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왕과 사는 남자' 계유정난 데이터로 확인해보니…세조파 '공신'·안평대군파 '숙청' 작성일 04-01 36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686DDqlwI0">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18b1c1ff4d8809bcb606b260f33580779767534a0b8591a86e9a713adb359a05" dmcf-pid="P6PwwBSrE3"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사진=쇼박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1/552779-26fvic8/20260401161309426gcse.jpg" data-org-width="353" dmcf-mid="4UFxxyoMwU"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552779-26fvic8/20260401161309426gcse.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사진=쇼박스]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5d0a4d6decb01e0b1de834ef1e50aa2f7e5e2a550f8a600c04cac60bad967fc6" dmcf-pid="QPQrrbvmEF" dmcf-ptype="general">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으로 조선시대 권력 투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조선 관료 사회의 성공과 몰락을 데이터로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일 사건이 아닌 ‘시스템 붕괴’가 국가 쇠퇴로 이어졌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다.</p> <p contents-hash="ac747c7199d7e0088a27c650b11b4b6c9b85942092a96b7f09873ce82e5a9044" dmcf-pid="xQxmmKTsDt" dmcf-ptype="general">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박주용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홍콩침례대학, 홍콩대학 연구진과 공동으로 조선왕조실록과 문과방목(과거 급제자 명단)을 분석해 조선 관료 1만4600여 명의 경력 패턴을 규명했다고 1일 밝혔다.</p> <p contents-hash="571b45d012769ad4dd9274d5ebf25375b0e2973404c4908cd7d6712bc9977181" dmcf-pid="yTyKKmQ9m1" dmcf-ptype="general">연구는 디지털 인문학과 복합계 과학 방법론을 결합해 진행됐다. 연구팀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인물 간 관계와 관직 이력을 기반으로 관료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p> <p contents-hash="85553fcc0ba617c0784b8eae2ba302286d9baa0b65d74a74c37e1533971017c1" dmcf-pid="WyW99sx2s5" dmcf-ptype="general">먼저 연구팀은 1453년 ‘계유정난’을 사례로 권력 변동이 관료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 단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과 교류한 인물들의 관계망을 구축한 결과, 세조와 가까운 인물은 공신으로 부상한 반면 안평대군 측 인물은 숙청되는 등 권력 재편 양상이 데이터로 확인됐다.</p> <p contents-hash="ea66ece4ccdb0d9880759f35eecb3ea3d466b4ccd3c4264864a842f2a91bdcf4" dmcf-pid="YWY22OMVsZ" dmcf-ptype="general">다만 연구팀은 계유정난과 같은 정치적 격변은 예외적 사례로 보고, 관료제의 일반적 작동 방식을 파악하기 위해 장기 분석을 병행했다.</p> <div contents-hash="089f933e39f4ba5866a21650e75a9dad5c837956d1467015c720b606314687fa" dmcf-pid="GReIIVYCsX" dmcf-ptype="general"> 이를 위해 관직의 수준과 재직 기간을 종합한 ‘총성공지표(Total Success Index)’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각 관료의 경력 성취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br>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8edce1cfeff513c23d9be4998bf7763a976c2cf9808ec30462e946d4c1de1424" dmcf-pid="HedCCfGhIH"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실록의 기록으로 구성해낸 계유정난 당시 주요 왕족인 단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 그리고 관료들의 연결망 [사진=KAIST]"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1/552779-26fvic8/20260401161310700zwtz.jpg" data-org-width="640" dmcf-mid="8GHffCe4O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552779-26fvic8/20260401161310700zwtz.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실록의 기록으로 구성해낸 계유정난 당시 주요 왕족인 단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 그리고 관료들의 연결망 [사진=KAIST]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cc21ea5dce4a69dec59df4d51de1e6150b26d66446e506a33573fa6ea22d18a3" dmcf-pid="XdJhh4HlwG" dmcf-ptype="general">분석 결과,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간은 출신 가문이나 지역과 개인의 성공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는 존재했지만, 그 수준은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정 수준의 공정성과 사회 이동성이 유지됐음을 의미한다.</p> <p contents-hash="1abe69fe8c5b86c14ae33ff4cd14db4ff7db641be3fa6ff9e56d3593e8d324ba" dmcf-pid="ZJill8XSEY" dmcf-ptype="general">반면 조선 후기로 갈수록 구조는 급격히 변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특정 가문이 과거 급제와 고위 관직을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관료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p> <p contents-hash="64892604dce8943fe03b8488b0f334e7196a5d027930260f60782ad502e6216e" dmcf-pid="5inSS6ZvmW" dmcf-ptype="general">연구팀은 특정 가문이 관료의 성공 지표를 집중적으로 차지하는 현상을 확인했으며, 이는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실력 중심의 선발 구조가 무너지면서 사회 전체의 활력이 저하됐고, 결국 국가 쇠퇴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p> <p contents-hash="628dd45c82ac4658d342ee701f4b14d26b00baf1696c614973176f59952bbd5c" dmcf-pid="1nLvvP5Twy" dmcf-ptype="general">박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일 사건을 넘어 국가 전체 구조의 장기적 변화를 분석한 사례”라며 “공정성과 인재 등용 문제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화된 역사 자료와 과학적 분석의 결합은 과거 해석을 넘어 미래 사회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p> </section> </div> 관련자료 이전 ‘AI 무장’ 해커 기술 못 쫓아가는 기업들…“투자·인력보강 절실” 04-01 다음 [현장] 정부, 에이전틱 AI 지원 나선다…민관 협력 4대 분과 가동 04-0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