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매니페스토* 작성일 01-31 1 목록 [김영민의 엽편소설]<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36/2026/01/31/0000053071_001_20260131110215506.jpg" alt="" /><em class="img_desc">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표지. 위키미디어</em></span><br><br>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내향인이라는 유령이. 지금까지 이 세계를 지배해온 세력들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그 세력이 누구냐고? 극우 언론, 자본가, 지주, 유력 정치인, 인플루언서다. 이들은 각각 이 세상, 이 모양, 이 꼴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중 누구에게 오롯이 이 모든 책임을 돌린다는 말인가. 책임은 그들 모두에게 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자본도 아니고, 정치권력도 아니고, 무력도 아니고, 외모도 아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외향인이라는 사실이다. 내향인이라는 유령이 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고, 외향인들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br><br>물론 극우 언론 안에도, 자본가 안에도, 지주 안에도, 인플루언서 안에도 내향인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있다! 그들은 지배층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피지배층이었던 것이다! 기업을 물려받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외향인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엉겁결에 유명해지는 바람에 영향력을 갖게 돼버린, 정치인 아버지를 두는 바람에 그 자신도 정치인이 돼버린, 생계를 위해 외향인이 돼버린 그들의 애달픈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그들은 외향인의 거죽을 쓰고 있지만, 실은 내향인이다.<br><br>외향인은 설친다. 설치류(齧齒類)보다 더 설친다. 외향인은 화려한 환대 이외에 인간 사이에 어떤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 외향인은 인간의 존엄을 사교성이라는 가치 하나로 녹여버렸고, 인간의 자유를 희희낙락할 자유로 대체했다. 외향인의 세계에서 자유란 하하호호 하는 네트워킹의 자유일 뿐이다. 조용히 자빠져 있을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 외향인은 은밀하게 주고받아야 할 사랑의 감정마저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로 만들었다. 그렇게 설침으로써 외향인은 결국 생산수단을 독점했고, 대다수의 내향인은 노동하고도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뿐이랴. 한 시대의 지배사상은 늘 외향인의 사상이다. 오직 그들만이 큰소리로 떠벌리기 때문이다. 외향인의 법과 사상은 외향인 생산체제와 소유관계의 부산물이고 지배수단에 불과하다.<br><br>그리하여 모든 계급투쟁은 성격투쟁이다. 아니,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기보다는 성격투쟁의 역사다. 세계사는 내향인과 외향인 간의 투쟁으로 다시 쓰여야 한다. 아니라고? 내향인은 투쟁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내향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체제 전복을 위해 조용히 투쟁하고 있다. 외향인처럼 구호를 내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향인은 순종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왔다. 그러나 투쟁은 외향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향인 역시 기존 사회질서를 폭력으로 전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생각하는 폭력의 종류가 다를 뿐.<br><br>외향인이 죽창을 들 때 내향인은 죽순을 든다. 외향인이 죽창으로 상대를 쑤실 때, 내향인은 이쑤시개로 상대를 쑤신다. 외향인이 적들의 노트북을 망치로 내려칠 때 내향인은 노트북에 바이러스를 심는다. 일시에 노트북을 다운시키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성능을 30% 정도로 떨어뜨리는 소심한 바이러스를 심는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 더 효과적이다! 적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지도 모른 채 “왜 이렇게 노트북이 느리지”라고 투덜거리며 계속 사용한다. 계속 사용하면서 계속 고통받는다. 적극적 바이러스는 노트북을 바꾸게 하지만, 소극적 바이러스는 시스템을 느리게 해서 장기적으로 더 큰 고통을 준다. 이처럼 내향인의 목표는 일시에 체제를 전복하는 게 아니다. 장시간에 걸쳐 체제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게 목표다.<br><br>세계 곳곳에 내향인의 투쟁이 아로새겨져 있다. 현미경으로 고급 외제차를 들여다보면, 보일 듯 말 듯 한 실금이 가 있을 거다. 그것이 바로 내향적 반달리즘(Vandalism)의 흔적이다. 