝에 2위로 마쳐 관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박태종은 "1등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최선을 다한 레이스였기에 만족스러웠고 후회도 없었다"고 말했다.<br><br>자신의 경마 기수 인생을 돌아본 박태종은 "기수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이뤘다"며 스스로에게 90점을 줬다. 그러면서 자신을 "말에 미쳤던 사람"이라고 돌아봤다. 그가 걸어온 길은 최고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과정의 연속이었다.<br><br>1965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태종은 우연한 기회에 경마 기수가 됐다. 원래 포클레인 기사를 꿈꾸던 평범한 고교생이었던 그는 마사회의 기수 공고를 본 친척의 권유로 기수 후보생을 준비했다. 그리고 재수 도전 끝에 1987년 기수에 정식 입문했다.<br><br>박태종은 38년 내내 누구보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밤 9시에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현역 은퇴 직전까지 수행했다. 경주마와 함께 훈련하는 것은 기본.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통한 몸 관리를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술·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최대한 자제했다.<br><br>박태종은 최고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금주'를 꼽았다. 박태종은 "한번 흐트러지면 습관이 되기 때문에 컨디션이 깨지는 일을 안 하려고 했다. 술이 몸에 잘 안 받는 면도 있지만, 술을 아예 입에도 대지 않은 덕에 꾸준히 내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술자리로 받을 수 있는 외부의 유혹도 철저히 단절했다. 그저 내가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에만 집중했기에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승부조작 유혹 등 경마계에서 일어날 법한 구설이 한번도 없었던 비결 또한 여기에 있었다.<br><br>기수 활동을 하기 전에는 작은 체구(키 150㎝·몸무게 47㎏)가 늘 콤플렉스였다. 그러나 기수가 된 뒤로 그는 경마계의 '작은 거인'으로 우뚝 섰다. 그랑프리, 코리아더비 등 메이저 대회를 총 48차례나 석권한 박태종은 "기수 중에서도 내가 제일 작았다. 체중 조절에 힘들어하는 다른 기수들에 비해 나는 삼시 세끼 다 먹으면서 체력 관리를 했음에도 40년 가까이 체중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타고난 체질에다 금욕적 생활, 자기 노력을 더한 그는 "기수 활동을 하면서 작은 체구가 콤플렉스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경마 기수는 내 천직과도 같았다"고 힘줘 말했다.<br><br>경주마와 함께 늘 최고의 자리만 지켰을 법하지만 시련도 많았다. 경주 중 수차례 말에서 떨어져 무릎, 허리, 어깨 등에는 성한 곳이 없었다. 1999년에는 척추압박골절상을 입었고, 2016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10개월간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박태종은 "전방·후방 무릎인대가 다 끊어지고 연골판 절개 수술도 해 뛰지 못한다. 평생 주사를 맞으며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br><br>이 같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의 응원이었다. 1997년 팬의 소개로 만나 결혼한 아내 이은주 씨는 박태종의 평생 든든한 서포터다. 박태종은 "재활 치료를 하는 동안 매일 손과 발이 돼주고, 성적이 안 좋을 때 늘 용기를 불어넣어준 사람이 아내였다. 은퇴 경주 후 아내가 '정말 고생했다'고 하더라. 옆에서 헌신한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br><br>경주마에서 내려왔지만 그는 바이크, 자전거 등 다른 탈 거리를 통해 속도감을 즐기며 제2의 인생을 보낼 생각이다. 물론 늘 함께한 경마와는 또 다른 인연을 이어갈 생각이다. 박태종은 "말과 함께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아직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경마장에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br><br>[과천 김지한 기자]<br><br><!-- r_start //--><!-- r_end //--> 관련자료 이전 고우석, 미국서 계속 도전…디트로이트 유니폼 입는다 01-05 다음 [GS칼텍스배 프로기전] 세력, 어떻게 쓸 것인가 01-0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