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중화민국의 기억 작성일 04-01 4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yu5YFgB3Ub"> <blockquote class="pretip_frm" contents-hash="97870e385c76d96aae3884df97f1c155eee81bb4acf1bb0c748696c42289e963" dmcf-pid="W71G3ab07B" dmcf-ptype="pre"> 편집자주 <br><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blockquote>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381f3cbe824e3168fcd0eb4c822fb34a2d6f3cca3f93fae9269966fbfd532f0d" dmcf-pid="YztH0NKpFq"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이국정원'(1958)은 한국 첫 해외 합작 영화로 동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졌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1/hankooki/20260401180127268pgpl.jpg" data-org-width="500" dmcf-mid="x7vIWMFYU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hankooki/20260401180127268pgpl.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이국정원'(1958)은 한국 첫 해외 합작 영화로 동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졌다.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d6177384c6d527897ce361a02e1efe892f7b88dea5e021df3d2d86101e0dc7ef" dmcf-pid="GqFXpj9U0z" dmcf-ptype="general">‘이국정원’(1958)은 한국 영화사 최초 해외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과 일본, 홍콩이 손을 잡고 제작했다. 영화는 홍콩을 배경으로 국경을 넘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6·25전쟁이 끝난 지 5년 남짓 후 개봉한 영화로서는 제작 방식도, 내용도 파격적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 홍콩, 필리핀 등 동아시아 반공 블록 형성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따른다. 미국이 문화를 통한 동아시아 자유 진영의 연대 강화를 도모하며 만들어진 영화라는 거다.</p> <p contents-hash="4eecc84d446b7f5d6727b202efb01f65a489eaf93261ac1e393cfd7609afa9ef" dmcf-pid="HQ9zfCe4p7" dmcf-ptype="general">□ 1954년 시작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역시 냉전이 낳은 행사라는 시각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의 영화산업을 진흥하고 문화교류를 촉진한다는 취지가 따랐는데 반공 국가들이 회원이었다. 회원국을 돌며 매년 개최돼 지역 주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1949년 12월 국부천대(國府遷臺) 후 전열을 가다듬던 중화민국이 주요 회원국 중 하나였다. 중화민국은 자국 영화산업 기반은 취약했으나 영국령 홍콩을 매개로 회원국들과 영화를 통해 우호친선을 다졌다.</p> <p contents-hash="2bf0c5f8e8cda69b24b8e916274419e9d0e6e3f72b9f5fd6332867ea87a973df" dmcf-pid="Xx2q4hd8Fu" dmcf-ptype="general">□ 홍콩 영화 ‘천녀유혼’(1987) 등으로 유명한 배우 왕쭈센(王祖賢), ‘동방불패’(1992) 등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린칭샤(林靑霞)는 중화민국에서 나고 자랐다. 왕쭈센과 린칭샤는 중화민국에서의 활동을 발판 삼아 홍콩으로 진출했고 동아시아 지역 스타가 됐다. 무협영화로 유명한 홍콩 감독 후진취안(胡金銓)은 대표작 ‘용문객잔’(1967)과 ‘협녀’(1971) 등을 중화민국에서 만들었다. 중화민국은 1992년 한중 수교와 더불어 오랜 우방 한국과 단교했다. 한국 내 공식 명칭은 대만으로 바뀌었다.</p> <p contents-hash="0727f39b345faf126ca5f20d2e7f4ba8c4a99b8d0fe5fb931bc137abdbc58318" dmcf-pid="ZMVB8lJ60U" dmcf-ptype="general">□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대만만큼 국가 위상과 호칭의 부침이 큰 나라는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 전자 입국신고서에 직전 출발지 등을 ‘중국(대만)’으로 표기한 것을 두고 양국 사이 마찰음이 발생했다. 대만은 외국인 거류증의 한국 명칭을 ‘남한’으로 바꾸며 반발했다. 한국 당국이 직전 출발지 등 항목을 삭제키로 하며 없던 일이 됐다. 한때 중화민국 또는 자유중국으로 불리며 서방 진영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대만이 처한 냉엄한 현실을 보여 주는 해프닝이다. </p> <p contents-hash="adaf78e804b1c187f0aefbc9b6000911722f0158ad05179b98997d312c4981ba" dmcf-pid="5Rfb6SiP3p" dmcf-ptype="general">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최휘영 문체부 장관, IOC 통해 장웅 北 IOC 명예위원에 조전 04-01 다음 조갑경, 전 며느리 저격에도 '라스' 선공개 등장...채연과 '당당' 투샷 [Oh!쎈 예고] 04-0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