내향인은 지배층이 누리는 고가의 물건에 보일 듯 말 듯 한 흠집을 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지배층의 자동차를 티 나게 긁어놓으면, 지배층은 서슴없이 차를 바꾼다. 그러나 보일 듯 말 듯 한 실금은 다르다. 눈치채지 못한 채 실금이 간 자동차를 계속 타고 다니는 굴욕을 겪게 된다. 고층 건물 앞에 서 있는 못생긴 조형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라. 거기에도 실금이 가 있다. 관광지의 못생긴 포토존 하트 조형물을 들여다보라. 거기에도 실금이 가 있다. 내향인이 이미 다녀간 것이다.<br><br>내향인이라고 염원하는 게 없을까. 그들은 다만 구호를 외치지 않을 뿐이다. “미제의 각을 뜨자” “독재자를 찢어 죽이자” 이런 것은 외향인의 구호다. 내향인은 결코 소리 지르지 않는다.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독재자에게 끝없는 가려움증을” “독재자에게 낫지 않는 무좀을” “독재자에게 대책 없는 탈모를”. 내향인은 소리 높여 항의하기보다는 조용히 저주한다. 그렇기에 내향인의 구호는 기도문을 닮았다. 구호를 싫어하는 내향인에게 데모를 기대하지 마라. 그들은 이미 조용히 정신적 고공농성 중이다.<br><br>미워하는 상대에게는 인사말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게 내향인이다. 아니, 내향인이 그에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는 걸 보았다고? 아니, 잘 들어보라. “안녕히 계시든가요”라고 조용히 얼버무렸다. 당신이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기대했기에, 그렇게 들렸을 뿐이다. 내향인은 뒤끝이 있다. 그가 안녕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대신 “말씀하신 대로 이행하겠습니미”라고 투덜거린다. 그렇다. 불의를 마주하면, 항의하기보다는 투덜거린다. 대놓고 투덜거리지는 않고 살짝살짝 잘못 발음한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대신 “간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대신 “(뭐가) 고맙습니까” 등등.<br><br>외향인은 내향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자기도 내향인이라고 주장한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라. 절반 이상이 다 자신은 내향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사람들은 다 자신이 어딘가 섬약한 구석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소탈하고 친절하고 다정하고 쾌활하고 목청 좋은 외향인 상당수가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나도 내향인이여!” 따라서 가짜 내향인을 감별해내는 일이 내향인에게는 중요하다. 누군가 자신이 내향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의 엠비티아이(MBTI)를 물어보라. “I”라고 하면 그가 내향인일까. 그렇지 않다! 내향인은 MBTI 같은 건 하지 않는다. MBTI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내향인임을 이미 잘 알기에. 누가 MBTI 테스트에서 “I”가 나왔다고 떠벌린다? 그는 프락치다! 조용히 내향인 후보에서 지워라.<br><br>내향인도 외향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외향인 없이는 이 세상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향인이 싫어하는 것은 외향인 정권일 뿐. 내향인을 억압하는 외향인일 뿐. 내향인을 자처하는 외향인일 뿐. 내향인에게 상처 주는 외향인일 뿐. 내향인을 간택해 친구로 삼아주는 외향인이라면, 내향인도 싫어하지 않는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36/2026/01/31/0000053071_002_20260131110215619.jpg" alt="" /><em class="img_desc">2025년 9월 ‘내향인’ 기수 정평화씨가 수익금 기부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한 ‘내향인’ 티셔츠. 정평화 제공</em></span><br><br>그래서 내향인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외향인과 종종 결혼한다. 다만 거절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렇게 프러포즈한다. “말미잘이 좋아요, 제가 좋아요?” 내향인은 마음의 골절을 두려워하기에 단정적인 프러포즈를 하지 않는다. 이 험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매복사랑니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게 내향인의 꿈이다. 내향인은 심지어 이별할 때도 이렇게 말한다. “우린 한때 사랑했어요. 우리가 사라지더라도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죠. 그 사실과는 헤어질 수 없어요.”<br><br>그렇다면 ‘찐’내향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의 말을 들으면 기도하는 느낌이 든다? 그는 내향인이다. 삶의 경멸과 죽음의 두려움 사이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것 같다? 그는 내향인이다. 이 사람은 더 이상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내향인이다. 마치 삶이 비상시라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으로 종종 다닌다? 그는 내향인이다. 