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속 계유정난 실체는?…KAIST, 데이터 분석 입증 작성일 04-01 38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 KAIST-홍콩침례대학-홍콩대학, 조선왕조실록·문과방목 분석 <br>- 관료 1만4천명 경력패턴 규명, 계유정난 등 격변기 평시 비교</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yboqsdpXY7">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c8bb08904b2f7a2ca5ecd700f28462dc8ba221bc93e0e032dc3773390b169978" dmcf-pid="WKgBOJUZYu"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영화 ‘왕과 사는 남자’.[쇼박스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1/ned/20260401084150515vvnl.jpg" data-org-width="647" dmcf-mid="PV4HLKTsG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ned/20260401084150515vvnl.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영화 ‘왕과 사는 남자’.[쇼박스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03aba1ba6cce6a00c2acfccf52c335d44774e34d4d61a105caa156863ac5cced" dmcf-pid="Y9abIiu51U" dmcf-ptype="general">[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큰 인기를 끌며 단종과 세조의 비극적인 역사 ‘계유정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화 속 권력 다툼은 극적이지만, 실제 역사 속 관료들의 운명은 어떻게 갈렸을까. 국제 공동연구진이 조선왕조실록과 과거 급제자 기록을 데이터로 분석, 조선 관료 사회의 성공과 몰락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p> <p contents-hash="89c994b4676d6c41c90123ed0df1d0cb01c7a54228542c82e4dfde9c887f97e3" dmcf-pid="G2NKCn71Yp" dmcf-ptype="general">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주용 교수 연구팀은 홍콩침례대학 최동혁 박사(KAIST 졸업생)와 홍콩대학 구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과 문과방목(文科榜目, 과거 급제자 명단)을 디지털 인문학과 복합계 과학 방법론으로 분석, 조선 관료 1만 4600여 명의 경력 패턴을 밝혀냈다고 1일 밝혔다.</p> <p contents-hash="89aac427b23db81d45a0550ec43495c90328ec936d0846de86ea8bd79c5b9a3b" dmcf-pid="HVj9hLztX0" dmcf-ptype="general">연구팀은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이 유지될 때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작동했지만, 특정 집단에 권력이 집중되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국가 전체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즉, 조선의 멸망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의 붕괴’의 결과였다는 점을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다.</p> <p contents-hash="b9109a3461d7d4e2801b667dce533aa8890e87949058fc966218265d952d8324" dmcf-pid="XfA2loqFY3" dmcf-ptype="general">조선왕조실록은 6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국가 운영 기록을 담은 세계적 유산으로, 당시 정치·사회 구조를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565504941ade6d44bd4e6639faaebf4e26e16a69097d0ff79c252958db3ccf92" dmcf-pid="Z4cVSgB3YF"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조선왕조실록의 계유정난 시기 기사원본(왼쪽)과 온라인 한국어 번역본(오른쪽).[KAIST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1/ned/20260401084150755gtyc.jpg" data-org-width="800" dmcf-mid="QVP5aVYCt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ned/20260401084150755gtyc.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조선왕조실록의 계유정난 시기 기사원본(왼쪽)과 온라인 한국어 번역본(오른쪽).[KAIST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ea3c24cb072a39cd182cfb27e41083cdd9c478daff8001444e519755bb7dac3e" dmcf-pid="58kfvab01t" dmcf-ptype="general">연구진은 먼저 조선 초기 권력 구조 극적 변동 사태인 1453년 ‘계유정난’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실록 기록을 바탕으로 단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과 교류한 관료들의 관계망을 구축한 결과, 세조와 가까웠던 인물들은 공신으로 부상하고 안평대군 측 인물들은 숙청되는 등 권력 변화가 관료 사회에 끼친 영향이 데이터로 명확히 드러났다.</p> <p contents-hash="f44c24aa55158819d918acd888781096953557fe1f37292accbf3bc19a53e163" dmcf-pid="16E4TNKpY1" dmcf-ptype="general">다만 이러한 무력 정변은 조선 역사상 극히 소수의 사례였기 때문에, 연구진은 관료제의 일반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장기적인 분석을 수행했다.</p> <p contents-hash="a458800bc1dabc5bfc3fcd9beaeba95ab5a3c0bbb0bcbf33d02f4474c076018e" dmcf-pid="tPD8yj9UZ5" dmcf-ptype="general">연구팀은 관료가 맡았던 관직의 높이와 재직 기간을 종합해 ‘총성공지표(Total Success Index)’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각 관료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서 얼마나 오래 활동했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했다.</p> <p contents-hash="e0604291b28bdcc394991e520616968f224aba6d8d4bacaa84ddb5311c1db126" dmcf-pid="FQw6WA2uYZ" dmcf-ptype="general">분석 결과,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 동안 출신 가문이나 지역과 개인의 성공지표 사이에는 일정 수준의 상관관계는 있었지만, 그 수준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정상적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일정 수준의 공정성과 사회적 이동성이 유지됐음을 의미한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fe03134d69df2afc7f5fb0f2d67398d2f67fe551d822d941d6385917c5455b34" dmcf-pid="3ziuwMFYXX"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KAIST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1/ned/20260401084150976jvyc.jpg" data-org-width="700" dmcf-mid="xQCe5rPKY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ned/20260401084150976jvyc.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KAIST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d28abed0c9bde3e8527e979e3321a953109b45f8a6458ca44b762af3c2d2db5e" dmcf-pid="0qn7rR3GHH" dmcf-ptype="general">그러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러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특정 가문이 경쟁이 아닌 권세를 통해서 과거 급제자와 고위 관직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관료 사회의 불평등이 급격히 심화됐다.</p> <p contents-hash="b9837ddb18212c31c42055126b042062ca74470c9a1ac2196f40a9d1a134560e" dmcf-pid="pBLzme0HXG" dmcf-ptype="general">연구팀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특정 가문이 관료의 성공 지표를 집중적으로 차지하는 현상을 확인했으며, 이는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실력 본위의 등용 시스템이 무너진 구조적 변동를 해결하지 못한 조선 사회는 곧 쇠퇴와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p> <p contents-hash="d62644cd0d9f9055b5dc4bade04d44fa1b75e3ca827e43786261a1a211d03329" dmcf-pid="UboqsdpX5Y" dmcf-ptype="general">박주용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기간의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한계를 넘어 한 국가 전체 구조의 역사적 변동을 관찰한 사례”라며 “국가의 흥망성쇠에 개인과 집단의 행위가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의 공정성과 인재 등용 문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프로젝트 헤일메리' 너머] 현실서 만나는 로키?...국내 심우주탐사, 어디까지 왔나 04-01 다음 손흥민 발끝도 구멍 뚫린 수비도 '고장'...굴욕의 홍명보호 [지금이뉴스] 04-0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