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수문장’ 녜웨이핑 9단, 지병으로 타계…향년 74세 작성일 01-15 27 목록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144/2026/01/15/0001091844_001_20260115105814926.jpg" alt="" /><em class="img_desc">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em></span><br><br>중국 바둑의 전설 녜웨이핑 9단이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br><br>중국바둑협회는 15일 “협회 명예 회장이자 중국 바둑계 대부로 불리는 녜웨이핑이 전날 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br><br>1952년 중국 허베이성 선저우에서 태어난 녜웨이핑은 중국 바둑 역사를 논할 때 절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9살 때 바둑을 시작한 녜웨이핑은 1975년 중국바둑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79년까지 5번 우승했고, 1982년에는 ‘입신(9단)’의 경지에 올랐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144/2026/01/15/0001091844_002_20260115105814976.jpg" alt="" /><em class="img_desc">젊은 시절의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em></span><br><br>녜웨이핑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985년부터 열린 중·일 슈퍼대항전이다. 녜웨이핑은 1회부터 4회 대회까지 무려 11연승을 질주하며 ‘철의 수문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현대 바둑의 중심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회 대회 때 일본 기사들이 “지고 돌아오면 삭발을 하겠다”고 하자 “삭발을 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응수한 뒤 일본 기사들을 모조리 제압, 기어코 삭발을 하게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이는 지금도 일본 바둑 최대 흑역사로 남아있다.<br><br>이런 녜웨이핑이 한국 팬들에 친숙해진 계기는 1989년 열린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이다. 당시 결승 5번기에서 조훈현 9단을 상대한 녜웨이핑은 5국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같은 천재 기사들이 연이어 세계 무대를 제패하면서 한국 바둑은 세계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br><br>1986년 중국 바둑국가대표팀 총감독을 맡기도 했던 녜웨이핑은 이후 후학 양성에도 힘을 써 마샤오춘 9단, 창하오 9단, 구리 9단 등 걸출한 기사들을 길러내기도 했다.<br><br>중국 바둑 부흥의 핵심 인물인 녜웨이핑은 바둑을 좋아하는 시진핑 주석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1966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 시절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둘은 대학 졸업 후에도 축구 경기를 같이 보러 다니는 등 친분을 유지했다. 시진핑 주석은 공식 석상에서 녜웨이핑을 만날 때마다 ‘중국 바둑의 자존심’, ‘중국 문화의 대표 인물’이라며 높이 평가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144/2026/01/15/0001091844_003_20260115105815025.jpg" alt="" /><em class="img_desc">1989년 제1회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 9단과 대국하는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em></span><br><br>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관련자료 이전 “AI 자동화 결정 솔루션 등 고위험 분야 점검…'증거보존명령'도 신설” 01-15 다음 '코리안 타이슨' 고석현, 3개월 만에 UFC 3연승 도전... 美 괴물 신예와 맞대결 01-1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