나대거나 우기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내향인이다. 멍청한 것까지는 양해하는데 큰소리로 우겨대거나 나대는 이들을 내향인은 못 참는다.<br><br>따라서 내향인의 정당 결성은 불가능하다. 정당이니 선거니 하는 제도 자체가 외향인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당신이 목이 터져라 유세했는데도 원하는 표를 얻지 못했다고? 당신이 언성을 높이는 순간, 내향인은 등을 돌린다. 누가 출마 의사를 밝히는 순간, 그는 이미 자격이 없다. 왜냐고? 나댔기 때문이다. 내향인에게는 정당도 없고 조국도 없다. 정당이 있다면 그의 베개가 그의 정당이다. 조국이 있다면 그의 침대가 그의 조국이다. 침대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침대를 사랑한다.<br><br>내향인은 좀처럼 이데올로기의 신봉자가 되지 않는다. ‘~주의자’ ‘~니스트’ 같은 정체성을 거부한다. 사회주의에 공감하면서도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는다. 그저 사회인이나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동의하면서도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는다. 그저 페미가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주의자가 될 시간에, 내향인은 차라리 자기반성에 몰두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태도를 거부한다. 내불남로(내가 하면 불륜, 남이 하면 로맨스)의 태도로 살아간다. 내로남불을 하느니 생불(生佛)이 되겠다는 것이 내향인의 인생관이다.<br><br>그럼에도 내향인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내향인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도 생산물을 취득할 힘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다만 취득 과정에서 나댈 권리를 박탈할 뿐이다. 나댐을 철폐하는 그 순간, 사회에 게으름이 만연할 거라고 외향인은 비난한다. 그렇지 않다. 내향인 유토피아에서 사람들은 자기 일을 사랑하며, 조용히 자신의 작은 세계를 가꾼다. 가장 권력을 갖기 싫어하는 이에게 권력을 주어라! 그러면 권력은 남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각자의 고요함이 만인의 고요함의 조건이 되는 공동체가 등장할 것이다. 그 공동체에 과잉은 없다. 과잉애정표현, 과잉진료, 과식이 없다. 내향인 유토피아에서 사람들은 일보 전진을 위해 계속 후퇴 중이다.<br><br>내향인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을 두려워한 일부 악독한 외향인은 내향인을 다양하게 고문해왔다. 내향인은 인내력이 강하므로 어지간한 고문에는 동료 내향인의 소재를 발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향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몇몇 지독한 고문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향인에게 웅변대회 입상을 요구하다니! 내향인에게 치어리더를 시키다니! 내향인을 응원단장으로 임명하다니! 내향인에게 시국선언을 시키다니! 내향인에게 웨딩플래너를 시키다니! 내향인에게 단체대화방을 만들라고 하다니! 내향인을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임명하다니! 내향인에게 대통령 선거에 나가라고 하다니! 차라리 내향인을 독방에 가둬라!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비난하라! 내향인은 우물을 좋아하니까.<br><br>괴롭히면 뭐 하랴. 외향인이 성장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내향인의 계급의식도 성장하기 마련이다. 외향인의 나댐은 내향인을 고립시키지만, 동시에 내향인을 혁명세력으로 만든다. 외향인은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꾼들을 양성해낸 것이다. 외향인은 잘살기 위해 나대기 시작했지만, 나댐으로써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지만, 이제 너무 나댄다는 이유로 내향인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외향인의 몰락과 내향인의 승리는 피할 수 없다. 외향인으로 하여금 내향인의 소리 없는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내향인이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조용히 누워 있을 침대뿐이다. 만국의 내향인들이여, 단결하라!<br><br> <br><br>*내향인은 선언(매니페스토) 같은 거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향인 선언이라기보다는 내향인의 기도에 가깝다. 내향인 선언에 영향을 끼친 문헌에 관심이 있다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참고할 것.<br><br> <br><br><strong>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strong><br><br> <br><br><strong>*한 달에 한 번씩 상상의 여행을 떠납니다.</strong><br><br> 관련자료 이전 '대충격' 안세영 이럴 수가! 오른 무릎 붕대 '칭칭'+두꺼운 아이싱→"부상 악령인가?" 분통…선수촌 입촌 '퀸세영 모드'→"얼른 보고 싶다" 팬들도 반겼다 01-31 다음 '나홀로 집에' 캐서린 오하라 별세...맥컬리 컬킨 "시간 더 있을 줄" 애도 [할리웃통신] 01-3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